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 고전시가로 만나는 조선의 풍경
김용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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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문학, 특히 시와 그 비슷한 장르와는 친하게 지내지 않았기에 내겐 접근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나마도 씌어져 있는 것을 보면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들이라곤 모두 학교 다닐 때 어쩔 수 없이 외웠던 것들이다. 그러니 내가 쉽게 이 책을 시작하지 못했음은 당연하다. 그러기에 고전시가를 특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아마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내겐 아직도 머나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시조를 인용하며 그에 대한 해석을 하고 그것을 읊조렸던 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방식을 취하는데 거의 대부분이 강호시조들이다. 아니, 어쩌면 나도 그들처럼 한적한 곳에 들어가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기에 다른 여러 주제들이 있었음에도 책을 덮고 난 지금 마음에 남는 것은 그런 것들 뿐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가 한번쯤은 소망했을 법한 그런 유유자적한 삶, 내지는 은둔자의 삶. 문득 한여름에 찾아갔던 계곡 물소리 요란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가 서늘했던 소쇄원이 생각난다.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소쇄원을 이야기하는지 알 것도 같다.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던 곳이었는데...

그러나 저자도 지적했듯이 그건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었던 양반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기에 잠깐 농사를 '체험'하는 그들의 시가에서는 기분 좋은 낭만만 느껴질 뿐 노동의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조선 후반기에는 신분제의 붕괴로 인해 궁핍한 삶을 살았던 양반들도 있었다지만 양반이 읊었던 시조와, 양반이 아니었을 것 같은 작자미상의 작품을 읽을 때는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렇듯 글이라는 것은 아무리 포장을 한다해도 자신의 생각과 활동의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는가보다. 그래서인지 관념적인 사대부들의 시가를 읽을 때보다 작자미상의 사설시조를 읽을 때가 훨씬 마음이 편했고 한편으론 통쾌했다. 이 즈음이면 강호시가보다는 현실을 풍자한 글들이 더욱 마음에 남는다. 그럼 뭐지. 모두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란 얘긴가.

많은 시조를 읽는데 해석해 주지 않으면 무슨 뜻인지 모를 것들이 많아 참으로 난감했다. 해석해 놓은 글을 읽으면 당연해 보이는데 왜 전엔 암호처럼 보였을까. 마치 외국어를 접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물론 한자로 된 것들이 대부분이고 끊임없이 변하는 언어의 특성상 남아 있는 말이 거의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그들의 시조를 통해서 단순히 해석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교감하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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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과학 - 미인 불패, 새로운 권력의 발견 과학전람회 9
울리히 렌츠 지음, 박승재 옮김 / 프로네시스(웅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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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며칠전에 사람들과 이야기 도중 외모에 대한 것이 화제로 떠올랐다. 대기업에 취직했는데 살도 빼고 성형수술을 했기에 가능했다는 어느 '여자'의 이야기였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외모를 직접 거론하며 연구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아니면 논문으로 발표되었으나 드러나지 않아서일수도 있겠다. 어쨌든 요즘은 오히려 사원을 채용할 때 외모로 판단할 근거를 적시하는 걸 비판하며 그런 것들을 제외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린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정말 외모는 전혀 고려되지 않을까. 글쎄... 그렇다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나운서는 미운 얼굴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런지. 이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아름다운 여성이 더 똑똑하기 때문일까. 연예인들이야 외모가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되니 그들은 차치한다해도 실력으로 뽑는 아나운서도 미운 사람을 보질 못했다.

아름다움의 과학. 단순히 아름다우면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을 것이다라는 추측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던 책이다. 과학적으로 접근해서인지 중반까지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기 보다 보편적인 동물, 본성으로서의 동물을 주로 다룬다. 생물학에서 사용하는 이론이 많이 나와서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 이론이 정말 인정받은 이론인지 아니면 그저 연구 과제로써 붙여진 이름인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게다가 역자가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이라 쉽게 설명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이쪽에 대해 잘 몰라서인지 이해하는데 애 먹었다. 그다지 매끄러운 번역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 이유다. 중반까지는 책장 넘기기 힘들게 읽어갔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라 비교적 잘 넘어갔다.

분명 아름다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훨씬 많은 호감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갓 태어난 아기에게도 그런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이 그저 놀랍다. 아무리 말로는 성격 좋은 사람이 좋으며 성실한 사람이 좋다는 등 외모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이성이라는 것으로 억압했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처음 보았을 때의 이미지는 외모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에 대한 연구 이야기도 이 책에 나와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처음의 이야기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겐 그렇다. 그 다음에는 외모보다 다른 요소들이 훨씬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기에 결혼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은 처음 만났을 때 바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담보로 하는 것일 게다. 또 그러기에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이 유효한 것일 테고.

