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왕송호수 손커피연구소를 찾았다.

예전에는 백씨아저씨 커피하우스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긴 참 업종이며 주인이 자주 바뀌는 것 같다. 바로 옆에 해물칼국수 집이 있는데, 한 번 가보고는 안간다.

문어는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왕송호수 부근에 갠춘한 커피하우스들이 생기는데...

단가도 비싸고 뭐 그렇더라. 요것은 손커피연구소의 전경이다. 손커피연구소는 원래 의왕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원래 가던 곳도 주인장이 바뀐 모양이다.

참 들어가는 길에 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타령하던 핑크뮬리밭이 아주 멋지게 보였다.

그런데 어디서 보니 핑크뮬리가 외래종으로 국내 생태계에는 그닥 좋지 않다고 하던데...



복잡시런 이야기는 그만하고 빵구경이나 하자.

요건 우리 꼬맹이가 좋아라하는 초코쿠키다. 이 자슥이 만날 밥은 안 먹고

주전부리 타령만 해대서 걱정이다.

애기 때 단거를 안줘서 그런가. 나이가 드니 단건 잘 안먹게 되던데.



요건 구황작물로 만든 과자라고 한다. 아마 감자 고구마 그 외에 또 구황작물이 뭐가 있더라. 그런데 생각보다 커피로 승부를 거는지 디저트 설렉션이 많지 않았다. 아님 평일이라 그랬나. 매대는 엄청나게 큰데 말이지. 하긴 만들어 놓고 안 팔려도 걱정이긴 하지.

 


이미 밥을 먹고 방문해서 배가 빵빵했으나 또 과자를 하나 먹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그래서 인절미 크로플을 하나 주문했다. 비주얼이 별루라고 생각했는데, 맛을 보니 기가 막힐 정도였다. 아놔, 배가 부르니 도저히 간식이 들어가지 않는다.

 

택배기사님이 우리 뒤에 들어와서는 크로플을 쓸어 가셨다. 그 다음에는 소방대원분들이 오셨고... 그것 참 다양한 분들이 방문하시는구나 그래.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 중에 하나는 손님들이 없어서 좋았다. 어느 브런치 카페에 갔을 적에는 정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다 아플 정도였다.

날이 좋아서 야외에 준비된 벤치에 나가서 앉아도 좋지 않았나 싶다. 실내에 있다 보니 좀 답답했다.




참 밥 먹으러 가기 전에는 램프의 요정에 들러 올해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아니 에르노 작가의 책을 샀다. 하나는 <집착> 다른 하나는 <탐닉>이었는데, 전자는 너무 얇아서 88쪽 대신 <탐닉>을 샀다. 아니 에르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단순한 열정>의 일기 버전이라고나 할까.




손커피연구소 좌석은 이렇게 다다미 스타일로 되어 있어서, 그렇게 사들인 <탐닉>을 두고 인증샷을 날려 본다.

구 소련 출신 연하의 남친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 아니 에르노의 80년대 말의 기록이다. 일기 스타일이 부담 없이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구입했다. 마침 적립금도 사용해야했고. 신한은행에서 준 천원짜리 도서상품권을 들이댔다가 이미 사용한 상품권입니다라는 말에 어찌나 당황했던지. 그건 마치 내가 예전에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사다가 느낀 그런 당황함이랄까.



인절미 크로플은 질겨서 칼질을 해대는데 거의 밑의 판이 썰릴 정도였다 ^^

그리고 테이블이 좀 시원치 않아서 엄청 흔들리더라. 하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다른 녀석도. 아마 우리처럼 칼질을 해대서 그럴까.



커피와 디저트를 다 먹고 나서 나오는 길에 카페 앞에서 만난 감나무에 매달린 감 사진 하나 투척한다.

역시 사진은 자연광이다. 오래전부터 사진을 찍어 왔지만, 인공 조명 아래서 찍는 사진도 좋지만 역시 자연광만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음 주면 11월인데, 아직도 잠자리가 날아 다니더라구.

철없는 녀석들 같으니라구. 지난달만 해도 잠자리가 엄청났었는데 말이지. 하긴 어젯밤에 보니 방에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기가 날아 다니더라. 원래 모기가 출몰하는 계절이 여름 아니었나. 기후 문제가 심각한 모양이다.

어느 기사에서 보니 우리 지구별이 견딜 수 있는 기온상승이 1.5도 정도라고 하는데, 2.5도 정도는 거뜬하게 넘어설 태세라고.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갑갑하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플라스틱과 화석연료를 덜 사용하면서 살아야 하나.



[뱀다리] 며칠 전에 동네빵집 사냥에 나섰을 때, 어딘가에서 만난 냥이 녀석.

해가 좋아서인지 볕이 잘 드는 구석에서 한가한 오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더라. 초큼 부러웠다. 니 팔자가 상팔자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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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0-28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롱 매달려있는 감이 너무나 탐스럽게 보입니다. 사진은 자연광이죠^^ 인공광은 아무리 해도 뛰어넘을 수 없더라구요. 그리고 당연히 사진보다는 실물이구요~ㅎㅎ 이번 주말이 단풍이 절정일듯하여 어디라도 구경갈까 생각중입니다^^*

레삭매냐 2022-10-28 14:14   좋아요 1 | URL
그러쵸 그러쵸 !
사진은 역시 자연광광광 ~~~

츠바이크의 표현을 빌자면
결국 사진 역시 실제의 기술적
복제품이 아니겠습니까 ^^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살면서
만난 쵝오의 단풍은 내장산
단풍이지 싶습니다...

