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옛날 얘기지만 한 때 형과 함께 쓰던 내 방에는 언제나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39], [자이언트, 1956],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961], [대탈주, 1963] 같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 영화들 부터 [타워링, 1974], [프레데터, 1987], [남부군, 1990], [바톤 핑크, 1991], 그리고 [가슴달린 남자, 1993] 등에 이르기까지 장르 불문, 시대 불문 여러 영화들이 함께 있었다. 크기도 제각각이어서 어떤 것은 액자에 담겨서, 어떤 것은 책상을 덮은 유리 아래에, 흔하게는 벽 한면을 가득 메웠었다. 그렇게 영화 포스터는 나와 생활을 함께 했다.

 

12년전 제주도에서 근무했을 적에 자주가던 극장이 있었다. 멀티플렉스 극장 '프리머스'였는데 낯선 첫 근무지인데다 결혼 전이어서 자주 가던 극장이었다. 다른 극장과는 달리 여기서는 상영이 끝난 영화들의 오리지널 대형 포스터를 테이블에 죽 늘어놓고 무료로 나누어 줬다. 이 시기 2년 동안 수집한 대형 포스터가 스무장 남짓 되는 데 지금도 보관용 원형 통에 잘 보관되어 있다. 바빠서 그런지 열정이 식어서 그런지 꺼내본지가 몇년 전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다 보면 가끔 '액자 구조'의 소설을 접할 때가 있다.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이 우선 떠오른다. 영화 포스터도 이런 비슷한 것이 있다. 포스터 안에 포스터가 있는 것이다. 영화 포스터 이야기 다섯 번째, 벽보 스타일(poster style) 이야기다.

 

이런 유형 중에 가장 대표적인 포스터는 역시 [스타워즈, 1977]가 아닐까. 여러가지 버전의 포스터 중 D-style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포스터 아티스트 드류 스트러잔의 작품이다. 이 천재 아티스트는 과학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찰스 화이트 3세와 함께 이 포스터 작업에 착수하면서 조지 루카스와 첫인연을 맺었는데, 결과물을 확인한 조지 루카스는 큰 만족감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스타워즈 : 에피소드 4, 1977]의 포스터>

 

 

 

우주시대의 서부영화라는 평을 들었던 SF의 고전, 포스터 마저 고풍스런 느낌이다. '오래전 멀리 떨어진 은하계에서'라는 홍보 카피와 함께 주요 캐릭터가 표현되어 있다. 후미진 골목길 어귀에 있는 허름한 벽에 찢어진채 덕지 덕지 붙어있는 포스터들, 마치 폐허로 변해버린 우주의 황량함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드류 스트러잔이 그렸던 벽보 형식의 이 오리지날 포스터는 현재까지 조지 루카스의 집에 보관되어 있다니 대단하다. 그리고 탄생 후 28년이 지나 [스타워즈 :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 2005]편에서 이 포스터는 다시 한번 부활한다.

 

 

 

< [스타워즈 :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 2005]의 포스터>

 

 

여섯 편의 시리즈 중 마지막으로 제작된 이 영화의 포스터가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영화의 포스터를 거의 그대로 베껴낸 건 영화에 대한 오마쥬이자 포스터에 대한 오마쥬와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 포스터의 영향력은 대단했던 것.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 전설적인 시리즈의 신작이 곧 개봉될 예정이라고 하니 학수고대하는 사람들 많겠다.

 

같은 유형의 포스터 하나 더 소개하겠다. 아래 영화는 존 린치, 헬렌 미렌이 열연한 [칼의 고백, 1984]이라는 영국 영화다. 

 

 

 

<[칼의 고백, 1984]의 포스터>

 

 

