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를 한권 선물받았다. 저자가 2014년, 환갑을 앞두고 인생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 단행한 국토종주 도보여행 후, 그 과정을 적은 [나를 찾아 떠난 국토종주, 도보여행]이라는 책이다. 저자는 안산 지역에서 30년간 경영 일선에서 잔뼈가 굵었고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도 많이 하시는 분이다.

 

처음 100페이지를 후딱 읽었다. 소박한 글솜씨에 여행 중 찍은 방방곡곡의 사진이 읽는 재미를 주고 있다. 저자뿐 아니라 그의 2세도 친분이 좀 있는 편이었지만 글을 통해 그를 만나니, 새삼 오해했던 부분이 있었음을 알았다. 마저 읽고 저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옷매무새부터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요즘 주변에서 책 선물을 많이 해 주신다. 선물이야 다 그렇지만 특히 '책' 선물은 언제 누구에게 받아도 참 기쁜 선물이다.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또한 나도 소중한 사람과 나눔으로써 보답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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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칼코마니(decalcomania)를 기억하시는지?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에 하얀 도화지 반쪽 면에 여러 색깔의 물감을 짠 뒤 나머지 반쪽을 포개 접으면 양쪽이 똑같은 아름다운 무늬를 나타나는데 이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았었다. 1936년 초현실주의 화가 오스카 도밍게즈가 이 기법을 회화에 도입하고 20세기 중엽 독일 태생의 막스 에른스트가 자신의 그림에 이 기법을 즐겨 쓴 이래로 이 회화 기법은 초등학교 미술시간의 필수 커리큘럼이 되었다.

 

좌우 또는 상하 양측의 똑같은 알록달록 형형 색색의 형상은 때론 환상적으로, 가끔은 몽환적으로 현실 너머의 경험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런 효과를 노렸을까? 적지 않은 영화 포스터에서도 이런 기법이 쓰였으니, 오늘 감상할 포스터 유형은 '데칼코마니 스타일(decalcomania style)'이다.

 

먼저 좌우 데칼코마니 스타일이다.

 

 

[고독한 여심, 1975]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르만 감독이 그의 페르소나이자 아내인 리브 울만과 함께 만든 일곱 번째 영화 [고독한 여심]의 포스터는 데칼코마니 유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여자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과의 가장 은밀한 조우, 그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라는 카피가 보여 주듯이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과 직면해야만 한다. 이런 주제라면 '데칼코마니 스타일'보다 더 적합한 표현 방법이 없을 듯 하다. 

 

 

 

[노 누크, 1980]

 

 

 

1980년에 개봉된 다큐멘터리 콘서트 영화이다. 이 필름에는 1979년 9월에 메디슨 스퀘어 가든 콘서트 실황이 포함되어 있다. 이 콘서트는 잭슨 브라운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반핵 운동 단체 'MUSE(Musicians United for Safe Energy)' 를 중심으로 9월 19일부터 5일간 진행되었고 잭슨 브라운 이외에도 그레이엄 내쉬, 브루스 스프링스턴, 제임스 테일러 등이 공연했다.

 

 

다음으로 상하 데칼코마니 타입을 보자.

 

 

 

[마법사, 1978)]

 

 

이 뮤지컬 영화는 [오즈의 마법사]의 흑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허수아비 역에는 아직 슈퍼스타가 되기 전인 마이클 잭슨이 맡았고, 도로시 역에는 또 한명의 대스타 다이애나 로스가 맡았다. 마법사 역의 리차드 프라이어도 눈에 띤다. 다이애나 로스와 마이클 잭슨은 이 영화를 통해 가까운 친구가 되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포스터는 마치 수상도시를 연상케 한다. 

 

 

 

[콰드로피니아, 1979]

 

 

1960년대를 대표하는 영국 록 밴드 ‘더 후(The Who)’가 1973년 발표한 록 오페라 앨범 [콰드로피니아]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좋은 옷을 입고 스쿠터를 타며 미국의 R&B 음악을 즐겨 듣는 당시 영국의 청년 문화 '모드(mod)' 스타일을 대표하기도 했던 '더 후'의 정체성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모드족'들의 생활을 담아내며 당시 청춘들의 반항적인 삶을 다루었는데, 당시 부모 세대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행동이 없었다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음'의 다른 이름은 '반항'이라는 것을 또다시 상기시킨다.

