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

프로크루스테스, 메데이아, 미노타우로스, 파이드라, 페이리토오스...

 

1

이제 아테네(Athens)로 눈을 돌려보자. ‘테베크레타와 달리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중에서 비교적 약소국에 속했던 아테네가 어떻게 그리스의 중심이 될 수 있었을까? 트로이 전쟁 이전까지 헤라클레스(Herakles)’와 더불어 전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인 테세우스의 탄생과 성장을 보면 알 수 있다.

테세우스는 아테나의 왕 아이게우스(Aegeus)’와 트로이젠의 공주 아이트라(Aithra)’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이 출생과정에는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이 아이게우스가 아이트라와 관계를 갖기 전후에 아이트라의 침실을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 사실인지 알아보자.

아이게우스 왕은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나도록 아들이 없었다. 몇 해 전에 두 번째로 맞이한 칼리오페 여왕에게도 역시 태기가 전혀 없었다. 왕실에 2세가 없는 기간이 계속되자 야심으로 똘똘 뭉친 아이게우스 왕의 아우 팔라스와 그의 50명이나 되는 아들들이 호시탐탐 왕좌를 노리기에 이르렀다. 나이가 불어날수록 점점 불안을 느낀 이 아테네 왕은 아무래도 파르나소스 산허리에 있는 델포이 신전으로 가서 아폴론(Apollo)’의 신탁을 들어봐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내용이 두루뭉술하기로 유명한 델포이 신전의 신탁내용은 이번에도 헷갈리는 것이었다.

왕이여, 돌아가는 길에 술 부대의 주둥이를 조심해라!”

밑도 끝도 없는 신탁을 받아든 아이게우스 왕과 일행은 고향 아테네로 돌아가는 길에 변방의 자그마한 도시국가 트로이젠이라는 곳에 잠시 들러 쉬어가게 되었다. 당시 트로이젠은 현자 피테우스 왕의 통치 아래에 있었는데, 피테우스 왕은 아테네의 영웅 아이게우스를 평상시부터 흠모해 왔었다. 그에게는 과년한 딸이 있었으니, 이번 기회에 당시의 일반적인 관례에 따라 융숭한 손님 대접을 한다면 좋은 인연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서로 마셔라, 부어라호응하면서 여독을 풀다가, 아이게우스는 피테우스 왕의 뜻대로 잔뜩 취해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이트라의 침실로 옮겨진 아이게우스는 다음 날 아침 자기 옆에 누워있는 아이트라 공주를 보고서야 돌아가는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게우스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공교롭게도 그날 밤, 바다의 신 포세이돈도 아이트라의 침실을 찾아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이게우스만 몰랐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트라 역시 아버지 피테우스 왕의 바람대로 아이게우스 왕하고만 사랑을 나누었다고 생각했다. 나중 일이지만 그때 태어난 테세우스도 아이게우스를 생부로 여겼음이 신화 이야기 곳곳에 발견되니 친생자 확인은 이 정도로 하자. 앞으로 테세우스는 바다 위에서만큼은 곤욕을 치를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정도로 정리하면 되겠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직 테세우스가 태어나기 전인 어느 화창한 날 아이게우스는 자신의 나라 아테네로 떠날 채비를 마친 후 아이트라와 마주했다. 아이트라의 눈에는 진작부터 눈물이 글썽였다. 공주의 눈물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아이게우스는 자기 칼과 가죽신을 커다란 섬돌 밑에 넣어두고는, 장차 아들이 태어나거든 그 아이가 다 자라 그 돌을 들어 올릴 힘과 용기가 생겼을 때 자신에게 보내라고 당부했다. 그때 이 칼과 가죽신을 징표로 삼으라고 당부했다. 여러 해 동안 왕자를 잉태하지 못해 상심해 있을 칼리오페 여왕이 있는 아테네의 궁전으로 함께 가자는 말은 선뜻 하지 못했다.

아이게우스 왕이 떠나고 아이트라의 아랫배는 점점 불뚝해지기 시작했다. 달이 모두 차자 아이트라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기쁨에 찬 공주는 아버지 피테우스 왕과 상의하여 이 아들의 이름을 테세우스(Theseus)’라고 지었다. 그 이름의 속뜻은 묻혀 있는 보물이라는 뜻이었다. 테세우스는 태어날 때부터 기골이 장대했고 울음소리 또한 우렁찼다. 테세우스는 외가인 트로이젠 궁전에서 최고의 스승들로부터 왕가의 법도를 배우고, 가장 훌륭한 전사들로부터 싸우는 법을 익히며 무럭무럭 자랐다.

테세우스의 어린 시절 일화 중, 헤라클레스를 만났던 일을 빼놓을 수 없겠다. 그의 나이 여섯 살 때의 일이다. 헤라클레스가 맨손으로 키타이론산의 사자를 때려죽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으니까 헤라클레스의 나이는 아마 열일곱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마스코트이자 시그니처인 사자 가죽을 쓰고 나타나자 애어른 할 것 없이 진짜 사자가 나타난 줄 알고 모두 혼비백산 도망치는데 오직 여섯 살배기 테세우스만 도끼를 들고 뛰어나왔다. 헤라클레스야 뭐 당돌한 꼬마의 행동에 씨익 한번 웃어주고 갈 길 갔겠지만, 아무튼 두 영웅의 첫 만남은 이랬다.

그리고 세월은 또 활을 떠난 화살같이 흘렀다. 그렇게 테세우스가 열여섯 살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를 닮아 유난히 힘이 세고 영리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특히 그의 레슬링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나날이 발전했는데, 트로이젠에서는 아무도 그를 당할 자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외조부 피테우스 왕이 손자를 보고 포세이돈 신의 아들이라고 확신하는 마음이 생겼을까.

청년 테세우스는 몸만 튼튼해진 것은 아니었다. 워낙 어려서부터 영리했으니 단순한 지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무언가가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는 왜 아비가 없는지 궁금했다. 테세우스에게 사춘기가 왔던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근본에 대한 당연한 물음이었다.

테세우스는 가장 확실한 답을 알고 있는 어머니 아이트라에게 물었다. 아이트라는 오래전 아이게우스가 말한 때가 되었음을, 아들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아이트라는 아들의 손을 이끌고 옛날 아이게우스가 떠나면서 일러두었던 섬돌 앞에 서서 아들에게 섬돌을 들어보도록 했다. 그러자 테세우스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간단하게 돌을 들어 올리고 그 밑에 있던 아테네 왕가의 칼과 아버지 아이게우스가 신었던 가죽신을 발견했다. 아이트라는 칼과 가죽신을 아들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너의 아버지는 아테네의 아이게우스 왕이시다아버지를 찾아 뵈어라! 이 칼과 신발이 그 신표이다.”

어머니로부터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테세우스는 아버지가 자신을 아주 버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테네의 정당한 왕위계승권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까지 깨달았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아마도 그리운 아버지를 만나봐야겠다는 마음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테세우스는 그리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남겨준 가죽신을 신고 아테나 왕가의 문장이 새겨진 칼을 찬 채 아버지와의 만남을 향해, 아테네를 향해 길을 나서기로 했다. 칼집의 칼은 제 소명을 다하기 위해 트로이젠 최고의 대장장이가 이미 벼려 놓은 상태였다.

당시 육로에는 흉포한 도적 떼가 빈번하게 출몰하여 길손의 목숨을 빼앗고 재물을 약탈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머니 아이트라뿐만 아니라 외조부 피테우스 왕은 한결 가깝고 수월한 바닷길로 갈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용기백배 열혈청년 테세우스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처음 만나게 될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육로를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도 당시 한창 이름을 떨치던 헤라클레스처럼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테세우스도 이 여행이 무척이나 멀고 험한 여행이 될 것이며, 한편으로 자기 자신을 온 세상에 증명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2

때는 그리스 전역에 있는 도둑 떼를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던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손에 너무 많은 피를 묻힌 것 때문에 죗값을 치르느라고 옴파로스 땅의 옴팔레 여왕 밑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세상은 헤라클레스의 오랜 부재로 다시 도둑 떼가 날뛰고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도둑을 죽여도 꼭 그 도둑이 나그네를 죽이던 방법으로 죽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일찍이 종살이를 하기 전, 나그네를 잡아 제물로 쓰던 부시리스라는 도둑을 죽일 때는 잡아서 제물로 썼고, 씨름 겨루기로 나그네를 죽이는 안타이오스를 만나서는 씨름으로 온몸을 부러뜨려 죽였다. 또 박치기의 명수 테르메로스는 박치기로 머리를 깨뜨려서 죽였다. 못된 짓거리를 뜻하는 테르메로스의 장난(Termerian Mischief)’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헤라클레스의 열혈 팬, 테세우스는 어떻게 했을까? 팬은 인기스타를 따라 하기 마련이다. 테세우스도 아버지를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만나는 도둑들을 죽일 때면 헤라클레스가 하던 대로 똑같이 하게 된다.

테세우스가 첫 번째 도적을 마주친 곳은 에피다우로스라는 도시였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과 경기장이 있는 아담한 도시였지만, 그곳에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의 아들인 야만인 페리페데스라는 자도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쇠막대인지 청동곤봉인지를 늘 가지고 다니면서 도적질을 일삼았던 이 야만인은 테세우스를 보자마자 늘 하던 대로 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결과는 여느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단 한 번에 페리페데스를 패대기친 테세우스는 몽둥이를 빼앗아 야만인이 남들에게 한 것처럼 쳐 죽이고 나서 청동 몽둥이를 전리품 목록 제일 상단에 올려놓았다. 그때부터 테세우스는 항상 이 청동 몽둥이를 지니고 다녔다. 마치 헤라클레스 코스프레처럼.

다음으로 만난 악당은 코린토스 지방의 시니스라는 거인이었다. 이 거인은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큰 전나무 구부리는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후, 나무가 끝까지 다 휘어 팽팽하게 되면 얼른 그 나무를 놓아버렸다. 그렇게 되면 멋모르고 그를 도와주던 사람은 하늘 높이 내던져져 결국 온몸이 박살 나게 된다. 테세우스는 시니스가 즐기던 이 수법을 그대로 적용하여 그를 죽였다. 시니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잘생기고 듬직한 테세우스를 사랑하게 된 이 처녀는 테세우스를 유혹하여 그의 아이까지 임신하게 되었다. 테세우스도 그녀를 진정으로 좋아했던 것 같다. 테세우스는 훗날 이 처녀가 좋은 남편을 만나 잘 살도록 끝까지 돌봐주었다.

테세우스의 세 번째 업적은 페리페데스로부터 획득한 몽둥이를 사용해서 흉악한 멧돼지를 처치한 일이었다. 이 멧돼지는 암퇘지로 인근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그것을 막아서는 농부들을 무참히 죽여 모든 사람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막다른 길목에서 이 짐승과 맞닥뜨리자 대번에 문제의 그 암퇘지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정수리를 향해 청동 몽둥이를 휘둘렀다. 딱 한방이면 충분했다.

네 번째 과업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서 이루어졌다. 이 절벽에는 스케이론이라는 노상강도가 살고 있었는데, 이 불한당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절벽을 등지게 하고 자신의 발을 씻도록 강요한 후, 수틀리면 발로 걷어차서 절벽 아래 바다에 떨어뜨려 죽여왔다. 절벽 밑에는 항상 굶주려 있는 늙은 거북이 한 마리가 큰 입을 벌리고 있다가 떨어진 사람을 잡아먹었다. 이 강도도 자기가 했던 똑같은 방법으로 테세우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다섯 번째는 레슬링이었다. 아테네에서 멀지 않은 메가라(혹은 엘레시우스)라는 곳에 이른 테세우스는 이곳의 왕 케르키온과 레슬링 시합을 해야 했다. 이 왕은 자신은 결코 패배를 모르는 레슬링 선수라고 자부했다. 그는 자신과 시합을 벌여 패배한 사람을 죽이는 재미로 사는 폭군 중의 폭군이었다. 테세우스는 이 왕을 백드롭이나 헤드록 같은 다양한 레슬링 기술을 써서 때려눕힌 후 다시 길을 떠났다. 레슬링이라면 테세우스의 가장 큰 장기였던 것을 케르키온은 알 리가 없었다.

