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에 적용된 글꼴은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운 추유을 할머니가 곧은 획으로 눌러쓴 칠곡할매 추유을체입니다.

한국인의 반중감정에는 ‘아버지‘ 나라 중국의 권위에 대한 열등감과 시기, 미국이 상징하는 근대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갖는 우월감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 한편 중국의 반한감정을 한 겹 들추면 미국에 대한 응어리진 원한 감정으로서의 반미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중국, 미국 사이의 복잡한 감정들의 겹을 펼쳐 보면, 차가운 이성으로 한국이 놓인 국제 관계의 지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P14

‘아니오‘ 속에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전복적인 에너지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앤 보이어의 말대로 "이제 머리 위에 의자를 올리는 것부터 시도해 보자." (「아니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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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동력을 불렀는데 사람이 왔다." - P137

특히 이주의 여성화(feminization of migration)는 21세기에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지되는 지배적인 이주 흐름이다. 과거 여성의 이주는 앞서 언급한 영화에서 남편을 따라 서독으로 갔던 후세인의 아내 파트마처럼 주로 남편이나 아버지에게 종속되어 ‘따라가는’ 형태의 동반 이주였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이후 생계 부양자로서 독립적으로 이주하는 여성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저개발국 여성들이 기존에 ‘여성의 일‘로 취급되던 가사·돌봄노동을 수행하기 위해 개발국으로 이동하는 성별화된 이주가 늘어나고 있다. - P141

국제노동기구(ILO)는 적절한 노동시간(decentworking time)이란 일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안전해야 하고, 가정친화적이어야 하고, 성평등을 증진하고, 기업 생산성을 높여야 하며, 일하는 사람 스스로가 노동시간에 대해 선택하고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를 견주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적절하고 적정한 수준의 일인지부터 묻는 것이 과로하는 삶에 대한 감각을 조금 더 균형 있게 만들 수 있다. - P170

산업재해인 과로죽음의 경우 명백한 사고 책임자가 있는 경우가 많고, 이런 구조를 방치하고 회사를 경영해 이익을 얻는 사람도 분명하다. 과로죽음의 피해자의 권리는 고인과 그 유가족이 그러한 죽음을 겪지 않고 살 권리‘부터, 과로죽음 가능성이 높은 노동자와 그 가족, 직장 동료와 친구, 예방 및 대응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들, 이 죽음을 목격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권리를 포함한다. 안전하지 않은 일터가 그대로 운영되도록 둔 자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말할 수 있을 때, 사회 전체의 진실, 정의, 안전, 기억과 회복의 권리가 보장된다. 과로죽음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지금 삶의 맥락에서 직접 경험하고 있는 과로의 경험과 그 원인이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해야 한다. 다그치기보다 공감하고, 참기보다 고쳐 나가야 한다. 이야말로 일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삶을 존중하는 방법이다. 적절하고 적정한 일이란 전략과 협상의 대상이 아닌, 지켜져야 할 삶의 원칙과 가치다. 우리의 일하는 삶이 안녕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P171

적절한 경계 설정도 필요하다. 경계란 다른 사람에게 내가 허용할 수 있는 행동의 한계선으로, 셀프 디펜스에서 경계 설정은 폭력을 예방하고 폭력에 대처하는 절차의 일부다. 경계는 모든 사회 관계망 속에 물리적 경계, 신체적 경계, 심리적 경계, 정서적 경계, 성적 경계 등으로 존재한다. 나이, 성별, 인종, 장애, 직급, 빈부,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서로의 경계를 존중해야한다. 직장 내 관계에서도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하지않아야 하고 사적인 대화나 관계를 강요하면 안 된다. 기본적으로 위계가 있으며 생계가 달려 있는 직장 내 관계에서는 하급자나 후배는 물론이고 동료들 사이에서도 스스로 거절과 거부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서로 인정하고 전제해야 한다. - P181