화가님의 단풍구경을 응원하
는 바입니다.

프레이야 2022-10-28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구 하양이 녀석 조러구 자네요
덜 춥기를. 밥 먹고 빵 안 먹으면 입안에 가시 돋는 사람 여기 추가입니다 ㅎㅎ 왕송호수는 아무래도 멋진 곳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2-10-28 14:18   좋아요 1 | URL
아주 따땃한 햇살 아래 조는
녀석의 자태가 멋져서 사진
으로 찍어 보았습니다.

핑크뮬리 사진까지 얹었다
면 아주 금상첨화였겠지만
저의 게으름으로 그만...
양귀비도 있다는 말이 있더
라구요.

의왕시는 나를 왕송호수 홍
보대사로 임명하라 임명하라
ㅋㅋㅋ

자목련 2022-10-28 14: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빵, 커피, 책, 가을 풍경 모두가 유혹이네요.
특히 마지막 사진에 심쿵!
스마트폰으로 볼 때는 인형인가 싶었어요.

레삭매냐 2022-10-28 14:19   좋아요 0 | URL
아주 귀여운 냥이지요 ^^

장판하고 비스무레한 때깔
이라 순간 솜뭉치인 줄 알
았답니다.

라로 2022-10-28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절미 크로플이 왜 그렇게 질길까요?? 원래 부드러운 것이 인절미 아닌가요??
어떤 맛인지 너무 궁금합니다!!ㅎㅎㅎ
근데 가게가 너무 널찍해서 썰렁해 보여요.^^;;
어쨌든 감색이 너무 이쁘네요.
길냥인가 봐요? 겨울이 다가오는데...
저도 플라스틱 덜 사용하고 물 아껴 쓰고,, 등등 하면서도
나만 하면 뭐 하나? 뭐 그런 생각도 하게 되고,,
여기선 또 총기사건 터지고,,, 이래저래 심란합니다.

레삭매냐 2022-10-28 14:23   좋아요 0 | URL
아니 또~!~~ 세상에
조용할 날이 없네요 그래.
왜 그놈의 총기 규제를 하
지 않는지 그것 참 -

크로플이 썰기에는 질겼
는데 이거이 입에 들어가
니 그만... 아주 살살 녹았
답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없더라구요. 아마 주말에
는 미어 터지지 싶습니다.

길에 사는 냥이들 겨울이
걱정이지요. 참 추운디 -

무엇보다 온수가 지구온난
화의 주범이라는 말에 아니
샤워를 줄여야 하나 싶기도
하구요 ㅠㅠ 맞아요 나만 그
런다고 뭔 소용이냐 기래 다
들 암케나 쓰레기 버려대는
데... 씁쓸하네요.

서니데이 2022-10-28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에서 햇볕 따뜻한 날의 느낌이 잘 느껴지네요.
모양을 보니 대봉시 같은데, 햇볕 잘 받는 곳에 있어서 잘 자란 것 같습니다.
요즘 와플모양 디저트가 다양하네요.
인절미도 크로플이 되는 거군요.
디저트 사진 잘 봤습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레삭매냐 2022-10-28 16:50   좋아요 1 | URL
우와 저 감이 대봉시였군요!
미처 몰랐습니다.
역시나 램프의 요정 북플은
배움의 공간이로군요.

아마 크로플에 인절미 맛
무언가를 뿌린 게 아닐까 추
론해 봅니다 :>

감사합니다.

coolcat329 2022-10-30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요즘 맛집과 이쁜 카페 많이 다니시네요.
탐닉 사셨군요. 표지가 좀 그렇죠? ㅋ
늘 사진들이 이쁘고 즐거워 보입니다.

레삭매냐 2022-10-30 21:49   좋아요 0 | URL
맛집까지는 아니고 그냥 -

오늘 오후에는 정말 날이
여름 같았습니다.

<탐닉> 표지 다시 보니
그렇네요 ^^
 
오늘을 잡아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9
솔 벨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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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읽다만 솔 벨로 작가들의 책들이 제법 된다. 분량이 상당해서 도전에 나섰다가 나가 떨어졌다지. 민음사에서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온 <오늘을 잡아라>도 수배해 두었는데 미처 읽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새단장을 하고 나와서 또 사들였다. 책쟁이의 숙명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깊어가는 10월에 <오늘을 잡아라>를 읽는데 성공했다.

 

200쪽이 되지 않은 단편 소설 분량의 <오늘을 잡아라>는 왠지 연극 대본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지 않고, 연극 무대에 올리면 딱이지 않을까.

 

1956년에 발표된 솔 벨로의 네 번째 작품인 <오늘을 잡아라>의 주인공은 인생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깡그리 실패한 44세의 남자 토미 윌헬름이다. 부유한 의사 아버지 애들러 씨를 둔 유펜에 다니던 전도유망한 청년이 망가지기 시작한 건, 할리우드에 데뷔시켜 주겠다던 협잡꾼 모리스 베니스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배우로 성공하겠다며, 성까지 애들러에서 윌헬름으로 바꾸며 7년이나 할리우드 허송세월했지만 토미는 배우가 되는데 결국 실패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도 없었던 그는 결국 별 볼 일 없는 그런 일자리를 전전해야 했던 모양이다. 두 번째 그가 만난 재앙은 아내 마거릿과의 결혼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멋쟁이 아가씨 마거릿에게 진심이었지만, 결혼은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아 참, 그전에 금발의 호남자 그리고 약간 곰처럼 생긴 토미 윌헬름의 결정적 약점에 대해 말해야지 싶다.