직장에서 해고당한 북아일랜드 청년 칼은 어느 날 도서관에 새로온 여직원인 젊은 미망인 마르셀라를 보고 사랑을 느끼지만 예전에 그가 IRA(아일랜드 공화군)의 대원이었을때 살인한 사람이 그녀의 남편인 것이 밝혀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이다. 마지막에 서로 사랑을 확인하지만 살인자로 체포되어 끌려가는 칼을 애절하게 바라보는 마르셀라의 모습을 비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아일랜드 분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포스터는 낙서로 가득한 벽(peace, love라는 단어가 선명하다)에 떨어질 듯 붙어있는 포스터를 통해 민족적 분규라는 혼란한 상황하에 펼쳐지는 정열적인 사랑 이야기를 건조한 느낌으로 표현하고 있다. '액자 구조'가 그러는 것처럼 이런 타입의 포스터는 관객과의 일정한 거리두기를 의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벽보 스타일에는 영화 포스터를 활용한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운동경기 포스터, 현상수배 포스터, 포고문 형태의 벽보 스타일도 있다. 이런 경우, '액자 구조'를 빌리지 않고 직접 해당 벽보 형식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래 [록키 2, 1979]의 포스터는 복싱 포스터를 차용했다. 과거 TV가 귀하던 시절 경기장에 직접 가지 못하는 복싱팬들을 위해 복싱경기를 녹화해서 극장에서 상영하기도 했었는데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보다. [록키] 시리즈가 복싱영화 였기에 가능한 포스터가 아니었나 싶다. '세기의 재대결'이라는 복싱계의 상투적 멘트가 눈길을 끈다. 이 영화에서 록키 발보아는 드디어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 오른다.

 

 

 

<[록키 2, 1977]의 독특한 포스터>

 

 

그 다음에 주목하고 싶은 포스터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소 생소할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TV에서 본 기억이 나는 서부 영화로 외모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닮아 괜히 친숙함이 느껴지는 배우 제임스 코번이 출연한 [허망한 경주(Bite the Bullet), 1975]의 포스터다. 이 포스터는 미국 서부개척시대 마을 입구나 보안관 사무실 문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방' 또는 '포고문'의 틀만 빌려 왔다. 핀으로 고정시킨 것으로 봐서 판자로 된 벽에 부착되었으리라. 종이의 헤짐이나 색 바램 정도는 꽤 오래 밖에서 바람과 햇빛에 노출 되었음을 추측케 한다.

 

 

 

<[허망한 경주(Bite the Bullet), 1975]의 포스터>

 

 

마지막으로 소개할 것은 현상수배 포스터 형태이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의 수배범 모두가 해리슨 포드가 연기했다는 것이 재밌다. 첫번째 것은 [스타워즈, 1977]의 캐릭터 한 솔로를 수배한 것인데 이 포스터는 공식으로 인정된 [스타워즈]의 포스터가 아니다. 두번째 것은 [도망자, 1933]의 주인공 리처드 킴블 박사가 아니라 배우인 해리슨 포드를 수배한 것처럼 표현되었다. 영화속 수배 전단에는 '해리슨 포드'가 아니라 '리처드 킴블'로 되어 있다.

 

 

 

<이 포스터는 공식적인 [스타워즈] 포스터가 아니다. 영화의 소품 아니었을까?>

 

 

 

 

<[도망자, 1993]의 수배전단지 형 포스터>

 

 

 

<영화 속 '리처드 킴블'의 수배 포스터>

 

 

영화 포스터의 매력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때로는 그때 그 영화를 생각하게 만들고, 어떤 때는 새로운 것을 상상하게도 한다. 다른 일에 필요한 아이디어도 제공해 주고 기분이 다운 되었을 때 빠른 회복을 돕기도 한다. 영화를 한 편 보기에는 시간이 없을 때 해당 포스터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감상할 수 있어 오히려 여유를 준다.

 

좋은 하루 되시길....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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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스타일(review style)에 대해서 살펴볼 때가 됐다.

 

이런 유형의 포스터는 영화사나 극장이나 가장 흔하게 활용하는 마케팅 수단 중에 하나이다. 영화를 완성하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시사회를 하고 영화를 개봉한다. 제작사나 감독, 배우 할 것 없이 관객들의 반응에 촉각이 곤두설 수 밖에 없는 순간이다. 전문가 그룹과 대중의 반응이 똑같이 호의적인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양측 그룹의 반응이 상이할 때가 많다. 관객의 반응이 폭발적인 것에 비하여 자칭 전문가 그룹의 반응이 냉담하다거나, 반대로 '이 영화는 작가주의의 승리'라느니 '영화예술이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치'라는 영화평론가들의 격찬에도 불구하고 이 찬사가 무색할 정도로 대중들에게는 외면받는 영화도 많다. 어느쪽이건 영화 마케팅 담당은 그 현상을 활용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리뷰 스타일의 포스터는 요란한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리뷰 스타일은 크게 두가지 경우로 나뉠 수 있는데 그 첫번째는 아래처럼 '타임'지나 '뉴스위크'지, '버라이어티'지 같은 유명 잡지 또는 '워싱턴 포스트'지 같은 유력 일간지의 영화전문 기자나 영화평론가들의 리뷰를 통째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유형은 주로 전문가 집단의 대단한 지지를 등에 업는 경우가 많다. 리뷰는 구체적이고 건설적이며, 주로 마니아 층을 겨냥한다. 이런 유형의 단점은 글자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 평범한 관객이 포스터 앞에 서서 이 리뷰를 다 읽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생각은 갖지 않을까? '이 영화 일단 볼만한 가치는 있겠군 !'

