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베르(59p), 순박한 마음
체호프(76p), 개를 데리고 있는 여인, 우편
도스토옙스키(79p),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악령
톨스토이(83p),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소설은 책이라는 물건 안에 갇혀 있고, 우리 독자의 눈길은 너무나 재빨리 그 위를 스쳐 가므로 그 형태를 오래 기억할 수가 없다>고 말이다. 바로 그 점이다. 무엇인가 항구적인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고, 견고한 무엇을 짚어 낼 수 있다. - P57

여기서 러복 씨는 책 그 자체가 형식과 등가적이라고 말하며, 소설가들이 자기 작품의 최종적이고 지속적인 구조를 축조하는 방법을 감탄할 만한 섬세함과 명료함으로 추적해 낸다. 하지만 책의 형식이라는 이미지가 그렇게 맞아떨어지게 말해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정말로 그렇게 딱 맞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갖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미지를 떨쳐 버리고 구체적인 대상을 가지고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최상이다. 이야기를 한 편 읽으면서 우리의 인상들을 적어 보기로 하자. 그러면 아마도 러복 씨가 형식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거슬리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는 플로베르보다 더 적당한 작가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면이 한정되어 있으니 단편인 [순박한 마음Un Coeur simple]을 골라 보자. - P59

그러므로 <책 그 자체>는 당신이 보는 형식이 아니라 당신이 느끼는 감정emotion이며, 작가의 느낌feeling이 강렬할수록 그것은 더 정확하고 실수 없이 말로 표현된다. 러복 씨가 형식에 대해 말할 때마다, 마치 우리와 우리가 아는 작품 사이에 무엇인가가 끼어드는 것만 같다. 무엇인가 이질적인 것이 우리가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 위에 얹히며 시각화기를 요구하는 듯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느끼고, 단순하게 이름 짓고, 그것들을 상호간에 느껴지는 관계를 바탕으로 재배열한다. 말하자면, 감정으로부터 바깥쪽으로 작업하여 「순박한 마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읽기가 끝나면, 무엇이 보인다기보다 모든 것이 느껴진다. - P61

자유가 있는 곳에는 방종이 있다. 소설은 누구나 팔 벌려 맞이하지만, 다른 문학 형식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낸다. 하지만 승리자들을 바라보자. 우리는 실로 그들을 공간이 허용하는 이상으로 가까이서 많이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그들이 작업하는 것을 보면 모두 달라 보인다. 새커리는 항상 곤란한 장면을 피하려고 노심초사하고, 디킨스는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만 빼고) 항상 그런 장면을 찾아다닌다. 톨스토이는 기초도 놓지 않은 채 이야기의 한복판으로 뛰어들며, 발자크는 기초를 어찌나 든든히 놓는지 이야기 자체는 도무지 시작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러복 씨의 비평이 개별 작품들을 읽는 데 적용되면 어떻게 될지 보고 싶은 마음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전반적인 시각이 더 볼 만하니, 전반적인 시각에 머물기로 하자. - P65

물론 이런 식의 일반화는 러시아 문학 전체에 적용될 때 어느 정도 진실이기는 하겠지만, 천재적인 작가가 작업에 착수하면 크게 달라질 것이다. 대번에 다른 질문들이 떠오른다. <태도〉라는 것이 단순치 않으며 극히 복잡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철도 사고를 당해 외투뿐 아니라 예의범절까지 잃어버린 사람들은, 사고 탓에 생겨난 체념과 단순성 때문이라하더라도, 거친 말, 잔인한 말, 불유쾌하고 하기 힘든 말을 내뱉기 마련이다. 체호프에게서 드는 우리의 첫 느낌은 단순함이라기보다 당혹감이다. 도대체 요점이 뭔가, 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가? 우리는 그의 단편들을 한 편씩 읽어 나가면서 줄곧 자문하게 된다. 한 사람이 결혼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지만, 결국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참을 수 없는 속박〉에서 풀려날 수 있을지 이야기하는 데서 끝난다. - P75

체호프를 읽을 때면 우리는 <영혼>이라는 말을 되뇌게 된다. <영혼>이라는 말이 그의 책 곳곳을 누비고 있다. 늙은 주정뱅이들도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쓴다. 〈너는 군대에서 아주 높아져서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게 됐지만, 네게는진짜 영혼이 없어. (………) 네 영혼에는 아무 힘도 없어.> 정말이지 러시아 소설에서 주된 등장인물은 영혼이다. 체호프에게 있어 영혼은 섬세하고 미묘하며 무수한 기질과 장애에 달려 있는 반면, 도스토옙스키에게서 영혼은 한층 깊이 있고 풍부한 것이 되며 격심한 질병과 신열을 불러일으키지만 여전히 주된 관심사이다. 아마도 영국 독자가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나 『악령』을 재차 읽을 때 그토록 노력이 필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 P79

도스토옙스키에게는 그런 제약들이 없다. 그에게는 당신이 귀족이든 평민이든, 부랑자이든 귀부인이든 매한가지이다. - P82

당신이 누구든 간에 영혼이라는 저 당혹스러운 액체, 뿌옇고 거품 나는 소중한 것이 담긴 그릇일 뿐이다. 영혼은 어떤 장벽에도 구애되지 않는다. 그것은 넘쳐흐르며 다른 사람들의 영혼과 섞인다. 포도주 한 병 값을 치르지 못한 은행원의 이야기가 어느 곁에 그의 장인과 장인이 형편없이 다루는다섯 명의 정부들의 삶 속으로, 우편배달부의 삶과 날품팔이 여자의 삶 속으로, 그리고 같은 구역에 사는 귀족 여성들의 삶 속으로 퍼져 나간다. 도스토옙스키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지쳐도 쉬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그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한다. 우리를 덮치는 이 뜨겁고 펄펄끓어오르는 것, 마구 뒤섞이고 경이롭고 끔찍하고 숨 막히는 것 - 이것이 인간 영혼이다. - P83

영혼이 도스토옙스키를 지배하듯이, 톨스토이를 지배하는 것은 삶 그 자체이다. 모든 찬란하고 빛나는 꽃잎의 중심에는 항상 이 <왜 사는가>라는 전갈이 숨어 있다. 책의 중심에서는 항상 올레닌, 피에르, 레빈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모든 경험을 자신 안에 거둬들이고 세상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려보며, 그것을 즐기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 모든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의 욕망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산산조각내는 것은 사제가 아니라 그 욕망들을 아는 사람, 자신도 그것들에 탐닉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그것들에 조소할 때, 세상은 발밑의 먼지요 재가 되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의 즐거움에는 두려움이 섞여 든다. 세 사람의 위대한 러시아 작가 중 가장 우리를 매혹하면서도 반발하게 하는 것은 톨스토이이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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