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나는 한동안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렸는데, 그 까닭은 우리가 완성된 형태로서의 『최초의 인간』을 가지지 못한 데대한 크나큰 상실감 때문이었다. 카뮈가 좀 더 살아남아 계속하여자신이 겪은 병과 여자들과 전쟁, 삶의 기쁨과 슬픔, 인간들의 사랑과 비극적 운명을 마저 들려주었다면 얼마나 놀랍고 계시적인 이야기가 서사시처럼 펼쳐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던탓이다. 하지만 결코 완성은 불가능하고 미완성으로 완성을 그려내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이 소설에서 완성된 모습을 찾는 것은우리의 몫일 것이다. 이 소설이 그토록 오래 출판되지 못한 이유,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빛을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실 같은 것이다. 한마디로, 너무도 솔직하고 절실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 솔직함과 절실함이 내 속에서 먹먹한 울림을 일으키고 있었다. - P15

여행의 가치를 이루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어느 한순간, 우리 나 - P31

라나 우리말과 그토록 거리가 먼 곳에서 (프랑스어로 된 신문 한 장도 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낯선 카페에서 어깨를 맞대고 앉을 사람이 그리운 이런 저녁들도 그렇다) 어떤 막연한 두려움이 문득 우리를 사로잡을 때, 옛 습관들의 보금자리로 되돌아가고 싶은 본능적 욕망이 밀려드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여행이 가져다주는 가장 확실한 선물이다. 그 순간 우리는 열에 들뜨는 동시에 구멍투성이가 된다. 아주 조그만 충격도 우리의 존재를 밑바닥부터 뒤흔들어놓는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빛만 모아도 영원이 바로 거기에 있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어떤 고행이라고 본다. 교양이라는 것이 사람의 가장 내밀한 감각, 즉 영원에 대한 감각의 훈련이라고 정의한다면 사람은 자신의 교양을 위하여 여행하는 것이다.
-『작가수첩 1』, 32쪽 - P34

지중해는 역사적으로 온갖 인종과 문화가 한데 뒤섞여 끓어 넘치던 곳이다. 카뮈에게서도 프랑스와 북아프리카를 이어주는 것이 곧지중해다. 지중해인으로서 그는 삶의 도저한 다양성 속으로 자신을던지고 싶은 욕구를 자기 속에서 발견한다. - P58

그는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정확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우선 그는 기존 가치들에 대한 ‘부정‘의 시각을 세가지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소설로는 『이방인』이었고, 희곡으로는 『칼리굴라』와 『오해였으며, 이념적 에세이로는 『시시포스 신화였다. 그러나 사람은 부정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긍정‘
을 표현해보고자 했다. 소설로는 페스트』, 희곡으로는 『계엄령과『정의로운 사람들』, 이념적 에세이로는 반항적 인간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가 세 번째로 구상하기 시작한 작품군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희곡으로는 돈 후안과 파우스트를 혼합하여 인생에 대해 종합적 명제를 제시하는 작품, 이념적 에세이로는 부정과 긍정을 넘어서서 모순을 견뎌내고 중용을 지키는, 분별과 한계의 여신 네메시스에 대한 작품, 그리고 소설로는 바로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랑‘을 주제로 하는 연작의 기초가 될 이소설을 끝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말하자면 부조리에서 반항을거쳐 사랑이라는 테마에 이르는 삶과 문학의 역정이 미완성으로 그치고 만 것이다. - P22

그곳에서 카뮈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자연과 합일된,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방식에 대해 숙고한다. 『결혼·여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허무는 절대나 마찬가지로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세계다." 우리는 자신에게 절대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듯이 허무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것이 ‘무‘이고 ‘권태‘라 할지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불가능한 것에기대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최대한으로 살아가는 것, 그 절도가 바로 삶이라는 미로를 빠져나가는 ‘아리아드네의 실‘이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돌을 하나 집어 든다. 카뮈가 결혼. 여름』에서 말했듯이 "돌들과 하나가 되고 싶은 유혹, 역사와 그 야단법석을깔보는 저 불타오르는 비정의 세계와 한 덩어리가 되고 싶은 욕망",
그 욕망에 나 자신을 온통 맡김으로써 나는 우리 삶에 뿌리내린 권태의 상징인 미노타우로스와 작별 인사를 나눈다. 내 손에 들린 돌이 바로 아리아드네의 실이다. 여기에서 카뮈는 이렇게 덧붙인다.
오랑에서는 모든 사람이 저도 모르게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 P87

우리는 행복하고자 하지만, 행복이란 무상한 것으로 우리는 죽을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는 자신의 존재가 좀 더 위대해지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허약한 육체 속에 갇힌 우리의 존재가 조만간죽음과 더불어 무의미해질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요컨대 우리는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수수께끼와 대면할 때, 전화 부스 안에서 요란하게 몸짓을 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부조리의 감정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부조리라는 감정은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과, 세상의 측량할 수 없는 비합리적 속성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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