메가라에서 아테네로 향하는 마지막 노정에서 테세우스는 마침내 이 여정의 최악의 악당,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와 만나게 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나그네를 들이고는 자신의 침대까지 안내해 침대에 눕게 했는데, 침대보다 키가 작은 사람은 흠씬 두들겨 침대 길이 만큼 늘여서 죽이고, 침대보다 키가 큰 사람은 침대 밖으로 나온 머리나 다리를 잘라내어 죽이는 사이코패스였다. 그의 이름도 바로 이 엽기적인 행각에서 비롯되었다. 프로크루스테스란 바로 잡아 늘이는 자또는 두드려서 펴는 자를 뜻한다. 테세우스는 이 엽기 연쇄살인마도 지금껏 유지해온 원칙을 지켜 그 방식대로 죽였다. 이 일화에서 무언가를 자신만의 기준대로 억지로 끼워 맞춰놓은 것을 이르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라는 말이 생겼다.

, 이 정도면 자신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할 수 있을까? 친자 증명을 넘어서서 왕위를 계승할 자격을 갖춘 후계자임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테세우스는 무사히 아테네 궁전에 입성하여 그리운 아버지를 만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을까?

그보다 앞서, 그들이 비록 살인과 강도를 일삼는 무작배기, 무뢰한이었다 하더라도 테세우스 자신의 손에 묻힌 피의 죗값이 가볍지 않은데, 이대로 괜찮을 것인가?

 

3

발 없는 말()이 말 없는 발()보다 빠르다고 했던가, 그의 영웅적인 행적에 대한 소문은 그보다 앞서 아테네에 도착했다. 테세우스가 아테네 국경에 이르렀을 때 척 보아도 내공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현자 몇 명이 테세우스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나라를 찾은 당신은 아티카 사람들의 근심거리를 말끔히 해결해 주었구려. 그러나 당신의 이 업보는 어쩌겠소, 이 늙은이 말대로 따라줄 수 있겠소?”

당시 그리스에는 남자가 죄를 닦을 때 여장을 하는 풍습이 있었더랬다. 테세우스는 무슨 말인지 짐작하고, 자신이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피얼룩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때 수염이 가장 희고 무성했던 현자가 테세우스에게 옷 한 벌을 내밀었다. 소박한 여인의 옷이었다. 이렇게 해서 테세우스는 자신의 죗값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 여장을 한 채 아테네의 국경을 넘게 되었다.

여장한 테세우스가 아폴론 신전 옆을 지날 때였다. 가옥의 지붕을 수리하던 아테네 사람 한 명이 그를 보고 여인에게 희롱하듯이 하대하며 수작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어이없던 테세우스는 아무 말 없이 근처에 정차에 있던 우마차 쪽으로 가더니, 묶여 있는 황소 두 마리를 멍에에서 풀어, 차례로 공중으로 집어 던졌다. 황소는 지붕보다 더 높이 솟아올랐다가 떨어졌고, 그 충격으로 즉사하고 말았다. 그 광경에 화들짝 놀란 아테네 사람도 지붕에서 떨어졌다. 그 후부터 테세우스를 희롱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여기는 아테네의 궁전. 이제는 늙어 기력이 약해진 아이게우스 왕은 이 영웅이 자신의 씨에서 자란 아들인 줄은 모른 채 길손을 대우하는 예로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아테네의 왕실에는 테세우스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아이게우스의 후처 중 한 명인 악녀 메데이아(Medeia)’였다.

메데이아는 당대를 호령한 또 다른 영웅이었던 이올코스의 이아손(Iason)’과 끔찍하게 헤어진 뒤, 도망쳐 나와 아이게우스의 아내가 되어있었던 차였다. 왕비 메데이아는 자신이 낳은 아들 메도스가 왕좌를 물려받게 하려고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테세우스를 해치울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테세우스가 선동을 일삼는 왕의 동생 팔라스와 한통속이라고 이미 총기가 많이 사라진 남편 아이게우스에게 거짓으로 말했다. 그리고는 테세우스를 시켜 당시 아티카 동쪽의 마라톤 지방을 소란하게 하던 괴물 황소를 잡아 오게 하라고 왕을 부추켰다. 이때 메데이아는 자신의 장기인 마법을 사용했다.

아버지와의 만남을 간절하게 고대했던 테세우스는 실망하지 않았다. 이 또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추가된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괴물 황소와 대결해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도 없었지만, 테세우스는 오래지 않아 이 괴물을 산 채로 잡아 와 성대한 제의의 희생 제물로 바쳤다.

악녀 메데이아는 첫 번째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알자,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두 번째 테세우스 제거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테세우스의 공훈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연회석상에서 메데이아는 아이게우스 왕에게 독이 든 포도주잔을 건네주며 무서운 황소를 무찌른 이 용감한 용사에게 전해주라고 말했다.

저 사람은 당신에게 두고두고 우환거리가 될 거예요. 팔라스 일가와 손잡고 당신을 해하려 들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왕께서는 걱정거리를 미리 없애셔야 해요. 자요, 여기 이 포도주를 상으로 내리시기만 하세요.”

그 말을 옳게 여긴 아이게우스 왕이 가득 찬 포도주잔을 들어 올리며 뜻을 전하자, 테세우스가 왕이 하사하는 포도주잔을 건네받기 위해 아버지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서는 메데이아의 사악한 의도가 실현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테세우스가 독배를 받아들고 막 마시려던 순간, 아이게우스는 이 영웅이 차고 있는 칼이 바로 예전에 자신이 징표로 트로이젠 땅 아이트라 공주에게 맡겨놓은 칼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동시에 영웅이 신고 있는 가죽신 쪽으로 눈을 돌렸다. 비록 세월의 때가 묻어 낡고 거칠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아들을 만난 아이게우스 왕은 가눌 수 없는 기쁨에 두 팔로 테세우스를 격렬하게 껴안았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두 팔에는 딱 그 정도의 힘이 남아 있었다. 이 바람에 독배는 테세우스의 손에서 떨어져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동시에 메데이아의 사악한 계획도 흩어진 독 포도주처럼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부자지간의 상봉은 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졌고, 마녀 메데이아의 음모는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녀는 아들 메데스와 함께 아테네에서 추방되어 동쪽에 있는 아시아 땅으로 쫓겨갔다. 후일 메데이아는 그곳에다 나라를 세우는데, 이 나라가 바로 구약성서메데라고 부르는 뒷날의 페르시아이다.

테세우스는 숙부 팔라스와 그의 아들들까지 축출하고, 아이게우스 왕의 적통으로서 모든 아테네 국민 앞에 아테네 왕자로 당당히 인정받게 되었다. 바야흐로 아테네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테세우스에게 있어 지금까지의 모험은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위험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다가오는 위험은 단순히 도적을 물리치고 짐승을 퇴치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아직 치러야 할 진짜 시험이 남아 있었다.

 

4

시계를 조금만 뒤로 돌려 테세우스가 태어나기 전으로 잠시 다녀오자. 한 세대 앞, 당시 그리스 일대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바다 건너 크레타의 미노스(Minos)’ 왕에게는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 자신의 아내 파시파에가 간통으로 낳은 반은 소이고 반은 사람인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가 바로 골치를 아프게 하는 화근이었다.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의 황소라는 뜻이다.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가 지어 준 미궁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고 강대국의 왕으로서 인근 아테네에 명령을 내려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쓸 제물을 보내라고 했다. 이미 미노스 왕과의 전쟁에서 참패를 당했던 약소국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는 이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아테네는 해마다 일곱 명의 여자와 일곱 명의 남자를 크레타로 보내야 했다. 아테네 왕은 때가 되면 아테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적어 그릇에 담아 놓고, 제비뽑기로 열네 명의 희생자를 뽑았다. 제비뽑기 철이 돌아오면 아테네 전역은 비통함으로 가득 찼다. 몇 차례 그렇게 아테네 사람들이 제물로 크레타로 보내지고 있을 때, 아이게우스 왕과 편모슬하에서 반듯하게 장성한 테세우스 부자가 우여곡절 끝에 상봉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자간의 이루지 못한 정을 나누던 어느 날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그날은 그의 열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한가롭게 산책을 하던 테세우스는 바닷가에서 슬피 울고 있는 아테네 사람들과 모래 위에 정박해 있는 검은 색 돛을 단 배를 발견했다. 상가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초지종을 모두 알게 된 테세우스는 분노했고 한탄했다. 그는 스스로 희생자 무리에 끼어 크레타로 건너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노스의 부당함을 바로잡고자 결심했다.

어떻게 해서 되찾은 아들인데 다시 사지로 몰아넣을 수 없었던 아버지 아이게우스는 아들을 말렸다. 그러나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불같은 테세우스의 결심은 확고했다. 하물며 자기 나라와 자기 백성에 관한 것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네 인들 구출에 성공하면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꾸어 달고 돌아오겠다는 굳은 약속과 함께 기어이 크레타로 향하는 배 위에 올랐다. 떠나는 배 위에는 가려 뽑은 열세 명의 젊은 남녀를 뒤에 두고 테세우스가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청동 몽둥이를 움켜쥔 그의 손과 팔뚝은 굳은 각오를 웅변하듯 푸르스름한 힘줄이 또렷하게 올라와 있었다.

 

5

미노스 왕은 어김없이 이번에도 아테네의 희생양들이 도착하자 직접 크레타 해안으로 마중 나갔다. 아테네의 왕자까지 왔다니 나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미노스 왕은 틀림없이 오래전 아테네에서 열다섯 나이에 비명횡사했던 아들, 안드로게오스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왕의 뒤에는 그의 아름다운 딸 아리아드네가 다소곳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미노스 왕과 달리 테세우스를 알아본 그녀의 눈빛은 가늘게 흔들렸다. 그녀의 심장도 방망이질하듯 뛰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진 못했다.

미노스는 테세우스를 포함한 열네 명의 희생자 무리를 손재간으로는 당대 최고인 다이달로스가 만들어 준 크노소스 궁전에 가두었다. 정해진 때가 되면 그들은 미궁으로 던져진 후 괴물의 밥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그곳에서 희생 제물로 바쳐질 날만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이 안에 갇혀 있는 동안 테세우스는 당대 최고의 권력가인 미노스 왕의 통치술을 곁눈질로 배웠고, 가장 앞선 크레타 문명을 몸소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으며, 미노스의 아름다운 딸 아리아드네를 알게 되었다.

적국 아테네의 왕자를 사랑하게 된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비록 그가 어찌어찌하여 미노타우로스를 죽인다 해도 어떤 수로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겠는가. 끝없이 헤매다가 결국에는 지쳐 쓰러져 굶어 죽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건 안될 일이었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던져지게 될 어느 날 이른 저녁, 감옥 주변을 서성이는 수줍은 그림자가 있었다. 테세우스에 대한 연정이 점점 커져 이제 스스로 그 감정을 제어할 수 없었던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살릴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 사랑하는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던져질 것이므로 그 전에 행동해야 했다. 아리아드네는 어두워지기 전 시종의 도움을 받아 횃불과 청동 몽둥이, 그리고 털실 한 뭉치를 가지고 감옥으로 찾아가 테세우스에게 건네주었다.

