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100년 전의 동아시아 삼국: 엇갈린 운명
학창 시절 어느 역사 교수님이 해준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누군가의 선의에 힘입어시간이란 외나무다리를 건너가고 있는 장님과도 같다고 하셨다. 장님은 자신이 건너간 다리의 모양이며 발밑을 흐르는 강물을 그저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그런데 그가 만약 《심청전》속의 심학규 봉사처럼 다시 개안眼하게 되면어떠할까. 자신이 건너온 외나무다리의 실제 모습이 건너가는 도중에 가졌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우리가 배운 역사는 과연 과거의 ‘사실‘ 그대로일까. - P297

정조가 시작한 쇄국이란 늪
조선의 패착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꼽을 수 있는데, 성리학과 쇄국이 그것이다. 조선 지배층이 오로지 성리학에만 매달렸다는 - P310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들은 누군가 다른 사상과 종교를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그를 이단으로 취급해 탄압하였다. 이처럼 안타까운 역사는 정조 때부터 한층 자명한 것이 되었다. - P311

혜성처럼 등장한 신지식인 최한기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아편전쟁이 끝난 다음이었다. 나는 혜강 최한기라는 학자의 등장에 주목하고 싶다. 그는 개성 출신으로 일찍이 서울에 올라와서 살았다. 가까이 지 - P312

낸 이로는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와 실학자 이규경이 있다. 이규경은 청장관 이덕무의 손자로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거질의 백과사전을 편찬한 대학자였다. 이규경이 쓴 글에서도 알수 있듯, 최한기는 청나라에서 간행된 서적을 대거 구입해서 읽었다. 그 가운데는 아편전쟁 이후 번역된 서양 사정에 관한 책자가 많았는데, 그 학식이 실로 방대해 우리의 짐작을 넘어선다.
최한기는 서양의 지리와 천문학에 능통하였다. 1857년에는《지구전요》를 저술하였는데, 서양의 지리와 천문학 및 서구 열강의 사정을 대강이나마 식자층에 소개하였다. 최한기는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의 이론을 소개하는 《성가운화》라는 책도 지었다. <신기통》과 《기측제의》 등을 저술하여 중국의 번역본을 통해학습한 서양의 물리학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최한기는 중세적인형이상학을 배척하고, 실용적인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산업의 부흥을 국가적 과제로 삼고, 서양의 뛰어난 기술과 기계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최한기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진단하고 서구 열강과의 통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당대의 주류 학자들은최한기를 매도하기에 바빴다. 최한기의 견해에 어느 정도 수긍한인사로는 박규수를 비롯하여 오경석과 유대치 등이 있었다. 박규수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서 선진 문물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였다. 오경석과 유대치는 중인으로, 시대의 대세를알고 있었으나 조정에는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처지였다. - P313

불완전한 신해혁명
마침 쑨원이라는 불굴의 혁명가가 있어, 수차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신해혁명‘이 성공해 (1911) 공화국 체제의 중화민국이 탄생하였다. 그런데 쑨원은 휘하에 군사력이 없어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 전체를 하나로 결집할 힘이 부족하였다. 할 수 없이 그는 청나라의 한인 실력자였던 위안스카이에게 대대적인 양 - P330

보를 하였다. 위안스카이는 혁명에 전혀 가담한 적도 없었고 공화주의와는 거리가 먼 구태의연한 인물이었으나, 막강한 북양 군벌의 대표라는 이유로 신생 중화민국의 총통이 되었다. 그는 공화제를 뒤엎고 다시 황제가 될 생각까지 하였으나 갑자기 죽음을 맞이해 중국의 공화제는 가까스로 보존되었다. - P331

그런데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과 소련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면서, 이른바 냉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양국은 핵무기를 최대한 비축하며 세계를 둘로 갈라놓았다. 그 덕분에 일본은 미국의 중요한 맹방이되어 자연스럽게 부흥의 기회를 얻었다. 패전으로 돌이킬 수 없이 몰락한 일본 경제는 곧 되살아났다. 일본은 운이 억세게 좋았다. 1950년 한반도에서 일어난 6·25전쟁이 3년간이나 계속되자 일본은 군수물자를 미국 측에 공급하며 막대한 이익을 보았다. 6·25전쟁은 미국과 중국 및 소련의 대리전이었는데, 일본의 재건에 결정 - P356

적으로 이바지하였다. 덕분에 일본은 1960년대부터 다시 경제 강국으로 등장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돌이켜 보면, 19세기부터 동아시아에서 열강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일본은 서구 열강의 동맹국으로서 뜻밖의 이익을 얻었다. - P357

7장. 현대의 세계제국들 소련, 미국, 중국
미국의 군부는 언제 어떻게 독립적인 권력이 되었을까? 그들이미국의 외교정책을 좌우하게 된 것은 냉전 이후의 일이다. 군부의 힘이 비대해지자 미국은 국제 문제를 군사력으로 해결하려는경향을 보인다. 외교보다는 군사개입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 P376