 

자신도 고백하듯이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때문인지 어쩐지 오랜 숙고 끝에 최악의 결정을 내린다는 점이었다. 이건 정말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배우 데뷔부터 그랬다. 숱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토미는 포주에 가까운 사기꾼의 농간에 넘어거 할리우드행을 택했다. 아마 그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토미의 할리우드행은 대학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버렸고 그건 배우에 올인해서 성공하지 않는 이상, 성공의 사다리에 올라갈 수 없다는 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의미했다. 배우로도 그리고 대학 학위를 가진 여동생 캐서린이나 부모님과 다른 그런 존재가 되어 버린 토미의 삶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결국 사랑하는 두 아들과 댕댕이 시저스마저 마거릿에게 빼앗긴 채, 글로리아나 호텔에 거주하는 신세가 된 토미 윌헬름. 그나마 다니던 로잭스 회사에서도 어쩔 수 없는 운명(사장 사위에게 밀려나 버렸다!)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때려 치우는 바람에 현재 실직 상태다.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꼴이 없는 게 바로 토미의 현재 상태였다.

 

그에게 닥친 마지막 재앙은 바로 탬킨 박사라는 수상쩍은 인물이었다. 아버지 애들러 박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토미는 가진 돈 700달러를 털어 넣어 탬킨 박사의 말을 듣고는 선물시장에서 라드에 투자한다. 현재 암담한 미래에 절망한 청춘들이 코인에 투자를 했다면, 66년 전에는 선물시장이 그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손 쓸 수 없는 과거, 도무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불안이 상존하는 미래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무대는 어느 세대에나 준비되어 있었던 걸까.

 

누가 봐도 개똥철학자 사기꾼 그 이상도 아닌 탬킨 박사는 현재 절망에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는 토미에게 썩은 동앗줄을 던진다. 뱀의 혓바닥을 능가하는 탬킨의 요사스러운 언설에 우리 세상 물정 모르는 얼치기 주인공 토미는 그대로 넘어가 버렸다. 아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말 몰랐단 말인가? 자신의 아버지조차 자신을 돕지 않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누가 자신을 호의만으로 도와줄 거라고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토미가 할리우드행을 결심하던 이십대도 아니고, 산전수전 다 겪고 나서도 이런 잘못된 결정을 잇달아 내렸다는 점에서, 결국 삶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솔 벨로 작가는 확인사살한다.

 

토미가 문제아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애들러 박사가 애써 아들의 곤란한 상황을 외면하는 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토미가 자신의 탬킨에 대한 경고를 무시했다는 점도 그리고 화해의 손길을 내민 토미가 아버지의 불퉁스러운 태도에 질린 나머지 폭주하다가 결국 싸움으로 귀결되는 과정이 부자 간의 갈등이라는 조금은 진부한 주제의 변주라는 점이 좀 아쉬웠다. 유사 이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언제 평화가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잘 따르는 아들이 있었다는 말도 못 들어본 것 같다.

 

세상만사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아 보이던 탬킨이 왜 자신의 돈도 아닌 토미의 돈으로 라드 선물투자에 나서 물주에게 일확천금을 안겨 주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따져볼 만하다. 선물시장에서 라드 값이 떨어지고, 호밀 값이 오를 때 왜 손절하자는 토미의 의견을 탬킨은 따르지 않았을까? 바닥을 치는 주식이 언젠가 오를 거라는 말들은 그동안 너무 많이 듣지 않았던가? 손절의 기회가 오거나 밸런스를 맞출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놓치는 경우를 과연 탬킨은 몰랐을까? 아니면 좀 더 먹겠다고 욕심을 부리다 결국 망한 게 아닌지. 믿었던 탬킨이 메인으로 튀었다는 말에 토미는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지푸라기라도 같은 심정으로 토미 윌헬름이 매달렸던 탬킨은 메피스토펠레스의 현현이다. 자고로 타인을 현혹시켜 사적 이익을 편취하는 인간 군상은 인생에 있어, 그리고 문학에 있어 빠질 수 없는 그런 디폴트 같은 존재였다. 하필이면 나락으로 추락하던 순간의 토미에게 현란한 언변과 기발한 아디이어를 구사하는 탬킨의 출현은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이제 트리거가 준비되었으니 당기기만 하면 되는 거였고, 토미는 이번에도 역시나 심사숙고 끝에 최악의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생전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서 폭포수 같은 눈물을 터뜨린다. 인생의 막장에 선 남자의 깊은 성찰과 카타르시스 교차하는 지점이라고나 할까. 과연 토미 윌헬름의 남은 인생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지 않은가.