이 횃불로 길을 밝히세요. 그리고 이 털실 한쪽 끝을 미로 입구 기둥에 묶고 돌아올 때 이정표로 삼으세요. 소저는 그대를 위해 아버지를 배신한 몸, 떠나실 때 저도 함께 데려가 주세요. 저의 바람은 그것뿐입니다.”

아리아드네는 돌아갔고 드디어 시간이 되었는지 테세우스와 열세 명의 젊은이들은 험악한 간수들에게 이끌려 미궁의 입구에 다다랐다. 간수들은 아리아드네 공주의 부탁으로 테세우스의 손에 들린 청동 몽둥이를 보고도 눈감아 주었다. 간수들은 그깟 몽둥이쯤으로 생각했고, 미노타우로스에겐 무용지물이라고 여겼으며, 공주로부터 받아 챙긴 금화의 대가치곤 하찮은 배려라고 생각했다. 간수들은 털실의 존재까지는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간수들은 테세우스 일행을 입구 너머로 밀어 넣고 철커덩청동 문을 닫고 사라졌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일러주는 대로 털실 한쪽 끝을 기둥에 묶고 털뭉치를 술술 풀어가며 미궁 안으로 들어갔다. 꼬불꼬불 어디가 어딘지 작은 횃불 하나로는 분간하기 힘들었다. 오늘따라 별도 달도 빛을 내지 않았다. 그나마 군데군데 벽에 붙은 촛대 받침에서 타고 있는 불빛이 있어 다행이었다.

얼마쯤 들어갔을까, 테세우스는 희미하게 짐승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괴성은 갑자기 가깝게 들리다가도 다시 멀어지고 또 바로 옆에서 나는 것처럼 크게 들리기를 반복했다. 가까이 들릴 때는 거친 숨소리마저 느껴졌다. 뛰어오는 소리와 벽을 긁는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테세우스는 두 손으로 청동 몽둥이를 부여잡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 발길에 부딪히는 유골들, 뚫린 천장을 통해서 들려오는 밤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분위기를 더욱 스산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복잡한 미로를 좌측으로 우측으로 헤매길 계속하는데 갑자기 고막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행렬 뒤에서 첫 번째 희생자가 난 것이다.

재빨리 뒤쪽으로 달려간 테세우스는 드디어 괴물과 맞닥뜨렸음을 알았다. 뒤이은 젊은이 하나가 소리 난 쪽으로 횃불을 드리우자, 미노타우로스가 첫 번째 희생자의 다리 한쪽을 마저 입에 넣고 있었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더니 들고 있던 횃불과 벽에 붙어 있던 불들을 꺼뜨려 버렸다. 갑작스러운 암흑,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쪽으로 냅다 달려나갔다. 상대도 그를 향해 괴성을 지르며 뛰어오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이때다 싶어 청동 몽둥이를 뒤로 제쳤다가 힘차게 휘둘렀다. 타격감이 테세우스의 손에 진동을 주었다고 생각한 찰나, 아테네 사람들은 소리와 함께 털썩하고 주저앉는 소리를 들었다.

그중에 한 명이 어디서 횃대에 불을 붙여 가져왔다. 그 순간 테세우스가 왼손으로 아직 숨통이 끊어지지 않은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몽둥이를 들어 올려 짐승의 대가리를 강타했다. 괴물은 죽었고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테세우스를 연호하며 진정한 영웅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구름에 가려진 셀레나가 어둠을 밝혔다. 테세우스는 꾸물거릴 겨를이 없었다. 테세우스는 일행들과 함께 거의 풀리다 싶은 실뭉치를 들고 늘어진 실을 따라 왔던 길을 되짚어 서둘러 미로를 빠져나갔다. 미로의 입구에는 약속대로 아리아드네가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오늘날 우리가 복잡한 상황을 헤쳐나가거나 난해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를 흔히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라고 부르게 된 유래이다.

실뭉치를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한 것이 다이달로스였는지 아니면 아리아드네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아무래도 전자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 맞을 듯싶다. 비록 다이달로스가 아테네에서 죄를 짓고 미노스 왕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지만, 고국에서 온 왕자를 흉측한 괴물의 한 끼 식사 거리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설혹 괴물을 죽인다 해도 자신이 지은 미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죽게 될 것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테세우스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가볍지 않게 되는 것이고, 조국을 두 번이나 배신한 반역자로 영원토록 손가락질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이후 미노스 왕이 취한 행동을 보면 그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테세우스는 미궁에서 나오자마자 야밤을 틈타 아리아드네와 아테네의 젊은이들과 함께 크레타를 빠져나와 아테네로 향했다. 아리아드네가 미리 손을 써 탈출선을 준비해 두었고, 미노스 왕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테세우스가 탈출선에 오르기 전 일행들과 함께 크레타의 모든 함선의 바닥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신출귀몰할 기습작전 탓에 바다의 지배자 미노스는 달아나는 테세우스 일행을 눈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테세우스의 생부일지도 모를 막강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이 젊은 영웅을 도와주었을 것이라고 즐겨 이야기했다.

이후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이 될 테세우스가 이룬 이 바다에서의 성공담이야말로 B.C. 6세기에 아테네가 농업국에서 해양국으로 발돋움하여, 오래전부터 크레타의 미노스가 장악해 왔던 에게해의 패권을 탈취하는 데 자극제가 되었다.

 

6

테세우스 일행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휴식을 위해 낙소스 섬에 들렀다. 그런데 테세우스는 그곳에 아리아드네를 홀로 남겨두고 떠났다. 이를 두고 혹자는 테세우스가 이제 쓸모없어진 그녀를 버린 것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아리아드네를 보고 아내로 삼으려고 디오니소스 신이 개입한 것이라고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비록 그녀의 도움으로 괴물을 죽이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감사할 일일 뿐 사랑으로 보상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강요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법이 아니다. 하물며, 천륜과 인륜까지 저버린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랑은 위험할 수도 있다. 테세우스는 그 점을 우려했던 것일 게다.

테세우스 일행을 태운 배는 며칠을 더 항해해 해가 떠오를 때쯤 아테네의 항구에 닿았다. 그런데 테세우스는 너무 서둘렀던 것일까, 아니면 낙소스(Naxos)섬에 아리아드네를 떼어놓고 온 것에 대한 죗값이었을까, 그만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꾸는 것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개선장군과 같은 자신의 귀향에 모두가 기뻐할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이 슬피 우는 것에 테세우스는 불길함을 느꼈다.

불길한 예감이 늘 그러하듯이 테세우스의 예감도 적중하고 말았다. 아버지 아이게우스 왕이 배의 검은 돛을 보고, 자신의 사연 많은 아들이 죽었음을 확신하고 실의에 빠져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 것이다. 이 일로 해서 테세우스는 생각보다 빨리 아테네의 왕이 되었고 아버지의 죽음을 기려 아테네 주변의 바다를 에게해라고 이름 지었다. 에게해는 아이게우스의 바다라는 뜻이다.

아테네 국민은 너나 할 것 없이 머나먼 크레타에서 이루어낸 테세우스의 영웅적 업적에 열광했다. 자신의 예상보다 빨리 왕이 된 테세우스는 민중들로부터 얻은 막강한 권력과 신망을 이용하여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자치권을 가지고 있던 아티카 지방의 많은 도시를 흡수하여 아테네를 그 중심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아테네가 후에 고대의 가장 중요한 도시국가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 따르면 테세우스는, 혼자서 통치하는 군주제를 포기하고, 민주주의를 지향한 최초의 통치자였다.

 

7

테세우스와 익시온(Ixion)’의 아들 페이리토오스의 예사롭지 않은 우정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페이리토오스(Peiritoos)’걸어서 다니는 자라는 뜻이다. 이들의 우정은 거의 모든 브로맨스의 효시로 어린 애들처럼 싸우면서 싹텄다.

한 번은 페이리토오스가 마라톤 평원을 침범하여 아테나 왕 테세우스 소유로 되어있는 소 떼를 끌고 가려 했다. 그는 날이면 날마다 테세우스의 영웅적 업적에 대하여 귀가 따가울 만큼 들어왔던 타라 그가 얼마나 대단한 영웅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 일부러 도발했더랬다. 테세우스 왕은 자기의 재물을 지켜야 했으므로 이 약탈자를 퇴치하러 출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갈 것이 하나 있다. ‘소 떼 훔쳐 가기는 당시 명문가의 젊은이들이 즐겨 했던 일종의 레저 활동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아예 명칭을 소 떼 몰고 가기라고 해야 할까, 이는 마치 숲속에서 들짐승을 사냥하는 것을 나쁘지 않게 보았던 것과 비슷하다.

들판의 소 떼를 성공적으로 몰고 자신들의 영토에 부려 놓으면 도적질했다고 손가락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자랑거리가 되었다. 원래의 소 떼 주인이 그런 약탈(?) 행위를 미리 막거나, 나중에 되찾아 오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놀이에도 항상 정도가 있는 법, 그게 지나치면 간혹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시대에 이런 짓을 했다간 대번 절도죄를 입건되겠지만, 당시의 상황을 지금의 잣대로 보면 신화 읽기가 고달프게 되니, 이해하고 넘어가자.

여기는 다시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가 대치하고 있는 들판. 테세우스가 평원에 도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페이리토오스를 발견하고 추격에 나섰다. 페이리토오스는 자신이 유리한 지형까지 테세우스를 유인했다고 생각한 순간, 말머리를 돌려 테세우스와 합을 겨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다. 잠시 뒤로 물린 두 영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매료당했다.

지금까지 적으로 마주했던 두 사람은 지금까지 있었던 전투와는 다른 공기 냄새를 맡았다. 마주한 지 오래지 않아 말로만 듣던 위풍당당한 테세우스의 모습에 경탄한 페이리토오스는 화평을 제안하는 표시로 오른손을 내밀며 소리쳤다.

대왕의 물건에 손댄 이 사람의 죗값을 마땅히 물어 주시오. 내가 무엇으로 이를 배상하면 좋겠소?”

그러자 아직 영웅의 면모가 남아 있던 테세우스 왕도 화끈하게 화답했다.

그대의 우정이면 충분하다.”

걸어 다니는 자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았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우정을 서약했다. 맞잡은 손과 마주치는 눈빛은 이미 십년지기 친구 같았다. 그 후 두 사람은 그때의 서약을 중히 여겼고 이들의 우정은 오래 계속되어 많은 모험을 같이 겪게 된다.

그날 이후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페이리토오스의 결혼식 날이었다. 테세우스도 친구의 청첩을 받고 이 결혼식에 축하사절로 참석했다. 그런데 잔치 도중 켄타우로스(Kentauros)’ 족과 라피타이 족 사이에 큰 싸움이 일어났다. 켄타우로스 족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가 페이리토오스의 신부를 겁탈하고 다른 여자들을 납치하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때 테세우스는 친구를 도와 수많은 켄타우로스 족을 해치웠다.

 

8

테세우스가 한번은 테베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테세우스는 평소 흠모하던 그리스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를 만났다. 사실은 여섯 살 때 한번 본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주변에서 이야기해준 기억이지 테세우스 자신은 잘 기억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제 장성하여 아테네 왕의 자격으로 만난 것이니, 진짜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만남은 여러 가지로 유쾌한 만남은 아니었다.

