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서문. 이정순

『제2의 성』은 보부아르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주었지만, 종종 그녀의 다른 작품들과 활동을 가리는 결과를 낳곤 했다. 그녀의 작품, 참여 지식인으로서의 활동, 여성 해방 투쟁 등 그 어느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지만, 역자로서는 보부아르가 왕성한 저작 활동과 작품으로 현대 프랑스의 지성계와 문학계에 큰발자취를 남긴 탁월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라는 점을 최우선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삶이나 작품 모두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이 그 토대를 이루고 있고, 『제2의 성 역시 여성의 상황을 실존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 P8

하지만 현대 여성 해방 운동의 ‘성서‘로 불리는 『제2의 성』을 집필할 당시 보부아르는 역설적이게도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고 한다. 보부아르의 회고록을 보면, 오늘날 현대 페미니즘의 어머니로 여겨지는 그녀가 오랫동안 ‘여성 조건’의 문제에 대하여 무지했거나 적어도 의식하지 못했다는 점은 놀랍다. 여성문제에 대한 그녀의 의식은 『제2의 성』을 쓰려고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깨어났다고 한다. 그녀는 회고록의 제3권인 『상황의 힘 La Force des choses 』(1963)에서 그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나는 여자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연달아 놀라움을 겪었다.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세상의 놀라운 일면을 마흔 살에 갑자기 발견한다는 것은 이상하기도 했고 고무적이기도했다." ‘여성 조건‘이 존재한다는 자각은 그녀를 아주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가 되도록 이끌었지만, 페미니즘 활동은 훨씬 뒤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펼쳐나갔다.
보부아르는 회고록에서 제2의 성이 ‘우연히, 뜻밖에‘ 착상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책을 쓰려 했고, 그러자면 다음과 같은 첫 번째 질문이 제기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고 한다. ‘나에게 여자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이렇게 시작된 그녀의 성찰은 ‘사적 고백록‘이 될 계획을 보편적인 ‘여성 조건‘을 연구하는 것으로 전환토록 했다. 현대 페미니즘의 사상적 모태가 된 ‘제2의 성』은 이렇게 탄생했다. - P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