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
산만언니 지음 / 푸른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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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 붕괴 사고 뿐만 아니라 그 몇달 전 아버지의 자살, 어릴 때 큰 오빠의 폭력, 가까이 작은 오빠의 사업 실패 여파로 인한 개인회생까지, 정말 파란만장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인생,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서 절과 성당을 찾아 마음수양을 하고, 보육원 아이들에게 몸과 마음을 내주고, 용기있게 세월호의 아픔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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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관련해서 전 세계 여러 석학이 말하기를, 가장 좋은 치료제는 관대하고 꾸준한 어른의 사랑이라고 한다. - P172

이제 나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되돌리는 게 우주정복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안다. 또 나를 미워하는사람들이 만족할 때까지 내가 망가지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안다. 아마 여전히 나를 미워하는 이들은 내 부고 소식이나 받아보아야 증오를 멈출 것이다. 더는 그들이 하는 말에 개의치 않을 생각이다. 그런 걱정 보태주지 않아도 이미 고단한 생이다. - P174

여름에도 절절 끓는 선방의 온돌에 누워 서로의 이름도 연락처도 묻지 않고 천장을 보며 다들 자유롭게 자기 이야기들을 꺼냈고, 그러면서 꽤 많은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이 역시 내가 인정하기 싫은 생의 몇 안 되는 진리 가운데 하나인데,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사람이다. 물론 둘은 다른 사람일 확률이 높지만. - P178

"사람들 말 신경 쓰지 마. 누구는 사람 볼 줄 아나. 우리 다 마찬가지야. 자기 자신도 못 보는 게 인간인데…. 근데 잘 가고 있는 나 등 떠밀어 넘어트리는 것도 사람이지만, 그런 나 일어나라고 손잡아주는 것도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 - P188

누가 그랬더라. 눈물은 악마의 것이 아니라 천사의 것이라고, 울음은 치유라고. 그렇게 울고 나니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 P189

어디선가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자꾸 소리 내어 말하라고, 말에는 힘이 있다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2014년 봄날에 어느 한철 피고 지는 꽃도 풀도 아니고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304명이나 죽었다. 그러니 이러지 말자. 우리 인간은 못 되어도 짐승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 P204

아마 이런 불행을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어쩌면 다들 그 끔찍하고 비통했던 장례식이 유가족이 겪는 불행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장례식장에서의 오열은 훗날 끝없이 이어지는 통곡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장례는 조문객이 다 빠져나간 후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 P210

아니다, 그렇지 않다. 세월호는 하나의 사고가 아니라 각기 다른 304명의 희생자와 유가족이 겪은 처절히 개별적인 고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체 이런 일이 왜 생겼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으니까. 이해를 해야 잊을 수 있으니까. 그러지 않고서는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는 게 사람이니까. - P214

"27일간 병원 중환자실에 있었던 아들을 망월동에 묻고 와서도 한참을 밤에 불을 켜고 살았어요. 누가 우리 한열이 흙으로라도 빚어서 안 던져주나 싶어 가지고요."
이 이야기를 듣는데,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당신 손으로 자식을 땅에 묻고 와서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는데, 살아생전 죽은 아들 마지막 얼굴 한 번 못본 우리 할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싶어서. 믿어지지 않았겠지.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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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짤막하게 변명하자면, 막상 사고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보니 세상에 중요한 것은 오로지 ‘나‘ 밖에 없었기에 오랜 세월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한동안 정말 아슬아슬한 시절을 보냈다. 이제와 이 시절을 회상하면 당시의 나는 연습도 전혀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겁 없는 외줄타기 곡예사였다. - P96

