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재나』는 어느 면으로 보나 어마어마하게 매력적인 책이다. 이 자리에서 자세한 플롯이나 범죄의 해결에 관해 누설할마음은 없지만, 한 가지만 짚어두겠다. 아마도 『로재나』는 범죄소설에서 시간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이야기로는 최초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기가 자주 길게 이어진다. 로재나라는 여성을 살해하여 예타운하에 던진 범인에 대한 수사가 답답하게 답보하는 시기다. 그러다가 불과 몇 센티미터쯤 진척이 있는가 싶더니, 또 덜컥 멈춰 선다.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에게는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이 절망의 근원인 동시에 필요악이다. 참을성이 없는 수사관이란 중요한 도구 하나가 부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설에서는 반 년이 흐르고서야 비로소 범죄가 해결된다. 그때쯤에는 우리 독자들도 안 - P16

다. 수사에 오년이 걸릴 수도 있었다는 것을. 그래도 경찰들은 포기하지 않았으리란 것을 [로재나』는 경찰의 근본적인 덕목, 즉 참을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 헨닝 망켈 - P17

마르틴 베크는 몸을 곧추세웠다. ‘경찰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중요한 덕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는 속다짐을 했다. ‘나는 끈질기고, 논리적이고, 완벽하게 냉정하다. 평정을 잃지 않으며, 어떤 사건에서든 전문가답게 행동한다. 역겹다, 끔찍하다, 야만적이다. 이런 단어들은 신문기사에나 쓰일 뿐 내 머릿속에는 없다. 살인범도 인간이다. 남들보다 좀더 불운하고 좀더 부적응적인 인간일 뿐이다.‘ - P88

꼭 그것 때문이 아니라도 왠지 그는 집에서 쉴 맘이 내키지 않았다.
"몸도 안 좋으면서 왜 이러고 있나?"
콜베리가 물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아."
"그렇게 골똘히 사건을 파고들지 말라니까. 우리가 실패한 게 이게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거야. 자네도 나 못지않게 잘 알면서 그러나 사건 하나 때문에 우리가 더 좋아질 것도, 더 못나질 것도 없어."
"꼭 그 사건 때문만은 아니야."
"사색에 빠지지 마. 그러면 사기가 꺾여."
"사기가 꺾여?"
"그래, 생각해봐. 시간이 넘치는 사람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들을 잔뜩 몽상해내는지. 지나친 사색은 비능률의 어머니야."
그 말을 남기고 콜베리는 나갔다.
별다른 사건도 없고 지루한 하루였다. 기침과 침 뱉기와 지겨운 일과로 점철된 하루였다. 마르틴 베크는 알베리의 기운을 돋우려는 의도에서 모탈라에 두 번 전화를 걸었다. - P97

사실이었다. 마르틴 베크는 듣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십분 동안 콜베리의 목소리는 그의 뇌리에서 점점 멀어졌다. 전혀다른 두 가지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나는 일전에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말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 생각은 떠오르자마자 냉큼 바닥으로 가라앉아서 손에 잡히지 않는 상념으로 흩어져버렸다. 반면에 다른 하나는 더 구체적인 생각이었다. 잘하면 괜찮은 성과를 낼 법한 새로운 수사 계획이었다.
"그녀는 틀림없이 선상에서 그를 만났을 거야."
마르틴 베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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