 

포스터에도 역시 '모드' 스타일로 잘 차려 입은 일단의 젊은이들이 불만 많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똑 같은 그림이 상하 대칭으로 되어 있다.

 

'더 후'는 1964년 영국 런던에서 로저 달트리(보컬, 기타, 하모니카), 존 엔트위슬(베이스, 보컬), 피트 타운센드(기타, 보컬, 키보드), 키스 문(드럼, 보컬)이 결성한 그룹으로 [토미, 1969], [후즈 넥스트, 1971] 등의 앨범을 통해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로 자리잡았으며, 비틀스, 롤링 스톤스와 함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주도했던 밴드이다.

유니버셜 뮤직 참고

 

 

 

[토미, 1975]

 

 

 

1969년 성공을 거둔 '더 후'의 록 오페라 앨범 [토미]를 영국의 이단아 켄 러셀 감독이 뮤지컬 판타지 영화로 만들었다. 앨범이나 영화나 당시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고 하는데 '더 후'의 로저 달트리가 토미로 분했다. 이 외에도 드러머 키스 문, 에릭 클립튼, 티나 터너, 앤 마가렛, 앨튼 존 등 70년대 초 최고 스타들이 등장한다. 앤 마가렛은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를 손에 쥐었고 오스카에도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어떤 논쟁이었을지 스토리를 한 번 살펴보자.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부정을 보고는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이 된 소년이 유난히 발달한 후각을 통해 핀볼의 챔피언이 되고, 영적 경험을 겪은 후 신체 장애를 극복하고 청소년 전도단의 메시아로 군림하게 되지만 무리가 광신도 집단으로 돌변하자 홀연히 떠난다.

 다음 영화

 

우선 종교, 그것도 광신도가 등장한다면 논쟁 좀 있었을 것 같다. 게다가 어머니의 부정, 특별한 능력, 그것도 메시아의 능력이라니... 그런데, 토미가 물고 있는 저 물건은 도대체 뭘까?

 

 

 

 

지금까지 다섯 장의 포스터를 봤다. 뭔가 발견되지 않나? 첫번째 영화 [고독한 여심]을 제외하고는 모두 콘서트, 뮤지컬, 뮤지션 등 음악과 관련이 있다. 왜 그럴까? 왜 유독 소위 '음악' 영화에서 데칼코마니 형식의 포스터가 많이 등장하는 것일까? 아~~악, 궁금해 미치겠다. 

 

혹시 '몽환적'인 느낌과 관련되는 것은 아닐까? 강한 비트의 노래를 열정적으로 부르는 뮤지션의 무아지경 상태 만큼 '뿅'가는 느낌은 없을테니까. 답답한 현실을 잊게 하고 환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은 고양된 느낌을 들게 하는 것이 '음악'만한게 또 어딨겠는가.

 

 

 

...하나 더, 상하좌우 데칼코마니로 인사를 갈음한다. 

 

 

 

[강박관념,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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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영화포스터 유형 중 가장 다이나믹한 스타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름하여 '돌진 스타일(dash style)'이다. 주로 액션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포스터 유형인데 기차나 자동차같은 육중한 그 무엇이 포스터를 뚫고 나올듯이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폭주기관차, 1985]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감독의 [폭주기관차]는 알래스카의 설원을 배경으로 한 탈옥 액션 영화다. 스티브 맥퀸이 출연한 탈옥 영화의 영원한 고전 [대탈주], [빠삐용] 이후로 [쇼생크 탈출]이 등장하기 전까지 그 중간에 이 영화가 있었다. 교도관으로 대표되는 기관의 폭력에 맞선 재소자 역할로는 존 보이트와 에릭 로버츠가 열연했는데, 특히 존 보이트의 압도적인 연기는 그가 분한 탈옥수 매니의 자유에 대한 열망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포스터는 육중한 기관차가 유리를 깨고 돌진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주요 캐릭터가 배치되어 있다. 마치 '와장창'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생생하다. 두명의 탈옥수가 올라탄 열차의 기관사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으면서 교도소장으로부터 쫒기는 것도 모자라 달리는 열차 안에서의 생존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등장인물들의 머리 위로 흘러내리는 붉은 핏줄기가 그들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어둡지만 멋진 포스터.

 

 

 

[실버 스트릭, 1976]

 

 

진 와일더와 리차드 프라이어, 두 코미디 배우가 함께 출연한 코믹 액션 영화다. LA를 떠나 네바다를 거쳐, 콜로라도와 록키 산맥을 지나 캔자스, 미시시피강을 건너 시카고까지 가는 대륙 횡단 열차 '실버 스트릭'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코믹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상황극이 펼쳐진다.