헤라클레스, 그날도 포도주를 많이 마시기는 했으나 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날의 일은 헤라클레스에 대한 노여움이 극에 달한 어머니 신 헤라(Hera)’의 권능 때문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여신의 뜻대로 미쳐 발광한 나머지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는 씻지 못할 대죄를 저질렀다. , 테세우스가 헤라클레스를 만난 것은 자기 가족들을 죽인 헤라클레스가 어느 정도 제정신으로 돌아온 바로 직후였다. 헤라클레스가 피 묻은 손을 들여다보며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을 때 테세우스가 사건 현장으로 기척도 없이 들어온 것이다.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대강을 짐작한 테세우스가 다짜고짜 헤라클레스의 그 피 묻은 손을 덥석 붙잡았다. 테세우스의 손에 그 피가 묻은 것은 물론이다. 헤라클레스는 눈을 부라리며 테세우스를 나무랐다.

이 피는 내가 죽인 내 아내와 내 자식의 피다. 이 피를 그대 손에 묻히면 내가 받을 죗값을 나누어 받아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가?”

헤라클레스의 말에 테세우스는 그의 손을 놓지 않고, 더 힘주어 잡으며 대꾸했다.

나는 그대와 더불어 기꺼이 이 죗값을 나누어 치르겠습니다. 그대와 나의 믿음이면 능히 이 죄를 닦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헤라클레스의 손을 이끌고 죄 닦을 방법을 물으러 델포이 신전이 있는 파르나소스산으로 향했다. 테세우스는 아폴론 신이 맡긴 뜻을 물어 헤라클레스의 죄를 씻어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헤라클레스는 신탁을 받았다. 그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과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 일로 헤라클레스는 테세우스로부터 위로를 받았고,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으니 테세우스에게 큰 빚을 지게 된 셈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은혜는 나중에 그에 합당한 보상으로 되돌려 준다.

 

9

테세우스는 앞에서 본 것처럼 헤라클레스의 죄 많은 손을 잡아 그의 죗값을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실제로 그 약속을 실천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헤라클레스의 아홉 번째 과업에 동행한 것이다. 아홉 번째 과업이란 적대적인 바다, 흑해 연안의 호전적인 여인족, 아마조네스의 여왕 히폴리테(Hippolyta)’의 허리띠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아마조네스(Amazones)’는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종족으로 알려져 있다. ‘없다는 뜻의 유방을 뜻하는 마조스가 결합한 것으로, 그녀들이 활을 쏘는데 거추장스러웠던 오른쪽 유방을 제거한 데서 유래한다. 그리하여 젖가슴이 없는 종족이라는 뜻의 아마조네스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다.

아마조네스는 오로지 종족 보존을 위해서만 이방의 남자들과 일시적으로 관계를 가졌다. 태어난 남자아이들은 내다 버리거나 불구로 만들어 노예로 부려먹었고 여자아이들만 거두어 길렀던 잔혹한 종족이었다. 이들은 이렇게 모계사회를 이루면서 주변국들과 계속 갈등 관계를 유지하였고, 히폴리테 여왕 시대에 이르러 그들의 영향력을 프리기아 지방으로 확대하였다.

이즈음에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가 히폴리테의 허리띠를 손에 넣기 위해 아마존 원정길에 나선 것이었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히폴리테의 허리띠를 손에 쥐었고, 그 결과 히폴리테의 아마조네스와 테세우스의 아테네는 전면전에 가까운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테세우스는 아마존족을 격퇴하고 이 아마존 여왕을 아테네로 데려오는 데에 마침내 성공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녀가 포로로 잡혀 왔다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게 되어 자발적으로 왔다고도 하는데, 아무래도 후자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아마존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그녀들은 포로로 잡혀간 여왕을 구출하겠다고 아테네로 쳐들어와 이 나라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어떤 이들은 오랜 전투 끝에 결국 아테네가 이들을 무찔렀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이들은 서로 평화조약을 맺었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후자의 편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 싶다. 왜냐하면, 테세우스 왕과 히폴리테 여왕 사이에 아들 히폴리투스(Hippolytus)’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의 증거인 아들 히폴리투스와 평화조약에도 불구하고 히폴리테는 테세우스에게 버림받는다. 그리고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아마존족의 이인자 펜테실레이아(Penthe sileia)’가 그녀를 죽이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10

테세우스는 히폴리테 여왕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애증의 섬나라 크레타를 치고 그 나라 왕의 누이 파이드라(Phaedra)’를 데려와 두 번째 아내로 삼았다. 당시 크레타는 미노스 왕의 사후, 그의 아들 데우칼리온(Deucalion)’ 왕이 통치하고 있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다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렇다,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또 다른 딸이자, 자신이 이용하고 버렸던 아리아드네와 자매간인 파이드라를 왕비로 맞은 것이다. 부적절한 정욕의 대명사 파시파에를 어머니로 둔 여인 말이다.

파이드라는 아름답기도 했거니와 개성과 자존심이 몹시 강한 여자였다. 다시 반복되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이드라는 의붓아들 히폴리투스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다. 그녀는 상사병에 걸려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가자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자존심 때문에 전처소생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다.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여왕을 딱하게 생각한 몸종이 주제넘게도 조심스럽게 말씀을 건넸다.

자존심도 중요하시겠지만, 목숨이 걸린 문제이니 한번 마음만이라도 전해보시지 그러세요.”

파이드라는 그 말을 옳게 여겨, 자존심을 꺾고 애절한 마음을 담은 사랑의 편지를 히폴리투스에게 보냈다. 그러나 히폴리투스는 이성이든 동성이든 연애감정과는 담을 쌓고, 오로지 자신의 몸을 수련하고 지식을 갈구하기에도 바빴던 청년이었다. 하물며 의붓어머니라니! 의붓아들의 반응은 냉담하지 못해 야멸찼다. 청년은 다음과 같은 송곳 같은 말로 계모의 접근을 거부했다.

더러운 말을 듣지 않은 것으로 하듯이, 이 더러운 글은 보지 않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파이드라의 연서를 들고 갔던 몸종은 돌아와서 히폴리투스가 한 말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자신의 주인에게 고했다.

파이드라의 길잃은 사랑은 증오로 변했다. 그녀는 남편 테세우스 왕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잠옷을 갈가리 찢은 다음 알몸상태로 자결했다. 그 편지에는 히폴리투스가 자신을 욕보이려 했다는 거짓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당신의 아들, 히폴리투스를 벌하소서. 당신이 집을 비운 사이 히폴리투스가 제 어미와 다름없는 저를 능멸하고 희롱했습니다. 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참을 수 없고, 저는 히폴리투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지붕 아래 살 수가 없답니다. 부디 먼저 가는 저를 용서하소서!”

이 편지를 읽고 분노를 참지 못한 테세우스는 아들을 나라 밖으로 추방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대신 복수해 달라고 빌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적잖이 불던 어느 날, 패륜아로 낙인찍힌 히폴리투스가 이륜차를 몰고 해변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히폴리투스의 얼굴빛만큼이나 스산하게 어두운 정오 무렵이었다. 바닷바람이 거세지더니 잔잔했던 바다에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귀청을 파고드는 굉음과 함께 파도를 헤치고 거대한 바다 괴물이 뛰쳐나와 달리던 말을 기겁하게 했다. 깜짝 놀란 백마가 발광하며 날뛰자 고삐가 올리브 가지에 걸리면서 이륜차는 산산조각이 났고, 히폴리투스는 고삐에 온몸이 감긴 채 큰길로 나뒹굴었다. 억울한 히폴리투스는 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때 히폴리투스의 나이는 겨우 열네 살에 불과했다. 이렇게 비참한 운명의 충격은, 종종 당사자들이 아닌 다음 세대의 자손들을 향해 거대한 해일처럼 닥치곤 한다.

당시 히폴리투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기고 있었는데, 이 억울한 죽음을 가엽게 여겼는지 아르테미스는 명의 아스클레피오스를 시켜 히폴리투스를 되살렸다. 아르테미스는 이 히폴리투스를 의심 많은 아버지의 권력에서 해방시키고자 이탈리아로 데려가 에게리아라고 하는 요정에게 보호를 맡겼다.

암튼 이 의붓아들에게 사랑을 느낀 파이드라 이야기에서 심리학 용어가 하나 생겼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사랑을 느껴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을 일컫는 파이드라 콤플렉스(Phaedra Complex)’라는 말,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11

떠돌이 영웅 페이리토오스가 친구를 찾아 아테네로 온 것은 테세우스가 후처 파이드라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런데 페이리토오스는 왕비와 아들을 잃고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테세우스 왕을 위로한답시고 엉뚱하다 못해 황당한 제안을 했다.

제우스 신의 딸이 천하의 미인이라고 합니다. 쌍둥이들의 누이 헬레네(Helene)’ 말입니다. 이 처녀를 데려다 부인으로 삼으세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헬레네? 그녀는 신화의 시대를 통틀어 그리스 최고의 미녀로 알려진 여인이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인정한 천하일색이다. 그녀의 미모 때문에 저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으뜸 신 제우스의 딸이면서 쌍둥이 영웅인 카스토르(Castor)’폴리데우케스(Polydeuces)’의 동생이었다. 함부로 추근댔다가는 뼈도 못 추릴 상황이 전개될 것이 뻔한 제안을 페이리토오스가 위로랍시고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테세우스의 태도였다. 친구의 제안에 덧붙여 페이리토오스에게도 제우스 신의 딸을 신부로 맞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터무니 없는 제안에 그가 맞장구를 치다니, 이것도 영웅의 특권인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 정통한 이윤기 선생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Ⅰ」 테세우스 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영웅에게는 상승과 하강의 주기가 있다. 영웅도 때가 되면 쓰러진다. 외부의 적에 의해 쓰러지기도 하고 내부에서 싹트는 오만에 휘둘리다 쓰러지기도 한다. 오만이 부주의를 부추기는 것이다.>

테세우스는 오만했고 부주의했다. 부인과 아들을 잃은 상실감이 그것들의 정도를 더했을 수도 있다. 언감생심 제우스의 딸을 납치할 마음을 먹다니, 예로부터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했다지만 이 오만은 백 퍼센트 테세우스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 오만이었다.

제우스의 딸을 아내로 얻고 싶다는 이 두 사람의 공통의 똘끼가 이 오만한 대화를 말장난으로 끝내지 않고 실행에 옮기도록 했다.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는 헬레네를 붙잡아 테게아 땅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당시 테세우스는 쉰 살 중늙은이인데 견주어 헬레네는 고작 열두 살이었다. 테세우스는 고민하는 척하다가 너무 어린 헬레네를 아테네로 데려가는 대신 친구에게 잠시 맡겨두고 헬레네의 나이가 찰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헬레네가 납치되고 얼마 안 있어 그녀의 오빠들인 스파르타의 범 같은 쌍둥이 장수,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가 군사를 이끌고 동생을 찾아 나섰다. 그들이 그리스 반도를 샅샅이 뒤져 헬레네를 구출한 것은 이즈음의 일이다.

헬레네 있는 곳을 쌍둥이 장수에게 귀띔해 준 사람은 아테네 출신 아카데모스였다. 쌍둥이 장수들은 아카데모스의 공을 높이 사 아테네 근방 올리브 숲이 울창한 그의 고향을 아카데메이아(Academeia)’로 명명하고, 아테네를 공격할 때 이 마을만은 공격하지 못하도록 했다. 아카데메이아는 아카데모스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후일 플라톤이 여기에다 학교를 세우고 철학을 강의하면서부터 이 땅은 아주 유명해졌다.

그러나 오만한 두 납치범은 헬레네가 오라비들 손에 이끌려 스파르타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페이리토오스는 테세우스에게 이번에는 약속대로 자기의 신붓감을 찾으러 가자고 졸랐다. 페이리토오스는 딱하게도 암흑의 나라 하데스(Hades)’의 왕비 페르세포네(Persephone)’를 골랐다. 페이리토오스, 아무래도 잠시 정신 줄이 외출했었던 게 틀림없다.

