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마킹을 할 사람이 없다기보다는 그럴 능력도 뜻도 없었으니 트럼프를 벤치마킹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전투표가 시작됐고 그 어느 선거보다 사전투표율이 높다고 하는 이번 대선에서 아직도 선거공약서 없는 후보가 있다. 무려 허경영조차 제출한 이것이 없다는 것은 그의 무능함과 무지를 넘어 대통령이 되어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목표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뜻이 없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이 되어 정적, 기자, 시민, 그리고 장모와 거니의 돈벌이를 더욱 가열차게 돕고 경쟁자들은 모조리 검찰에게 넘겨버리겠다는, 아니 어쩌면 그것도 장모와 거니가 그린 밑그림일 뿐 이자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무리가 아닐까. 살면서 그런 사람을 보기도 했고 나 또한 어느 시절엔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자체가 목표였던 시기가 있기는 하지만 지천명을 넘은 사람이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면 그리고 그가 권력을 잡았던 것, 더 큰 권력을 손아귀에 넣는 건 비극이었고 더 큰 재앙이 될 것이다.

'지도자가 경제를 안다고 국민들 삶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란 그는 오늘도 첫 합동유세에서 명언을 제조하는 것으로 본인의 뇌=우동사리라는 걸 다시 한번 인증했다고. 


준석이나 철수나 석열이나. 이들 중 닮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자. 물론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혹시라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봐. 






















5년간의 고용살이를 마치고 LA에서 이곳으로 올라와 창업을 하고 아주 천천히 조금씩 무에서 유로 나아가기 시작하던 그 무렵. 가진 건 없었지만 책값은 모든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당할 수 있었기에 나의 독서와 구매가 급증하던 그때 아다치 미츠루를 처음 접했고, 이후 절판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그의 작품을 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때 만난 H2, 미유키, 러프 같은 주옥같은 작품들은 지난 10년간 그렇게 자유롭게 사들인 수많은 명작들과 함께 빛을 볼 언젠가를 기다리면서 점점 더 mancave로 변해가는 내 사무실에 모여있다. 


카츠!는 나온지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알게 되어 구했고 코믹스판으로 나온 덕분에 일단 가격이 괜찮아서 첫 두 권을 먼저 구한 후 바로 남은 것들을 구해 읽었다. 주인공 두 명, 남주와 여주 각각 이름이 카츠키라서 카츠! 또 일본어로 승리를 뜻하는 카츠!에서 복싱만화로서의 카츠! 


아다치 미츠루는 스포츠만화를 많이 그리는 작가이지만 사실 그의 작품은 슬슬 인생의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접어드는 아저씨의 눈으로 보면 그저 추억 혹은 추억의 기시감을 주는 고교청춘연애물에 가깝다. 언제나 티격태격하는 남주와 여주, 삼각관계, 사각관계 등 나이가 들어갈수록 좀처럼 만날 수 없는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십대의 풋풋함 (비록 인공적이거나 요즘 현실과는 동떨어져있다고 해도)을 유쾌하게 그려준다. 그의 작품속에서 기실 스포츠는 테니스든, 수영이든, 복싱이든, 야구든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매일 한 권씩 나오는 대본소만화는 소장가치가 없지만 잘 그린 만화는 두고두고 꺼내보게 된다. '오르페우스의 창'이나 '베르사이유의 장미' 같은 순정만화의 명작도 사들여야 하는데 아직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도 다 구하지 못해서 일단 미뤄두고 있다. 아~ 이 절판과 품절의 공포라니. 그러고 보니 황미나 작품도 (비록 좀 표절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어릴 때 즐겨본 기억이 있다. 















'고양이'를 먼저 읽었어야 순서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완벽한 수면의 통제와 조정으로 꿈의 세계를 개척해서 의식 깊은 곳으로 가려는 연구. 

가끔은 꿈이 예지를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꿈은 전생의 한 자락 같기도 하고 어떤 날의 꿈은 가슴이 시린 연애나 life의 could have been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이렇게 꿈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소설을 보면 실제로 시도해보고 싶어진다. 


처음엔 좀 집중을 못해서 조금 읽다가 던져놓고 3년 정도 지난 지금 갑자기 다시 펼쳐서 금방 읽어버렸다. 만년작가지망생인 주인공이 여친에게 버림받고 각성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모티브를 얻기 위해 수퍼마켓에 취직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활기를 띄기 시작한 창작. 프랭크라는 이상한 직원과 친해지고 Mia라는 매력적인 여성과 연애도 하고. 


그러다가 엄청난 반전을 맞고, 그 반전은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은채 2부로 넘어가 다른 의미로 가상과 현실을 섞어 스토리가 이어진다. flow는 좋은데 뭔가 Fight Club과 Legion같은 소설이 떠오르는 모티브. 