 

 

 

<'워싱턴 포스트'를 인용한 [검은 종마, 1979] 리뷰 포스터>

 

 

 <'타임', '뉴스위크'를 인용한 [상태 개조, 1980] 리뷰 포스터>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지를 인용한 [내츄럴 본 킬러, 1994] 리뷰 포스터>

 

 

리뷰 스타일의 두번째 유형이 보다 일반적일 것이다. 이 스타일의 리뷰는 좀 더 임팩트가 있다. 어떻게 보면 호들갑스럽기까지 하다. 관객이나 유명 인사의 짧막한 감상평을 보다 큰 글씨로 홍보하는 방식인데, "A Powerful Film" 이라든지 "Unbelievable!!" 같은 찬사를 남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래 [플래툰, 1986] 리뷰 포스터의 경우, 무려 15명의 리뷰가 언급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해당 영화가 공개 당시 그만한 화재를 뿌렸음을 반증한다. 거기다가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이라도 하면 그 요란함은 배가 될 것이다. 실제로 [플래툰]은 1986년에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는데, 시상식 이후 '어워드 스타일'의 포스터가 또 등장했었다.

 

 

<[플래툰, 1986]의 리뷰 포스터>

 

 

<[플래툰, 1986]의 다른 포스터들>

 

 

 

 <[비밀문서 소동, 1977]의 리뷰 포스터>

 

 

마지막에 소개한 포스터는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영화들 중에 미국 최고의 코미디 배우 중 한명인 진 와일더가 공연한 [비밀문서 소동(The Adventure Of Sherlock Holmes' Smarter Brother)]이라는 영화다. 역시 많은 글자가 눈에 띈다.

 

지금까지 살펴 본 리뷰 스타일의 포스터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개인적으로는,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영화제작 사업에 있어 제작비라도 뽑기 위한 영화 마케팅 담당들의 발버둥처럼 보인다. 특히 흥행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는 작가주의 감독들을 대신하여 동분서주하는 스탶들의 모습도 그려진다. 가끔 문자의 오염이라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나름의 매력도 있다. 리뷰를 인용한다 하더라도 최소한에 그치는 요즘과 비교하니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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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않은 시절 대부분의 정보는 텔레비젼, 라디오 같은 방송 매체나 책, 신문같은 인쇄물에서 얻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발간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스크린'이라는 월간지는 국내뿐만 아니라 헐리우드 등 외국의 영화정보를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창구였었다. 물론 '로드쇼', '시네마', '키노'같은 다른 잡지도 있었지만 '스크린'이 제일 오래 되었을 뿐만 아니라 타잡지와 비교해서 대중성과 전문성이 고루 분배되어 있어 가장 잘 팔리는 잡지였다.

 

'스크린'은 1984년 3월에 창간이 되었다. 창간호 표지는 브룩 쉴즈가 장식했는데 당시 여배우의 인기 정도를 생각했을 때 소피 마르소 정도나 경쟁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이 잡지는 부록이 인기였는데 이 잡지가 제공한 국내외 내노라하는 인기 배우들의 브로마이드와 유명 영화의 포스터는 친구들 방에 한 장 정도는 붙어 있었다. 철 지난 '스크린' 잡지를 찾아 중앙시장 뒤쪽에 주욱 늘어선 헌책방 거리를 헤집고 다녔던 장면이 지나간다. 보이는 족족 사들였고 가끔 일본 '스크린'잡지라도 발견하면 그 날은 되게 기분이 좋았었다. 내 방에 구석에 쌓여 있었던 그 잡지들, 아직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필요할 때 요긴하게 활용되었을 텐데... 쩝. 

 

오늘 볼 포스터 유형은 '잡지 스타일(maqgazine style)'이다.

 

언제나처럼 포스터부터 감상하자.

