글쓰기는 사랑했던 것들을 불멸화하려는 노력이라고 했는데, 나의 글쓰기가 정말로 그랬던 것이다. - P16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에 나에겐 보이고 그에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해 생각했다. 그에겐 보이고 나에겐 보이지 않았던 세상에 해 두 시간 동안 열심히 듣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와 나는 아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있었다. - P20

‘시선‘이라는 아주 강력한 것이 나를 따라온 것이었다. 너무나 다행이었다. - P24

나는 죄책감이란 것이 ‘먼저 달아난 사람’의 감정인 줄로만 여겼는데 그것이 ‘누군가를 구하려다 실패한 사람’의 것일수록 더욱 고통스럽고 지독할 수 있음을 알았다. 실은 죄에 대한 책임감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지막을 목격한것에 대한 책임감일 것이다. - P51

이곳 광화문까지 오는 데 15년이 걸렸다. 우리는 2001년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중증장애인들이 맨몸으로 막아섰던 그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왔고, 2007년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한강대교를 네 발로 기어 쟁취해낸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해 여기까지 왔으며, 2009년 ‘탈시설 권리’를 요구하며 시설과 세상 사이의 아득한 낭떠러지에 놓았던 그 징검다리를 딛고 여기까지 왔다. 무지개를 만나려면 비를 견뎌야 한다. 나는 그것을 저항하는 중증장애인들 속에서 천천히 몸으로 배웠다. 이번 비는 참으로 길다. - P59

수십년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삶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상이 열렸다는 것, 그것은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방 바깥으로 나온 그들은 동네를 구경하고 햇살을 만끽하고 장미꽃을 샀다. 니체를 읽고 연극 무대에 올랐으며 사랑하고 욕망했다. 그렇게 그들은 자기인생의 주체가 되었다. 활동보조서비스는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제도이다. - P61

그리하여 그들이 조금 더 불편해지기를 바랐다. 세상은 딱 그만큼 나아질 것이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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