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과정에서 가해자의 사망. 잔인하고 비겁하고 치사한 놈들이다.
조민기도, 박원순도!

그리고 저 어이없는 도표라니! 합의가 성사되든 안되든 가해자의 형량에 유리하게 반영되는 한국 사법 현실…

보복성 고소와 관련해서는 앞으로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문제, 수사 과정에서의 무고 인지 문제, 원 피해 사건 재판 과정에서의 양형 반영 문제 등 풀어가야 할 다양한 숙제들이 쌓여 있다. 피해자의 말을 막고 연대와 지지기반을 무너뜨리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가해자들의 ‘보복’을, 이 사회는 어떻게든 막고 책임을 지울 것이다. - P74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해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자 가해자(정신과 의사)는 피해자의 말과 글을 막기 위해 가처분신청까지 했다. 공론화를 무력화하고 법적 절차를 밟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가해자들이 취하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이 모든 법적 절차를 피해자 혼자서, 그것도 경제적 여유가 없는 피해자가 알아서 대응하기는 어려웠기에 성폭력위기센터를 통한 무료법률구조를 권했고, 피해자와 함께 하나씩 차분하게 대응하려 노력했다. - P80

그러다 2020년 봄, 가해자는 사망했다. 자신의 가해에 대한 그 어떤 인정도, 반성도, 회복을 위한 노력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고통을 감수하고 사법 시스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던 피해자들의 허탈감은 얼마나 컸을까. 죽음에 관대한 한국 사회의 정서상 오히려 가해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 이들도 있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지 않았냐며 피해자들에게 망각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해자의 죽음 그 자체가 곧바로 피해자의 회복과 일상의 재구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죽음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 애썼다. - P84

사람들은 가해자에 대한 법적 단죄가 마무리되면 저절로 피해가 회복되며 일상이 재구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니다. 그때부터 다시 시작이다. 그렇게 시작된 싸움은 지리멸렬하고 이해받지 못하기도 한다. 지원은 끊기고 관심도 사라진 상태에서 피해자 혼자 덩그러니 남는 경우가 태반이다. 다 끝났는데 왜 그러고 있냐는 핀잔을 듣기 쉽다. 왜 아직 못 벗어났냐고, 이제 열심히 회복하고 사회로 복귀해야 하는것 아니냐고. 피해자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다. - P86

지은 씨는 기록을 시작으로 하나씩 일상을 다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여전히 세상 밖으로 편하게 나오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당시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출판을 권유한 것은 ‘이후의 삶’에서 주도권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가 외부 평가에 의해 박제된 삶을 살기를 원치 않았다. 내 연대의 지향은 피해자들이 ‘이후의 삶’에서 주체적이고 안정적으로, 안전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것이다. 그래서 찾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기록과 영상이다. 《김지은입니다》는 피해 회복과 일상 재구성을 위해 그가 선택한 첫걸음이자, 개인 연대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연대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피해를 실질적으로 회복하기가 어렵다. - P88

피해자가 숨을 고르고 사회 복귀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데, 사회는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없다. ‘회복적 사법 restorative justice‘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정작 피해자의 실질적 회복에 대한 관심은 적은 것이다. 신변보호, 주거와 생활비 등 경제적 지원,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관련된 각종 의료적 지원, 직업교육 등 사회 복귀를 위한 지원, 안전망 구축 등 아주 기본적인 회복 지원도 여전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긴 ‘응보적 사법 retributive justice‘ 역시 제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아직은 지나치게 큰 기대일 수 있다. 그렇기에 ‘법대로‘ 하는 것은 피해자가 여전히 많은 상실을 각오해야 하는 선택지다. 법적 절차가 종료된 후 피해자가 사회로 복귀하기까지 사법 시스템은,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 P89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고통, 충격)"라는 표현을 쉽게 내뱉는다. 이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 대한 시스템의 책임 회피이자, 피해회복을 피해자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사회의 비겁한 변명이기도 하다. 시스템에 기반해 정의를 제때 실현하고, 응보적 측면의 책임부터 견고히 해야 한다. 아울러 다양한 사회적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싸움 이후 피해자의 피해 회복과 사회 복귀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 P90

피해자들은 대부분 피고인 퇴정 등 공간 분리를 요구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의 재판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같은 공간에 차폐막만 쳐놓고 피해자 증인신문을 강행하기도 한다.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이윤택(70세, 남) 전 연극연출가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재판에서는 피고인이 차폐막 너머에서 헛기침을 하거나 차폐막을 발로 차며 위압감을 주는 행위를 일삼기도 했다. 당시 피해자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증인신문을 견뎌야 했다. 이런 형태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압박하고 신문을 방해하는 행위가 잦기 때문에 피고인 퇴정 등 공간 분리는 매우 중요하다. - P97

피고인 쪽의 부적절한 신문을 재판부가 제지하지 않아 고통을 겪는 일도 다반사다. 실제로 2019년 이후 성폭력 사건 재판의 증인신문과정에서는 "일반적으로 남자라면 이런 상황을 동의로 받아들일 수있지 않겠어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클럽에 가거나 모텔에 남성과 - P98

투숙하는 것은 성관계 동의로 볼 수 있지 않겠어요?", "본인이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남성 혐오감을 갖고 있어 예민하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는 모두 2016년 사법정책연구표시의원 연구보고서에서 부적절한 신문 유형으로 지적된 것들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과도하게 괴롭히거나 겁을 주거나 공격적인 질문", "빈정거리거나 모욕하거나 폄하하는 질문", "집요하고 반복적인 질문", "성관계 행위 내지 신체적 특징을 불필요하고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묘사하도록 하는 질문", "피해자의 사생활 내지 성적 행위 이력에 관한 질문" 등은 모두 부적절한 신문 유형이다. - P99

이처럼 피고인(가해자)이 범죄 혐의를 인정한다는 조건을 걸어 피해자로부터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를 받아낸 후, 재판 결과가 유리하게 나오면 돌변해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그런데도 수사기관이나 재판부는 합의에 이르는 과정, 합의내용, 합의 이후(공소제기 이전일 경우) 피의자 또는 공소제기 이후일 경우) 피고인의 태도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합의‘는 가해자의 족쇄를 풀어주는 장치로 활용된다. - P105

가해자들이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합의‘를 이용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수사 과정에서는 소의 취하를 유도하기 위해 합의를 요구하지만, 실상 합의에 실패해도 불리할 것이 없다.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가 금전적 요구를 했거나 금전적 보상 제안에 응했다면, 그 사실을 내세워 피해자가 돈을 노리고 접근한 것으로 몰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는 합의해야 공소사실(범행 내용)을 인정하겠다고 버티거나, 합의를 해야 법정 싸움이 길어지는 걸 막고 피해의 일부라도 회복할 수 있는 것처럼 피해자를 밀어붙인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도, 합의에 실패한 피고인은 불리하지 않다. ‘진지한 노력‘을 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한국 법원은 합의에 성공해도, 합의에 실패해도 피고인에게 유리하도록 판단한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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