 

 

 

 

 

[파리, 텍사스, 1987], [베를린 천사의 시, 1993]으로 유명한 빔 벤더스 감독의 미스터리 느와르 [해밋, 1982]과 존 트라볼타, 제이미 리 커티스가 출연한 [퍼펙트, 1985]의 포스터다. 두 영화 모두 영화 제목이 동명의 잡지 제목처럼 표현 되었다. 두 포스터의 차이점이라면 처음 것은 '아트' 스타일이고 두번째 것은 사진 스타일이라는 정도이다.

 

[해밋]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야 겠다. 영화 제목 '해밋'은 포스터에도 다소 힌트가 나와 있는 것처럼 [몰타의 매], [그림자 없는 남자(The Thin Man)]의 작가 새뮤얼 대실 해밋 (Samuel Dashiell Hammett,  1894.5.27.~ 1961.1.10.)의 이름이다. 그는 하드보일드 탐정소설과 여러개의 단편작품을 남겼는데  소설 속에서 샘 스페이드(Sam Spade), 닉 과 노라 찰스(Nick and Nora Charles) 라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을 창조하였다역사상 가장 멋진 미스터리 소설을 쓴 작가로 그리고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다면적인 캐릭터의 강조, 동기에 대한 현실주의적 묘사, 날카롭고 위트있는 대화가 특징이라고 한다. 특히 [몰타의 매]는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으로 참여한 동명의 영화도 아주 유명하다.

 

또 다른 미스터리 작가 조 고어스(Joe Gores, 1931.12.25.~2011.1.10.)는 새뮤얼 대실 해밋과 그가 창조해 낸 여러 소설들을 뒤섞어 독특한 미스터리를 만들어 냈고, 빔 벤더스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포스터에 표현된 책은 가판대에서 싸게 파는 '페이퍼 북'을 연상케 한다. 주로 짧은 탐정소설이나 코믹북의 주요 판매 형태가 이런 형태였는데 영화의 소재와 아주 잘 어울리는 포스터라고 생각된다. 아쉽게도 이 영화 아직 못봤는데 꼭 보고싶은 영화중에 하나다.

 

[퍼펙트]의 포스터 속 책은 아무리 봐도 월간지 아니면 주간지 같다. 건강, 마약, 섹스 따위가 언급되는 걸로 봐서 남성 잡지 쯤 되지 않을까. 영화는 그닥 주목받지 못한 채 잊혀졌지만 젊은 존 트라볼타와 제이미 리 커티스의 건강미 넘치는 모습만으로도 마음에 드는 포스터다.

 

이런 류의 포스터 몇가지 더 보고 가자. 생각보다 이런 스타일은 많다. 제이 캠피온의 [홀리 스모크]는 타블로이드 신문을, 케빈 스미스의 [몰래츠]는 수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코믹스를 활용했다.

 

 

   

 

 

잡지를 포스터에 활용하는 또 다른 예는 아래의 포스터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잡지 또는 책의 한 지면을 포스터의 배경으로 삼는 방법인데 위 포스터, 리차드 해리스가 공연한 [마지막 말(The Last Word) , 1979]이 대표적이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더스틴 호프만이 함께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인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1976]도 이런 유형에 속하지만 배경이 아주 희미하게 처리되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다. 이처럼 책 표지가 아니라 내용을 배경으로 처리한 포스터의 영화는 대개 사회 고발성 영화가 많다.

 

 

 

 

 

 

과거 포스터는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첫단추였다. 요즘처럼 홍보수단이 많지 않던 시절, 잘 만든 포스터 하나는 사람을 극장으로 유인하는 수단이었다. 물론 포스터가 좋다고 영화까지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할 수 없는 얘기다. 그래서 더욱 포스터 자체를 보게 되는 습관이 생겼나 보다. 오늘 본 잡지 스타일 포스터는 대부분 마음에 들지만 영화적으로는 '글쎄'인 것이 여럿이다. 제일 좋은 것은 영화도 재밌고 포스터도 멋진 경우일텐데... 요즘 포스터 중에서 인상적인 것이 드물다. 영화제작 수준은 많이 높아졌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의 포스터는 눈에 띄지 않으니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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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내가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때만 해도 웬만한 동네마다 동시상영 영화관이 한둘은 있었다. 개봉관 상영을 마치고 재개봉관까지 거치면 영화는 변두리 시장통 주변이나 터미널 뒷골목에 자리잡은 3류 극장으로 모이게 마련이었다.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두편을 동시에 볼 수 있으니 돈이 궁색한 까까머리 '시네마 키드'들에게는 그만한 곳도 없었다. 더군다나 액션영화와 함께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 영화가 짝을 이룰 때도 심심치 않게 있어 이래저래 좋은 경험도 하곤 했었다. 요즘 말로 하면 '1 + 1' 이벤트였지만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내가 자주 찾았었던 '동화극장', '미도극장', '무궁화 극장'은 하나같이 눅눅한 느낌에 퀘퀘한 냄새가 먼저 떠오른다. 가끔은 영화 상영전 잡상인들의 호객행위도 있었고, 상영중에 필름이 끊기는 경우도 여러번 있었다. 객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부지기수였고, 가끔은 성정체성이 불분명한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던 동시상영관. 나는 그곳에서 존 맥티어넌 감독의 [프레데터, 1987]를 보고 충격을 받았고, [레드 스콜피온, 1988] 속 돌프 룬드그렌에 열광했었다.