테세우스는 위험한 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통이 큰 친구를 위해 함께 하데스가 다스리는 저승으로 물어물어 내려갔다. 곧바로 두 사람은 저승에서 하데스 손에 잡혔다. 하데스는 살아서 땅밑에 내려온 침입자들로부터 내려온 연유를 듣자 그만 자신도 모르게 하고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지하 세계의 으뜸 신, 하데스는 살다 살다 이렇게 어이없는 일은 처음이었다. 암흑의 여왕 페르세포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데스는 두말하지 않고 침입자들에게 그에 맞는 합당한 벌을 내렸다. 죽음의 궁전 앞 레테의 바위에 앉아 반성 좀 해보라고 한 것이었다. 레테의 바위는 망각의 의자였다.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 저승으로 들어오고도 한이 많아 이승의 일을 잊지 못하는 망령을 위해 마련된 의자였다.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의 이 의자에 앉자마자 땅 위의 일을 까맣게 잊었다. 한낱 인간인 주제에 죽지도 않았는데 저승 세계에 얼쩡거리더니 꼴이 아주 우습게 됐다.

이때 두 짝패에게는 참 다행스럽게도, 열두 가지 과업을 수행 중인 헤라클레스가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러 하데스의 나라에 내려와 있었다. 헤라클레스의 마지막 임무는 머리 셋 달린 저승의 파수꾼, ‘케르베로스(Kerberos)’를 지상으로 데려가는 과업이었다. 그는 볼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망각의 의자에 앉아 죗값을 치르고 있는 테세우스를 발견했다. 헤라클레스는 테세우스를 보자마자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

내 아내와 자식들 피가 묻은 내 손을 잡아 그 죄를 나누어지고자 했던 테세우스 아닌가? 그대는 필시 그 죗값을 치르느라고 여기 이 망각의 의자에 붙잡혀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이제 내 손을 잡거라. 내가 그대의 죄를 함께 닦을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망각의 의자에 앉아 있는 테세우스가 헤라클레스와 헤라클레스가 말하는 말을 기억할 리 만무했다. 멍하니 그냥 앉아 있을 뿐이었다.

망각의 의자에 한 번 앉으면 그 엉덩이를 뗄 수 없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한번 앉으면 영원히 앉아 있어야 하는 망각의 의자에서 무작정 테세우스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나 테세우스의 엉덩이는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데스의 권능은 역시 장난이 아니었다. 한차례 실패한 헤라클레스가 소리를 내며 다시 힘을 썼다. 그러자 테세우스의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는데, 가만히 보니 엉덩이 살은 고스란히 바위에 붙어 있었다. 이때부터 테세우스는, 뾰족 엉덩이로 세상을 나돌아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 온 그리스 사람들이 아티카(아테네) 사람들을 뾰족 궁둥이들(Lean bottoms)’이라고 놀려먹는 것도 그들이 대부분 테세우스의 자손들이기 때문이다.

테세우스를 내려놓은 헤라클레스는 이번에는 페이리토오스의 겨드랑이에 두 손을 넣었다. 그러나 그 순간, 시칠리아 밑에 묻혀 있던 거인 엔켈라두스(Enceladus)’*가 돌아눕는 바람에 대지와 함께 저승 땅이 크게 흔들렸다. 이 바람에 페이리토오스의 겨드랑이에 들어가 있던 헤라클레스의 두 손이 쑥 빠지고 말았다. 저승에서는 한번 놓친 손은 다시 잡을 수 없는 법, 헤라클레스는 하는 수 없이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페이리토오스의 초점 없는 표정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헤라클레스는 머리 셋 달린 케르베로스를 어깨에 둘러멘 채 테세우스의 손을 잡고 황급히 스틱스강 쪽으로 내달아, 이윽고 저승문을 벗어났다. 그때 테세우스 왕은 세상의 빛이 이토록 밝고 좋은 것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12

테세우스가 페이리토오스와 함께 지하 세계에서 허송세월하던 사이, 헬레네의 오빠 폴리데우케스와 카스토르는 스파르타 군대를 이끌고 아테네로 진군했다. 무주공산인 아테네를 함락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일보다 쉬운 일이었다. 두 쌍둥이 장수는 아테네에 새로운 왕을 세우고, 테세우스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얼마지 않아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테세우스가 아테네로 돌아왔지만 이미 그의 영광은 한 줌 기억으로만 남은 뒤였다.

새로 아테네의 왕이 된 메네스테우스는 헬레네를 납치하여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테세우스를 비판하며, 아테네 시민들이 그에게 반감을 품도록 선동했다. 아테네에 테세우스가 설 자리가 없었다.

테세우스의 인생은 숱한 모험과 승리의 연속이었지만 종말은 이토록 슬펐다. 테세우스는 마침내 백성들의 신망을 잃고 아테네에서 쫓겨났다. 하는 수 없이 테세우스는 파이드라의 오빠 데우칼리온이 다스리던 애증의 섬 크레타를 향해 출발했다. 데우칼리온이 그의 보호를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테세우스가 탄 배가 길을 벗어나는 바람에 스키로스섬의 왕 리코메데스의 궁전에 몸을 의탁해야 했다. 리코메데스 왕은 처음에는 이제 세월이 흘러 백발이 성성한 늙은 영웅 테세우스를 환대했으나 결국은 등을 돌리고는 그를 죽이고 말았다. 비겁하게도 늙고 힘없는 테세우스를 절벽에서 밀어버렸다.

이렇게 위대한 왕 테세우스는 쓸쓸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였다. 아테네 사람들은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아테네 젊은이들을 태우고 돌아왔던 탈출선은 잘 보관하여 기념물로 삼았으면서도, 테세우스에 대해서는 좀처럼 과거의 존경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테네 군대가 마라톤 평원에서 페르시아 군대와 맞붙어 싸울 때 아테네 병사들은 하나같이 그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테세우스 덕분이라고 말했다. 아테네 군대가 밀릴 때 테세우스가 자신들과 함께 페르시아 군대에 대항하여 싸우는 환영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 신기한 목격담은 아테네 사람 전체에게 퍼져 이제라도 자신들의 영웅에 대하여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아테네 장군 키몬(Kimon)’은 스키로스섬으로 건너가 테세우스의 유해가 묻힌 곳을 수소문하였다. 그는 어느 날 하늘을 선회하는 독수리 한 마리가 갑자기 어떤 언덕에 앉더니 부리와 발톱으로 쪼고 할퀴는 것을 보았다. 그 장소를 파보았더니 과연 인골이 발견되었고 기몬 장군은 그 유해를 테세우스의 것이라고 여겨 수습해서 아테네 땅으로 이장했다. 이 유해는 영웅 테세우스를 위해 세운 테세이온이라는 신전에 안치되었다. 그때부터 아테네 사람들은 테세우스를 신처럼 섬겼다.

 

13

테세우스는 반은 역사적인 실제 인물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여러 종족을 통합하고 아테네를 수도로 삼아 아티카 땅을 단일 국가로 만들었다. 이 대사업을 기념하여 그는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을 위해 판 아테네(범 아테네 축제)’를 창시했다. 이 축제가 그리스의 다른 경기와 다른 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즉 이 축제에는 아테네 사람들만 참가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엄숙한 행진이 축제의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 행진을 통해 페플론’, 곧 아테나의 성의(聖衣)파르테논 신전으로 운반되어 이 여신상 앞에 봉헌되는 것이다.

신화학자들은 테세우스가 반신반인이었던 헤라클레스와 여러 측면에서 유사하다고 본다. 즉 아테네에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인 테세우스를 헤라클레스라는 거울에 반사 시켜 아테네에 적합한 새로운 영웅의 모습으로 재탄생시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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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 원정대장, 이아손

이노, 황금 모피, 아르고 원정대, 피네우스, 메데이아...

 

1

옛날이야기이다.

테살리아지역 보이오티아에 아타마스(Athamas)’네펠레(Nephele)’라고 하는 왕과 왕비가 살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아들, 딸 남매가 있었다. 그러나 왕비 네펠레는 남매만 남겨놓고 일찍 죽고 말았다. 아타마스 왕은 오래지 않아 이노(Ino)’를 새로운 왕비로 맞아들였다. 여러분은 테베를 세운 카드모스(Cadmos)’와 조화의 여신 하르모니아(Harmonia)’의 딸 이노를 기억할 것이다. 맞다, 바로 그 이노이다.

아타마스 왕은 구름의 요정이었던 전처 네펠레로부터 얻은 헬라프릭소스남매를 금쪽같이 아끼고 사랑했다. 그러나 이노에게는 그 어린 남매가 눈엣가시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왕비 이노는 자기가 낳지 않은 자식, 프릭소스와 헬레를 없애기 위해 무시무시한 계략을 꾸몄다. 그들 남매가 후일에 자기가 낳은 자식들의 앞날에 걸림돌이 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노 왕비는 왕궁의 시녀들에게 특별한 임무를 주어 여염집 아낙들에게 보냈다. 명을 받은 시녀들은 여자들에게 각자의 집안에 저장해 놓은 밀알 씨앗을 남편들 몰래 달달 볶아 놓으라고 시켰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농부들은 싹이 돋아날 수 없는 씨앗으로 농사를 지었으니, 아무리 정성을 다해 씨를 뿌리고 물을 주어도, 아무리 신들에게 경건한 기도를 드려도 볶은 씨앗에서 싹이 날 리가 없었다. 몇 해 동안 계속된 흉작이 이어지자 급기야 나라 안의 인심이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우환의 까닭을 알 수 없었던 아타마스 왕은 답답한 마음으로 언제나 지침이 있는 그곳, 델포이 신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노 왕비가 이를 미리 알고 선수를 쳤다. 사람을 시켜 재물욕이 많은 여사제 하나를 매수해서 왕을 속일 작정이었다.

델포이 신전에 도착한 황이 절차대로 신의 뜻을 묻자, 여사제는 영매 퓌티아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고, 이 나라의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모두 왕자와 공주 탓이라고 거짓말로 고했다.

백성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어야 할 사랑을 네 피붙이에게만 주고 있으니 어느 신이 좋아하겠는가? 쯧쯧.”

그러면서 자식들을 희생 제물로 삼아 제사를 올려야만 신들이 응답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청천벽력같은 말을 떠안고 돌아온 아타마스 왕은 의아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 신을 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납득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민도 잠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 이 소식이 나라 곳곳에 퍼지자 굶주림에 시달린 백성들도 모두 왕자와 공주를 탓하기 시작했다. 백성들의 원성이 폭동으로 번질 조짐이 보이자, 아타마스 왕은 눈물을 머금고 왕으로서의 책무를 우선하여 자식들을 희생시키기로 했다.

