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대출예약한지 몇달만에 내 손에 들어온 책. 역시 인기몰이한 책답다. 킬킬거리다 눈시울이 붉어지다 한다. 성수신찬, 말랼광이에서 빵 터짐! 우리집 어린이(? 이제 청소년)도 생각난다. 말할 때마다 글자위치가 틀리거나 모음이 하나 틀리거나 해서 우리를 어처구니없게 만든다. 재밌는 거 많은데 기억안나네. 나도 적을 걸.. 중학생이 되어도 사자성어 틀리게 말하기 신공을 부린다. 타지산석 이런 식? ㅋㅋ 시험 답지는 제대로 쓰는게 신기 ㅎㅎ

지하철 자동 개찰구! 무서워하는 아이들 많네. 우리 애들도 무서워함. 특히, 큰 아이는 6학년 때까지도 무서워서 조심조심 들어왔다. 중학교 가고 통학시 지하철 자주 타서 괜찮은 듯.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 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거야."
그러자 현성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거울을 보지 않았지만 분명히 나는 얼굴이 빨개졌을 것이다. 지금도 할 수는 있는데. 아까 현성이가 분명히 ‘연습했다’고 했는데. 어린이는 나중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도 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 P18

새로 배운 어려운 말을 꼭 써 보고 싶어 하는 것도 전형적인 허세 중 하나다. 아홉 살 다은이는 할머니 생신 잔치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성수신찬이었어요" 라고 해서 나를 당황하게 했다. 진수성찬이라고 하고 싶었겠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삐삐 롱스타킹‘ 시리즈에 푹 빠졌을 때는 삐삐가 "말랼광이"라고 하기도 했다. 다은이에게는 말괄량이 삐삐가 ‘미치광이‘ 같은 느낌이었을까? - P25

나도 그간 어린이들에게 배운 바가 있으니 허세를 부리며 말했다.
"고마워. 아무튼 나도 이제 아람이처럼 농구인이야."
그러자 아람이는 조심스럽게 선을 그었다.
"삼 일 차 농구인이시죠."
이날 아람이와 헤어질 때, 나는 장난스럽게 경례를 붙였다. "농구 선배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도 아람이는 웃지 않고 내 경례를 경례로 받았다. 나는 아람이의 뒷모습이 충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한 다음, "삼 일 차 농구인"이라는 말을 되뇌고는 혼자 소리 내어 웃었다. 도무지 나는 어린이를 당해 낼 수가 없다. - P29

아홉 살이 이해하도록 최선을 다해, 또한 내가 지적으로 보이도록 최선을 다해, 인류의 수렵 채집 시절과 농경 시절에 대해 보고했다. 그리고 ‘잉여 생산물‘과 ‘물물교환‘을 설명할 차례였다.
"그렇게 농사를 짓다 보니까, 드디어! 필요한 것보다 많이 생산하게 된 거야. 우리 마을에서 다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이!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윤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나눠 줘요!"
그 밖에 다른 답이 있을 리 없다고 확신하는 얼굴이었다. 이런 하윤이에게 경제 논리를 설명하려니 나는 갑자기 속이 시커먼 어른이 된 것 같았다. - P31

착하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어린이를 상대로 한 범죄는 어린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될 때가 많다. 잃어버린 강아지 찾는 걸 도와 달라거나 짐 옮기는 걸 도와 달라는 식으로, 어린이의 착한 마음을 이용해서 어린이를 유인하는 범죄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에 불이 붙는 것 같다. 슬프고 두려운 일이지만, 가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애쓰다 멍드는 어린이가 어딘가에 늘 있다. - P33

어딘가 좀 할머니 같은 말이지만,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 P41

"따로 계산해 드릴까요?"
어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은 어린이에게 책을 받아 아빠와 계산을 마친 다음 다시 어린이에게 "따로 담아 드릴까요?" 하고 물으셨다. 어린이 손님은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
"아유, 귀여워 몇 살이야? 아빠 드려야지." 사장님은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돈을 내는 것은 아빠니까 아빠 편을 드는 게 나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어린이도 자기를 어르는 말에 넘어갔을지 모르고, 아마 그런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서점의 정중한 손님 대접이 어린이에게 얼마나 기억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이라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그렇게 하는 사장님의 모습에도 품위가 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서점에서 받은 좋은 인상이 더 확실해졌고, 입구의 어린이 코너조차 친근하게 느껴졌다. - P45

