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강간, 인종주의, 흑인 강간범 신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가 생각나는 장

12장. 인종주의, 출산통제, 재생산권
마거릿 생어

13장. 가사노동의 다가오는 종말: 노동계급의 관점
시시포스의 불굴의 힘. 나도 집안일 하며 항상 시시포스의 형벌을 생각하는데 이런 표현 반갑네.

다 읽었다!!

미국에서 강간에 대한 대중들의 우려가 커지면서 여기에 자극을 받은 여러 여성들이 성폭력 가해자 또는 미수범과 맞닥뜨렸던 과거를 털어놓았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성폭력 피해를 당하거나 피해를 당할 뻔한 적이 인생에서 한 번도 없는 여성이 소름 끼칠 정도로 적다는 것이다. - P265

미국 역사에서 허위 강간 고발은 인종주의가 발명한 가장 가공할 만한 책략 중 하나로 두드러진다. - P266

현대 강간 반대 운동의 초기 단계에서는 강간 피해자로서의 흑인 여성을 둘러싼 이런 특수한 환경을 진지하게 분석한페미니스트 이론가가 거의 없었다. 백인 남성에 의해 시스템차원에서 학대와 멸시를 당하던 흑인 여성들과, 강간 기소라는 인종주의적 조작 때문에 불구가 되고 목숨을 잃는 흑인 남성들을 묶고 있는 역사적인 매듭은 이제 막 의미 있는 수준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상태였다. 흑인 여성들이 강간에 저항할때면 그것이 흑인 남성을 상대로 강간 기소를 날조하기 위한치명적인 인종주의적 무기로 사용될 위험이 거의 동시에 제기된다. 극한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한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백인 여성을 범한 흑인 강간범 신화는 못된 흑인 여자 신화의 쌍생아다. 둘 다 흑인 남성과 여성을 계속 착취하는 데에 대한 변명으로, 또한 그 착취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안된 것이다. 흑인 여성들은 이 관계를 아주 명료하게 인지했고 그래서 일찍부터 린치에 반대하는 투쟁의 선두에 섰다. - P267

( 글을 쓴 거다 러너(Gerda Lerner)는 1970년대 초에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가 흑인 여성에게 복합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깊이 있게 연구하며 강간을 주제로 글을 쓴 몇 안 되는 백인 여성 중 하나다. - P268

흑인 여성들을 문란하고 정조 관념이 없다고 묘사하곤 하는 문학가들도 빼놓을 수 없다. 걸출한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Stein)조차도 자신의 작품에 나오는 흑인 여성 등장인물 중 한 명이 ‘흑인의 단순하고 난잡한 문란함‘을 지니고 있다고 묘사했다. 이러한 편견을 노동계급 백인 남성에게 뒤집어씌운 것은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의 발전에서 승전보를 울린 순간이었다. - P271

브라운밀러의 책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남성, 여성, 그리고 강간(Against Our Will: Men, Women and Rape)』이 출간되었을 때 일각에서는 칭찬이 자자했다. 브라운밀러를 1976년 올해의 여성 중 한 명으로 선정한 「타임(Time)」은 그 책을 "페미니즘운동에서 출현한 학술서 가운데 가장 엄밀하고 도발적인 책"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다른 진영에서는 흑인 강간범이라는 낡은 인종주의 신화를 부활시켰다며 혹독하게 비판했다. - P273

콜린스는 생물학으로 위장한 주장에 의지했고 브라운밀러, 러셀, 맥켈러는 환경중심적인 설명을 하고 있지만, 최종분석에서 이들은 모두 흑인 남자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저지를 동기가 충분히 강하다고 단정짓는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의 성의 변증법: 페미니스트 혁명을 위하여(The Dialectic of Sex: The Case For Feminist Revolution)는 강간과 인종이라는 주제를 다룬 가장 초기의 이론적 저작으로 오늘날의 페미니즘운동과 관련이 깊다. 파이어스톤의 주장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인종주의는 사실상 성차별주의의 연장이다. 파이어스톤은 "인종은 남자 가문의 여러 부모와 형제자매일 뿐"이라고 하는 성서속 개념을 끌고 와서 백인 남자를 아버지, 백인 여자를 아내이자 어머니, 흑인들을 그 자녀로 규정하는 사고를 진전시킨다. 파이어스톤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인종주의적으로 변형하여 흑인 남자들은 백인 여성과의 성관계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다고 암시한다. 이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자고 싶어 한다. - P277