 

도시쥐 토미는 계속해서 각박하기 짝이 없고, 아내 마거릿을 포함한 모두가 자신을 벗겨 먹으려고만 하는 뉴욕에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시를 떠나 시골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과연 중년의 도시쥐 토미에게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자식들을 볼모로 삼은 아내가 요구하는 돈을 시골에서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예전에는 채무자들이 돈을 갚지 못하면 감옥에 넣고는 했다는데, 현대 사회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일을 해서 돈을 벌게 하는 시스템이라는 토미의 혜안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돈은 모두 늙은 기득권층이 가지고 있어서 자신들이 쓸 돈이 없다는 자각은 또 어떤가. 그중에는 자신의 아버지 애들러 박사도 포함되어 있다. 닥터 애들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생각에 아들 토미에게 더 이상의 돈을 쓸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가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들이 자신의 말에 고분고분한 것도 아니고, 주관이 뚜렷한 아들 토미가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그런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거라는 토미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도입 부분에 나오는 지금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냐는 문장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다. 그 명제를 나의 책사랑에 대입해 보면, 과연 나는 책을 사랑하여 어떻게 달라졌을까? 주관적인 입장에 선 내가 그것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저 오늘 읽는 책에, 그 책에 나오는 문장과 서사 그리고 구조에 담긴 것들에 집중할 따름이다. 과연 토미 윌헬름이 그때그때의 순간마다 사랑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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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0-27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전 민음사 판으로 읽었는뎁쇼, 사랑하지만 재수없는 유대인 아버지 애들러 박사가, 아휴, 증말 넘 한 거 아녀요? 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2-10-27 21:21   좋아요 1 | URL
토니 윌헬름이가 참 그렇지만...

그래도 자식인데 너무 매몰차지
않나 싶었습니다. 공감합니다.

청아 2022-10-27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잘 읽었습니다. 이 소설 재미나게 읽었는데
덕분에 다시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ㅎㅎ

연극으로 올려도 정말 좋을 듯 해요!
솔 벨로의 어떤 책들 가지고 계신지 궁금해요.
다른것도 수배해 읽어야겠어요^^*

Falstaff 2022-10-27 18:26   좋아요 2 | URL
오기 마치의 모험은 어떻게 읽어야 좋을지, 번역문의 맥락을 잡기가 쉽지 않게 우리말로 옮긴 것.........같습니다. 원문으로도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모험을 빼고 나머지 허조그, 비의 왕 앤더슨, 오늘을 잡아라, 다 괜찮습니다.

청아 2022-10-27 19:08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골드문트님! 허조그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잊고 있었네요. 알려주신 책들부터 수배하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10-27 21:30   좋아요 1 | URL
<허조그> <헨더슨> 그리고 <오기 마치>
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마 절판되어
가던 시절에 급하게 구한 기억이...

읽다 말다해서 이번에 <오늘을 잡아라>
를 필두로 해서 다시 도전해 보려고 합
니다.

새파랑 2022-10-27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솔 벨로 책 시리즈 완전 멋지네요 ㅋ 예술입니다~!!

레삭매냐 2022-10-28 09:1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소장만 하고 읽지 않고
뻐팅기던 솔 벨로의 책
들 모아서 함 찍어봤습
니다.

coolcat329 2022-10-30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문동에서 새로 나왔군요.
저도 이걸로 읽어봐야겠어요.
펭귄 솔 벨로우 책 멋져요!

레삭매냐 2022-10-30 21:49   좋아요 0 | URL
이 참에 펭귄에서 나온
<허조그>에 다시 도전 중이랍니다.

2년 전에 200쪽까지 읽다 말았더라
구요.
 


지난 주말, 부천에 있는 브런치 카페 스페이스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웨이팅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좀 일찍 도착했으나, 주차장은 이미 아수라장이었으며 1층 대기실에 차를 대고 가보니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 이곳이 핫플이로구나.

 

1층 로비에 걸려 있는 어느 사진을 하나 봤는데, 나도 이런 사진을 찍어 보고 싶었다.

아주 고혹적이지 않은가.



인테리어로 구닥다리 브라운관TV가 있길래 살펴보니,

커피 메뉴가 적혀 있지 않은가. 아이디어 한 번 기발하지 않은가.



주차장에서 1층으로 가는 복도에 장식되어 있는 나비 오나먼트들이다.

머리핀인가? 꼬맹이는 빤짝이는 액세서리 구경이 넋이 나갔더라. 왜 그렇게 그런 걸 좋아하는지.



자 이제 본격적인 먹거리 구경에 나서 보자.

브런치는 오후 2시까지라고 하던데, 이용 시간은 70분이다. 그리고 보니 예전에 빕스에서 점심에 입장해서 저녁까지 먹고 나왔다는 전설이 대단하지 않은가.

아니 밥 다 먹었으면 나가야지 무얼... 암튼 그랬다.



이건 스콘류던가. 아주 다양한 빵들의 향연이 이어진다.

손님들이 하도 많다 보니, 계속해서 구운 빵들과 디저트류들이 등장한다.



요건 우리 꼬맹이가 좋아라하는 크루아상인데 단가가 좀 하더라.

하긴 요즘 비싸지 않은 게 있던가. 빵값도 너무 많이 올랐다.

앞으로 SPC 빵은 사지 않기 위해 요즘 부지런히 동네 빵집 사냥 중이다.

SPC 때문에 동네빵집이 거의 다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남은 빵집들은 너무 비싸고 그것 참.



이건 아마 단호박 바게트였나 어쨌나. 예전 같았으면 빵 사진에 이름까지 다 찍었을 텐데 이제는 그런 열정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귀차니즘 때문이라고 할까나.



이것 역시 이름은 모르겠지만 아마 번 종류가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뭔 번이니 하는 빵집이 유행했었는데 다 사라져 버렸다.



타라~ 어쩌면 이 녀석의 자태를 올리기 위해 이 포스팅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내가 티라미슈와 더불어 디저트 중에 가장 좋아라하는 바로 크림뷜레다. 크하~

넘넘 먹어 보고 싶었으나, 브런치를 앞두고 있어서 차마 들이댈 수가 없었다.



