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여성참정권 운동 내부의 인종주의

5장. 흑인 여성에게 해방의 의미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대들보를 보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나는 장이다.

해방이 흑인들을 백인 여성과 ‘동등하게’ 만들었으므로 투표권이 주어지면 흑인 남성이 더 우월해진다고 믿는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과 그 외 여성들은 흑인 남성의 참정권에 절대적으로 반대했다. 하지만 노예제 폐지만으로는 흑인의 경제적 억압이 철폐되지 않고, 그러므로 흑인에게는 정치권력이 특히 긴박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한 이들도 있었다. - P125

물론 공화당은 북부군이 승리를 거머쥐고 난 뒤 여성참정권을 지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그들이 남성이라서가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당시의 지배적인 경제적 이익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 간의 군사적 경합이 남부의 노예 소유계급을 전복시키는 전쟁이라는 점에서, 이는 기본적으로 북부의 부르주아지, 그러니까 공화당 내에서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발견한 젊고 열정 가득한 산업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수행된 전쟁이었다. 북부의 자본가들은 국가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경제적 통제력을 손에 넣고자 했다. 그러므로 남부의 노예정치를 상대로 이들이 벌인 투쟁은 흑인 남성이나 여성의 해방을 인간으로서 지지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 P127

수정헌법 제14조와 제15조에 대한 여성 권익 운동 지도자들의 비난이 정당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백인 중간계급 여성으로서의 자기 이익에 대한 방어―자기중심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방식으로 표출될 때가 많은—는 남북전쟁 이후 흑인 평등 운동과 이들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위태롭고 피상적이었음을 드러냈다. - P130

프레더릭 더글러스가 생각하기에 노예제 폐지는 명목상으로만 완수되었다. 남부에 사는 흑인의 일상에는 여전히노예제의 악취가 진동했다. 그래서 더글러스는 남부 흑인들이 새로 손에 넣은 ‘자유로운’ 지위를 단단하고 확실하게 굳힐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주장했다. "흑인 남성들이 투표권을 갖기 전까지 노예제는 철폐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더글러스가 그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 여성 투표권 투쟁보다 흑인 투표권 투쟁을 전략적 우위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 근거가 바로 이것이었다.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참정권을 노예제 청산을 위한 미완의 과정을 완수할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무기로 바라보았다. 이 순간만큼은 여성참정권이 흑인남성의 참정권보다 덜 시급하다는 주장을 펼칠 때 더글러스는 흑인 남성의 우월성을 엄호한 게 전혀 아니었다. - P131

옛 노예 소유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던 민주당은 남부에서 흑인 남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을 방법을 강구했다. 그래서 많은 민주당 지도자들이 공화당의 적수들에게 맞서는 계산된 조치로 여성참정권을 엄호했다. - P135

평등권협회의 해체로 막강한 힘이 잠재되어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보잘것없었던 흑인해방과 여성해방의 동맹이 막을 내렸다. - P140

수정헌법 제14조와 제15조를 둘러싼 논란에서의 행동으로 어떤 진지한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더글러스가 흑인 남성 참정권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공화당 안에서의 투표권의 힘을 너무 의심 없이 신봉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 P141

남부에서 가사서비스의 가장 굴욕적인 측면 중 하나ㅡ가사서비스와 노예제의 친연을 확인해주는 또 다른 측면—는흑인 하인이 백인과 같이 있는 한 짐크로법*을 일시적으로유예했던 부분이었다.

나는 백인 아이들과 전차나 기차를 타러가곤 했고 (…) 앞자리든 뒷자리든 내가 원하는 데는 어디든 앉을 수 있었다. 백적인 남자가 다른 백인 남자에게 "저 검둥이가 여기서 뭐하는거죠?" 하고 물었는데 "아, 저 여자는 그 앞에 있는 백인 아이들의 보모예요"라는 대답이 나오면 순식간에 평화의 침묵이 찾아왔다. 내가 하인-노예-으로서 백인 남자의 객차에 오르거나 전차의 백인 남자 구역에 있는 한 만사형통이지만 옆에 백인 아이가 없어서 내가 하녀임을 증명할 수 없으면 단박에 ‘검둥이‘ 자리나 ‘유색인종 객차’를 할당받곤 한다. - P148

역사적으로 페미니스트를 포함한 백인 여성들은 가사 노동자들의 투쟁을 인정하기를 꺼렸다. 이들은 가사서비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시시포스적 과업에 관여한 적이 거의 없었다. 작금의 ‘중간계급‘ 페미니스트 프로그램에서 가사 노동자 문제가 편의적으로 누락된 것은, 그들이 부리는 가정부에 대한 착취적인 처사를―최소한 부유층 여성들의 입장에서-감추고 정당화하는 방편인 것으로 드러날 때가 심심찮게 있었다. 1902년 ‘가사 노동자의 하루 9시간 노동(ANine-Hour Day for Domestic Servants)’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쓴 저자는 고용주에게 여성 점원을 위한 의자를 비치할 것을 촉구하는 서명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한 페미니스트 친구와의 대화를 이렇게 묘사했다.

친구가 말했다. "가게 점원들은 하루에 열 시간씩은 서 있어야 하잖아. 그 아가씨들 지친 얼굴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존스 부인." 내가 말했다. "네 가정부는 하루에 몇 시간 서 있지?" - P155

"왜? 모르겠는데." 친구가 놀라며 말했다. "대여섯 시간 정도 아닐까?"
"가정부가 몇 시에 일어나?"
"여섯 시."
"그리고 밤 몇 시에 일을 마무리하니?"
"아, 여덟 시 정도, 일 거야, 보통."
"그럼 열네 시간이잖아.…."
"… 우리 가정부는 앉아서 일할 때도 많아."
"무슨 일을 할 때? 빨래? 다림질? 걸레질? 침대 정돈? 요리? 설거지? (…) 아마 너희 집 가정부는 밥 먹을 때랑 채소 다듬을 때 두 시간 정도 앉아 있을 거야. 그리고 한 주에 나흘은 오후에 한 시간 휴게 시간도 있겠지. 그러면 너희 가정부는 하루에 최소한 열한 시간을 서 있고 그동안 계단도 숱하게 오르내려야 하지. 내가 보기엔 너희 집 가정부가 그가게 점원보다 더 딱한 거 같은데."
나를 찾아온 친구는 눈이 번들대고 뺨이 붉어져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집 가정부는 일요일엔 저녁 식사가 끝나면 맨날 쉰다고." 친구가 말했다.
"그래, 그치만 점원은 일요일엔 종일 쉬잖니. 제발 내가 서명하기 전엔 떠나지 마. 점원들이 앉을 수 있게 되는 걸 나보다 더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이 페미니스트 운동가는 자신이 반대하는 억압의 수명을 자기 손으로 연장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여성의 모순적인 - P156

행동과 지나친 둔감함에는 이유가 있다. 하인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철학자 헤겔(Hegel)에 따르면 주인-하인(또는 주인마님-가정부) 관계의 역학 속에는 하인의 의식을 지워버리려는 부단한 노력이 내재한다. 이 대화에서 언급된 점원은 임금노동자, 즉 최소한 자신의 고용주와 자신의 노동에서 일말의 독립성을 보유한 인간이었다. 반면 하인은 오직 주인마님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만 노동했다. 어쩌면 그 페미니스트는 자기 하녀를 자기 자아의 단순한 연장으로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억압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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