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그런 책이 아니다. 한 페이지를 넘기는 데 10분 이상이 걸릴 만큼 메모할 구절로 가득하다. 인용하기에 좋은 깊은 사유와 무릎을 치게 만드는 미문(美文)으로 그득하다. 진심으로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출판사의 소개대로 용서의 미덕을 무조건 강조하는 책들과 달리 용서를 경험한 사람들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이끌어내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용서라는 행위의 유동성과 주관성을 보여준다. 깔끔한 처방을 내리기보다는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무처방, 불간섭주의적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 이 책의가장 큰 장점이자 핵심이다. 또한 이 책은 용서 담론의 수많은 국면과 요소를 최대한 포괄하고 있다. - P51

이미 용서를 둘러싼 담론에는 분노나 고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사회는 그러한 상태를 암암리에 ‘극복‘의 대상으로 본다. 용서는 분노보다 우월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다를 뿐이다.
용서에 대한 나의 입장을 굳이 밝힌다면 나는 용서에 관심이 없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용서라는 말이 싫고 용서의 필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들을 의심한다.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용서, 화해, 대화라기보다는 부정의한 사람들과 그들의 행위가 가능한 사회적 조건이다. - P52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용서가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한다. 정작 자신이 용서할 일을 당하기 전까지는……." 1952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지 불과 7년째 되는 해였는데, 사람들은 만일 루이스 자신이 폴란드인이거나 유대인이라면 게슈타포를 용서하겠냐고 물었다. 그는 즉답을 피했다. 대신 그보다 더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히려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 사람은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 P55

용서의 또 다른 어려움은 사건은 구조적이되(정치학), 용서는 개인의 몫(심리학)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 P56

우리 사회는 ‘해결 매뉴얼‘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피해란 원래 복잡하고 다양하고 모순적인 환경에 놓여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우리의 굳은 몸을 다른 세계로 이동시키고 변환시켰다는 점은 분명하다. - P58

내 생각에 현재 한국 사회의 여성주의는 두 그룹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온라인의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한 ‘급진적‘ 여성들과 체제 내화된 일부 여성들로 나뉜 것이다. 여성 운동 단체출신 국회위원 중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에 서명한 여성 의원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양극이라고 하지만 두 그룹의 페미니즘 모두 ‘파이가 중요한’, 평등 지향의 자유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유례없는 "난민 반대, 트랜스젠더의 여대 입학 반대" 주장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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