스페이스작 지하 1층에서 무슨 전시를 한다며, 꼬맹이가 방문하면 굿즈를 선물로 준다 해서 어쩔 수 없이 끌려갔다. 처음에는 데면데면했는데 정작 가서는 아주 신나게 구경을 했다. 누가 그린 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 그린 웹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참 굿즈로는 친환경 장바구니와 물병 등을 나누어 주셨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밑그림을 보고 그리는 간단한 체험도 있어서 안할 수가 없었다. 꼬맹이는 공룡을 나는 고래를 그렸다.



한 쪽 벽면에는 커다란 종이가 있어서 실컷 그림을 그려볼 수가 있더라.

나도 질세라 달려들어서 꼬맹이 그림을 그려 보았다.

발로 그렸냐는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지.

그래, 나는 발화가다 어쩔래!

 

이상 끝.



오늘 점심에 먹은 죠스떡볶이.


원래 1인분에 3,000원 아니었나?

이제는 3,500원이 되었다. 그리고 야끼

만두 반조각을 얹어 주더라.



이건 순대, 역시 값이 올랐다.

3천원에서 4천원으로 - 오르지 않은 게

없다.


이젠 주문도 모두 키오스크로 해야한다.

예전에는 사람한테 하던 시절이 그립다.



어제 저녁에 마트에서 사온 또띠야.

인스타에서 본 또띠야 페퍼로니 피자

를 한 번 만들어 먹어 보려고 샀다.


이 또띠야는 미제다.



오늘 점심 먹고 나서 페퍼로니와 모짜렐라

치즈를 사려고 사방을 돌아 다녔는데 모짜

렐라 치즈는 봤는데 페퍼로니는 없더라.

이걸 어디 가서 사야 하나 그래.


이 또띠야는 스페인에서 만들 거란다.

여튼 별 개 다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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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6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26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거리의화가 2022-10-26 14: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SPC 이용안한지 좀 됐는데요 이참에 다양한 빵집이 들어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물가가ㅠㅠ 이래저래 심란하네요. 올려주신 빵 사진들 보며 침 꼴깍 삼켜봅니다ㅋㅋㅋ

레삭매냐 2022-10-26 16:11   좋아요 2 | URL
저도 그동안 파바에서 주로 빵
을 사다 묵었는데 이 참에 끊어
버릴라구요.

그래서 동네 빵집 투어 중이랍
니다. 내일은 월화수 쉬고 영업
하는 빵집 투어 원정에 나설
계획입니다. 포스팅으로 알려
드리지요.

북프리쿠키 2022-10-26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혹적인 포즈사진 기대합니다!

레삭매냐 2022-10-26 16:12   좋아요 1 | URL
고혹적 사진을 위해서는
우선 모델부터 섭외를...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2-10-26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런 포즈로 저런 눈빛으로 사진 한번 찍어보고 싶다는..... 이생에서는 안되겟죠? ㅠ.ㅠ
그런데 이 스페이스作이라는 집은 브런치 뷔페입니까? 이용시간 제한이 있게요? 진짜 그렇다면 대박입니다. 이런 곳은 전국화 해야 한다는.... ^^ 우리 동네로 진출해달라 ^^

레삭매냐 2022-10-26 18:01   좋아요 1 | URL
사진 보면서 진차, 크하~ 했답니다.
포즈가 아주 기냥 -

브런치 카페랍니다. 너무 오래 있으
면 내쫓기지 않을까요.
저희처럼 밥 무면 바로 튀 나가는
닝겡인들에게는 별무소용이죠 뭐
시간이 ㅋㅋㅋ

독서괭 2022-10-26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배고픈 참인데 빵들이 참 맛있어 보이네요.. 저희 동네 상가에는 맛있는 동네빵집이 있어서 애용하는데, 이른 아침이나(동네빵짐 개점전) 저녁에는(동네빵집 다 팔림) 빠바를 이용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ㅠㅠ
또띠아 페퍼로니 피자라니, 엄청 맛있겠는데요. +ㅁ+ 맛난 저녁 드세요!

레삭매냐 2022-10-26 22:36   좋아요 1 | URL
오늘 저녁 메뉴는 잡채였답니다 -
아주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

또띠야 페퍼로니 피자는 제가
맹근 다음에 한 번 그 자태를
공개해 보겠습니다 ㅋㅋ

stella.K 2022-10-26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먹는 게 3분의 2고 보는 게 3분의 1이네요. ㅎㅎ
죠스 떡복이 매운가요?
불매운동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이거 하나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여러모로 속이 상하겠어요. 빵 팔아서 얼마나 번다고...ㅠ

레삭매냐 2022-10-26 22:37   좋아요 1 | URL
죠스 떡볶이, 제 입맛에는
좀 매웠습니다.

파바와 그 떨거지들의 영업
이익이 엄청나더라구요 !!!

그게 다 노동자들과 가맹점
주들을 쥐어 짜서 만든 거라
는 점이 문제지만요.

coolcat329 2022-10-26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빕스 그 전설의 주인공 저도 해봤답니다. ㅋㅋㅋ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점심 저녁을 다 먹고 나왔어요 ㅋㅋㅋ
저 요즘 또띠야에 맛들려서 만들어 보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순대 양이 정말 ㅠㅠ

레삭매냐 2022-10-26 22:40   좋아요 1 | URL
아니 울 쿨캇트님이 말로만
듣던 빕스 점심-저녁 올킬러
셨다니요!!! 대단하십네다.
완쉐이 ~~

제가 아보카도는 별루인데
또 과카몰리는 팬이라눙 -
요상하지요.

