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정치평론가인 애너벨 크랩이 호주에서의 아내와 남편, 여성과 남성이 일과 가정에서 직면하는 차별에 대해 다양한 사례, 통계, 실험, 연구 조사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심리학 책에서 볼 수 있는 통쾌하거나 뜻밖의 결과를 보여주는 통계나 실험의 반전 같은 건? 없다. 모든 통계와 실험이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누구에게? 남성에게만 이라고 말할 수 없다. 여성에게도.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일하는 엄마와 일하는 아빠에 대한 편견, 결혼한 여성과 결혼하지 않은 여성, 결혼한 남성과 결혼하지 않은 남성에 대한 편견. 회사의 책임있는 직책의 담당자를 뽑는다면 누구를 추천하겠는가? 모든 조건이 동일한 남성과 여성 중에서, 또는 여성이 약간 더 탁월한 조건인 경우? 그 남성이 결혼한 경우와 아닌 경우? 그 여성이 결혼한 경우와 아닌 경우? 생각하는 바 대로다. 나도 당연히 자유로울 수 없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안전한 선택을 하겠지. 내가 여성을 뽑는다면? 사람 볼 줄 모르는 여성이 되겠지!


결혼한, 자녀가 있는 남성이 '아내'라는 든든한 자원을 가짐으로써 얼마나 많은 '결혼 프리미엄'을 가지는지 대한 통계도 많다. 결혼한 남성이 직장에서의 연봉도 더 높고, 승진도 더 유리하고, 사회적 신망과 기대도 더 높다. 심지어 모든 연구가 '결혼하지 않은 남성'보다도 유리하다. 하지만 반대로 가정에 충실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남성이 처한 상황도 많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내지 못하는 아빠들, 일터에 갖혀 아이들의 성장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빠들, 전업주부가 된 남편에 대한 부정적 시선들.


애너벨 크랩은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일터에서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에만 관심을 가질 뿐, 가정과 일터를 연계시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만 패자라고 가정해버리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모두가 패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일터로 진출하면서 발생하는 일과 가정에서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여성을 '배려'하는 할당제나 차별 철폐 조처 같은 정책만을 고민하는 것은 절반의 해결책이며, 남성에게도 일터에서 가정으로 진입할 수 있는, 그래서 누구에게나 '아내'가 필요없는 정책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나온 노르웨이의 정책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노르웨이는 1977년부터 남성들도 유급 유아휴직을 사용할 있도록 하였으나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들이 3% 밖에 되지 않자, 1993년부터는 표준 유급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이 아빠여야만 수당의 상당 부분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법으로 아버지가 더 적극적인 부모가 되도록 만든 것이다.


더는 남성들이 자기 가정의 집안일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 아이의 "보모 노릇"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이런 시스템이 필요하다.


표지에 있는 "모든 문제는 가사 노동에서 출발한다!"는 강렬한 문제의식, 이 책을 읽기 전 나조차 남성들이 가사 노동을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가사 노동 불평등의 문제를 이렇게까지 중요하게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 나에게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또 한 꺼풀 벗기는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읽기에 어렵지 않다. 이론적인 설명보다 저널리스트의 글 답게 다양한 사례들에 대한 설명이 많고, 저자 본인이 일과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웃픈 상황들, 서글픈 현실에 대한 때로는 독설과 위트가 담긴 문장들로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