손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하고, 단순하고 짧게 말하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셀프 디펜스의 기술들을 배우는 것은 망치, 드라이버, 펜치의 사용법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사용법을 알고 도구를 사용해 보면 나사를 조이거나 못을 박는 일이 아주 어렵지 않은 것처럼 셀프 디펜스도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다. - P187

"선생님, 장백산은 중국 산인가요, 한국 산인가요?"
질문하는 학생의 얼굴로 보건대 이는 선생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우리반 학생들도 한국어 수준이 높았으므로 이 대화의 의미와 분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한국어 선생은 이런 시험을 겪는 일이 가끔 있다. 나는 대답했다.
"장백산은 중국 산이고, 백두산은 한국 산이죠."
내 말을 들은 옆 반 학생은 아무 대꾸 없이 자기 교실로 돌아갔고, 우리 반 학생들은 긴장했던 표정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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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진짜‘ 지옥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부르주아적이라고 여겨지는 ‘가짜‘ 슬픔, 즉 문학 작품 등의 허구적 이야기 속 슬픔을 경험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아! 늙은 단테여, 진짜 지옥을, 시가 없는 지옥을 여행해 보지 못한 너에게 작별 인사를!) - P91

예술은 노동이 아니거나 노동에 반하는 특질도 지니고 있다. 예술과 노동은 동일시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는 노동이 오늘날의 자본주의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술노동론은 현재 노동이 여러 국면에서 ‘미학화’하는 현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예술 역시 더 이상 노동의 문제를 충분히 응시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이다. - P108

예술노동론은 예술노동과 임노동의 구분에 근거해 예술이 지닌 반노동 비노동적 속성을 보존할 때 자본주의의 반대편에 설 가능성을 미약하게나마 띠게 된다. 하지만 예술가가 작품을 상품으로 시장에 판매하는 것으로만 창작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확보하고자 할 경우, 예술노동 논의의 급진적인 가능성은 서서히 사라진다. - P110

이처럼 돌봄이 상대에 대한 존중과 신뢰, 애정을 기반으로 하기에 폴라 잉글랜드는 돌봄 제공자를 "사랑의 포로(prisoner oflove)"라고 표현했다. 돌봄을 주고받는 이들 간의 관계적, 이타적 특성들로 인해 돌봄노동이 다른 일과는 다른 속성을 가진다는 뜻이다.
돌봄은 상호 관계의 산물이기에, 돌봄 대상자뿐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 역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여러 연구들은 돌봄을 일로 삼는 이들이 여타 직종 노동자들에 비해 더 큰 보람과 긍지, 자부심을 느끼고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러한 돌봄노동의 속성은 노동자들이 낮은 보수를 받으며 고된 노동을 감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 P122

모든 나라에서 아동이나 노인을 돌보는 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만, 돌봄직은 그 사회의 가장 낮은 처우를 감내하는 나쁜 일자리다. 돌봄에 종사하는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저평가되는 저학력에 경력이 단절되거나 이민자인 여성들이 대다수다. 그런데 동일한 교육수준과 연령, 경력을 가졌더라도 돌봄직 종사자들은 더 낮은 임금을 받는다. 통상 임금 격차의 합리적인 근거로 여겨지는 노동자들의 속성 차이로는 돌봄직의 낮은 임금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개인을 단위로 일자리의 경로를 추적한 조사를 분석해 보면 같은 사람이라도 다른 일을 하다가 돌봄 일자리에 진입했을때 임금이 유의미하게 낮아졌다. 이렇듯 합리적인 이유로는 설명되지 않는 돌봄 일자리 종사자의 임금 격차를 돌봄 불이익(care penalty)이라고 한다. - P123

