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퓨처], [터미네이터], [엑셀런트 어드벤처], [혹성탈출], [비지터] 등의 영화들은 공통점이 몇개 있다. 우선 당대 손꼽히는 흥행 영화로서 후속편이 연이어 제작되었다는 것과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미래에서 현재로 파견된 영웅도 있으며, 지구와 시간 개념이 다른 우주를 여행하고 돌아온 우주 비행사도 있다. 그밖에도 [타임 캅], [로스트 인 스페이스], [11시], [타임 밴디트], [파이널 카운트다운]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영화들이 '시간'을 다루었다.  최근 블랙홀에 대한 놀라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해준 영화 [인터스텔라] 역시 '시간'이 주요 모티브였다.

 

우리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너무 철학적인 주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시각화한 것이 '시계'일 것이다. 뭐 '달력'일 수도 있겠고, 그 밖에 다른 무엇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운동성'이 있는 '시계'만큼 시간의 흐름을 편리하게 목도할 수 있는 도구가 없으리라.  오늘 다룰 이야기는 '시간'이 아니라 '시계'인 까닭은 포스터에서 '시간은 시계를 통해 표현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포스터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 보다는 '포스터'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이해해 주시길.

 

각설하고 포스터를 보자. 우선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의 '시계 스타일(clock style)' 포스터다.

 

 

 

[미래의 추적자, 1979]

 

 

 

원제가 [타임 애프터 타임]인 이 영화는 19세기 신사들이 허리춤에 줄을 매달고 가지고 다니던 필수품인 회중시계가 등장한다. 덮개가 열려 있고, 마치 그 안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표현한 것이 재밌다. "상상해 봐라! 'H.G.웰즈'라는 과학 천재가 우리 시대 가장 독창적인 스릴러안에서 시간을 가로질러 '잭 더 리퍼'라 불리는 천재적인 범인을 쫓는 장면을!" 이라는 카피가 '아~아'하고 대충 영화를 짐작케 한다.

 

'H.G.웰즈'가 누군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주전쟁], [타임머신], [투명인간] 등의 과학 소설을 쓴 영국의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9.21~1946.8.13)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잭 더 리퍼'는 또 누구인가? 뮤지컬로도 유명한 그는 1888년 8월 7일부터 약 2개월에 걸쳐 영국 이스트 런던 지역에서 최소 5명 이상의 매춘부를 살해한 끔찍한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끝까지 검거되지 않았는데 '잭'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영어권에서 이름 없는 남성을 가리킬 때 흔히 쓰는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실재로는 동시대를 살았을 뿐 전혀 만났을 것 같지 않은 두 실존 인물을 끌어다가 독특한 공상 과학 영화를 만들었다. 그것도 타임머신의 등장으로 시간이 얽히고 섥히는 설정이다. 197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방황하는 19세기 사람들의 이야기, 원제의 '여러번, 자주'라는 의미를 생각하면 무한 반복의 시간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영화 한번 찾아 보고 싶다.

 

 


 

[백 투 더 퓨처, 1985]

 

 

 

더 이상 언급이 불필요한 '시간여행' 영화의 바이블, [백 투 더 퓨처]. 포스터는 드류 스트러잔의 작품이다. 타임머신을 열고 나와 '손목시계'를 바라보는 이 포스터는 이어지는 2편 3편에서도 같은 스타일로 표현된다.

 

 

 

 

[백 투 더 퓨처] 시리즈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자명종'의 울음 소리에 잠을 깨서 회사에 늦을세라 시간에 쫒기어 전철을 타고, 퇴근 무렵에는 사무실 벽에 큼지막하게 걸린 벽시계를 보며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그렇게 우리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데 그런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영화들도 있다.

 

 

 

 

[9 to 5, 1980]

 

 

 

9시 출근부터 5시 퇴근까지 성격파탄 바람둥이 상사와 지지고 볶는 직장인들의 상황을 유쾌하게 그려낸 [9 to 5]의 포스터는 타이틀 제목을 시계로 처리했다. 여사원 셋이 상사를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 커피를 따라주는 모습이 얼르고 달래고 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권좌 뒤의 권력"은 누구의 권력일까? 혹시 비서?