 

갑작스레 동시상영관의 추억을 끄집어 낸 이유가 있다. 

포스터 이야기 두번째 주제가 바로 'Combo style'인 것이다.

 

이번에도 포스터 먼저 감상해 보자.

 

 

 

 

 

 

보통 미국 극장가에서 영화를 한 묶음으로 상영하는 경우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위 [더티해리/더티 해리 2-이것이 법이다(매그넘 포스)] 같이 성공한 시리즈물인 경우, 둘째는 아래 [토요일밤의 열기/그리스] 처럼 주연 배우와 제작사가 같은 두 영화를 결합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지금은 거장이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배우를 마초 배우로 확실히 각인시킨 [더티하리, 1971]와 그 후속작 [더티 해리 2-이것이 법이다(매그넘 포스), 1974]는 각각 개봉 당시 엄청난 흥행 수익을 거두었다(이후 이 시리즈는 [더티 해리 5-추적자(더 데드 풀), 1988]까지 총 5편이나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에 만족 못한 제작사 워너 브러더스는 아마도 이 호쾌한 액션 시리즈를 통해 거둘 수 있는 수익의 최대치를 뽑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효과적인 방법이 패키지로 묶는 것이었을 테고, '해리 켈러한'에 열광한 팬들은 반복 관람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제작사는 잇속을 챙기고 관객들도 소중한 영화적 쾌감을 만끽했을 테니 나쁘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과거 우리나라의 극장과 다른 점은 단순히 한 극장에서 두 편의 영화를 틀어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제작사가 상영전부터 주도적으로 꼼꼼히 준비한다는 것이다. 포스터(콤보 스타일)도 새로 제작하고, 관련 단체로부터 고유 번호도 부여받는 등 일종의 잘 포장된 기획상품처럼 보인다. 여기서 옛날 포스터를 보는 팁 하나. 이 시대 미국 개봉 영화 포스터를 보면 우측 하단에 정체 모를 숫자를 볼 수 있는데, 확대하면 아래와 같다.

 

 

 

 

/ 표시 앞쪽에 숫자 75는 영화상영 연도를 뜻하고, / 표시 뒤의 숫자는 그해 극장 개봉 영화의 순서를 의미한다니 풀어보면 동시 상영되는 [더티해리/더티 해리 2-이것이 법이다(매그넘 포스)]는 1975년에 88번째로 개봉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라는 뜻으로 보면 되겠다. 결국 포스터 우측하단의 숫자는 해당 영화의 고유번호가 되는 셈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포스터 몇가지 더보고 가자.

 

 

 

 

 

[스타워즈 트릴로지] 포스터다. 3편 동시상영을 알리는 포스터로 앞에 것은 1983년 호주에서, 뒤에 것은 1985년 미국 카네기 극장에서 단 하루 1회 상영으로 기획되었다. 하루 종일 [스타워즈]만 보라는 것이니 스타워즈 팬들은 무척이나 좋아했겠다.

 

 

 

 

언제봐도 반가운 영화 [용쟁호투, 1973] 가 보인다. 그러나 이 포스터의 주인공은 이소룡이 아니다. [용쟁호투]로 데뷔해서 2013년 향년 67세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한 짐 켈리가 두 영화의 공통분모로 연결된다. 고인의 된 두 무술 고수에게 경의를!

