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길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최초의 건물에는 욕망이깃들지 않았는데 이는 욕망이 외부에 투사되는 작동에는 내적 요인 이후의 외적 요인이라는 순서가 존재하는 게아니라 최초 발생 시점부터 함께 엮여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조영무는 말했다. 저는 사람들이 둘을 분리하기 시작한 수다한 증거를 알고 있습니다, 상업의 발달, 근대적 개인이 도시를형성시켰다거나 도시의 형성이 개인의식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식으로 둘을 아무리 오가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저는 스스로에게 말했고 그러므로 돔에 대한 열망, 만주국 시절 다롄의 중앙광장에 서서 바라보던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돔과조선총독부의 돔과 도쿄 도의회의 돔과 워싱턴 의사당의 돔을 본 박정희의 시선이 투사한 돔에 대한 열정이 체제라는 형태를 넘어 종교적 형상으로 이어지며 이누이트의 돔과 로마네스크와비잔틴 양식의 두오모로 연결되는 순환선을 만들어내는 것아닐까라는 생각, 최초의 돔이었던 장충체육관에 자리를 잡고 설계에 없던 국회의사당의 돔을 올렸던 것의 저변에는 민족주의적 열망이나 권력에 대한 야욕이 아니라 돔이라는 형상, 천상에서 광장의 중심으로 낙하한 돔과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주의 중심을 뜻하기에 굳이 다른 것을 할 필요가 없다는 선후가 바뀐 메커니즘이 작동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게 저의 주요 골자였지만 이를 설명하기에는 여러 면에서 역부족이었다고 조영무눈 말했다. - P87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우리는 시작과 끝이 없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 리나 보바르디는 말했다. 직선적 시간관은 서구의 발명품으로 시간은 즉흥적이고 엉켜 있으며 어떤 순간에도 임의 접속할 수 있다. 과거나 미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그녀는 1914년에 태어나 1992년에 죽었지만 말이다. - P95

언어를 따라 위대한 작품을 쓰겠다고 생각하며 도서관과 집, 카페를 오갔는데, 그 과정들이, 소설을 쓰기 위한 노동이 문학이라는 회사를 유지하기 위한 저임금 노동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판 정신, 몰락, 실패, 소외, 소수자적 의식, 심연, 진리, 윤리, 고통, 불가능. 이 언어들은 작가(지망생)들을 시스템에 봉사하게 만드는 일종의 열정 페이라는 사실, 문학과 이론은 아카데미와 국가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으며 그러한 체제내에서 체제를 견제하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사법부 정도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 그러니까 문학은 현실이나 시스템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사법부는 내부고발이나 비판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볼라뇨는 문학 + 병 = 병이라고 썼다. 바꿔 말하면 문학 + 법 = 법이다. - P104

존재-역사적 소설의 침입 2.1: 평론가 금정연, 시인 황인찬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황인찬은 말했다. 소설가들은 왜 이렇게 자기혐오가 심해요? 나와 금정연은 동의했지만 답하진 못했다. 생각해보면 시인이나 평론가 역시 자기혐오가 심하다. 글을 쓰면 쓸수록 자기혐오 또는 자기 연민이 심해지는데어쩌면 문학/문학 이론이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을 동력으로, 이것에 기생해서 작동하는 게 아닐까, 문학의 토대가 기만과위선이기 때문에 자기혐오/연민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그런데이걸 다시 동력으로 삼아 작동하는 구조적 역학 관계가 있는 것 아닐까. 문인이라는 종족의 자기 연민, 공감하고 느끼고 소외되고 비주류인 나라는 의식이 성공이나 체제에 종속되는걸 거부하지만 실제로는 교수직이나 편집위원, 상업적 성공없이는 유지될 수 없고 이론이나 작품에서는 다시 플로베르나 프루스트, 카프카를 호출해야 하는 모순(이들의 계급을 생각해보라). 플로베르는 말했다. 마담 보바리는 바로 나다.
금정연은 물었다. 신형철은 나일까요?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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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2-12-15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형철은 나일까요 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2-12-16 10:01   좋아요 1 | URL
정지돈 작가님의 은근한 유머를 볼 수 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