브라운밀러나 맥켈러, 러셀처럼 파이어스톤은 피해자를 탓하는 낡은 인종주의적 궤변에 굴복한다.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이들의 선언은 흑인 강간범이라는 해묵은 신화의 부활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역사적 근시안 때문에 흑인 남자들을 강간범으로 그리는 것이 백인 남자들에게 흑인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이용해도 된다는 인종주의적 구실을 더 강화해준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다. 강간범 흑인 남자라는 가상의 이미지는 항상 대책 없이 난잡한 흑인 여자의 이미지를 강화했다. 흑인 남자들이 통제 불가능한 동물적인 성욕을 품고 있다는 개념을 받아들이면 그 인종 전체가 동물 수준으로격하되기 때문이다. 흑인 남자들이 백인 여자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흑인 여자들은 분명 백인 남자들의 성적관심을 반길 수밖에 없다. ‘헤픈 여자‘이자 매춘부로 인식되는 흑인 여자들은 강간의 순간에 비명을 질러도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할 수밖에 없다. - P278

남북전쟁 직후에도 흑인 강간범이라는 위협적인 신화는아직 역사적 현장에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예제 시기에백인 노예제 폐지론자들을 향했던 린치는 귀중한 정치적 무기로서 서서히 입증되어갔다. 그래도 린치가 대중적 관습으로 용인되려면 그것의 야만성과 참상이 확실하게 정당화되어야 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흑인 강간범 신화가 퍼져나갔다. 흑인에 대한 린치를 정당화하려는 여러 시도 가운데 강간 고발이 가장 위력적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결국 흑인 여성에 대한 지속적인 강간이 가미된 린치는 남북전쟁 이후 인종주의 테러의 전략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흑인 노동에 대한 야만적인 착취가 승인되었고, 재건의 배신 이후 흑인 전체에 대한 정치적 지배가 확실해졌다. - P282

노예제 폐지 이후 인종주의가 그 꼴을 갖추는 데에 가상의 흑인 강간범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흑인 남성을 가장 빈번한 성폭행범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무책임한 주장이다. 나쁘게 말하면 이는 흑인 전체에 대한 공격이다. 가상의 강간범은 가상의 매춘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흑인 여성들은 조작된 강간 고발을 흑인공동체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린치 반대 운동의 선봉에 발빠르게 섰다. - P291

오늘날 강간의 사회적 맥락이 복잡함을 감안했을 때 이를 고립된 현상으로 다루려는 일체의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 P303

없다. 강간에 맞서는 실효성 있는 전략은 강간의, 심지어는 성차별주의의 박멸 이상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인종주의에 맞서는 투쟁이 강간 반대 운동의 지속적인 주제가 되어야 한다. 강간 반대 운동은 유색인종 여성뿐만 아니라 인종주의에 의해 조작된 강간 고발의 많은 피해자들 역시 방어해야 하기때문이다. 성폭력의 위기적 측면들은 자본주의의 깊고 지속적인 위기의 여러 양상들 중 하나를 구성한다. 여성에 대한 전반적인 억압이 자본주의에 없어서는 안 되는 버팀목으로 남는 한, 성차별주의의 폭력적인 얼굴인 강간의 위협은 꾸준히 존재할 것이다. 강간 반대 운동, 그리고 이 운동의 주요 활동들―정서적, 법적 지원에서부터 자기방어와 교육 캠페인에 이르기까지―은 독점자본주의의 궁극적 혁파를 염두에 둔전략적 맥락 안에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 P304

출산통제-개인의 선택, 안전한 피임 방법, 필요할 때는 임신중지-는 여성해방의 핵심 선결 조건이다. - P305

출산통제의 진보적인 잠재력은 여전히 반박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운동의 역사적 기록을 보면 인종주의와 계급 착취에 대한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 P306

하지만 임신중지권 캠페인이 거의 백합처럼 희디흰 사람들로만 이루어졌던 상황의 진짜 의미는 유색인종 여성의 미성숙하고 근시안적인 의식에서 찾을 수 없었다. 진실은 출산통제운동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토대 안에 묻혀 있었다. - P307

유색인종 여성들은 임신중지권에 찬성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임신중지를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수많은 흑인과 라틴계 여성이 임신중지에 의지하면서도, 임신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욕망보다는 새 생명을 이 세상에 내놓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비참한 사회적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 P308

이 최초의 출산통제 요구는 물질적 부를 보유한 여성들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들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가난한 노동계급 여성들은 맹아적 단계의 출산통제운동을 자기 일로 여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 P313

하지만 신흥독점자본주의 이론가들은 이 현상을 공개적으로 인종주의적이고 반노동계급적인 방식으로 해석했다. 본토 태생의 백인 여성들이 아이를 적게 낳으면서‘인종자살(race suicide)‘이라는 망령이 공무원계에 등장하게된 것이었다. - P314

이렇게 출산통제운동의 초기에는 계급편향과 인종주의가 스며들었다. 출산통제 찬성 집단 내에서는 가난한 여성, 흑인 여성, 이민자 여성 모두가 ‘가족의 규모를 제한할 도덕적 의무‘를 가진다는 생각이 점점 퍼져나갔다. 특권층은 ‘권리‘로 요구했던 것이 빈민에게는 ‘의무‘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 P316