정해진 운명의 제사 날짜가 가까워지자 제단을 쌓는다, 술을 빚는다왕궁 안팎이 소란스러워졌고,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남매도 돌아가는 사정을 눈치로 알게 됐다. 자신들의 짧은 운명을 원망하듯 왕자와 공주는 돌아가신 어머니 네펠레를 부르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남매의 어머니 네펠레는 죽어서도, 억울하게 죽게 된 자식들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 제우스(Zeus)’ 신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때마침 그 순간 하늘의 흰 구름 몇 점이 하나로 모이더니 예술가가 작품을 빚듯 모양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곧 구름은 금빛을 발하면서 날개 달린 황금빛 양이 되어 남매 앞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제우스 신이 구름의 요정 네펠레의 기도에 응답한 것이다. 네펠레는 황금양의 등위로 아들과 딸이 차례대로 올라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숨과 함께 위대한 제우스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금양은 남매를 등에 태운 채 하늘로 날아올라 진로를 동쪽으로 잡았다. 금양은 남매의 눈높이로 구름 무리가 지나쳐 갈 정도의 고도로 날아 어느덧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가로놓인 해협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태어나 처음 높은 하늘에서 아찔한 아래쪽 풍경을 바라보던 헬레가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헬라가 엉겁결에 한 손을 자신의 머리에 갖다 대는 순간 그녀는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오빠 프릭소스는 자신도 무섭고 정신이 없었던 터라 뒤쪽에 있는 누이가 떨어진 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헬레가 황금 양털을 부여잡은 손으로 오빠의 허리를 둘러쳤더라면 결과가 달랐을까, 아무튼 그 뒤로 이 바다는 헬레의 바다라는 뜻의 헬레스폰토스(Hellespontos)’라고 불렸다. 오늘날의 다르다넬스 해협이다.

금양은 계속해서 하늘을 날아 드디어 흑해 동해안에 있던 겨울왕국 콜키스라는 나라에 당도했다. 금양은 여기에다 네펠레의 아들 프릭소스를 내려놓았다. 왕자는 황금양의 등에서 내려온 뒤에야 뒤에 있어야 할 누이가 없는 것을 알고 슬피 울었다.

이때 콜키스는 아이에테스라는 욕심 많은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왕은 변방을 지키던 장군으로부터 프릭소스의 착륙 사실을 보고받고 처음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국의 왕자가 타고 왔다는 황금양을 보자 얼굴빛을 확 바꾸어 왕자를 따뜻하게 대접했다.

프릭소스는 금양을 산 제물로 제우스 신에게 올리고, 금양의 털은 벗겨 아이에테스 왕에게 바치며 자신을 거두어 줄 것을 청했다. 왕은 겉으로라도 사양한다는 말은 일절 없이 마치 빌려주었던 제 물건 돌려받듯이 넙죽 받았다. 왕은 그 황금 모피를 귀하게 여겨 전쟁의 신 아레스(Ares)’에게 봉헌한 숲속에 두고 잠들지 않는 용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이국의 왕자 프릭소스를 첫째 딸 칼키오페와 짝을 지어 주고 사위로 삼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제우스 신은 황금양의 공로를 인정하여 그 양을 별자리로 만들었으니, 우리가 알고 있는 양자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프릭소스의 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에테스 왕의 사위가 된 후 여러 해가 흘러 장인이 신탁을 받았는데, 내용인즉슨 이방인의 손에 죽임을 당하리라는 다소 모골이 송연한 것이었다. 당시 콜키스 나라의 이방인은 프릭소스 뿐이었으므로 왕은 신탁을 피하려고 사위를 살해하고, 자신의 맏딸을 과부로 만들었다. 그때 프릭소스와 칼키오페 공주는 네 명의 자식을 두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오늘의 주인공 이아손이 태어나기 약 50년 전, 그가 아르고 원정대를 이끌고 콜키스를 향해 출항하기 약 70년 전의 일이다.

 

2

테살리아에는 아타마스 왕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올코스라는 또 하나의 도시국가가 있었다. 이 항구도시는 아타마스 왕의 가까운 친척 아이손(Aeson)’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아이손 왕은 젊어서도 영웅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는데, 벌써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약했다. 게다가 그다지 현명하지도 못해서 나라 살림 꾸려나가기가 여간 벅찬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는 힘이 없고 말도 앞뒤가 정연하지 못하니 신하들에게도 영이 서지 않았다. 그러니 신하들이 왕 생각하기가 지나가는 똥개보다 하등 나은 것이 없었다. 왕은 왕 자리가 하루하루 힘겨웠다.

다행히도 늦둥이 아들 이아손(Iason)’은 자신과 달리 영특한 면이 있어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으나, 겨우 다섯 살밖에 안 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던 차에 젊고 야심 많은 이복동생 펠리아스(Pelias)’는 서서히 야망을 드러내며 중신들의 마음을 얻고 있어 왕과 왕비는 연일 앉은 자리가 편안하지 않았다.

왕은 늙어 힘이 없고, 왕자는 너무 어리고, 야심에 찬 왕의 이복 아우가 호시탐탐 왕좌를 노린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보았던, 우리 역사 단종애사에서 보았던, 좋지 않은 전형적인 그림이다. 폭풍전야가 이럴 것이다. 숨 쉬지 않는 바위와 말없이 서 있는 건물도 긴장감에 숨죽이고 있는 상황,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들고 있는 바로 그런 기분.

마침내 중신들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척, 왕의 결단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왕은 망설이다가, ‘왕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라는 조건으로 아우 펠리아스에게 잠정적으로 왕위를 물렸다. 참 지켜지기 어려운, 하나 마나 한 약속이었다. 평화로운 왕위계승을 가장한 실질적인 찬탈이었다. 찬탈은 평화를 가장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피바람을 일으키는 법, 늙은 부왕 부부는 어린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다른 형제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한적한 마을로 쫓겨나기 직전에 아이손은 어린 아들 이아손을 아무도 모르게 빼돌렸다. 이올코스에다 두면 아무래도 아우 펠리아스가 해코지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이손은 자신을 오랫동안 옆에서 보필했던 늙고 충실한 부하의 손에 어린 이아손을 맡기며 당부를 전했다.

이 아이의 운명을 자네 손에 맡기네. 펠리온산으로 가서 현자 케이론(Chiron)’을 만나거든, 사정 이야기를 고하고 이 아이가 스스로 구실 할 수 있을 때까지만 돌봐주십사 부탁드리게나.”

케이론은 허리 위로는 사람이나 허리 아래로는 말인 켄타우로스(Kentauros)’ 족이다. 그는 혹독한 교육법으로 유명한 당대 최고의 스승이었다. 악타이온, 아킬레우스, 헤라클레스 같은 영웅도 케이론의 가르침을 받았다.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이아손도 펠리온산에 숨어 살면서 현명한 케이론으로부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을 배웠다. 활 당기는 법, 검 쓰는 법, 병 고치는 법, 수금 타는 법, 배 짓는 법, 길보는 법, 쟁기질하는 법에다 웅변술까지 배울 수 있는 것은 죄다 배웠다.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펠리온산 최고의 무림고수로부터 피땀 나는 수련을 받은 소년 이아손은 어느 순간부터 가슴 한쪽에 꺼지지 않는 불꽃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복수의 불꽃이었다. 그 칼날은 따로 갈지 않았어도 날카로웠고, 점점 더 예리해졌다.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3

스스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세월이 흘러 어느덧 열다섯 살이 된 이아손은 스승 케이론에게 하산을 허가해 줄 것을 청했다. 케이론은 늠름한 제자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10년 전, 어린 이아손을 맡을 때의 상황을 알아듣게 다 이야기한 후,

마지막으로 너에게 두 가지만 당부하겠다. 첫째, 한 번 한 약속은 그것이 누구와의 약속이든 반드시 지키도록 해라. 그리고 너를 보살펴 주시는 신들에게 영광 돌리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라고 말하고, 제자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이아손은 스승의 당부를 가슴에 새기고 숙부에게 왕위를 요구하러 이올코스 땅으로 향했다. 눈빛은 비장하였고 걸음은 당당하였다. 그런데 펠리온산에서 내려와 이올코스로 가려면 자그마한 강을 하나 건너야 했다. 이 강은 평상시에는 물이 많지 않은 강이었음에도 그날은 좀 달랐다.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이 부분이 잘 서술되어 있어 몇 글자만 바꾸고 덜어 그대로 옮긴다.

 

<이아손은 물살이 약하고 깊은 곳보다는 물살이 강하더라도 깊지 않은 여울목을 찾으려고 강 아래위를 둘러보았다. 이아손이 가까스로 찾아낸 여울목에는 먼저 온 듯한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여울목을 찾고도 물살이 세어 건널 마음을 내지 못하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노파는 이아손에게 자신을 강너머로 건너게 해줄 것을 청했다.

이아손은 등에 메고 있던 창 두 자루를 벗겨 한 손에 모아 쥐고 노파 앞으로 다가가 등을 돌려대었다. 노파는 아무 말 없이 이아손의 잔등으로 올라왔다. 이렇게 이아손은 노파를 등에 업고 여울목으로 들어서는데 강은 여울목인데도 깊어서 한 발 들여놓자 무릎이 잠기고 두 발 들여놓자 엉덩이까지 찼다.

할머니는 입고 있던 옷자락이 물에 젖자 두 팔로 이아손의 목을 감고 위로 자꾸만 기어올랐다. 이아손은 숨을 쉬기 어려울 지경이었지만 꾹 참고 건너 쪽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처음에 가벼웠던 할머니가 자꾸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폭도 전혀 줄어들 기미가 없이, 마치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놈아! 왜 이리 꾸물거리는 게냐! 옷이 다 젖는다, 다 젖어.”

노파의 갑작스러운 호통 때문이었을까, 그 순간 이아손은 바위를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비틀거리다가 미끄러운 돌을 밟았고,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다가 가죽신 한 짝을 물살에 떠내려 보내고 말았다. 가까스로 강 건너편 언덕에 닿은 이아손은 노파를 내려놓은 다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노파는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괴이하다 여기고 발아래를 바라보는데 가죽신이 한쪽에 맨발이 한족이었다.>

 

이 노파는 결혼과 가정의 수호여신 헤라(Hera)’가 변장하여 나타난 것이었다. 이올코스 왕 펠리아스가 헤라의 신전에 경의를 표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지만, 남편 있는 여인을 강압적으로 취해 배다른 자식을 여럿 낳은 것이 여신의 화를 돋게 했다. 그래서 노파의 모습으로 변장해 이 못된 가정파괴범을 혼내 줄 영웅으로 이아손을 낙점하고 일종의 시험을 치른 것이었다. 헤라 여신이 보기에 이아손은 완력과 인내도 좋을뿐더러 겸손하고 믿음직스러운 감이 있었다. 이때부터 이아손은 헤라 여신의 남다른 보살핌을 받게 된다.

이아손이 이올코스로 들어가자 남녀노소 구분 없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한쪽 신밖에 신지 않은 청년을 보고는 수군거렸다. 가죽신을 한 짝만 신은 청년, 머리카락이 덥수룩하게 긴 청년,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이 청년을 보고는 다들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까닭을 알 길 없는 이아손은 저잣거리를 오가는 행인에게 물었다.

어찌 사람들이 저를 보고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지요?”

당신이 가죽신을 한 짝만 신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뭐 어때서요? 강을 건너다 잃어버린 것뿐인데요.”

펠리아스 왕이 얼마 전에 델포이, 아폴론 신전에서 신탁을 받아 보았답니다. 그런데 그 신탁이 참 요상했지요. ‘모노산달로스(Monosandalos)가 내려와서 이올코스의 왕이 된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당신이 지금 신을 한 짝만 신고 있지 않소.”

모노산달로스한쪽 신만 신은 사나이라는 뜻이다. 그제야 이아손은 강을 건널 때 자신이 업어 같이 건너게 해드렸던 노파가 천상의 신중 한 분이었음을 깨닫고서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임무를 확실하게 정했다.

 

4

이올코스에서 이아손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디에 살고 계신 지부터 수소문했다. 아비 어미의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계실지 궁금했다. 혹시 돌아가셨다면? 다행히도 두 분은 지금은 왕이 된 배다른 아우의 관심 밖에서 생존해 계셨다. 주름살 깊게 패인 늙은 부모와 젊은 아들의 10년 만의 해후, 어느 용사와 견주어도 듬직한 아들을 본 부부는 한동안 말없이 눈물만 바다를 이루었다.

