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 엄마의 전쟁 일기 33일, Reading Asia
림 하다드 지음, 박민희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를 볼 때 누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냐에 따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똑같은 사자와 얼룩말의 먹고 먹히는 프로그램일지라도 사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사자가 얼룩말을 잡지 못해 배고픔을 견뎌야 하는 상황일 때 시청자는 사자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러면서 얼른 한 마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로 얼룩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라면 똑같이 사자가 얼룩말을 잡지 못했어도 시청자는 안도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얼룩말이 잡히지 않았으니까. 그 때 사자는 배가 고프건 말건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보는 이는 자신의 감정을 얼룩말에 이미 대입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똑같은 하나의 사건이라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얼마전에 피해자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에 관한 책을 읽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는 이스라엘이 가해자로 그려지는 책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가해자인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들이 예전에 많은 나라에서 핍박을 받았고 말 못할 고통을 당했다고 해서 지금 그들이 하는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내 기본적인 입장이다. 한때는 일방적으로 아랍인들, 이슬람인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서구의 시각으로 걸러진 정보를 접하던 때였다. 아직도 그들은 그런 식으로 중동 지역을 바라보지만 이제는 그 중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서구가)원하는 바인지 구분할 정도는 되었다.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나라 레바논. 아마도 우리 머리속에는 교육, 문화 수준이 우리보다 훨씬 낮고 생활 수준도 낮아서 분명 행복 지수도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쓴 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것은 정말 커다란 오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레바논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알게 됨으로써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럼에도 그들은 현실에 충실하며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2006년에 있었던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었지만...

이 책은 전쟁 속에서 생활한 33일을 고스란히 들려주는 일기 형식과 그 전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기자였던 작가는 단지 현재 33일의 전쟁만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자신이 어렸을 때 이미 내전을 경험하면서 그 기억이 뇌리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겨우 잊을만했는데 다시 전쟁이 발발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까. 보통 사람들의 경우 심한 재난이나 사고를 당하면 그 후유증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상당한 타격을 입는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이라는 병도 있는데 그런 경험을 두 번씩이나 하다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할까. 그래서 처음에 누군가가 책으로 내 보라는 제안을 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리라. 전쟁이란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이론상으로 누구나 안다. 그러나 아직도 현실은 이론처럼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힘 있는 강대국들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헷갈렸다. 저자는 헤즈볼라에 대해 굉장히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내가 바라보는 헤즈볼라는 미국의 시각에 맞게 걸러진 정보이며 실제로 헤즈볼라는 그 나라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고 많은 지지자를 갖고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한편으로 성전이라 일컬으며 어린 청년에게 희생을 강요하며 전쟁에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그 말이 전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기에 헤즈볼라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내가 보기에 그들의 그런 사고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원인도 알고 보면 그동안 미국에 의해 걸러진 정보에 의해 세뇌 당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헤즈볼라에 대한 생각은 그렇다쳐도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시각은 나도 동감한다. 그들의 오만함과 기만적인 행동을 제어할 나라가 없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오히려 뒤에서 그들을 지지하는 미국이 있다는 것이 더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저자는 시종일관 이스라엘을 저주하고는 마지막에 그래도 그들을 증오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글쎄... 그게 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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