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 은하수, 솔~ 추억의 담배이름.
장미, 도라지, 백자, 한라산, 88도 기억난다 ㅎㅎ

1. 게이코
눈보라가, 검은보랏빛 어둠 속으로 두서없이 쏟아졌다. 그 눈보라 깊은 속까지 들어간 연통 끝, 위로 솟구치는 하얀 연기 아래로 누런 물방울 몇 맺혀 있겠다. 비스듬하게 물방울이 떨어지는 꼴을 눈여겨보지 않더라도 창으로 밀려와 부딪치고는 다시 허공으로 흩어지는 눈송이들만으로 바람의 세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삽시간에 천지사방이 그 바람 타고 올라선 자우룩한 눈안개였다. 눈기운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오토바이 뒤에 낚싯대를 싣고 떠나 갓밝이 날파람들이 서로 수런거리는 모양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말 못 하고 내일 오후까지는 이렇게 눈이 온다 했다.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침 와뜰하던 차였다. 고립의 감정도, 무기력의 마음도 아니었고 다만 그 꺼물거리는, 혹은 반득이는 눈보라 앞에서 무너지는 가슴. 장막을 둘러친 그 시간을 잔드근하게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 P9

김씨가 뭐라고 더 퉁명부리기 전에 태식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된바람이 훅 얼굴로 밀어닥쳐 절로 두꺼비상이 됐다. 눈은 그쳐 있었다. 동 트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바닥에 깔린 눈 덕분에 주위가 희슥했다. 어디선가 닭 갖추는 소리가 들려와 소름이 돋았다. 태식은 주머니에서 거북선을 꺼내 물었다. 나라에서는 은하수도 만들고 솔도 만들었지만, 어쨌거나 태식은 거북선이었다. 거북선으로 담배를 처음 배웠으니까. 그러고 보니까 태식이 매캐한 담배연기를 처음 들이켰던 것도 열다섯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고작 제빵 기술자가 된 것뿐이지만.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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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0-27 23: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뜰하다-꺼물거리다-반득이는- 잔드근 하게

우리 말 너무 좋네요!

한국어 사릉하는 연수옹 만쉐!^^

햇살과함께 2022-10-27 23:58   좋아요 2 | URL
와. 첫 단락부터 깜짝 놀랐어요~
모르는 순우리말 단어들 잔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