도토리는 지하철역의 개찰구를 무서워한다. 막대를 밀고 들어가는 식인 곳은 괜찮다. 평소에는 트여 있다가 카드에 이상이 있을 때 가로막는 판이 튀어나오는 곳이 문제다. 혹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실수해서 거기에 걸릴까 봐 너무 긴장된다는 것이다. - P49

자람이가 가고 보니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앤 제 마음이 있어요."
‘이 책앤’ 자람이의 마음이 담겨 있다. 나도 마음을 담아 읽을 것이다. 그러니 똑같아 보여도 다 다른 책이다. 자람이 말이 완전히 맞다. - P72

처음에 어린이들이 "제가 옛날에요" 하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물론 누구에게나 옛날이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홉 살, 열 살 어린이가 "제가 어렸을 때는요" 하는 식으로 말하면 당황스러웠다. - P76

내가 정말 어린이들 앞에서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후후, 여러분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사십 대는 그전보다 돈이 많아. 선생님은 이십 대 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 왜냐하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거든! 지금까지 살아온 중에 지금이 제일 부자야!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다 사 먹을 수있어."
이렇게까지 했으니 이길 수밖에 없다, 상처와 함께하는 승리로군, 하고 있을 때 다시 재준이가 침착하게 입을 뗐다.
"선생님, 저희는 일을 안 해도 돼요. 엄마 아빠가 사 주세요." - P82

"아니, 선생님이 어렸을 때는 네 식구가 방이 한 개인 집에서 살았어. 나중에는 혼자서 방이 한 개인 집에서 산 적도있고, 그런 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글도 비슷해. 한단락으로 쓰더라도 내용이 잘 정리되면 좋은 글이 돼."
짐짓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 다음 주제를 설명하고 글쓰기를 시작하게 했다. 칠판에 그린집 그림을 지우고, 뒷짐을 딱 지고, 어린이들 주변을 한 바퀴돌았다. 나의 한 부분이 이제야 어른이 된 것 같았다. - P103

내가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고 하자 시연이가 눈이 커다래져서 이렇게 물었다.
"스스로요?"
누가 등 떠밀어서 간 거 아니고, 제 발로 걸어갔느냐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했다.
"피아노 쳐 본 적은 있으세요?"
분위기를 보니 ‘뭔 줄은 알고 하는 거냐‘는 눈치다. 마지막으로 쳐 본 게 언제일까 계산해 보니 대충 35년쯤 전이다. 열한 살 시연이 입장에서는 그렇다면 안 쳐 본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사실대로 대답했다. - P129

"어린이들이 훨씬 유연하기는 해요. 대신에 어른은 음악을 조금 더 알아서 재미있게 배울 수 있어요. 이 곡이 어떤 곡인지, 대강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니까요."
힘이 되는 말씀이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뒤로 피아노 연주곡을 듣는 일이 더 좋아졌고 귀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더 밝아졌다. 전에는 그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연주가이제는 훌륭하다!‘ ‘황홀하다!‘ 하는 느낌까지 준다. 그래서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게 바로 문제예요, 선생님, 제 귀는 그걸 아는데 제 손이 그걸 몰라요. 그래서 손보다 귀가 더 괴로워요.‘
그럴 때 선배님들의 조언을 다시 떠올린다. 열심히 하세요.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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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2-24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도 그래요,, 어린이도 아닌데..^^;;

햇살과함께 2022-02-24 23:53   좋아요 0 | URL
ㅋㅋㅋ 라로님은 2개 국어하시느라!

scott 2022-02-25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어린이 였을때
승강기를 무서워 했습니다 ㅎㅎㅎ
놀이 공원에서 가장 높이 올라갔다 급 추락 하는 건 좋아 하면서 ㅎㅎㅎ

햇살과함께 2022-02-25 08:53   좋아요 1 | URL
전 뭘 무서워 했을까요?
흠… 전 바다 무서워 했어요 맨날 바다에서 놀았지만 한순간 빠져 죽을 수 있겠구나 생각…
그리고,, 고양이, 개도 무서웠어요 물릴 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