제 최애 메히칸 푸드는
소고기 파히타, 치킨 퀘사
디야 그리고 부리또 되겠
습니다. 쩝쩝 -

그전에 롯백 식품코너에서
선데이 한 번 사다 묵었는데,
쌩선데이만 들어 있더이다.

2022-10-26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26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2-10-27 1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빵을 커피빈 빵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암튼, SPC는 또 뭔가요???
그런데 꼬맹이가 따님이에요??
꼬맹이 성별을 알 수 없는 단어인데
갑자기 블링블링 좋아한다고 하니까..
그건 그렇고 죠스 떡볶이 넘나 맛있어 보이는데
어찌 야끼만두 반조각을! 실화죠!!
암튼 한국도 인플레이션이....ㅠㅠ
근데 스페인에서 만든 또띠아는 어찌 다른지 궁금해요!!!
저도 치킨, 비프 파히타 넘나 좋아하는 인간;;
저는 과카몰리도 좋아하고 그냥 아보카도도 환장해요.^^;;;
아참! 저도 티라미슈와 더불어 디저트 중에 가장 좋아라하는 것은 바로 크림뷜레랍니다!!! 호곡!!!^^;;;

레삭매냐 2022-10-27 13:38   좋아요 0 | URL
그런가 봅니다, 또 제가 빵에
대해서는 문외한인지라 - 고저
먹을 줄만 알지 헷

꼬맹이는 사냉이랍니다, 말썽
꾸러기죠. 만날 사고만 치고.

여짝도 인플레가 어마무시합
니다. 가격 오르면서 양이 주
는 희한한 시츄~가!!!

아 크림뷜레 먹고파요, 근데
넘 비싸서리.
 
배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0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황가한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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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의 네 번째 책 <배반>을 읽었다. 이전에 이미 세 권의 책으로 구르나 작가에 대한 워밍업을 마친 나는 충분히 그의 작품 세계에 몰입할 준비를 마쳤던 모양이다. <배반>은 참으로 아름다운 책이었다.

 

2005년에 발표된 <배반>은 구르나 작가의 7번째 장편소설이다. 이때까지 만난 작품들 중에 가장 자전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는 생각이다. 189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늘날의 탄자니아/케냐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이 중심을 이룬다.

 

인도계 출신 장사꾼 하사날리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음중구(유럽인) 한 명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종교적 이유로 이방인을 환대하는 무슬림 문화에 대한 단면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방인은 신이 보낸 천사라고 했던가. 자신의 집을 방문한 천사를 매몰차게 내치지 말라는 말일까. 지금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폭력적인 이미지로 덧칠되었지만, 적어도 이방인들을 환대하는 문화만큼은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몸바사 근처의 작은 마을에 마틴 피어스라는 이름의 음중구 한 명이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수레바퀴는 가열차게 돌아간다. 십대에 부모님을 잃은 하사날리와 그의 누나 레하나 남매. 부모가 없을 적에는 가장 가까운 남자 형제나 친척이 여자 형제를 보살피는 게 그 동네 문화라고 한다. 인도 출신 아버지가 현지인 여성과 결혼해서 낳은 자카리야 집안 역시 태생적으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세 번의 청혼을 거절한 레하나는 동생 하사날리가 가문의 명예를 수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한 아자드와 결혼했지만, 그 결혼은 재앙으로 끝났다. 계절풍을 타고온 아자드는 다시 그 계절풍을 타고 그녀의 곁을 떠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의 빈자리를 갑자기 등장한 음중구 마틴 피어스가 채워 버린 것이다. 양심적인 학자 행세를 하던 피어스는 자신을 구한 레하나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 버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 고향 영국으로 떠나 버린다. 좀 진부한 설정이 아닌가.

 

그리고 한 명의 중요한 캐릭터가 남아 있다. 영국에서 식민지 혹은 보호령 탄자니아를 지배하기 위해 파견한 군수 프레더릭 터너다. 그는 빈사의 지경에서 발견된 음중구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하사날리로부터 인계받는다. 물론 현지인에 대한 반감으로 그가 혹시라도 피어스의 물건들을 강탈하지나 않았나 하는 의심은 디폴트다.

 

하긴 백인농장주 버턴에 비하면 프레더릭 터너는 양반이다. 버턴은 남아프리카의 보어인들처럼 아프리카 식민지에 사는 현지인들을 모두 쫓아내고, 백인들의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일삼는다. 제국주의자들은 동아프리카를 제2의 아메리카로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학살과 추방으로 점철된 미국의 역사를 아프리카에서도 되풀이하고 싶다는 걸까. 백인 식민주의자들에게 흑인들의 노동력은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그들과의 공존은 자신의 미래계획에 빠져 있다. 아마 19세기말에 전 세계를 호령하던 백인들이 자신들의 지배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런 그들의 착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무리수였다.