그 조그만 애가 다시 몸을 웅크리더니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젤리 아니야"라며 울먹였다. 해서 곁에 앉아 "그럼 뭐 줄까?" 물었더니 "안아줘"라는 아이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날 얼음장처럼 차가운 놀이방에서 작은 항아리 단지만 한 아이를 안고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맞다. 아이 말이 맞다. 젤리가 아니다. 사랑이다. - P103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절대자의 존재보다 한 중세 철학자의 유명한 주장을 더 신뢰했다. 만약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 지경일 리 없고, 세상은 이 지경인데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신이라면 그 신은 무능하거나 절대로 선하지 않은 존재라고 말이다. 그러니 교회에 가고 성당에 가도 번번이 "빛이 있으라"로 시작하는 <창세기>만 읽어도 화가 나, 《성경》을 탁 하고 덮고 뒤도 안 보고 돌아 나올 수 있었겠지.
절은 달랐다. 일단 절에서는 아무도 내 손을 덥석 잡지 않았으며, 누구도 내게 믿음을 강요하지 않았다. 선방에서도 자유로웠다. 보살님들의 대화에 끼고 싶으면 끼고 아니면 한구석에 누워 이불을 쓰고 자면 되었다. 아무도 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워 이것저것 따져 묻지 않았다. 또 새벽에 기도도량에 있으면 보살님들께서 따뜻한 핫팩과 홍삼캔디 같은 것을 말없이 건네주시기도 했다. 해서 당시에 교회보다 절에 끌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살기는 살아야겠는데, 세상 어디에도 마음 붙일 데가 없으니 나도 모르게 자꾸 영적인 공간을 본능적으로 찾아다녔던 것 같다. - P141

불가에서는 마음과 몸을 절대 다르다고 보지 않는다. 마음을 고치기가 어려우면 사람의 습관, 즉 몸에 밴 태도와 행동부터 고친다. 이런 의미에서 출가자들이 항상 유념하는 게 바로 하심下心이다. 하심이란 쉽게 말해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행동이다. 보통 절에 갓 들어온 행자승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수행법이다. 법당에서 만나는 상대에게 먼저 합장을 하고, 시선은 늘 낮은 데를 향하고, 되도록 말을 아끼고, 누구보다 먼저 궂은일을 찾아 하는 수행이다. 그리고 하심을 단기간에 익히는 데는 단연코 절 수행이 최고다. 해서 다리에 전에 못 보던 근육이 붙을 정도로 절을 열심히 했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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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세월호가 지겹다는 사람들에 대해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 P4

불행히도 그 시절에 나는 그와 함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지쳐갔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사랑과 고통은 철저히 별개라는 사실을, 이런 감정은 어느 한쪽이 무거워진다고 다른 한쪽이 가벼워지는 놀이기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 P26

아니,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불행에 대한 글은 쓰면 쓸수록 아프다. 세상에 아름다운 흉터는 없다. - P27

또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불행의 서사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 그냥 바람이 불고 비가 오듯, 어떤 일들은 이유 없이 일어나. 우리네 인생도 그래. 이해하려 애쓰지 마. 그냥 받아들여. 깊이 고민하지 마. 그리고 명심해. 네가 살아가는 동안 겪는 그 모든 일들은 전부 네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잊지 마. 시작된 모든 일에는 끝이 있어. - P55

그것은 바로 누구나 아주 편하고 쉽게 타인에게 상처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 P67

어른들 말씀처럼 살아만 있으면 다 어떻게든 살아지는 게 인생이니까. 굳세게 마음먹고 불행을 맞이해야 한다. - P76

글을 쓰는 동안 어느 날은 잘해보고 싶고 어느 날은 도망치고 싶던 날들이 연속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은 일관되게 명확했다. 함부로 타인의 고통을 조롱하지 말라는 것과, 언제나 악한 것이 힘세고 빛나 보이지만 결국 선이 이긴다는 것, 그리고 사랑은 보기보다 힘이 세다는 것. 이것은 내가 이생에서 얻은 유일한 교훈이다. 왜냐하면 나를 다치게 한 것도 세상이지만, 나를 치유한 것도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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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음식의 절반은 추억이다.
여행의 묘미는 반주지. ㅎㅎ 격하게 공감
스프 하나에 인생이 들어가 있다.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돈까스는 오스트리아의 슈니첼이 홀 커틀릿 또는 포크 커틀릿으로 18세기 후반 일본에 전해졌고, 지금의 돈까스가 되었다. 그것이 또 우리나라에서 우리 식으로 바뀌어 경양식, 한식 돈까스가 되었다. - P36