 

 

 

[특근, 1985]

 

 

 

원제 [애프터 아워스(After Hours)]는 '근무시간 외의, 폐점 후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그저 그런 평범한 직장인 폴(그리핀 던 분)이 고달픈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여러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하면서 좌절하게 되는 이야긴인데, 저주받은 뉴욕 소호의 밤거리는 이 소시민적인 젊은이에겐 마치 거대한 괴물과도 같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감독의 끊임없는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이 블랙코미디는 우스운 상황이 연속해서 전개되지만 결코 우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째서 국내 개봉 제목이 '특근'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장 마틴 스코시즈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이 코미디 영화도 포스터가 영화만큼이나 재미있다. 제목과 내용으로 봐서 포스터에서 가르키는 시간은 아마 새벽 2시가 될 것이다. 주인공의 얼굴로 대체된 '크라운(시계의 시간이나 날짜를 맞추는데 사용되는 부분)'을 섹시한 손가락이 자비라곤 없이 돌리고 있다. 아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은 무시당한 채 주변에 휘둘리는 주인공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벌써 2시가 넘었어요. 이제 놔 주세요."라고 사정하는 사람에게 "무슨 소리!"라고 외치면서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가 아닐까?

 


 

시계가 활용되는 또 다른 예, 액션 영화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휴먼 팩터, 1975]

 

 

 

12시간 마다 평범한 미국의 가정이 인종주의자에 의해 살해당할 것이라는 경고, 자 누가 막을 것인가. '전화 스타일' 편에서 소개한 1979년 영화와 같은 제목의 영화이지만 전혀 다른 영화이다. 예고된 시각이 다가오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황이 포스터에서도 확인되지 않는가? 

 

 

 

 

[3시의 결투, 1987]

 

 

 

학교 폭력을 다룬 학원 코미디물인 [3시의 결투]는 봉태규가 출연한 우리 영화 [방과후 옥상]이 생각나는 영화이다. 포스터 상단에는 "전학생으로부터 오후 세시에 결투 신청을 받은 주인공 제리 미첼, 그는 지금 수학이니 영어 수업은 관심 밖이다. 세시가 되면 그는 '역사' 자체가 될 것이므로..."라는 카피가, 하단 제목 아래에는 "학교는 끝났을 때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다"라는 카피가 의미 심장하게 박혀 있다. 딱 봐도 허약하게 보이는 미첼, 세시가 가까워오자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대형시계에서 큼지막한 손이 쑥 나오더니 "어딜!"하고 붙잡는다. 이 포스터 역시 드류 스트러잔의 작품. 

 

 

 

 

[하이 눈, 1952]

 

 

 

'결투'하면 서부영화다. 그 중에서 [하이 눈] 만큼 오래도록 사랑받는 영화도 드물다. 소개된 포스터는 2015년에 한정 제작된 포스터. 보안관 케인(게리 쿠퍼 분)이 시계를 가로질로 걸어오는 모습이 왜 이렇게 외롭게 보이는지...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계는 '모래시계'다.

 

 

 

[내일을 보는 남자, 1981]

 

 

보고 있는 포스터는 1981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에 관한 영화인데 오손 웰스가 나레이션에 참여했다. 시간의 흐름, 즉 '역사'를 모래시계로 형상화한 것이 인상적이다.

 

 

 

회중시계, 손목시계, 벽시계, 자명종, 모래시계...시계의 종류도 참 가지가지이고, 시간여행, 약속, 결투, 시한폭탄 등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도 각양 각색이다. 시계는 결국 시각화된 시간이고 시간의 축적이 또한 '역사'라고 한다면, 하나 하나 쌓아 올리는 지금 이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자각하게 된다. 며칠 전에 읽은 [미움받을 용기] 대목을 인용하며 마무리 하겠다. 이 책은 '아들러 심리학'을 소개하면서 '지금, 여기'에 대한 중요성을 강하게 웅변하고 있는데, 현재를 충실하게 살지 않는 것에 대하여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인생 최대의 거짓말, 그것은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것이라네. 과거를 보고, 미래를 보고, 인생 전체에 흐릿한 빛을 비추면서 뭔가를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거지. 자네는 지금까지 '지금, 여기'를 외면하고 있지도 않은 과거와 미래에만 빛을 비춰왔어. 자신의 인생에 더없이 소중한 찰나에 엄청난 거짓말을 했던 거야.

[미움받을 용기]...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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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11-13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빽투더퓨처 정말 재미있었죠^^

호서기 2015-11-14 10: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최근에 재개봉 되었다던데 극장에서 한번 더 보고 싶더라구요^^

transient-guest 2015-11-14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빽투더퓨처는 저도 한 표! 저는 60년대 Time Machine도 좋아합니다. 요즘 영화의 현란한 기술이 없이 나오는 시간여행의 모습이 아주 그만이라서 요즘도 가끔씩 봅니다.ㅎ

호서기 2015-11-14 10:17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영화보다 90년대 이전의 영화들이 좋더라구요, SF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