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decalcomania)를 기억하시는지?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에 하얀 도화지 반쪽 면에 여러 색깔의 물감을 짠 뒤 나머지 반쪽을 포개 접으면 양쪽이 똑같은 아름다운 무늬를 나타나는데 이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았었다. 1936년 초현실주의 화가 오스카 도밍게즈가 이 기법을 회화에 도입하고 20세기 중엽 독일 태생의 막스 에른스트가 자신의 그림에 이 기법을 즐겨 쓴 이래로 이 회화 기법은 초등학교 미술시간의 필수 커리큘럼이 되었다.
좌우 또는 상하 양측의 똑같은 알록달록 형형 색색의 형상은 때론 환상적으로, 가끔은 몽환적으로 현실 너머의 경험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런 효과를 노렸을까? 적지 않은 영화 포스터에서도 이런 기법이 쓰였으니, 오늘 감상할 포스터 유형은 '데칼코마니 스타일(decalcomania style)'이다.
먼저 좌우 데칼코마니 스타일이다.

[고독한 여심, 1975]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르만 감독이 그의 페르소나이자 아내인 리브 울만과 함께 만든 일곱 번째 영화 [고독한 여심]의 포스터는 데칼코마니 유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여자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과의 가장 은밀한 조우, 그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라는 카피가 보여 주듯이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과 직면해야만 한다. 이런 주제라면 '데칼코마니 스타일'보다 더 적합한 표현 방법이 없을 듯 하다.

[노 누크, 1980]
1980년에 개봉된 다큐멘터리 콘서트 영화이다. 이 필름에는 1979년 9월에 메디슨 스퀘어 가든 콘서트 실황이 포함되어 있다. 이 콘서트는 잭슨 브라운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반핵 운동 단체 'MUSE(Musicians United for Safe Energy)' 를 중심으로 9월 19일부터 5일간 진행되었고 잭슨 브라운 이외에도 그레이엄 내쉬, 브루스 스프링스턴, 제임스 테일러 등이 공연했다.
다음으로 상하 데칼코마니 타입을 보자.

[마법사, 1978)]
이 뮤지컬 영화는 [오즈의 마법사]의 흑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허수아비 역에는 아직 슈퍼스타가 되기 전인 마이클 잭슨이 맡았고, 도로시 역에는 또 한명의 대스타 다이애나 로스가 맡았다. 마법사 역의 리차드 프라이어도 눈에 띤다. 다이애나 로스와 마이클 잭슨은 이 영화를 통해 가까운 친구가 되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포스터는 마치 수상도시를 연상케 한다.

[콰드로피니아, 1979]
1960년대를 대표하는 영국 록 밴드 ‘더 후(The Who)’가 1973년 발표한 록 오페라 앨범 [콰드로피니아]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좋은 옷을 입고 스쿠터를 타며 미국의 R&B 음악을 즐겨 듣는 당시 영국의 청년 문화 '모드(mod)' 스타일을 대표하기도 했던 '더 후'의 정체성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모드족'들의 생활을 담아내며 당시 청춘들의 반항적인 삶을 다루었는데, 당시 부모 세대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행동이 없었다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음'의 다른 이름은 '반항'이라는 것을 또다시 상기시킨다.
포스터에도 역시 '모드' 스타일로 잘 차려 입은 일단의 젊은이들이 불만 많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똑 같은 그림이 상하 대칭으로 되어 있다.
'더 후'는 1964년 영국 런던에서 로저 달트리(보컬, 기타, 하모니카), 존 엔트위슬(베이스, 보컬), 피트 타운센드(기타, 보컬, 키보드), 키스 문(드럼, 보컬)이 결성한 그룹으로 [토미, 1969], [후즈 넥스트, 1971] 등의 앨범을 통해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로 자리잡았으며, 비틀스, 롤링 스톤스와 함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주도했던 밴드이다.
유니버셜 뮤직 참고

[토미, 1975]
1969년 성공을 거둔 '더 후'의 록 오페라 앨범 [토미]를 영국의 이단아 켄 러셀 감독이 뮤지컬 판타지 영화로 만들었다. 앨범이나 영화나 당시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고 하는데 '더 후'의 로저 달트리가 토미로 분했다. 이 외에도 드러머 키스 문, 에릭 클립튼, 티나 터너, 앤 마가렛, 앨튼 존 등 70년대 초 최고 스타들이 등장한다. 앤 마가렛은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를 손에 쥐었고 오스카에도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어떤 논쟁이었을지 스토리를 한 번 살펴보자.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부정을 보고는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이 된 소년이 유난히 발달한 후각을 통해 핀볼의 챔피언이 되고, 영적 경험을 겪은 후
신체 장애를 극복하고 청소년 전도단의 메시아로 군림하게 되지만 무리가 광신도 집단으로 돌변하자 홀연히 떠난다.
다음 영화
우선 종교, 그것도 광신도가 등장한다면 논쟁 좀 있었을 것 같다. 게다가 어머니의 부정, 특별한 능력, 그것도 메시아의 능력이라니... 그런데, 토미가 물고 있는 저 물건은 도대체 뭘까?
지금까지 다섯 장의 포스터를 봤다. 뭔가 발견되지 않나? 첫번째 영화 [고독한 여심]을 제외하고는 모두 콘서트, 뮤지컬, 뮤지션 등 음악과 관련이 있다. 왜 그럴까? 왜 유독 소위 '음악' 영화에서 데칼코마니 형식의 포스터가 많이 등장하는 것일까? 아~~악, 궁금해 미치겠다.
혹시 '몽환적'인 느낌과 관련되는 것은 아닐까? 강한 비트의 노래를 열정적으로 부르는 뮤지션의 무아지경 상태 만큼 '뿅'가는 느낌은 없을테니까. 답답한 현실을 잊게 하고 환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은 고양된 느낌을 들게 하는 것이 '음악'만한게 또 어딨겠는가.
...하나 더, 상하좌우 데칼코마니로 인사를 갈음한다.

[강박관념,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