세 식구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당장 현실적인 문제가 고개를 들었다. 잠시 맡겨두었던 왕좌를 되찾는 문제였다. 그러나 펠리아스 왕이 순순히 넘겨줄 왕좌라면 처음부터 가져가지도 않았을 터, 왕가에 거센 태풍이 불어닥칠지도 모를 일이니 문제는 큰 문제였다.

이아손은 늙은 부모를 좋은 말로 안정시키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우선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리고 왕궁으로 숙부를 찾아가기에 앞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새 신발을 장만하는 일이었다. 신탁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을 숙부를 자극할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멀쩡한 가죽신으로 바꾸어 신은 이아손은 이올코스 궁전으로 들어가 숙부 펠리아스 왕의 알현을 청하였다.

펠리아스는 이아손을 보자 가볍게 놀란 표정을 두꺼운 낯으로 가리고 태연하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에서 온 자이고, 짐을 찾아온 까닭은 무엇인가?”

저는 펠리온산에서 얼마 전에 내려온 이올코스의 왕자, 이아손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이 나라 왕을 지내신 아이손 왕이시고 어머니는 이 나라 왕비이셨던 알키메데(Alkimede)’이십니다, 숙부.”

펠리아스 왕은 옛날 아이손 형님과 약속했던 것을 들먹이며, 적법한 왕위 계승자, 이아손이 나타난 것을 크게 반기는 뜻에서 나라가 시끄러울 만큼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이아손은 숙부가 의외로 쉽게 자신을 조카로 인정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숙부 펠리아스가 악랄하고 교활한 인간임을 알았던 이아손이 그 검은 속내가 무엇인지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지 그 위험의 모습과 크기를 섣불리 가늠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그게 무엇이든 예상 밖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숙부와 조카가 상봉한 지 엿새째 되는 날, 펠리아스 왕이 조카 아이손을 불러 잔뜩 뜸을 들였다가 준비된 말문을 열었다.

조카는 우리 집안의 장손이니 프릭소스의 황금 모피에 대해서 들었을 것이다. 우리와 가까운 친척이 되는 프릭소스는 차가운 콜키스 땅에서 세상을 떠나셨고, 이 나라에 있었더라면 나라의 보물이 되고 남았을 황금 모피는 지금 머나먼 콜키스 땅에 있다. 어떠냐? 콜키스 땅으로 가서 황금 모피와 프릭소스의 유해를 수습해 오지 않겠느냐? 나는 이미 늙어 이룰 수 없는 꿈을 네가 이루고 왕위를 물려받는 것이 어떠하냐?”

펠리아스로서는 가겠다고 해도 좋고 못 가겠다고 해도 좋을 양날의 검 같은 제안이었다. 머나먼 콜키스. 황금 모피가 있다는 콜키스 땅은 그리스인은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땅이다. 그리스인들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땅이다. 적대적인 바다 흑해 너머, 아득히 먼 동쪽에 있는 나라라는 사실만 어렴풋이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던 미지의 땅이다. 어쩌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지도 모르는 땅이다.

만일 이아손에게 그럴 힘과 용기가 있어서 콜키스로 떠나겠다고 한다면 펠리아스는 제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이아손을 죽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험한 바다, 야만의 땅,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위험, 그리고 콜키스 왕이 황금 모피를 빼앗으러 온 이아손에게 여기 있소하며 쉽사리 넘겨줄 리도 없지 않은가. 그건 고사하고 단칼에 목을 베기가 쉽다. 더군다나 일설에 따르면 무시무시한 용이 지키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이아손에게 그럴 힘과 용기가 없어서 콜키스로 떠나지 못하겠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펠리아스는, 이아손이 비록 적법한 왕위 계승자라고 하나 힘도 없고 용기도 없는 풋내기를 위해 왕의 자리를 비워 줄 그렇게 도리에 밝은 위인이 아니었다. 숙부 펠리아스는 이런 흑심은 두꺼운 낯으로 가리고 짐짓 위엄을 갖추고 제안을 한 것이었다.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여 마음의 고삐를 풀게 한 다음에 불리한 조건을 달것임을 짐작하고 있던 이아손은 다음과 같은 말을 홀연히 남기고 더 이상의 군말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마땅히 가서 찾아와야지요. 100일 말미를 주시면 새 배를 짓고 뱃사람을 모아 떠나겠습니다.”

 

5

숙부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이아손은 곧 원정 준비에 들어갔다. 이아손은 당시 배 짓는 기술로서는 첫째가는 아르고스(Argos)’에게 명하여 자그마치 100명 가까이나 태울 수 있는 범선을 짓게 했다. 당시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크기였다.

아르고스는, 노잡이가 노를 놓쳐도 노가 물결에 떠내려가는 일이 없도록 노의 손잡이와 노잡이의 자리를 가죽끈으로 연결하는 당시로선 참으로 획기적인 방법을 겨우 열두 살 때 고안해낸 사람이다. 나이 들어서는 방향잡이 키로는 배의 방향을 바꿀 때 힘이 많이 든다고 해서 바퀴처럼 생긴 키 손잡이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즈음에서는 바람의 방향이 바뀔 경우, 돛대 위에서 저절로 돌아 각도를 바꾸는 돛을 만들어 온 그리스 뱃사람들을 놀라게 한 천재였다.

아르고스가 배를 짓고 있는 동안 이아손은 모험을 좋아하는 온 그리스 땅의 젊은이들을 이 여행에 초청하느라 바빴다. 더러는 인편으로, 더러는 직접 찾아다니며 멀고 험난한 이 원정에 함께 할 용사들을 불러 모았다. 대략 헤아려 보니 그 수가 5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 젊은 용사들 대부분은 후일 그리스의 영웅으로 천하에 이름을 날렸으니, 여기에 끼지 못하면 가짜 영웅 소리를 들을 판이었다.

본격적인 항해에 나서기 전에 우선 이 원정대에 포함된 영웅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근래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세계 극장가의 흥행사를 새로 썼던 어벤져스시리즈에 나오는 수퍼 히어로만큼이나 화려하다.

원정대원 중 가장 유명한 영웅은 뭐니 뭐니해도 헤라클레스(Herakles)’였다. 원정 기간 중 그의 옆에는 항상 휠라스(Hylas)’가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중도에 대원 노릇을 그만두고 그리스로 돌아가 버렸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당대 최고의 명가수 오르페우스(Orpheus)’도 대원이었다. ‘아폴론(Apollo)’ 신의 축복을 받은 그의 수금 연주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바위가 감동해 눈물을 흘렸고, 나무는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구부렸으며, 꽃은 때가 아닌데도 피어나고 강물이 선율에 따라 방향을 바꾸었다고 한다.

디오스쿠로이(Dioskouroi)’로도 알려진 카스토르(Castor)’폴리데우케스(Polydeuces)’도 빼놓을 수 없. 카스트로는 거친 말을 길들이는 솜씨가 좋았고, 폴리데우케스는 권투를 썩 잘했는데 아르고 원정에서도 그의 권투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둘은 어찌나 우애가 좋았던지 무슨 일을 하건 꼭 함께했다.

이밖에도 칼리돈의 왕자 멜레아그로스(Meleagros)’, 활쏘기와 달리기로 알려진 여장부 아탈란타(Atalanta)’,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아버지로 유명한 펠레우스(Peleus)’, 테세우스와 함께 지하 세계로 내려가 하데스에게 페르세포네를 내놓으라고 했던 떠돌이 영웅 페이리토오스(Peiritoos)’, 훌륭한 인품으로 트로이 전쟁에도 참전했던 젊은 시절의 네스토르(Nestor)’ 50여 명에 이르는 영웅들이 참여했다.

테세우스(Theseus)’가 원정에 참여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배척하기로 하겠다. 여러분은 앞으로 테세우스가 아버지의 신표를 가지고 아이게우스 왕을 찾아갔던 일화를 보게 될 것이다. 이때 독약을 탄 술을 준비하고 테세우스를 기다리고 있던 여자는 계모 메데이아(Medeia)’였다. 그때 테세우스는 메데이아를 처음 대하듯 했다. 그가 아르고 원정대원이었다면 이아손의 아내가 되었던 메데이아를 알아봤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말이다. 그래도 자꾸 억지를 부린다면, 에이 아무리 신화래도 이건 좀 심하다.

 

6

이아손의 부름을 받고 당대 헬라스의 영웅호걸들이 파가사이로 모여든 것은 아르고스가 건조한 배의 이물 앞 대가리에다 말하는 헤라 여신상을 세운 직후였다. 아르고스는 모여든 장수들의 면면을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수식 전날 오르페우스는 아름다운 선율로 배 지은 사람 아르고스의 이름을 따 이 배의 이름을 아르고(Argo)’로 명명하였다. 또 이아손은 원정대원들이 둘러선 자리에서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를 지목하며 이 원정의 대장으로 추천했으나, 헤라클레스가 극구 사양하며 이아손이 원정대장이 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다른 영웅들은 헤라클레스의 말을 옳게 여겨, 이 문제는 그대로 결론이 났다.

대장으로 추대된 이아손은 신들에게 성대한 제를 올렸다. 자신의 수호여신인 헤라에게 특별히 더 신경 썼음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원정 중의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고, 동료들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로 서로 반목하는 일이 없도록 기원했다. 황금 양털을 무사히 가지고 나와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남아 있는 가족들의 안녕도 기원하였다. 그런 후 함께 한 영웅들과 음복을 하며 먹고 마시는데 새벽이 밝아 올 때까지 긴 항해를 위한 마지막 잔치를 거나하게 벌였다.

해가 다시 중천에 이르러 드디어 진수식 준비에 들어갔다. 아르고선이 진수될 때 배 위에 올라간 사람은 대장 이아손, 키잡이 티퓌스, 그리고 수금을 품에 안은 소리꾼 오르페우스뿐이었다. 나머지 대원들은, 일렬횡대로 놓인 통나무 위로 아르고선을 밀어야 했기 때문이다. 배가 바다에 몸을 담그자, 이윽고 대원들이 하나씩 아르고선에 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헤라클레스가 올랐다. 뱃길 잘 보는 아르고스 사람 나우폴리오스가 돛줄을 풀자 돛이 오르면서 바람을 한아름 안았다.

이윽고 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해안의 암초 사이를 미끄러지듯이 나아갔다. 바다로 나아간 아르고호는 곧 동력을 풀가동하여 쾌속으로 모험을 향해, 미지를 향해 힘차게 항해를 시작했다. 배 앞머리에서는 이를 축하하는 오르페우스의 수금 소리가 바람을 가르고 있었다.

 

7

아르고 원정대는 테살리아 해안을 떠나 여인들의 섬 렘노스에서 기항하고, 키지코스 왕국에서 몹쓸 경험을 한 후, 뮈시아에 도착하였다.

오랜 항해 중에 식량도 떨어지고 피로가 많이 쌓인 대원들이 상륙한 곳은 강도 없고 시내도 없어서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다. 대원들이 먹을 물을 얻기 위해서는 산에 올라가 샘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대원들은 제각기 물동이를 하나씩 들고 샘을 찾아 산으로 올라갔는데, 다른 대원은 모두 물을 길어 내려왔는데도 미소년 휠라스만은 소식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헤라클레스와 함께하면서 영웅의 시중을 들던 조각과도 같은 소년이었다.

