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조히스트인 만큼이나 사디스트이고, 바로 그런 기질때문에 스탠드업 코미디에 끌렸던 것이다. 이왕 무안해질 거라면 청중도 나 때문에 무안해하길 바랐고, 너무 무안한 나머지 피부를 찢고 튀어 나가고 싶을 정도였으면 했다. 인종에 관해 솔직하게 쓰는 길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으나 그보다 더 원한 것은 안주하는 자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이었다. 부끄러워 움츠러들게 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내 정체가 안주하는 무리에 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형식 실험에서 실패만 거듭하고 인종에 관해솔직하게 글 쓸 방법을 찾아내는 작업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 P92
퀴어 이론가 캐서린 본드 스톡턴은 퀴어 아동이 어떻게 "옆으로(sideways) 자라는지" 적으면서, 퀴어의 삶이 흔히 결혼과 출산이라는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스톡턴은 유색 인종 아동 역시 옆으로 자라는데 그들의 어린 시절도 퀴어 아동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백인 아동이라는 모델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내 경우는 어린시절을 옆으로 보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지금도 그때를 돌아보면, 어린 소녀가 내 시선을 피해 숨으면서 나의 기억들을 깜박거리는 환상의 그림자놀이로 유도한다. - P101
미국뿐만 아니라 전지구에 기억을 심어주는 할리우드 산업은 백인 향수를 일으키는가장 수구적인 문화적 주범이며, 무한 반복되는 타임루프에 갇혀 1965년 이후로 미국의 인종 구성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점을 인정하길 거부한다. 할리우드 영화의 출연진을 보면, 유럽 혈통만조심스럽게 골라 그들만 미국인으로 등장하도록 보장하는 백인우월주의 법이 아직도 이 나라를 "보호"하고 있는 것만 같다. - P107
번스틴에 따르면 인종적 순수란 단순히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아는 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상태"로서 "음, 나는 인종이 문제라고 보지 않는데"와 같은 언급 속에 엉켜 있으며, 여기서 나는 보는 일을 가로막고 있다. 순수는하나의 특권이자 인지 장애, 즉 잘 보호된 무지의 상태이며, 일단 이것이 성인기까지 오래 이어지면 당연히 누려야 할권리로 굳어진다. 순수는 성적인 것만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굳이 특정해서 "표시되지 않으며"(unmarked) "자유롭게 본연의 너와 나가 될 수 있다"라는 신념에 기대 사회경제적 위계 속에 놓인 자신의 지위를 외면하는 것이다. - P108
그런 일이 너무 관행처럼 발생해서, 엄마가 어떤식으로든 백인 성인과 상대할 때면 나는 늘 바짝 경계하면서 중간에 끼어들거나 엄마를 옆으로 잡아끌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 자란다는 것은 권위 있는 사람이어야할 부모의 굴욕을 목격한다는 것, 그리고 부모에게 의지하지않는 법을 배운다는 것을 뜻한다. 부모가 아이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112
이 나라에서 아시아인으로 사는 굴욕은 잘 알려져 있지않다. 우리는 아시아인은 좋은 처지에 있다는 거짓말에 주눅이 들어 있다. 근면성을 발휘하면 존엄성으로 보상받으리라 믿고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지만, 근면은 우리를 보이지 않는 존재로만들 뿐이다. 우리가 목청을 높이지 않으면 우리의 수치심은 억압적인 아시아 문화와 우리가 떠나 온 나라가 초래한 것이되고 미국은 우리에게 오로지 기회를 주었을 뿐이라는 신화를 영구화하게 된다. 아시아인이 좋은 처지에 있다는 거짓말은 너무나 은근히 퍼져 있어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도 남들에 비하면 나쁜 처지가 아니었다는 의심에 시달린다. 그러나 인종적 트라우마는 누가 앞서고 뒤지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문제는 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이례적이 아니라 실은 오히려 전형적이었다는 데 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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