사회학자 노명우가 낸 서점. 배움을 실천하는 삶이랄까, 책을 더 읽게하고픈 마음도 있고, 정작 사회에 들어가지 않고 살던 사회학자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모습이기도 하고, 또 부모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보이기도 하는 진짜 이야기. 작은 서점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건 여전히 책을 많이 팔아서가 아닌 책을 팔면서 모자란 건 다른 일로 보탤 수 있어서. 연예인이 책방을 하면 그나마 나은 듯, 심지어 건물을 사서 서점을 열고 개발에 맞춰 7억의 시세차익을 남긴 이도 있으니까. 유행처럼 작은 서점들이 열렸고 유행이 지나가면서 망한 곳이 태반이라고 하는데 책만 팔아서 유지할 수 있는 서점의 시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겠다는 주인장의 의지의 깊은 곳에는 사람들이 책을 더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강한 것 같다. 실제로 접해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되는 서비스업이고, 그 성격이 강한 서점의 일도 그래서인지 꽤 이상한 인간들이 특히 초기에 많이 드나들었던 듯 몇 개의 에피소드에서 읽는 내가 '미친놈'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도 했다.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서점은 책을 팔아야 한다는 점에서 적자를 면하는 것도 어렵게 생각되는 버거운 꿈이다. 


유명한 에세이스트 치고는 번역되어 들어온 작품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이 두 권을 읽었으니 이제 남은 두 권을 마저 읽으면 끝이다. 책과 사람, 이탈리아의 추억이 아련한, 뭔가 과거로의 꿈을 꾸는 듯한 쓰가 아스코의 문체가 좋아서 우연히 어디선가 보고 읽은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에서 여기까지 달려오게 된 작가. 어린 시절의 독서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고, 여행도 필요한 것 같고, 배움도 있어야 하고, 게다가 단련되 빠질 수 없고, 무엇보다 벌어먹어야 하니 삶은 고될 수 밖에 없다. 주로 이탈리아와 일본의 책과 작가들이거나 그렇지 않다해도 나한테는 생소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런 면을 과감하게 넘어가면서 사방 가득한 향기속에 몸을 맡기는 듯한 독서.


단편의 아쉬움을 날려준 장편. SF의 불모지에서 국산 SF가 이런 높은 수준과 창의성을 주었다는 수사는 차치하고 그냥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큰 박수를 치게 된다. 나노연구실에서 유출된 무언가로 세상이 멸망 직전까지 갔다가 재건된 후 어떤 특이한 식물의 현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과거의 진실. 작가의 성별이 작품의 우수성을 좌우하지는 않지만 작품의 texture이랄까 테마랄까 분명히 영향을 주는 것이 있다. 남성이 절대다수였던 이 세계에서 몇 안되는 과거 여성작가들의 작품이 확실히 달랐던 것도 기억하고 김초엽 작가의 approach와 구성도 익숙한 majority와 차별되는 감성이 분명히 보인다. 올리비아 버틀러도 그랬고 아직은 너무도 부족하지만 더 많은 좋은 작가들이 나와서 균형을 잡아주었으면 한다. 작품을 읽는 즐거움도 그렇지만 그 관점이나 방향의 신선함과 특이함은 아직은 너무도 rare한 것 같다.


어느새 주말의 운동시간이 다가왔다. 비온 뒤 추운 아침이지만 나가야만 한다. 즐겁고 건강한 지천명을 맞기 위해서. 내 머리와 정신줄을 위해서. 요즘 연신 어퍼컷을 날리면서 출렁출렁한 배때기를 까는 어떤 놈의 배처럼 튀어나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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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22-03-06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윤석열만이 문제가 아니라 저런 수준의 인물이 유력한 대선후보라는 게 문제인듯합니다.
걸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고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그 위험성을 우리 사회가 여전히 거르지 못하는 상태라는 게 한심하게 합니다. 대선에 누구라도 출마할 수 있죠. 그러나 저런 인물이 유력한 인물이 될 수 있는 원인과 이유들을 우리가 놓치면 안될 것 같습니다.
언론, 검찰, 기득권 카르텔의 민낯이 드러나는 걸 보고 있음에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이 현실에 분통이 터지네요.

transient-guest 2022-03-07 10:42   좋아요 1 | URL
트럼프가 경선에서 이기고 대통령 까지 됐고 임기도 다 채운 걸 본 후엔 저도 일종의 검증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뭘 해도 법원 검찰 재벌 언론 정치 카르텔이 부정과 부패로 권력과 재물을 만드는 구조라면 소용이 없을 것 같아요 가히 혁명적인 수준의 개혁과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일단 선거 무사히 마치고 하나씩 해나가야 하는데 지난 번 조국 선생 때처럼 사람들이 호도되지 말있으면 좋겠고 개각 때 사람 잘 보고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워낙 흠 없는 이들을 찾기 어렵지만 그래도 인사는 너무 아쉽습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