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구급차까지 다 떠나자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밤늦게 사람들이 모두 잠든 후에야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탈의 부모님은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장례식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그분들이 내게 말을 걸었더라면, 나는, 때로 내가 꾸는 꿈속에서의 진실을 말해주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꾸는 꿈속에서 구멍에 잔디 봉지를 빠뜨리는 것은 탈이 아니라 나라고, 어떤 때는 내가 녀석을 밀어넣는다고. 한번은, 내가 녀석에게 내려가보라고 부추겼다고.
그것이 진실이에요, 라고 나는 그분들에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꿈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탈은 살게 되는 그 부분은. - P15

아버지에게 분명히 있기는 했던 조금의 재능은 단지 좌절의 원천으로만 작용하며, 실현되지 않은 막연한 잠재력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줄 뿐이었다. 그러나 그때-내가 아주 어렸을 때-나는 아버지의 잠재력을 전적으로 믿었고, 아버지가 많이 그립긴 했지만, 빈번히 우리와 떨어져 지내는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 없었다. 내가 열두 살이 될 즈음, 어머니와 나는 우리 삶에 아버지가 부재하는 것에 다소 익숙해져 있었다. - P18

아버지가 만든 첫번째 영화에 대한 기사였는데, 리뷰 내용 대부분이 호의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좀체 내 마음을 떠날 줄 모르는 짧은 문장이 하나 있었다-기사 말미의 문장으로, 이 문장에서 그 비평가는 아버지의 영화를 "젊은 천재의 간과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묘사했다. 이후 세월이 흐른뒤 깨닫게 된 것인데,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단어들과 그것들에 실린 무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부엌 식탁에 홰를 친 새처럼 앉아, 만트라를 암송하듯이, 나는 머릿속에서 그 단어들을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내가 그 단어들을 충분히 여러 번 말하면, 그 뉘앙스를 모사하면, 분명 모든 것이 그 단어들처럼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모양이다. - P20

만약 만나라고 데려다주는 상대가 동성이 아니라 이성이라면 당신은 그것을 하등 문제삼지 않을 것이다, 라는 그녀의 주장에 내 쪽에서 항복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내 입장은 솔직히 그래도 잘 모르겠다는 쪽이다. - P48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한다. "나도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건 알아. 그렇지만 가끔 내 정신이, 뭐랄까, 물러진 기분이 들어."
"물러진 기분?"
"날카로움을 잃어버린 것 같아." 그녀가 나를 본다. "나는 표 - P70

류해. 가끔 강의 시간에 학생이 말을 하잖아. 그럼 눈으로는 그 학생의 입술이 움직이는 걸 보고 있지만 그 학생이 하는 말은 듣고 있지 않아. 나는 강의실에 있지만 강의실에 있지 않아. 내 말뜻 알겠어?" - P71

대체적으로 우리 둘 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술이 관련되어 있는 문제에서는 더더군다나 그렇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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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02 0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햇살님 10월의 독서 앤드류 포터의 단편집!

저도 사릉하는 단편집 입니다.!

10월 햇살님 행운 가득~하시길 바래요 ^^

햇살과함께 2021-10-02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단편집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스캇님도^^ 아직 3편 밖에 읽지 않았는데 좋네요! 이제 표제작 읽을 차례! 한결같은 북플 사랑지기 스캇님도 10월을 즐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