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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보다 우리 프로젝트에 더욱 도움이 되었던 것은 엘런 모어스와 일레인 쇼월터의 새로운 논증이었다. 그들의 작업은 19세기 여성 문인에게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학과 문화가 있었음을, 다시 말해 19세기에 분명하고도 풍부한 여성문학의 하위문화, 즉 여성들이 의식적으로 서로의 작품을 읽고 관계 맺는 공동체가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모어스와 쇼월터가 이 공동체의 역사 전반을 매우 훌륭하게 추적한 덕분에 우리는 중요해 보이는 몇몇 19세기 작품을 파고들 수 있었다. 우리는 후속 집필을 통해 20세기의 핵심적인 작품들을 유사한 방식으로 읽을 계획이다. 그 작품들은 남성 문학의 주장과 강제에 대응했던 여성문학의 원동력을 이해할 시금석이 되어주었다. - P21

데니즈 레버토프가 열기로 가득한 교육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시낭송을 위해 블루밍턴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수정/개정의 도취라고 묘사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었다. 그것은 지금은 너무 쉽게 폐기해버리는, 1970년대의 많은 초기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처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었고, 문학적인 것이 개인적이었고, 성적인 것이 텍스트적이었고, 페미니스트는 속죄하는 존재였고 기타 등등! (그것들은 진정 계시였고) 이런 계시들을 냉소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로고스 중심적인 권위를 몇몇 이론가들이 말했던 ‘기원의 순간‘ 탓으로 잘못 돌리는 위험을 무릅쓴다 해도 인정해야 한다. 그때 그곳에 있었다는 건 축복이었다고. 그리고 나는 그 축복 중 일부가 마치 맛있는 후식처럼 우리와 함께 개종의 여정을 떠났던 최초의 학생들에게 나눠지기를 희망한다. 수전이 언급한 ‘눈맞춤‘은 분명 전기 충격처럼 짜릿했고, 우리 사이를 지나간 계시와도 같은 이해의 네트워크 자체였다. 그것은 아마 레버토프가 「마음속에서」를 썼을때, ‘자신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데 우리 모두가 동의했다는 의미다. 말하는 사람을 결코믿지 마라. 페미니스트의 분석을 믿어라. 적어도 지금까지 그렇다. - P33

샌드라: 육아, 어머니 되기, 어머니! 우리가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연구하고 쓰던 때를 되돌아보면, 우리 프로젝트에서 항상 핵심이었던 것은 모성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가부장적 시‘와 ‘가부장적 시학‘에 저항하면서 우리 세대의 모든 페미니즘 비평가처럼 창조성에 대한 대안적 수사를 찾아보려고 애썼다. 펜이 은유적으로조차 음경을 말하지 않는다면(그리고 음경은 확실하게 펜이 아니었다!) 자궁은 어떨까? - P36

이 질문이 시사하듯, 페미니즘 비평을 위해 19세기 연구는 여전히 탐색할 만한 중요성을 지닌다. 한편으로 그 시대의 성이데올로기는 여러 면에서 특히 억압적이었다. 또한 버지니아 울프가 오래전에 설파했듯, 그 시대는 여자들을 코르셋에만 감금시킨 것이 아니라, 모든 박탈과 불만족과 함께 ‘사적인 집‘에 감금시켰다. 다른 한편으로 그 시대의 미학적 정치적 명령은 광범위한 혁명 운동뿐만 아니라 여성의 상상력에서 나온 가장 풍요로운 산물을 만들어낼 만큼 영향력이 컸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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