 

포스터 아티스트 '조지 그로스'는 종착역인 시카고 역을 수백 Km의 시속으로 돌진해 들어가는 실버 스트릭과 이것에 놀란 대합실 승객들이 혼비백산 흩어지는 장면을 포착했다. 그런데 맨 앞에서 뛰어가는 주인공들의 얼굴은 겁을 먹기는 커녕 즐거워 보이는 것이 영화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위스키 대소동, 1977]

 

 

드류 스트러잔의 비교적 초기 포스터 작품 중 하나. 영화는 수제 위스키를 만드는 밀주 전문가 헐리(데이비드 캐러딘 분)와 싸구려 독주를 유통시키는 약혼녀의 아버지 허니컷, 그리고 마피아까지 엉겨 붙는 코믹 활극이다. 위스키 병과 밀주 통을 박살내며 돌진해오는 자동차들, 그러나 전체적인 느낌은 자못 따뜻하다.

 

 

 

[파괴자, 1977]

 

 

추억의 액션 스타 척 노리스를 볼 수 있는 영화다. '18개의 바퀴를 가진 화물운송업자 주변에서 얼쩡거리지 마라'는 경고성 카피에 걸맞게 대형 컨테이너 차량이 전봇대와 보차도 분리대를 들이받고 있다. 주변은 온통 아수라장이다.

 

'breaker'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파괴자'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국내 제목을 [파괴자]라고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에는 속어로 '(라디오 방송의) 어떤 채널에 끼어 들어 교신을 요청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포스터를 찬찬히 뜯어보면 알겠지만 아무래도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후자의 의미를 염두해 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포스터 자체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씬 풍긴다.     

 

 

 

[드라이버, 1978]

 

 

 

[러브 스토리]로 유명한 라이언 오닐이 출연하고 월터 힐 감독이 연출한 [드라이버]다. 매혹적인 이자벨 아자니의 얼굴도 보인다. 은행강도, 운전솜씨가 귀신같은 드라이버, 그를 쫒는 형사, 그리고 묘령의 여인 등등. 캐이퍼 무비의 공식을 제대로 따른 스피드 액션 영화로 기억되는 작품이다.

 

케이퍼 무비(Caper movie) : 범죄 영화의 하위장르 중 하나로, 무언가를 강탈 또는 절도 행위를 하는 모습과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영화를 뜻한다.

 

 

 

[쥬만지, 1995]

 

 

작년 우리 곁을 떠난 영원한 키팅 선생님, 로빈 윌리엄스. 그가 한창 줏가를 올리고 있을 때 출연한 [쥬만지]가 개봉한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주사위 게임을 하던 아이들이 게임판 안으로 들어가 환상적인 모험을 한다는 설정은 당시로선 꽤 신선했다. 후속 시리즈가 나오고, [박물관이 살아있다] 같은 유사 영화가 계속해서 제작되었는데 역시 최고는 [쥬만지]라고 생각한다. 포스터는 게임속의 동물들이 게임판을 뚫고 돌진하는 모습이 박력있게 표현되었다.

 

 

오늘 본 '돌진'형의 포스터들은 다른 어떤 유형보다 생동감이 있다. 두시간 남짓한 한 때를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극장으로 찾아가게끔 하는 마력이 있다. 인생, 기왕에 살거 활기차고 생동감 있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위 포스터들을 보고 했다면, 좀 이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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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퓨처], [터미네이터], [엑셀런트 어드벤처], [혹성탈출], [비지터] 등의 영화들은 공통점이 몇개 있다. 우선 당대 손꼽히는 흥행 영화로서 후속편이 연이어 제작되었다는 것과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미래에서 현재로 파견된 영웅도 있으며, 지구와 시간 개념이 다른 우주를 여행하고 돌아온 우주 비행사도 있다. 그밖에도 [타임 캅], [로스트 인 스페이스], [11시], [타임 밴디트], [파이널 카운트다운]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영화들이 '시간'을 다루었다.  최근 블랙홀에 대한 놀라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해준 영화 [인터스텔라] 역시 '시간'이 주요 모티브였다.