이처럼 가족이나 친지가 제공하는 돌봄을 이제는 비공식 돌봄(informal care)이라 칭한다. 모든 인간이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 생존했음에도 그 돌봄은 비공식적이고, 대다수에게 공기처럼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비공식 돌봄 제공자의 희생은 모성이라는 이름의 숭고한 영역으로 미화될 뿐이었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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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상품형태는 인간들에게 인간 자신의 노동이 갖는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 그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 양 또는 이 물적 존재들의 천부적인 사회적 속성인 양 보이게 만들며, 따라서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도 생산자들 외부에 존재하는 갖가지 대상의 사회적 관계인 양 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착시 현상을 통하여 노동생산물은 상품, 즉 감각적이면서 동시에 초감각적이기도 한 물적 존재 또는사회적인 물적 존재가 된다. (……) 반면 상품형태나 이 상품형태가 나타내는 노동생산물 간의 가치관계는 노동생산물의 물리적인 성질이나 거기에서 생겨나는 물적 관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것은 인간 자신들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일 뿐이며 여기에서 그 관계가 사람들 눈에는 물체와 물체 사이의 관계라는 환상적인 형태를 취하게 된다. - P47

노동하는 개인으로서의 ‘나’는 나의 노동을 통해 타자와, 더 나아가 세계와 관계 맺는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 맺음의 매개인 ‘나의 노동’은 내가 생산한 노동생산물로서의 상품, 더 나아가 화폐이며, 이 화폐가 나의 존재와 인식을 거꾸로 뒤집어 지배하고 세계 또한 거꾸로 뒤집힌 모습으로 형성하고 유지한다. 이것이 바로 화폐의 물신숭배적 권력이다. - P52

내가 나의 소득을 주식에 넣는 만큼, 그러니까 동학개미가 힘을 모아 주식시장을 부양하는 그 화폐의 양만큼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를 자본에 양도하게 되고,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정당한 임금을 받아 낼 수 있는 힘, 일터에서 자본가의 부당한 폭력에 저항할 힘은 줄어든다. 도덕주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경제학적, 정치철학적인 관점에서 내가 주식에 넣은 돈만큼 노동자로서의 내 권리가 줄어든다. 이것은 화폐를 매개로 하나의 논리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 P55

일반 아르바이트의 경우에는 사업주가 사전에 규정하고 노동자와 합의한 제반 조건에 의해 노동 경험이 비교적 단일하게 형성된다. 그러나 이 글에서 보았듯 디지털 관리 시스템하에 불특정 다수에게 열려 있는 플랫폼노동 일자리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이들을 단일한 노동 경험을 공유하는 하나의 노동자 집단으로 전제한다면 플랫폼노동의 ‘나쁜 일자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일자리에 ‘지훈‘보다 더 의존하는 ‘은지‘가 노동 조건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다가 밀려난다면, 같은 자리를 더 많은 ‘지훈’이 채울 것이기 때문이다. - P75

이와 더불어 랑시에르는 접속사의 사용을 최소화함으로써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성이나 연속성을 확립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데, 왜냐하면 랑시에르에게 역사는 특정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인류학적 원인들이 예측 가능한 ‘결과들’을 초래한다는 방식으로 기록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철학자들을 위한 철학도 아니고, 역사가들을 위한 역사도 아닌" 것이 된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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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불로소득은 가진 자가 아닌 가지지 못한 자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기 위해서 반드시 추구해야만 하는 가치가 되었다. 그리고 불로소득은 공동체의 손가락질 대상에서 계급 상승을 위한 마지막 희망의 서사로 탈바꿈했다. 불로소득은 청년세대의 새로운 꿈이 되었다. - P24

체제 안의 행위자가 구조적 모순을 기민하게 간파하여 주체적으로 행동하지만, 본의와 다르게 계급이 재생산되는 아이러니는 오늘날 주식시장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 P31

제러미 리프킨이 예언한 ‘노동의 종말’은 결국 노동소득에 대한 자본소득의 우위라는 모습으로 실현되었다. 산업혁명이자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인 자본주의의 바탕인 프로테스탄티즘적 윤리는 노동의 종말과 함께 종언을 고했다. 오늘날에는 근면한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 자본을 낳는다. 자본주의가 성숙할수록 자본은 추상화되어서 돈이 돈을 낳는 것처럼 현상하는 반면, 노동은 그 어떠한 연대도 가능하지 않을 만큼 잘게 쪼개진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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