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은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리뷰를 남기지 못해서,,, 간단히 끄적인다.
읽기 전 오해.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쓴 소설이라 미국이 주 배경 일거라 생각했다. 일제시대 일본으로 건너갔다 해방 이후 미국으로 이민 간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주 배경은 일본이고, 선자의 손자인 솔로몬이 미국으로 대학을 갔을 때만 잠깐 미국 생활이 언급된다.
선자를 생각하면 꼬인 명주 실타래가 생각난다. 하얗고 질기지만 실타래를 잘 풀기 위해서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때로
너무 꼬여 있다면 풀기 위해 고민하기보다 과감히 끊어줘야 하는. 그리고 다시 이어야 하는. 완벽하진 않지만 이음매의 흠이 있지만 감수해야 하는. 선자에겐 한수라는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다. 선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일거수일투족을 몰래 살피며 도움을 주던. 선자와 그 가족들을 살아남을 수 있게 한. 그렇기에 선자의 실타래는 툭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아니, 한수라는 끊어져 이어 붙인 흠이 있지만 끝까지 실패에 감을 수 있었다.
선자에게 한수가 있었기에 선자가 살아남아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인가. 선자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한수를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소설을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모두가 굶주림에, 폭격에, 폭력에 죽어갈 때 왜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죽는 것인가. 운명의 실타래란 무엇인가.
모자수 이름. 이삭, 요셉, 노아, 솔로몬, 모두 잘 알려진 성격 속 이름인데, 모자수는? 모자수도 성경 이름인가? 처음에 모자수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유아기의 별명인 줄 알았다. 모자수는 왜 모자수인지.
굉장히 건조한 문체와 거리두기 같은 글쓰기라고 느껴진다. 스냅샷 같은, 르포르타주 같은 장면 전환들. 한국인이나 재일조선인이 썼다면 다른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감정의 진폭을 더 크게 건드렸을 것이다.
일본에서 식민지 조선인으로 산다는 것, 해방 이후에도 자이니치로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인지, 몰랐던 것을 알게 해준, 재밌게 읽은 책이다.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의 글모음 책인 꽃송이도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