 

우리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너무 철학적인 주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시각화한 것이 '시계'일 것이다. 뭐 '달력'일 수도 있겠고, 그 밖에 다른 무엇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운동성'이 있는 '시계'만큼 시간의 흐름을 편리하게 목도할 수 있는 도구가 없으리라.  오늘 다룰 이야기는 '시간'이 아니라 '시계'인 까닭은 포스터에서 '시간은 시계를 통해 표현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포스터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 보다는 '포스터'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이해해 주시길.

 

각설하고 포스터를 보자. 우선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의 '시계 스타일(clock style)' 포스터다.

 

 

 

[미래의 추적자, 1979]

 

 

 

원제가 [타임 애프터 타임]인 이 영화는 19세기 신사들이 허리춤에 줄을 매달고 가지고 다니던 필수품인 회중시계가 등장한다. 덮개가 열려 있고, 마치 그 안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표현한 것이 재밌다. "상상해 봐라! 'H.G.웰즈'라는 과학 천재가 우리 시대 가장 독창적인 스릴러안에서 시간을 가로질러 '잭 더 리퍼'라 불리는 천재적인 범인을 쫓는 장면을!" 이라는 카피가 '아~아'하고 대충 영화를 짐작케 한다.

 

'H.G.웰즈'가 누군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주전쟁], [타임머신], [투명인간] 등의 과학 소설을 쓴 영국의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9.21~1946.8.13)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잭 더 리퍼'는 또 누구인가? 뮤지컬로도 유명한 그는 1888년 8월 7일부터 약 2개월에 걸쳐 영국 이스트 런던 지역에서 최소 5명 이상의 매춘부를 살해한 끔찍한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끝까지 검거되지 않았는데 '잭'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영어권에서 이름 없는 남성을 가리킬 때 흔히 쓰는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실재로는 동시대를 살았을 뿐 전혀 만났을 것 같지 않은 두 실존 인물을 끌어다가 독특한 공상 과학 영화를 만들었다. 그것도 타임머신의 등장으로 시간이 얽히고 섥히는 설정이다. 197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방황하는 19세기 사람들의 이야기, 원제의 '여러번, 자주'라는 의미를 생각하면 무한 반복의 시간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영화 한번 찾아 보고 싶다.

 

 


 

[백 투 더 퓨처, 1985]

 

 

 

더 이상 언급이 불필요한 '시간여행' 영화의 바이블, [백 투 더 퓨처]. 포스터는 드류 스트러잔의 작품이다. 타임머신을 열고 나와 '손목시계'를 바라보는 이 포스터는 이어지는 2편 3편에서도 같은 스타일로 표현된다.

 

 

 

 

[백 투 더 퓨처] 시리즈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자명종'의 울음 소리에 잠을 깨서 회사에 늦을세라 시간에 쫒기어 전철을 타고, 퇴근 무렵에는 사무실 벽에 큼지막하게 걸린 벽시계를 보며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그렇게 우리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데 그런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영화들도 있다.

 

 

 

 

[9 to 5, 1980]

 

 

 

9시 출근부터 5시 퇴근까지 성격파탄 바람둥이 상사와 지지고 볶는 직장인들의 상황을 유쾌하게 그려낸 [9 to 5]의 포스터는 타이틀 제목을 시계로 처리했다. 여사원 셋이 상사를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 커피를 따라주는 모습이 얼르고 달래고 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권좌 뒤의 권력"은 누구의 권력일까? 혹시 비서?

 

 

 

[특근, 1985]

 

 

 

원제 [애프터 아워스(After Hours)]는 '근무시간 외의, 폐점 후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그저 그런 평범한 직장인 폴(그리핀 던 분)이 고달픈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여러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하면서 좌절하게 되는 이야긴인데, 저주받은 뉴욕 소호의 밤거리는 이 소시민적인 젊은이에겐 마치 거대한 괴물과도 같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감독의 끊임없는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이 블랙코미디는 우스운 상황이 연속해서 전개되지만 결코 우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째서 국내 개봉 제목이 '특근'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장 마틴 스코시즈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이 코미디 영화도 포스터가 영화만큼이나 재미있다. 제목과 내용으로 봐서 포스터에서 가르키는 시간은 아마 새벽 2시가 될 것이다. 주인공의 얼굴로 대체된 '크라운(시계의 시간이나 날짜를 맞추는데 사용되는 부분)'을 섹시한 손가락이 자비라곤 없이 돌리고 있다. 아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은 무시당한 채 주변에 휘둘리는 주인공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벌써 2시가 넘었어요. 이제 놔 주세요."라고 사정하는 사람에게 "무슨 소리!"라고 외치면서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가 아닐까?

