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커리어 그리고 가정 -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 2023 노벨경제학상
클라우디아 골딘 지음, 김승진 옮김 / 생각의힘 / 2021년 10월
평점 :
저자는 여성이 대학진학률도
더 높고, 전문직 진출 비중도 과반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적게 버는가 하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1878년 출생한 여성부터 1978년
출생한 여성까지를 모집단으로 하여 5개 집단으로 나누어 시대별로 여성들이 커리어(또는 일자리)와 가정을 어떻게 유지하였는지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문제의 원인을 파악한다.
분석 대상은 전체 여성이
아니라 대졸여성이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의 ‘일자리’가 아닌 장기적인 노력과 직업적 성취에 기반한 ‘커리어’의 관점에서 분석하기 위함이다. 또한, ‘커리어’와 비교하는 ‘가정’이란 단순히 ‘결혼’이나
‘남편’ 유무가 아니라 ‘아이’가 있느냐를 기준으로 한다.
시대별로 대졸여성들이
‘커리어(또는 일자리)’를
우선시했는지, ‘가정’을 우선시했는지, ‘커리어’와 ‘가정’을 조화롭게 유지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집단별로 연령대별 결혼율, 출산율, 고용율 등을 분석했고, 시대별 상황, 산업 및 기술의 발전, 여성의 의식변화, 제도적 변화 등의 원인을 파악하였다.
흥미로운 지점은 첫번째, 여성들의 커리어 쟁취에 정부의 제도적 변화로 인한 효과는 미미하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가장 늦게 변화하는 부분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따라서, 남녀고용평등법이나 동일임금법 등 법에 의해 여성의 권리를 쟁취할 수 없다. 여성의
권리 쟁취가 필요불가결할 때에야 비로소 법이 제정되거나 법이 실제 효력을 발휘한다.
두번째,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노동 수요 증가나 테크놀러지 발달로 인한 가정 일에서의 시간 절약, 피임약의 합법화로 인한 계획적인 결혼과 임신 조절 등 외부적인 상황이나 조건이 여성의 권리 쟁취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특히, 피임약은 ‘조용한 혁명’의 대표주자로 ‘시끄러운
혁명’ 만큼이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세번째, 집단 5를 넘어서 거의 구조적인 평등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현재의
시점에도, 여성들이 대학 진학이나 대학원, 박사과정 등에
남성보다 더 많은 비율로 진학하고 전문직 진출에 있어서도 차이가 없거나 과반의 비중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과 남성의 임금이(동일 직군에서도) 차이가 나는 원인을 밝히고 있다. 단순히 직종 분리에 의해서도, 직업현장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차별이나
선입관의 효과를 제거하더라도 설명되지 않는 높은 비율의 차이를 저자는 탐욕스러운 일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장 쉬운 예시로 변호사를
들고 있다.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는
클라이언트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 제약없이, 주중이든 주말이든 클라이언트를 요구에 응해야 한다. 이렇게 24시간 일에 준비된 ‘온콜’ 상태로 일할 수 있어야 10년 내지 15년 정도되어 로펌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만약 부부가 모두 변호사라면
입사 초기에는 임금의 차이가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결혼 이후 일정기간 지나서 ‘아이’를 갖기로 하면 이때부터 여성과 남성의 임금 차이가 벌어지게 된다. 여성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양육을 하면서, 직장에서의 ‘온콜’ 상태가
아니라 가정에서의 ‘온콜’ 상태가 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온콜’을
여성이 맡고 있다. 따라서, 이런 직장에서의 ‘온콜’ 상태로 일하지 못하므로 파트타임 근무를 하거나, 좀더 작은 로펌으로 옮기거나 규칙적인 시간 동안 일할 수 있는 일반기업의 사내 변호사 등으로 이직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풀타임 근무를 하더라도 한번 벌어진 남성과의 임금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다.
저자는 이런 직업을 탐욕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변호사, 회계사, 금융, 컨설팅 등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다른 직군에서는 상대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가 크지 않으나, 이러한 탐욕스러운 근무환경을 가진 직군의 임금은 점점 높아지고, 그에 따라 다른 직종의 남성과도 임금 격차가
커지고, 더불어 동일 직군에서의 남성과 여성간 임금 격차도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탐욕스러운 노동을 유발하는 구조를 변경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유연성, 온콜을 선택하는 것이 유발하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남성들이 회사가 탐욕스러운 노동 구조를 바꾸도록 함께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약사의 사례와
변호사의 사례를 비교를 통해, 노동 구조를 변경하는 부분을 대안으로 언급하지만 그게 대안일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약사가 개인사업자였을 때는 응급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온콜 상황으로 업무 강도가 높았지만, 지금은 프렌차이즈화, 거대기업화가 되면서 순환으로 24시간 근무를 하면서 온콜 대응이 없어졌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결국
그 거대기업화의 이득을 가져가는 것은 누구인가. 대부분 부유한 남성 자본가가 아닌가 하는 삐딱한 생각이 든다.
대안은 다소 수긍이 어렵지만, 100년간의 방대한 자료 분석을 통한 여성의 가정과 커리어의 변천에 대한 다양한 분석은 탁월하고 흥미롭다.
한국은 지금 어디 있는가. 남녀간 임금 격차가 가장 심하고, 직종간 소득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 그래서 모든 부모가 의대에 올인하는 나라. 그래서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는, 현명한 대안을 선택하고 있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