 

두 세대 정도인 6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독립을 앞둔 탄자니아로 시계는 돌아간다. 그리고 새로운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아민과 라시드 그리고 파리다. 그들의 부모님들은 모두 교사로 탄자니아의 엘리트 계급이다. 파리다는 삼남매로 맏이로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해 시험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지금은 집에서 수다와 지인들의 옷을 만들어 주며 소일 중이다. 아민은 믿음직한 장남으로 그리고 꼬마 이탈리아인이라는 별명의 라시드는 몽상가다. 당연히 부모님들은 장남 아민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문제는 이 믿음직한 장남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이혼녀 자밀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촉발됐다. 끓어오르는 청춘 아민이 자밀라와 비밀연애에 빠지게 되자, 진짜 물불 가리지 않는 저돌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런 사랑이기에 아민과 자밀라는 서로에게 그토록 몰입했던 게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초타라(튀기, 혼혈인)에 대한 반감은 전통적 무슬림 사회에서 여전했던 모양이다. 결국 아민과 자밀라의 비밀연애는 발각되고, 아민 부모님의 격렬한 반대에 비극적 사랑으로 마무리되었다.

 

자 이제 진짜 화자인 라시드가 등장할 차례다. 몽상가였던 소년 라시드는 식민 모국 영국으로 건너갈 기회를 잡게 된다. 형 아민과 어쩌면 미래의 형수가 될 수도 있었던 자밀라와의 연애가 파국으로 치닫던 시점 그리고 탄자니아 독립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결부된 그 시점에서 라시드는 조국을 떠나 영국으로 향한다.

 

처음에는 자발적이었을 지는 몰라도 독립 과정에서 극도의 혼란과 무질서, 폭력 그리고 이어진 학살과 추방 때문에 라시드의 영국 유학은 그대로 영구적인 무엇인가가 되어 버렸다.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낯선 곳에 적응해야 했던 이방인 라시드의 감정이 아주 절절하게 와 닿았다. 확실히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는 라시드라는 캐릭터에 작가 자신을 명징하게 투영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감정들은 누군가에게 들은 것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이었다.

 

라시드는 학업을 마치고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줄리어스 니에레레가 인도하는 사회주의 정권 아래 아무런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 라시드의 가족들은 막내아들이 영국에 머물 것을 권유한다. 그렇게 라시드는 어쩔 수 없이 영원한 이방인이 되어 버렸다. 박사 학위를 받고 대도시 런던을 떠나, 작은 도시의 대학에 일자리를 얻은 라시드는 그렇게 과거로부터 분리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졌던 사건들의 진상과 마주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다.

 

소설의 엔딩이 사뭇 급작스럽고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여전히 <배반>은 내가 꼽은 구르나 작가의 최고의 작품이다. 모든 게 완벽할 수 없으니까. 아니 어쩌면 힘차게 필력을 휘두르며 전진하던 구르나 작가의 너무 자신의 이야기에 몰입한 나머지, 더 이상 쓸 힘을 상실하고 급하게 마무리지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소설 <배반>의 기본 베이스는 사랑타령이다. 레하나와 피어스의 사랑, 자밀라와 아민의 사랑(둘 다 파국적이었다) 그리고 아민-라시드 브러더스에 대한 가족들의 다소 폭력적인 사랑. 그들의 조상이 디아스포라 이방인이었던 것처럼, 그들의 후손 역시 타지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는 그런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렇게 해서 현재 우리의 삶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더 쓰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책에 몰입하다 보니 무척 강렬하게 다가왔던 느낌들이 어느 순간 우수수 바스러져 버렸다. 그 자잘한 느낌들을 되살리기에는 내 기억의 한계가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만큼 구르나 작가가 구사하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그리고 다양한 군상들이 시전하는 감정들의 광휘에 취했다고나 할까. 원제 desertion에는 배반, 도주, 유기 따위의 뜻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중의적 해석 역시 소설에 등장하는 각각의 사건에 다양한 층위로 적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제목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달에 <배반>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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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0-25 1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르나의 자전적 이야기가 가장 많이 담긴 소설이라 저는 이 소설부터 시작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제가 해당 시기 베크 세계사를 읽고 있어서인지 인물들의 설정과 관계도에 이입이 많이 됩니다. 내년으로 미뤄뒀는데, 이거 읽어야 하나요?ㅎㅎㅎ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22-10-25 20:23   좋아요 1 | URL
구르나 선생의 전작들이 <배반>
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
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프레이야 2022-10-25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반, 땡스투유~ 메냐 님.

레삭매냐 2022-10-25 20: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프레이야님~! 쌩유 -

새파랑 2022-10-25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게 구르나의 최고의 작품이군요 ^^ 구성이 약간 <바닷가에서>랑 비슷해보이기도 합니다~!!

레삭매냐 2022-10-25 20:25   좋아요 1 | URL
그동안 출간된 전작들의 총합
이라고나 할까요.

결국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법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레이스 2022-10-26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배반으로 구르나 4부작 마무리하려고 들여놨습니다.^^

레삭매냐 2022-10-26 13:41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의 <배반> 완주를 응원합니다 !

구르나 작가의 다른 책들도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서니데이 2022-11-09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거리의화가 2022-11-09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이달의상 축하드려요^^
덕분에 저도 이 작품 찜했습니다!ㅎㅎㅎ

독서괭 2022-11-09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 네권이나 쭉쭉 독파하셨군요!

