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우리를 밀어내는 겁니까?"
경찰관 한 명이 말했다.
"낸들 알겠습니까. 법이 그렇다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당신을 체포합니다." - P12

그리고 파인레벨에 사는 라이트라는 사람 집에서 도제살이를 했다. 그들은 증조할아버지의 성인 퍼시벌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게 했다. 그것은 흑인 노예들과 백인 도제들과의 커다란 차이였다. 흑인노예들은 자신들의 원래 이름을 버리고 주인들이 새로 붙여주는 이름을 쓰는 것이 관행이었다. - P22

전쟁이 끝난 후 노예제도는 완전히 폐지됐다. 하지만 많은 흑인들은 여전히 노예생활을 계속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 P22

해야 할지 몰랐고, 정든 집을 떠나는 것도 원치 않았다. 내 증조부님들 역시 라이트 집안 소유의 땅에 있던 당신들의 집에 계속 거주하면서 라이트 집안을 위해 일했다. 노예해방 이후의 삶은 그 이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능력만 있으면 땅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얼마 후 증조부님은 허드슨 가문 농장의 땅 12에이커를 사들였다. 비용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지금도 나는 모른다. - P23

목화를 따고 김을 매는 일은 아주 고된 노동이었다. 우리가 늘 하는 말중에 "할 수 있을 때부터 할 수 없을 때까지" (from can to can‘t)라는 말이 있었다. 일을 할 수 있을 때(해 뜰 때)부터 일을 할 수 없을 때(해 질 때)까지 노동한다는 뜻이다. 태양이 살갗을 뚫고 들어와 내장까지 태워버리는 듯한 그 기억을 난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진 흙도 내 발을 구워버리기 일쑤였다. 신발을 신어봤자 소용없었다.
사실 우리는 거의 신발을 신지 않고 일했다. 그래서 당시에 이런 표현도 있었다. "신발은 누가 신지? 호스(horse, 말)와 보스(boss, 감독관)!" 허드슨농장 일꾼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백인 감독관인 프리먼 씨와 그가 타는 말만 신발을 신고 일했다. - P44

미스 화이트 교장 선생님은 매사추세츠 주 멜로즈 출신이었고, 나머지 교사들도 모두 북부 출신 백인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흑인 여자아이들을 가르치러 고향을 떠나 이곳에 도착한 바로 그 순간부터 몽고메리 백인 사회로부터 철저히 따돌림을 당 - P52

했다. 그들은 흑인 친구들을 사귈 수밖에 없었고, 교회도 흑인교회를 다녀야 했다. 미스 화이트는 아주 힘든 시절을 겪어왔다. 초기에는 백인들이 불을 질러 학교가 몽땅 불타버린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내가 그 학교에 입학한 것은 학교가 세워진 지 꽤 여러 해가 지난 뒤였다. - P53

미스 화이트에서 배운 것 중 최고를 뽑으라면, 나도 존엄한 한 인간이라는 것, 흑인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주눅 들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우리가 꿈과 야망을 갖도록,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갖도록 가르쳤다. 물론 학교를 통해서만 그것을 배운 것은 아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나의 조부모님과 어머니를 통해서 익히 배운 바 있다. 미스화이트 선생님들은 내가 집에서 배운 이러한 지식을 거듭 일깨우고 강화시켜 주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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