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여성에게는 왜 남성을 능가하는 힘이 없는지 궁금해진다. 성별 우위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예외 없이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는 너무나 자명해 보인다. - P22

페미니스트가 말하는 남성지배는 사회구조에 관한 것이다. 남성지배/가부장적 사회는 법률·정치·종교·경제구조나 제도가 남성을 여성보다 우위에 두는 곳이다. - P23

이처럼 여성과 남성 간의 불평등이 사회구조의 모든 층위에서 재생산된다는 사실은 여성 간의 차이를 논의할 때 종종 간과되는 지점이다. - P26

성별 임금격차는 체제의 맨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퍼져 있고, 위의 사례는 남성지배가 구조적 문제라는 또 다른 증거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임금격차가 하층 여성에 미치는 영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마땅히 기울여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체제 전체를 해체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많은 페미니스트가 여성 간의 차이를 인식하고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남성지배 혹은 가부장제라는 보편 개념을 고수하는 이유다. - P27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한 가지 전통적인 방식은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대는 것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에 따르면, 남성지배는 자연적인 성적 차이로 생긴 피할 수 없는 결과다. - P28

이는 페미니스트 대다수가 지지하지 않는 주장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남성의 지배와 여성의 종속을 벗어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로 보지만, 페미니즘은 인간의 사회체제란 변할 수 있다고 맏기 때문이다. - P28

이들은 가부장제에도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내보일 수 있다면, 즉 가부장제가 탄생한 시기, 장소, 이유를 알 수 있다면 가부장제를 인간의 필수 조건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전에 다른 무언가가 있었고, 또 다른 무언가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P29

엥겔스의 설명에 따르면 가부장적 가족은 ‘생존수단의 생산양식‘이 변화하면서, 즉 (가축을 번식시키고 기르는) 목축이 발달하면서 출현했다. - P30

역사학자 거다 러너는 1986년에 쓴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엥겔스와는 조금 다른 주장을 펼친다. 그녀는 가부장제의 출현이 (농업이라는) 새로운 생산양식의 발달과 연관성을 지닌다는 엥겔스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자손에게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남성의 바람 때문에 여성이 예속되게 됐다는 주장에는 반박한다. 대신, 러너는 남성이 여성과 아이 그 자체를 재산으로 바꿔놓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현상은 새로운 생산양식이 탄생하면서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졌기 때문에 일어났다. 아이를 더 많이 낳으려면 공동체는 더 많은 가임 여성이 필요했고, 때때로 이웃 집단에서 여성을 납치해 노예로 만들어 그 필요를 충족하기도 했다. 러너는 "노예가 된 여성과 아이는 최초의 사유재산이다"라고 말한다. - P31

성평등 사회의 모습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례는 특유의 전통적 삶의 방식을 고수해온 수렵채집사회다 - P32

실비아 월비는 『가부장제 이론』에서 영국과 같은 사회의 가부장제는 지난 세기에 ‘사적‘ 가부장제에서 ‘공적‘ 가부장제로 서서히 그 형태가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 P33

오히려 여성은 개인 남성과 맺는 사적 관계에서보다 시민이자 피고용인이라는 공적 역할에서 더 많은 예속 경험을 하게 됐다. - P34

그들은 성의 영역도 사적 가부장제에서 공적 가부장제로 전환됐다고 말한다. 즉, 과거에는 여성을 성적 소유물로 여기며 남편이 독점했다면, 오늘날 여성은 어떤 남성에게도 성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여성에게 금기시되었던 것이 현재는 기대되는 것으로 변했고, 심지어 강요되기까지 한다. - P35

가부장제의 기원을 앞서 살펴보았듯, 가부장제 출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요소는 사실상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착취하고 통제하려는 남성의 욕망이다. - P35

페미니스트 대부분은 남성이라는 계급이 차지하는 지배적 지위에 대한 대가를 남성 개개인이 치른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한편, 남성은 여성과 달리 이러한 체제로 이득을 본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 P39

손태그가 말하길, 가부장제는 모든 이를 동등하게 억압한다는 생각은 "마치 가부장제는 그 누가 만든 것도 아니고, 그 누구에게 편한 것도 아니며, 그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듯, 남성지배라는 날 것의 현실을 어물쩍 넘기려 한다." 남성지배가 유지되는 이유는 다른 불평등한 구조가 유지되는 이유와 같다. 즉, 가부장제는 특정한 누군가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 위해 작동한다. 페미니스트는 가부장제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그것을 바꾸는 데 필요한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 P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