강나루 2022-11-10 0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축하드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thkang1001 2022-11-10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타이탄의 세이렌
커트 보니것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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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면 항상 대답하곤 하는 이름이 둘 있었다. 칠레 출신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와 미국 출신의 커트 보네거트였다. 두 작가 모두 우리 지구별을 떠나 영원한 별이 되었다. 나름 보네거트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독서모임에서 한 동지가 <타이탄의 세이렌>이라는 작품을 읽었다는 말을 듣고는 , 그 책은 못 읽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검색을 해보니 이제는 절판돼서 구할 수가 없는 책이란다. 복간되어 나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고하기 전까지 활발한 작품활동을 해온 보네거트의 <타이탄의 미녀>1959년에 발표된 그의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SF 과학소설 장르의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의 장르로 분류되는 것을 한사코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류가 지구별을 떠나 우주에 첫 발을 내딛기 십년 전에 이미 이런 상상을 했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름조차 생소한 크로노-신클래스틱 인펀디뷸럼이라는 공간을 통해 지구별과 화성을 넘나드는 윈스턴 나일스 럼푸드와 그의 개 카작이 소설의 초반부를 장식한다. 인펀디뷸럼에 들어가게 되면 과거와 미래를 아는 능력이 생기는데, 자신이 가진 부를 우주선 제작에 투자해서 럼푸드 씨는 예의 능력을 100% 활용하기에 이른다. 그는 또다른 갑부 맬러카이 콘스턴트(소설의 진짜 주인공)을 자신이 지구별과 화성을 오가며 체화하는 의식에 초대해서 그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럼푸드는 콘스탄트에게 화성과 수성, 지구 그리고 타이탄으로 가게될 거라고 예언한다.

 

아니 아직 인류가 달나라에도 가지 못한 마당에 이런 방대한 스케일의 허구는 뭐지? 물론 지금이야 무인우주선이 부지런히 우주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그 정도야 상상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63년 전에도 그런 상상이 가능했을까? 하지만 지구별에서 무엇 하나 아쉬울 게 없는 콘스탄트에겐 씨도 먹히지 않는 수작일 뿐이다. 그래서 슬쩍 미끼를 던지는데 그게 바로 제목인 <타이탄의 세이렌>들이다. 물론 모든 소설의 주인공의 운명이 그렇듯,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이기 마련이다.

 

SF소설답게 전개와 공간이동 역시 신속하다. 다음 무대는 화성의 연병장이고, 주인공 역시 엉크라는 이름의 사나이가 등장한다. 화성에 사는 지구별의 이주민들은 모두 지구별과의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왜 지구를 침공하려고 하는 걸까? 구체적인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머릿속에 안테나를 하나씩 박아두고 리모콘으로 조정하는 방식은 또다른 디스토피아의 재현으로 다가온다. 기억을 지우고, 사회에 순응하는 그런 기계적인 인간 군상이 대거 등장한다. 그 가운데, 과거를 필사적으로 기억해 내려고 애쓰는 남자가 하나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엉크. 그리고 필연적으로 독자는 그가 지구별에서 화성으로 납치된 맬러카이 콘스턴트일 거라는 추측에 도달한다.

 

윈스턴 나일스 럼푸드의 사주를 받아 지구별 침공에 나선 화성인들은 공격다운 공격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한다. 럼푸드는 자신의 예언 성취를 위해 자신의 정체를 알게된 엉크와 보즈를 수성(머큐리)으로 보낸다. 음악을 사랑하는 하모니움이 사는 수성을 탈출해서 엉크/콘스탄트는 다시 지구별로 귀환해서 우주의 방랑자가 된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지구별에 와 있던 그의 아내 베아트리체와 아들 크로노와 함께 마지막 여행지인 타이탄으로 마지막 여행에 나서게 된다. 소설 <타이탄의 세이렌>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우주여행, 공간이동, 반전 메시지 그리고 신흥 사이비 종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커트 보네거트 주니어가 이 소설에서 다루는 소재는 그야말로 차고 넘칠 지경이다. 소련이 미국에 앞서 발사한 유인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의 충격(1957104) 때문에 세계 일류 미국이 악의 축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소설 곳곳에 덕지덕지 묻어난다. 어이없는 화성인들의 집단자살 작전은 온전하게 럼푸드 씨가 지구별을 좀 더 바람직하게 변화시키고, 대규모 유혈사태 이후 발생하게 될 사고의 진공상태와 양심을 가책을 덜 수 있는 신흥 종교의 발흥을 위한 것이었다는 고백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종교에서 흔히 사용되는 예언을 차용하고 메시아를 기대하는 심리를 우주의 방랑자의 도래로 치환시키는 방법 역시 탁월해 보인다.

 

그 층위에 더해 인류가 체험한 이 모든 간난신고는 타이탄에 사는 럼푸드 씨의 친구이자 트랄파마도어인 우편배달부 살로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과 그에 따른 결말 역시 성에 차지 않는다. 도대체 커트 보네거트가 이 소설 <타이탄의 세이렌>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그저 어느 도피주의자의 우주적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큰 담론인지, 그도 아니라면 얼치기 블랙유머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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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24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트 보니것 소설이 다시 나왔군요. 앗싸하고 찾아보니까 타임퀘이크도 다시 재출간돼서 한번 더 앗싸하네요. 세풀베다는 한권밖에 안 읽어서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커트 보니것은 저도 제일 좋아하는 작가예요. 레삭매냐님 덕분에 새 책 소식 빨리 알았다고 좋아하는데 언제 읽으셨대요? 알라딘에 신간소식 오늘 떴던데 말이죠.

레삭매냐 2022-10-25 10:01   좋아요 0 | URL
오래 전, 한창 책 읽기 시작했을 적에
커트 보네거트/루이스 세풀베다 책들
을 사냥하러 다닌 기억이 풀풀 납니다.

근데 책들이 거의 절판돼서리...

<타이탄의 세이렌>은 8년 전에 읽은
책 감상문의 울궈먹기입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