각지에는 군벌이 웅거하여 중국의 통일을 가로막은 채 각자도생을 위하여 외세에 의존하였다. 쑨원의 후계자 장제스는 그 자신도 군벌 출신이었으나, 국민당을 이끌며 북정을 단행해 가까스로 군벌을 제압하고 통일 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국민당 정권은 공산당의 도전에 맞서싸우느라 오랫동안 허리를 펴지 못하였다. 장제스는 중국을 침략한 외세보다 내부의 적인 공산당 토벌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삼았다. 그로 인해 공산당은 이른바 ‘대장정‘이라는 극한의 생존 투쟁으로 내몰렸다. 그 과정에서 공산당은 끔찍한 피해를 보았으나, 민심을 얻었고, 마오쩌둥 중심의 강력한 지도 체제를 만들었다.
이후 일본의 중국 침략이 거세졌으므로, 국민당 정부와 공산당은 제2차 국공합작을 선언하고(1937) 항일 전쟁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지지부진하였으나, 1943년부터 국민당 정부군과 공산군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렸는데 1945년 8월에 미국이 일본에 핵폭탄을 던짐으로써 전쟁이 끝나서 중국은 해방의 기쁨을 맞았다. - P383

1945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경제 및 군사 대국으로 최강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그때부터 미국은 한 수 아래인 소련을 적으로 규정하고,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1991) 줄곧 ‘냉전‘을 고수하였다. 소련의 현실적 위협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 점을 크게 부풀린 것은 미국이었다. 자국의 세계 지배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다. 오늘날에도 미국이 맞상대가 되지 못하는 중국의역할을 과대하게 포장한 채 전방위적 공격을 벌이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1945년 이후 미국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세계 산업 생산력의절반이 미국에 있었고, 경쟁 상대가 없었다. 유럽의 제국주의는전쟁 통에 완전히 망했고, 전쟁의 승자는 패자든 사실상 모두 경제적으로 초토화되었다. 그러나 미국 본토는 전쟁의 회오리에서완전히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생산 시설이 모두 온전하였다. - P395

1976년에 마오쩌둥이 사망하자 그는 중앙 정계에 복귀하여 군부 지지자들과 함께 정적을 제압하고 최고 실력자가 되었다. 덩샤오핑은 1970년대 말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낙후된 중국 경제를 되살리려고 온 힘을 다하였다. 그의 경제정책은 ‘흑묘백묘론‘에 잘 나타난다. 고양이의 색깔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래의임무에 충실한지만 따지면 된다는 실용주의였다. 경제적으로는누구보다도 자본주의적이었으나, 정치적으로는 기존 공산주의지배 체제를 고수하였다. 경제 자유화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와공산주의를 교묘하게 결합한 것, 이른바 중국식 사회주의를 창안한 것이 덩샤오핑의 업적이었다. - P405

독재자 푸틴의 시대이후 러시아는 부정부패에 시달렸다. 천연가스와 석유를 생산하는 자원 대국이지만, 귀중한 천연자원도 소수의 마피아와 관료의 배만 불릴 뿐이다. 수도 모스크바의 외관은 휘황찬란하지만일반시민의 삶은 비참하다. 이에 구소련 체제에 대한 향수가 더욱 짙어졌고, 블라디미르 푸틴은 2020년 초 그들의 복고적 정서를 이용하여 영구집권에 성공하였다.
그는 2036년까지 권좌를 지킬 수 있다. 그보다 2년 앞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자신을 종신 주석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들은현대의 차르와 황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평생 집권할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독재자의 운명이란 갑자기 종말을 맞을 수가 있다.
시진핑 주석과 마찬가지로 푸틴 대통령도 시민에 대한 통제를더욱 강화하고 있다. 서구 세계는 여러 가지 이유로 러시아에 대한 정치·경제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제 상황이 쉽게 호전되지 못하는 이유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러시아에 막대한이익을 제공하고 있으나, 그런 일이 영원히 계속될 리도 없다. 언제라도 푸틴에게는 뜻밖의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 P411

《로마제국의 몰락》이란 책에서, 영국 역사가 피터 J. 헤더는 주목할 만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첫째, 로마제국은 끝까지 공격적이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자멸하였다는 것이다. 현재의 미국도 지나치게 공격적인 성향을 띤다. 그 대가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 염려된다.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가. 정치가들은 입만 열면 평화를노래하지만 그들의 손은 언제나 방아쇠를 만지고 있다.
둘째, 인종차별과 계층 간의 갈등이 커져 사회통합이 깨졌다는점이다. 이처럼 우울한 광경은 소련이 무너지기 직전에도 목격한 바다.
셋째,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도덕적인 우위를 잃었다는 사실도심각한 지점이다. 수많은 사람이 미국적 가치가 과연 존재하는지회의한다. 미국은 과연 미래를 앞장서 이끌기에 충분한 나라인가.
미국의 위기를 증명하는 현상은 많이 있다. 그중 하나는 사건건 미국이 중국과 시비를 벌인다는 점이다. 각종 지표를 보면 그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기는 하다. 2020년에 중국은 유럽연합과의교역에서 미국을 추월했는데, 이것은 사상 최초의 일이다. 또 중국은 해외직접투자FDI 분야에서 세계 1위 국가로 떠올랐다.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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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2-01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햇살과함께 님 정말 열심히 독서하시네요!!

햇살과함께 2023-12-01 11:21   좋아요 0 | URL
이거 몇 달 전에 120페이지 정도까지 읽다가 너무 재미없어서..
역시 역사는 나랑 안 맞아. 재미없어.. 이러면서 묵혔다가..
11월에 끝장내려고 어제 겨우 다 읽었어요. 마지막 부분은 너무 대충 대충 ㅋㅋㅋ
읽을 땐 각 나라별 역사도 자세히 알고 싶다 생각 들지만 막상 역사 책에 손이 잘 안가요.
역사 과학 왜 이렇게 싫죠???

다락방 2023-12-01 11:41   좋아요 1 | URL
저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역사 과학 다 싫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