 

 

 

 

 

 

월트 디즈니사의 두 영화는 하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다른 하나는 하단에 언급되고 있다. 서로가 역할을 바꿔 가면서 보기에도 참 사이가 좋아 보인다. 동시상영용인지 단순 홍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독특하긴 하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쳐야 겠다. 배도 고프고 ㅜㅜ. 옛날 포스터(여기서 옛날이란 70~80년대)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참 정감이 간다. 요즘것들 처럼 미끈하지는 않지만 예술적인 느낌도 있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내 취향과 맞는 것도 같다. 소박하면서 느리다. 영화도 옛날 것이 더 선명하다고 느꼈던 적이 많았는데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천문학적인 제작비와 정신없이 전개되는 스토리, 지나친 디지털화...  발전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쓸데없는 생각 하나 붙이고 이만 퇴장한다.

 

 

하나 더! 이런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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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보면 영화에 미친 주인공이 극장에서 나누어 주는 '프로그램'을 모은다. 나도 소설 속의 주인공만큼은 아니어도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극장에서 나누어 주는 그림엽서, 캘린더, 브로슈어, 브로마이드, 포스터 등 모을 수 있는 것은 죄다 모았었던 '시네마 키드'였다. 그것은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시작되었다. 첫번째 수집품은 실베스타 스탤론이 출연한  영화 [록키]의 한장면이 멋지게 표현된 낱장 캘린더. 그 후로 제대하고 대학 3학년 때까지 수집품은 라면박스로 3박스에 두루마리로는 10개가 넘었었다. 전체 숫자는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아마도 3천점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졸업이 가까와지자 그것들이 짐이 되기 시작했다. 졸업 후가 여전히 불안했지만, 문득 문득 영화라는 환상 속으로 들어가면(수집품을 감상하기 시작하면) 반나절은 쉽게 지나가고 마는 것이었다. 접어 버린 꿈에 대한 댓가는 막연한 시간의 손실로 이어졌고 스스로를 조급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몽땅 처분했다. 친구에게 전부 넘겼다. 15년 동안이나 내 손을 탄 소중한 자료와 각각이 간직한 추억을 10분 만의 고민으로 작별했다.

 

그 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틈틈히 영화도 보면서 내 친구의 소유가 된 그 자료들이 어떻게 또는 얼마나 유효하게 활용되고 있을까 가끔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온라인도 활용되었다. 그것도 벌써 10년이 넘어서 나름 희귀자료가 꽤 많다. 오늘부터 그간 온라인 상으로 수집한 다양한 영화 포스터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그렇다, '영화'이야기가 아니라 '영화 포스터'이야기다. 이 중에는 본 영화도 있겠지만 보지 못한 영화가 태반이므로 주제넘게 작품성이 어쩌니 저쩌니 건방떨지는 않겠다. 그저 취미로 영화포스터를 모으던 아마추어로서 가볍게 시작하느니 만큼 오류도 많고 글도 매끄럽지 않겠지만 일단 한번 시작해 보자.

 

첫번째 포스터 이야기는 '팩트 스타일(facts style)'이다.

 

우선 몇가지 포스터를 먼저 보자.

 

 

 

 

 

 

첫 번째는 유쾌한 코미디 영화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 1988], 두 번째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미지와의 조우, 1977] 포스터다. 뭔 이렇게 글자가 많나 하겠지만 이런 타입의 포스터 특징은 어떤 특정한 주제에 대한 꽤 심도있는 정보의 제공에 있다. 예컨대 [미지와의 조우]의 경우 UFO에 대한 여러가지 잡다한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영화 자체에 대한 카피는 'We are not alone'이라는 알듯 말듯한 문구 하나뿐이다. 특수효과가 어떻고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다는 요란스런 홍보성 표현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만한 홍보가 또 있을까?

 

대부분 이런 포스터는 오리지널 포스터 타입이 따로 있다. 아래는 두 영화의 가장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포스터 타입이다. 위의 팩트 스타일과 비교해 보라.

 

 

 

 

 

 

포스터가 각각 있을 때에도 비교적 잘된 포스터이지만 함께 있게 되면 세트가 되어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된다. 포스터 전체의 절반 이상을 글자로 채우고 있음에도 절대 스포일러를 제공하지 않아 오히려 영화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 일게 만들고 있다. 한 때 많은 영화 관객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죠스, 1975] 또한 이런 스타일의 포스터를 활용했고, 영화들은 하나같이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라는 말처럼 '포스터'자체도 또 하나의 예술이다. 그리고 그 표현방식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오늘 소개한 '팩트 스타일'은 그 중에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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