 


 

시계가 활용되는 또 다른 예, 액션 영화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휴먼 팩터, 1975]

 

 

 

12시간 마다 평범한 미국의 가정이 인종주의자에 의해 살해당할 것이라는 경고, 자 누가 막을 것인가. '전화 스타일' 편에서 소개한 1979년 영화와 같은 제목의 영화이지만 전혀 다른 영화이다. 예고된 시각이 다가오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황이 포스터에서도 확인되지 않는가? 

 

 

 

 

[3시의 결투, 1987]

 

 

 

학교 폭력을 다룬 학원 코미디물인 [3시의 결투]는 봉태규가 출연한 우리 영화 [방과후 옥상]이 생각나는 영화이다. 포스터 상단에는 "전학생으로부터 오후 세시에 결투 신청을 받은 주인공 제리 미첼, 그는 지금 수학이니 영어 수업은 관심 밖이다. 세시가 되면 그는 '역사' 자체가 될 것이므로..."라는 카피가, 하단 제목 아래에는 "학교는 끝났을 때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다"라는 카피가 의미 심장하게 박혀 있다. 딱 봐도 허약하게 보이는 미첼, 세시가 가까워오자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대형시계에서 큼지막한 손이 쑥 나오더니 "어딜!"하고 붙잡는다. 이 포스터 역시 드류 스트러잔의 작품. 

 

 

 

 

[하이 눈, 1952]

 

 

 

'결투'하면 서부영화다. 그 중에서 [하이 눈] 만큼 오래도록 사랑받는 영화도 드물다. 소개된 포스터는 2015년에 한정 제작된 포스터. 보안관 케인(게리 쿠퍼 분)이 시계를 가로질로 걸어오는 모습이 왜 이렇게 외롭게 보이는지...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계는 '모래시계'다.

 

 

 

[내일을 보는 남자, 1981]

 

 

보고 있는 포스터는 1981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에 관한 영화인데 오손 웰스가 나레이션에 참여했다. 시간의 흐름, 즉 '역사'를 모래시계로 형상화한 것이 인상적이다.

 

 

 

회중시계, 손목시계, 벽시계, 자명종, 모래시계...시계의 종류도 참 가지가지이고, 시간여행, 약속, 결투, 시한폭탄 등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도 각양 각색이다. 시계는 결국 시각화된 시간이고 시간의 축적이 또한 '역사'라고 한다면, 하나 하나 쌓아 올리는 지금 이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자각하게 된다. 며칠 전에 읽은 [미움받을 용기] 대목을 인용하며 마무리 하겠다. 이 책은 '아들러 심리학'을 소개하면서 '지금, 여기'에 대한 중요성을 강하게 웅변하고 있는데, 현재를 충실하게 살지 않는 것에 대하여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인생 최대의 거짓말, 그것은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것이라네. 과거를 보고, 미래를 보고, 인생 전체에 흐릿한 빛을 비추면서 뭔가를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거지. 자네는 지금까지 '지금, 여기'를 외면하고 있지도 않은 과거와 미래에만 빛을 비춰왔어. 자신의 인생에 더없이 소중한 찰나에 엄청난 거짓말을 했던 거야.

[미움받을 용기]...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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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11-13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빽투더퓨처 정말 재미있었죠^^

호서기 2015-11-14 10: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최근에 재개봉 되었다던데 극장에서 한번 더 보고 싶더라구요^^

transient-guest 2015-11-14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빽투더퓨처는 저도 한 표! 저는 60년대 Time Machine도 좋아합니다. 요즘 영화의 현란한 기술이 없이 나오는 시간여행의 모습이 아주 그만이라서 요즘도 가끔씩 봅니다.ㅎ

호서기 2015-11-14 10:17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영화보다 90년대 이전의 영화들이 좋더라구요, SF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요.^^
 
그 깊은 떨림 -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세계 명시 100
강주헌 엮음, 최용대 그림 / 나무생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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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동료에게 홍시를 하나 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별것 아닌 홍시 하나가 오늘 '[그 깊은 떨림]'이 되어 돌아 왔다. 그 마음씀이 너무 고마워 아침부터 정신 없이 돌아가던 업무 스트레스가 일소된듯한 느낌이다. 표지까지 너무 예쁜 시집, 천천히 음미하면서 고마운 마음 오래 간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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