린틴틴 나오는 음식에 비해 가격이 너무 싼 거 같아요.
신창호 우리가 조금 덜 가져가면 돼요. 종업원을 쓰면 이 가격을 유지 못 해요. 둘이서 그냥 하니까 되는 건데, 힘들죠, 이제. 경양식집이 재료비도 많이 들고, 그렇다고 아무거나 써서 할 수 있나. 내 입에 맞아야 손님한테도 내놓는 거지, 제 신조는 그래요. 그렇게 여태까지 해오긴 했죠.
린틴틴 그러니 조금 올리세요..
신창호 알아주는 사람은 아는데, 그거 알아달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허허. 그럴거면 음식점 하지 말아야지, 그냥 술을 한 병 더 팔지. - P53

잠시후 따끈한 수프가 나왔고, 우유 맛이 나는 걸 보니 직접 만드는 듯하다. 맛있다. 수프를 직접 만드는 경양식집은 요즘 드물다. 생각보다 고된 일이어서(온종일 저어야 하니까), 손님이 많으면 그나마 양이 줄어드는 재미라도 있지만, 대체로 장사가 그럴 만큼 잘되지는 않으니까. - P56

오랜만에 보는 시금치나물, 몹시 반갑네. 내가 어릴 때는 가니시로 시금치 나오는 곳이 많았는데, 역시 음식은 절반이 추억이다. 그 옆으로 콘 샐러드, 베이크드 빈이 나란히 놓여 있다. - P58

메뉴가 쓰인 검은색 보드를 보는데, 소주도 판다. 돈까스와 함께 주문했다. 여행의 묘미는 반주지. - P63

뭐라도 더 팔아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콜라도 주문한다. 좋아하는 마카로니 샐러드를 맛보고, 뜨거운 감자튀김을 살살 불어가며 먹었다. 주방에서 다시고기 두드리는 소리, 할머니의 수고스러움을 생각하니 가격이 너무 저렴하지만, 이 돈까스는 터미널을 오가는 군인들의 든든한 한 끼가 되어주겠지. 노부부의 너그러운 마음씨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두툼한 돈까스와 샐러드, 튀김을 남김없이 모두 비우고 잘 먹었다는 인사를 드리며 계산하는데, 콜라 한 캔 값 천 원을 포함해 6천 원. 만 원 한 장 드리고 거슬러 받는 내 손이 부끄럽다. - P87

50년간 요리사라는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평생 주방에서 일하시는 사장님. 눈 감았다 뜨기도 무서울 만큼 빠르게 변하는 요즘 세상에서 그 50년은 어떤 의미일까. 내게도 한가지 일을 해온 그런 시간이 있다. 점점 사라져가는 어쿠스틱 악기들. 피아노 조율사라는 직업은 50년 후에도 존재할까? 그럴 리가 없지. 커피 맛이 좋다. - P92

김희신 공이 들어가는 거라, 밀가루 볶는 게 거의 인생이에요. 맨 처음에 버터를 녹인 다음에 밀가루를 넣잖아요. 이제 그걸 반죽하듯이 약한 불에서 볶는데, 뻑뻑해요. 근데 그게 시간이 점점점점 지나면, 걔가 스스로 융해되듯이 팍, 녹아버려요. 아주 부드럽게….
문상민 그게 상상 초월이래니깐요. 상식적으로는 점점 더 빡빡하게 굳어갈 거같잖아요. 볶으니까. 근데 밀가루하고 버터하고 비등점에서 융해가 돼 버려요. 화합이되는 거지. 갑자기, 어느 순간. 그게 인생하고 똑같아요, 하하하.
김희신 거기서 욕심을 부려서 이제 좀 더 볶죠. 그럼 색깔이 갈색이 나버려요. 못 쓰는 거지. 한순간에, 그게 딱 인생이에요. 기다려야 되고, 참아야 되고, 놓치면 돌아오지 않고, 어떨 땐 지루해서 하기 싫거든요. 그래도 참아야 하니까, 인생이란 게.
문상민 다 치우고 싶지. 허허허허.
린틴틴 오뚜기 수프 쓰고 싶고,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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