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레즈비안 페미니즘과 퀴어이론

래드클리프 홀 - 외로움의 우물
에이드리언 리치 -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안의 존재
모니크 위티그 -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주디스 버틀러 - 젠터 트러블: 페미니즘과 정체성의 전복
지넷 윈터슨 - 벚나무 접붙이기

수행성, 훼손

리치는 여성 동성애를 성적 행위와 욕망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에, 여성에 중심을 두는 정치적인 입장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입장은 동성애 여성과 이성애 여성들을 연결시켜 이들 모두가 강제적인 이성애의 희생자임을 강조한다. 즉 동성애 여성을 동성애 남성과 연결시키지 않는다. 리치는 "모든 여성은 스스로 레즈비안 정체성을 갖든 갖지 않든지 간에, 모두 레즈비안 연속선상에서 존재한 - P301

다" (650-1)고 주장한다. 또한 여성의 에로틱한 선택은 "심화되고 확장되면서 의식적으로 여성과 동일시-레즈비안/페미니즘-하게된다"(659). 리치는 모든 여성이 레즈비안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보고, 여성 동성애야말로 강제적인 이성애와 가부장제가 뒤엉켜있는시스템에 대한 진정한 페미니스트적 대응이라고 본다. - P302

위티그는 페미니즘 제1물결과 제2물결이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페미니즘 운동은 하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유물론자로서 위티그는 정체성을 결정하는데 물질적인 요인을 선행하는 뭔가가 있다는 관념적인 가정에 반대한다. 위티그는 여성을 자연적인 그룹이기 보다는, 억압된 계급으로 재정의한다. 위티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성이란 계급, 남성이란 계급을 타파하고, 새로운 개인 정체성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새로운 정체성은 계급 정의에서 벗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목표가 달성되기까지, 여성이란 계급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레즈비안이 되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 P303

버틀러는 누구보다 쥘리아 크리스테바와 모니크 위티그가 혁명적 정치학을 수행할수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비판한다. 대신에 버틀러는 남성성과여성성 모두 동성애를 완전히 거부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임을 증명한다. 동성애적 욕망은 주체의 애석한 상실이나 슬픔으로 남아있는 그 무엇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는 이성애를 창조해내는데 내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젠더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깊이 뒤엉켜있다. 동성애는 "문화 내부에 충만하게, 그러나 ‘지배‘ 문화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어있다" (77). - P307

sj동성애 여성이 완전히 성범주의 바깥에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리치처럼 레즈비안을 여성과 동일시하는 여성의 연속체로 상상하든, 아니면 위티그처럼 "비여성의 집단"으로 상상하든지 간에 말이다. 제아무리 ‘성‘(sex)을 강제적 이성애가 정의한 경제적 범주임을 받아들인다 해도, 동성애 여성이 성 범주의 바깥에 존재한다고? 이성애자들이 여성 동성애와 남성 동성애로 인해 그 특징이 규정되는 것 만큼이나, 동성애 여성들도 이성애자들로 인해 그 특징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여러 면에서 『벚나무 접붙이기』는 버틀러가 『젠더 트러블에서 주장했던 상호 연관성을 상기시킨다. - P316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좋아한다"(77). 그러므로 어떤 이분법이든지간에 뭔가를 감시하고 배제하려고 할 때, 그 시도는 필시 실패하고 만다. 왜냐하면 배제된 것은 결코 애초부터 부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P318

즉,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수행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해답이 될 것이다. - P320

그러나 벚나무 접붙이기』를 살펴본 결과, 섹슈얼리티와 젠더는 학문 분야 (fields of study)이고,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은 탐구 양식(modes ofinquires)인데, 이 둘은 서로 뒤엉켜있다. 이들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들을 합쳐버리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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