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왜 하필 지금 행복을 이야기하는가

행복은 무엇을 하는가?
분위기 깨는 자

행복은 마치 그자체가 소망하는 것을 불러내기라도 하는 것 같다. 혹은 행복은 성취되지 않음으로써 소망으로서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 P13

행복: 소망wish, 의지will, 바람want. 이 책에서 나는 행복이 이런 말들과 함께 사유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 책을 이끌어 가는 질문은 "행복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행복은 무엇을 하는가?"이다. - P14

시몬 드 보부아르는 행복이 어떻게 그것이 소망하는 바를 정치, 곧 소망의 정치로 바꿔버리는지를 잘 보여 준다. 소망의 정치는 다른 사람들도 소망에 따라 살도록 요구한다. 그녀는 이렇게 주장했다. "행복이라는 말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다지 선명하지 않으며, 그것이 어떤 진가를 감추고 있는지는 더더구나 분명치 않다. 타인의 행복을 헤아릴 가능성은 전혀 없는데도, 사람들이 으레 처하기를 소망하는 상황을 두고 행복이라 말하기는항상 쉬운 법이다" (Beauvoir 1949/1997: 28 [상권 30], 두 번째 강조는 추가). 나는이런 행복에 대한 비판에 기대어 행복 소망에 대해 질문해 보려 한다. 우리는 지금 그런 비판에 기대어 지금의 이런 세속적 가치에 대한 집착에대응할 필요가 있다. 왜 행복이 문제인가? 왜 지금 문제인가? 우리는 분명 지금 "행복으로의 전회" 상황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부분적으로 이 책은 이런 전회에 대한 대응으로 쓴 것이다. - P15

그렇다면 행복이 "저기 어딘가에 있다고 전제하는 행복학에서는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는 걸까? 리처드 레이어드는 또 한 번 우리에게 유용한 참조점을 제공해 준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행복이란 기분이 좋다는 느낌이고, 고통이란 기분이 나쁘다는 느낌이다"(6[31]). 행복은 "기분이 좋다는 느낌"이다. 이는 사람들이 얼마큼 기분이 좋은지 측정할 수있기 때문에 행복을 측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저기 어딘가는사실상 "바로 여기다. 행복을 측정할 수 있다는 믿음은 느낌을 측정할수 있다는 믿음이다. 레이어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기분 좋은지 쉽게 말할 수 있다" (13[39])라고 주장한다. 행복 리서치는 주로자기 - 보고에 기반한다.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면 행복한 것이라고가정하면서, 사람들 스스로가 얼마나 행복하다고 말하는지를 측정하는것이다. 이 모델은 자기-감정의 투명성(자신의 느낌을 말할 수 있고 알 수 있다)을 전제하는 동시에, 자기 - 보고 또한 순수하고 단순하게 이루어진다고 전제한다. 만일 당신이 행복을 원한다는 사실이 전제된 상황이라면, 얼마나 행복한지 묻는 것은 중립적인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자기삶의 현 상황을 평가하라는 뜻이 아니라, 가치 판단이 실린 범주들을 가지고 평가하라는 뜻이 된다. 이는 단순히 사람들이 자기 삶 자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측정하는 것이라기보다, 행복에 가까워지려는 상대적 욕망을, 심지어는 자기 삶을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보고하려는 상대적 욕망을 측정하는 것일 수 있다. - P19

문화 연구와 정신분석은 자기감정을 잘 알고 있는 주체, 스스로에게 완전히 투명한 주체에 기초하지 않는, 대안적 감정 이론을 제공함으로써 이 논쟁에서 중요한역할을 할 수 있다(Terada 2001 참조). 문화적이고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은좋은 삶이라는 관념에 대한 평범한 애착이 어떻게 양가성의 장소가 될 수있는지 탐색하면서, 좋은 느낌과 나쁜 느낌의 구분보다는 그것들의 혼동을 살핀다. 행복을 해석한다는 것은 이런 양가성의 문법을 해석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 P20

심지어 행복이 사라졌다고 말할 때조차 사람들은 행복이 발견되리라 기대하는 곳에서 행복을 찾아낸다. 놀라운 것은 행복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사회적 이상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정치적 삶에대한 그 이상들의 지배력을 재활성화한다는 점이다. 행복에 대한 요구는 점점 더 그런 사회적 이상으로 되돌아가자는 요구로 표현된다. 마치 행복의 위기가 이 이상들의 실패를 말해 주기보다 그 이상들을 따르지 못하는우리의 실패를 말해 주는 듯 말이다. 그리고 거의 틀림없이 위기의 시기에 행복의 언어는 훨씬 더 강력한 지배력을 획득한다. - P22

모든 작가는 우선 독자이며, 우리가 무엇을 읽는가는 중요하다. 나는 주로 페미니즘, 퀴어, 반인종주의 책들을 읽는 독자다. 이런 책들이 이 책의 지적·정치적 지평을 형성한다. 이 책들은 내게 행복이 사회적 형식을어떻게 창조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내 철학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아카이브에 책과 영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행복이라는 말을 따라간다면 당신은 어디든 닿을 수 있다! 따라서 내 아카이브는 내 세계, 내 생활 세계이자 내 현재일 뿐만 아니라 과거이며, 거기서 행복이라는 말은 아주 강력한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 P42

행복이 문제임을 보여 주면서 행복과 관련한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할 위험이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것이다. 만약 이 책이 분위기를 깬다면 그것은 이 책이 하고자 했던 바를 실현한 것이 될 것이다. 이 책의 다음 쪽부터 내가 인용하게 될 수많은 텍스트들이 알려 주듯이, 분위기를 깬다는 것은 삶을 열어젖히는 것이고, 삶을위한 공간, 가능성과 기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을 쓰는 목적은이런 공간을 만드는 데 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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