20세기 초 몇십 년간 우생학 운동이 날로 인기를 얻게 된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다. 우생학의 사고는 신흥독점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적 필요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남부에서흑인 노동자들에 대한, 북부와 서부에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의 강도가 심해지는 데 대해서도, 라틴아메리카와 태평양에서 벌어진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해서도 정당화할 논리가 필요했다. 우생학 캠페인과 관련된 유사과학에 기반한 인종 이론들은 신흥독점기업들의 행태를 극적으로 변호해주었다. 그 결과 이 운동은 카네기, 해리먼, 켈로그 같은 유수의 자본가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 P320

출산통제운동에서 이 일화는 우생학적 사고와 연계된 인종주의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승리했음을 확인시켜준다. 출산통제운동은 그 진보적인 잠재력을 탈취당하고서 유색인종들개별적인 출산통제 권리가 아니라 인종주의적인 인구통제전략을 옹호했다. 심지어 미국 정부의 제국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인구정책을 실행하는 데 운동의 핵심역량을 쏟아달라는 요청까지 받게 된다. - P322

물어쨌든 가사노동은 사실상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것을하지 않을 때까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는 닦아서반짝반짝한 바닥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침대는 알아차린다." 가사노동은 본성상 눈에 띄지 않고, 반복적이고, 진 빠지고, 비생산적이고, 창조적이지 않다. - P331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자신의 고전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Origi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 P333

에서 주장하듯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성불평등은 사유재산이 등장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는 경제적 생산시스템 내에서의 성별분업이 위계적이지 않고보완적이었다. 남자들이 야생동물 사냥을, 여자들은 야채와과일 채집을 책임지던 사회에서는 두 성 모두 공동체의 생존에똑같이 필수적인 경제행위를 수행했다. 이런 시기에는 공동체가 본질적으로 대가족이었기 때문에 집안일에서 여성이 중심적인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공동체의 생산적인 구성원으로서그에 맞게 평가받고 존중받는다는 의미였다. - P334

반면 선진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의 실물 증거를 거의 만들어내지 못하는 주부의 서비스 중심의 가사노동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일반을 축소시킨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결국 주부는 남편의 종신 하인이다. - P335

산업화가 진행되고 경제 생산이 가정에서 공장으로 넘어 - P337

가면서 여성이 가정에서 수행하던 노동의 의미는 시스템 차원에서 쇠락을 면치 못했다. 여성은 이중의 의미에서 패자였다. 급부상하는 공장들이 이들의 전통적인 업무를 빼앗으면서 경제 전반이 가정과는 멀어졌고, 많은 여성들이 중요한 경제적 역할을 대체로 박탈당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자 공장은 직물, 양초, 비누를 제공했다. 버터, 빵, 그 외 식료품마저도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다. - P338

이런 급진적인 경제적 변화의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산물이 바로 ‘가정주부‘의 탄생이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여성들은 평가절하된 가정생활의 수호자로 재규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북동부 노동계급 가운데 넘쳐나는 숱한 이주 여성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데올로기로서 여성의 위치에 대한 이재규정은 터무니없었다. 이 백인 이주 여성들은 일차적으로임금소득자였고 오직 이차적으로만 가정주부였다. 그리고 남부에는 집에서 떨어져 노예경제의 본의 아닌 생산자로서 노역에 시달리는 수백만 여성들도 있었다. 19세기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현실적인 자리는 얼마 안 되는 임금을 위해 공장 기계를 돌리는 백인 여성들과, 억압적인 노예제하에서 뼈 빠지게 일하는 흑인 여성들과 관련이 있었다. ‘가정주부‘는 사실상 신흥중간계급이 만끽하는 경제적 번영의 상징이었으므로 반쪽짜리 현실이었다. - P339

하지만 흑인 여성들은 강인함과 상대적인 독립성을 획득하고 만끽하기 위해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흑인 여성이 ‘그냥 가정주부‘였던 적은 거의 없었지만 이들은 항상 가사노동을 해왔다. 그러므로 이들은 임금노동과 가사노동이라는 이중부담을, 늘 시시포스의 불굴의 힘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이중부담을 짊어져왔다. - P342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운동의 이론적 기원은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Mariarosa Dalla Costa)의 에세이 [여성과 공동 - P344

체의 전복(Women and the Subversion of the Community)」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글에서 달라 코스타는 가사서비스가 사적이라는 생각이 사실은 환상이라는 자신의 이론을 근거로 가사노동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달라 코스타는 가정주부가 남편과 아이들의 사적인 요구를 보살피는 것처럼 보여도 가사서비스의 진정한 수혜자는 남편의 현 고용주와 자식들의 미래의 고용주들이라고 주장한다. - P345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운동은 "조립라인의 노예가 되는 것은 주방 싱크대로부터 해방되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여성이 집 밖에서의 일자리를 구하려는 의지를 꺾는다.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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