외모에 무척 신경쓰는 딸에게 외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줄기차게 이야기하면서도 그런 내 모습이 어느 정도 위선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기에 어린이들조차 예쁜 아이가 훨씬 많은 관심을 받고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실험결과가 내심 못마땅하고 불만이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행복과는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실험이 보여주듯 아름다움이란 남이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소위 말하는 자존감. 여기서는 다분히 페미니스트적인 사람들에겐 분명 불편할 만한 진실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론에 가서는 외모가 약간의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사람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다. 결론은 하나다(내 임의대로의 결론). 나를 인정하자. 대신 다른 사람도 인정해 주자. 그래야 설령 아름다운 것에 잠시 넘어갈지라도 언젠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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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조선사 - 역사의 새로운 재미를 열어주는 조선의 재구성
최형국 지음 / 미루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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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왜 이렇게 역사에 대해 관심이 가고 흥미가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책을 이것저것 읽다보니 조금씩 연결되는 부분도 있고 전혀 몰랐던 걸 아는 재미에 빠져있다. 특히 주류에 속한 이야기보다는 거기에서 약간 벗어난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아마도 주류에 속한 이야기는 학교에서 지루하게 배웠던 것들이고 딱딱하며 경직된 느낌의 역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 야사가 더 재미있고 그럴 듯한 것이 사람냄새가 느껴지는 법이니까.

이번에도 역시나 주류에서 약간 벗어난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왕을 중심으로 한 역사도 아니고 이름 난 인물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도 아닌 그야말로 인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책이다. 물론 여기서도 왕을 다루긴 하지만 그건 왕의 정치적인 면에 초점을 맞췄다기 보다 한 인간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렇기에 불꽃놀이에 빠진 성종에게 신하들이 간곡히 그만둘 것을 권유해도 온갖 궁색한 이유(이유라기 보다는 어거지에 가깝다.)를 들어가며 결국은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임금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관대하게 접근을 해서인지 그런 임금이 독선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애교(?)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일종의 환상과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특히 조선 시대의 생활에 대한 정보는 책에서도 얻지만 그들의 말이나 행동 등 동적인 정보는 주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얻은 정보를 얻는다. 그래서인지 거기서 다루지 않는 것들은 생각할 수가 없다. 누군가가 '이랬단다'라고 이야기해 주어야 그제서야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사에서도 조폭이 있었으며 바다에 표류하다가 다른 나나로 가서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사람도 있으며(당연한데 왜 지금까진 생각을 못했을까. 탐험이나 바닷길에 대한 이야기는 지나치게 서구의 이야기만 들었기 때문에 우리의 상황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나보다.) UFO 비슷한 것에 대한 이야기도 있단다. 과연 역사에 기록된 UFO와 비슷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

특히 저자가 무예24기 시범단장으로 활동하고 있어서인지 무예에 대한 내용에서는 신나서 설명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열정도 함께 느껴진다. 많은 그림자료들을 제공하고 있어서 글 뿐만 아니라 그림 보는 재미도 한몫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야기가 정확한 사료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측형 문체가 많아서인지 정말 그랬구나라는 생각을 하진 못하겠다. 때로는 좀 더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추론을 하길 바라며 읽었으나 마지막 결론은 명확하질 못했다. 그래서 원래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새로운 상식을 얻는 기쁨을 만끽하게 되는데 이 책은 읽고 나서도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남는다. 그냥 아니면 말고 식의 문체는 지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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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아버님께 진경문고 1
안소영 지음, 이승민 그림 / 보림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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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이야기한다. 다산 정약용은 말년에 18년간 유배생활을 했었다고. 아주 먼 옛날 사람이기에 18년이란 기간이 얼마만한 시간인지 헤아리지 않고 쉽게 이야기한다. 즉 그 시간의 길이를 지금 내가 사용하는 시간의 길이와 같다고 보지 않는다. 그 시간에 나를 대입하거나 같은 선상에서 보려 하지 않는다. 그냥 긴 인생에서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도 그렇게 보았고 그렇게 생각했다. 정약용이 유배를 간 것은 반대 세력들의 견제 때문이었으며 18년 있다가 풀려났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시간이라는 것이 단순히 숫자로만 나타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워낙 역사서를 읽다 보면 유배 가는 경우가 많아서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실은 본인 한 명 한 명에게 결코 쉬운 생활은 아니었을 게다. 어디선가 다산의 경우 유배지에서도 아들을 불러 공부를 가르쳤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걸 보며 자식에 대한 가르침이 대단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했던 부분은 딱 거기까지였다. 물론 가장이 유배를 갔으니 형편이 힘들고 사람들의 눈초리가 부담스러웠을 거라는 것은 짐작이 가지만 그들의 삶으로서의 고민에 대해, 가족으로서의 고민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질 않았던 것이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풀려 난 것을 그저 당연하게만 생각했는데 거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그리고 결코 세월이 가서 풀려난 것은 아니었구나를 새삼 느꼈다. 물론 이것은 내가 정약용이라는 인물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남의 일이라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 그들에게는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을 그러한 일들이 지금도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착잡하다. 

다산의 둘째 아들인 학유의 입을 통해 정약용을 다각도로 알아가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당연하게 생각했던 유배지에서의 생활이나 풀려나는 계기 등을 그저 남 얘기가 아닌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접할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차갑게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학유가 된 것처럼 분개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다산에게 화도 내 가면서 그렇게 책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단순히 편지를 주고 받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다산의 생활이나 자취를 따라가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인간 정약용과 그 가족들을 만나는 좋은 기회였다. 아, 정말 당시 잘 나가다가 차갑게 변해버린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분노는 당연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 아침에 몰락한 가정에서 기 못 펴고 살면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을 자식이 얼마나 될까. 그런 모든 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과연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진짜 정학유의 생각이었을까 궁금할 정도로... 

작가가 철학을 전공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이 시대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사색을 많이 한 탓인지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치 시 같았으며 한 귀퉁이에 써 놓고 다짐해볼 그런 말들이었다. 단순히 유배 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나 자식으로서의 도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애환이 있고 개인의 고민이 있으며 세상의 부당함을 혼자 어쩌지 못해 좌절하는 인간이 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비굴한 속내가 보이기도 한다. 사실상 정조가 죽음으로써 예정된 수순인 내리막길을 걷게 된 정약용의 인간적인 면을 만나는 기회였으며 유배지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만나는 기회였다. 위대한 실학자 정약용과 그 아들이 아니라 인간 정약용과 그 아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초당으로 찾아가는 길을 읽는데 왜 자꾸 서애가 후학을 가르치던 병산서원 갔던 길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둘의 처지가 확연히 달랐겠지만 제자를 대하는 태도와 학문을 대하는 모습만은 같았을 것이다. 해남 대흥사(대둔사)의 초의 선사와 김정희의 일화가 생각나기도하며 언젠가는 꼭 해남을 돌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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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 엄마의 전쟁 일기 33일, Reading Asia
림 하다드 지음, 박민희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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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 다큐멘터리를 볼 때 누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냐에 따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똑같은 사자와 얼룩말의 먹고 먹히는 프로그램일지라도 사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사자가 얼룩말을 잡지 못해 배고픔을 견뎌야 하는 상황일 때 시청자는 사자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러면서 얼른 한 마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로 얼룩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라면 똑같이 사자가 얼룩말을 잡지 못했어도 시청자는 안도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얼룩말이 잡히지 않았으니까. 그 때 사자는 배가 고프건 말건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보는 이는 자신의 감정을 얼룩말에 이미 대입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똑같은 하나의 사건이라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얼마전에 피해자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에 관한 책을 읽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는 이스라엘이 가해자로 그려지는 책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가해자인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들이 예전에 많은 나라에서 핍박을 받았고 말 못할 고통을 당했다고 해서 지금 그들이 하는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내 기본적인 입장이다. 한때는 일방적으로 아랍인들, 이슬람인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서구의 시각으로 걸러진 정보를 접하던 때였다. 아직도 그들은 그런 식으로 중동 지역을 바라보지만 이제는 그 중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서구가)원하는 바인지 구분할 정도는 되었다.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나라 레바논. 아마도 우리 머리속에는 교육, 문화 수준이 우리보다 훨씬 낮고 생활 수준도 낮아서 분명 행복 지수도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쓴 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것은 정말 커다란 오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레바논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알게 됨으로써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럼에도 그들은 현실에 충실하며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2006년에 있었던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었지만...

이 책은 전쟁 속에서 생활한 33일을 고스란히 들려주는 일기 형식과 그 전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기자였던 작가는 단지 현재 33일의 전쟁만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자신이 어렸을 때 이미 내전을 경험하면서 그 기억이 뇌리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겨우 잊을만했는데 다시 전쟁이 발발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까. 보통 사람들의 경우 심한 재난이나 사고를 당하면 그 후유증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상당한 타격을 입는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이라는 병도 있는데 그런 경험을 두 번씩이나 하다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할까. 그래서 처음에 누군가가 책으로 내 보라는 제안을 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리라. 전쟁이란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이론상으로 누구나 안다. 그러나 아직도 현실은 이론처럼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힘 있는 강대국들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헷갈렸다. 저자는 헤즈볼라에 대해 굉장히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내가 바라보는 헤즈볼라는 미국의 시각에 맞게 걸러진 정보이며 실제로 헤즈볼라는 그 나라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고 많은 지지자를 갖고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한편으로 성전이라 일컬으며 어린 청년에게 희생을 강요하며 전쟁에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그 말이 전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기에 헤즈볼라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내가 보기에 그들의 그런 사고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원인도 알고 보면 그동안 미국에 의해 걸러진 정보에 의해 세뇌 당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헤즈볼라에 대한 생각은 그렇다쳐도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시각은 나도 동감한다. 그들의 오만함과 기만적인 행동을 제어할 나라가 없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오히려 뒤에서 그들을 지지하는 미국이 있다는 것이 더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저자는 시종일관 이스라엘을 저주하고는 마지막에 그래도 그들을 증오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글쎄... 그게 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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