휠라스와 함께 올라갔던 대원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휠라스는 물동이를 샘가에 놓고 물끄러미 샘물을 내려다보고 있습디다. 그런데 샘 안에서 희고 고운 손이 하나 나오더니 그의 손과 팔을 잡더군요. 그렇게 둘이 속삭이나 싶더니 곧이어 샘 아래서 다른 손들이 하나둘, 나중에는 예닐곱이나 나와 휠라스를 끌고 물밑으로 들어가더라구요.”

그 소리에 헤라클레스가 화들짝 일어나서 휠라스가 올라갔던 방향으로 달려 올라갔다. 그런데 한참을 지났는데도 헤라클레스는 내려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발 빠른 쌍둥이 형제 칼라이스(Calais)’제테스(Zetes)’가 올라갔다. 헤라클레스는 난감한 표정으로 바위틈에 있는 샘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샘가에는 휠라스의 항아리가 빈 채로 놓여 있었다. 이어서 이아손을 비롯한 대원들이 올라와 주위를 샅샅이 뒤졌지만 휠라스를 찾을 수 없었다. 샘은 바닥없이 아주 깊어 샘을 뒤지던 몇몇 대원들도 별 소득 없이 물 위로 올라왔다.

아침이 오자 핼쑥해진 헤라클레스가 이아손에게 자신은 휠라스 없이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누구라고 헤라클레스의 말에 토를 달겠는가. 이아손 일행은 결국 감쪽같이 행방불명이 된 휠라스와 휠라스 때문에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헤라클레스를 그 땅에 남겨두고 동북쪽을 향해 떠나야 했다. 천하장사 헤라클레스의 아르고 원정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아니면 주인공 이아손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 것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에게는 이 일 말고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8

이로부터 오래지 않아 원정대는 비튀니아라는 땅에서 폴리데우케스의 권투 실력을 구경한 후, 어느덧 운명의 힘에 이끌려 트라키아에 당도했다. 이곳에서 일행은 눈먼 현인 피네우스를 만났고 그로부터 차후의 항로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피네우스는 흑해가 두 개의 조그만 바위 섬으로 막혀 있다고 했다. 곧 이 두 개의 바위 섬은 해상에 떠있다가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서로 부닥치는데 그 사이로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든 산산조각으로 부숴 놓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섬은 충돌하는 섬이라는 뜻의 쉼플레가데스라고 불린다고 했다. 피네우스는 아르고 원정대원들에게 그 위험한 해협을 통과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에 따르면, 비둘기를 이용한 시간차 공격만이 그곳을 통과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피네우스의 말대로 아르고선은 떠난 지 이틀 만에 쉼플레가데스 앞에 이르렀다. 겉보기에는 꼭대기에 구름을 거느릴 만큼 높고 험한, 두 개의 마주 보고 있는 섬에 지나지 않았다. 두 개 의 섬 저쪽으로 보이는 검은 바다, 그 바다가 아르고선을 향해 뿜어대는 듯한 싸늘한 역풍과 물보라가 예사롭지 않았지만, 아르고 원정대는 까짓 그쯤이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섬 주위에는 부서진 배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떠다니고 있었다. 부서진 갑판, 찢어진 돛조각, 끊어진 밧줄, 부러진 노자루가 그 바다의 적의를 증언하고 있었다. 물 위로는 부풀어 오른 사람의 사체가 떠다니고 있었고 물밑으로는 톱니 같은 이빨을 드러내 보이는 거대한 물고기가 섬 그늘로 모이고 있었다. 이아손은 키잡이 티퓌스를 타륜 앞에 세우고, 눈밝고 귀밝은 이도몬에게는 몹소스가 붙잡아온 흰 비둘기를 주어 뱃전에 세운 뒤 나머지 대원들을 모두 노자리에 않게 하고는 영을 내렸다.

이곳이 적대하는 바다의 문 쉼플레가데스, 곧 충돌하는 바위섬, 우리가 마땅히 넘어야 할 관문의 문턱입니다. 피네우스가 예언했듯이, 이 두 섬은 나는 것이든 뜨는 것이든 그 사이에 들어간 것을 향하여 양쪽에서 부딪쳐 옵니다. 우리가 힘과 용기와 지혜로 맞서지 못하면 아르고선은 난파선 신세를 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들의 섭리를 믿으세요.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케이론에게서 배운 웅변술이었다. 그러곤 이아손은 먼저 이도몬에게 군호를 보내어 흰 비둘기를 날리게 했다. 비둘기는 역풍을 타고 고도를 높이는 버릇이 있어서 똑바로 역풍이 불어오는 두 섬 사이로 날았다. 비둘기가 섬 사이로 들어가자 거대한 두 섬이 엄청난 속도로 부딪쳐 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아르고 원정대의 귀에는 두 섬이 맞부딪쳐 오면서 양쪽으로 산 같은 물결을 일으키는 소리밖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 소리는 누군가가 귓전에 대고 커다란 징을 연이어 때릴 때의 소리와도 같았다.

거대한 두 개의 섬이 흰 비둘기를 덮치는 형국은 거인이 눈앞을 날아가는 벌레를 두 손으로 잡는 형국과 비슷했다. 하늘이 깨어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두 섬이 한 덩어리로 맞붙었다. 섬의 바위산에서 뿌리째 뽑힌 나무와 바위가 우르르 쏟아져 내려와 맞붙은 섬 주위의 엄청난 소용돌이로 휩쓸려 들어갔다.

이아손이 한 손을 들었다. 노자리에 앉은 대원들은 일제히 노를 젓기 시작했다. 티퓌스는 키를 잡고 아르고선을 맞붙은 두 개의 섬을 향하여 똑바로 몰고 들어갔다. 피네우스의 말 그대로였다. 아르고선이 뱃머리로 받을 듯이 맞붙은 두 섬을 겨누고 달려들자 두 섬은 조금씩 벌어지다가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티퓌스는 열리고 있는 두 바위섬 사이로 아르고선을 몰아넣었다. 두 바위섬이 아르고선을 향해 다시 부딪쳐 오기 위해서는 먼저 원래 있던 자리로 가야 했다. 두 바위섬이 원래 있던 자리고 돌아간 것은 아르고선이 이 섬 사이로 완전히 들어갔을 때였다.

저으시오! ”

키잡이 티퓌스가 타륜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소리는 대원들에게 들릴 리 없었다. 두 바위섬이 굉음과 함께 다시 부딪쳐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다는 바닥을 드러낼 듯이 아르고선 양쪽으로 치솟았다. 두 바위섬이 물을 가르는 소리 때문에 들리는 소리가 없었고, 제각기 되돌아오면서 일으킨 물보라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아르고선이 두 섬 사이에서 온전히 벗어날 시간은 넉넉했다. 그러나 배는 두 바위섬이 일으킨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고 말았다. 쉼플레가데스가 부딪친 순간 아르고선 고물의 키다리가 부서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때 맞붙은 이후로 쉼플레가데스는 아주 붙어버려 이 길로 들어서는 헬라스 배를 더는 부수지 않았는데 혹자는 어찌나 세게 부딪쳤는지 아예 붙어서 떨어지지 않게 된 것이라 하고, 혹자는 쉼플레가데스의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은 것을 두 섬의 자살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물건이나 상황의 금기가 깨지면 그것은 더는 금기가 아닌 것이 된다.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풀자 벼랑 아래로 떨어진 스핑크스(Spinx)’처럼, 아르고선의 무사통과로 인해 쉼플레가데스는 충돌하는 섬으로서의 존재감이 없어진 것이니 일리 있는 해석이다. 공포나 두려움의 본질이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닐까?

이아손과 아르고 원정대는 현인 피네우스 조언과 한 마리 비둘기의 활약으로 무사히 흑해에 접어들어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다.

 

9

드디어 아르고 원정대를 실은 아르고선은 목적지 콜키스에 도착했다. 그 사이 주요 원정대원 중 키잡이 퓌토스와 비둘기잡이 이도몬이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었다. 아르고 원정대가 장대한 포부를 안고 파가사이 항구를 떠난 지 근 2년이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는 데 10년을 허비했고, 헤라클레스가 자기의 죄를 씻는 데 12년이나 걸렸으니 2년이면 양호했다.

콜키스는 예부터 시신을 거두어들이는 땅이라고 불리었다. 그만큼 위험한 땅이었다. 그러나 아르고호를 해안에 정박한 이아손은 단신으로 콜키스 왕 아이에테스 궁전으로 향했다. 단도직입적으로 용무를 밝힐 심산이었다.

헤라 여신이 안개를 풀어 대장이 떠난 아르고선을 가려주었는데 어찌나 잘 가렸던지 아르고선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오르페우스가 뜯는 수금 소리만 안개 장막 뒤에서 아련하게 들려왔다.

아이에테스는 먼 서쪽 테살리아의 이올코스에서 손이 왔다는 말을 듣고 마음에 걸리는 데가 있어 왕궁의 현명한 중신들과 용명한 장군들을 불러 모은 뒤 이아손을 맞았다.

이 자리에는 왕을 비롯하여 왕의 맏딸 칼키오페, 둘째 딸 메데이아도 나와 있었다. 메데이아라는 이름에는 온당하게 충고하는 여자라는 속뜻이 있다. 이 메데이아는 왕녀이자 헤카테(Hecate)’ 여신의 사제이기도 해서 요술과 기술에 능하고 사람 보는 눈이 신통했다. 그녀는 이국에서도 마치 제집 안방처럼 당당하게 행동하는 이아손에게 반하고 말았다. 아프로디테와 에로스의 장난기가 또다시 발동된 것이었다.

아이에테스 왕의 요청에 따라, 이아손이 아이에테스 왕에게 입국한 목적을 말하려 하자 메데이아가 나서서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메데이아는 아버지 아이에테스에게 조언했다.

아바마마, 이분이 먼 곳에서 왔다고 하니 우선 뜨뜻한 물과 새 옷과 음식과 술을 베풀어 쉬게 한 연후에 온 까닭을 여쭙는 것이 대접하는 도리일 듯합니다.”

아이에테스는 딸의 온당한 충고에 따르기로 했다. 마침 아이에테스의 궁전에는 헤파이스토스가 팠다는 네 개의 샘이 있었다. 우유의 샘, 포도주의 샘, 향수의 샘, 뜨거운 샘이 이것이다. 시간을 번 이아손이 헤파이스토스가 팠다는 뜨거운 샘의 물로 몸을 닦은 뒤 새 옷으로 갈아입은 것은 마침 아이에테스 왕가의 점심때였다.

메데이아는 아이에테스 왕에게, 이아손을 점심상으로 불러 콜키스에 온 까닭을 물어보자고 했다. 왕이 딸의 말을 좇으니 이로써 아이에테스는 밥상을 함께 한 이아손을 적어도 자기 손으로는 해칠 수가 없게 된 셈이다. 밥상을 함께한 나그네를 죽이는 일은, 제우스를 섬기는 인간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는 짓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자리가 무르익자 이아손은 비로소 자신이 온 목적을 왕에게 아뢰었다.

과거 전하의 사위이셨던 프릭소스는 저희 집안사람입니다. 제 숙부 되시는 이올코스 왕 펠리아스께서 프릭소스의 유해와 황금 모피를 가져올 권리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왕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아이에테스는 속으로 겸상한 것을 후회하면서, 한참을 뜸들이다가 황금 모피를 내놓겠다면서도 조건을 달았다. 이아손이 불을 뿜는 두 마리의 놋쇠 발 황소에 쟁기를 매어 밭을 갈고, 거기에다 카드모스(Cadmos)’ 왕이 퇴치한 저 용의 이빨을 뿌리는 데 성공하면 황금 모피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용의 이빨을 땅에 뿌리면 무장한 병사들이 돋아나 뿌린 자에게 칼을 들이댄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이아손은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아이에테스 왕이 내건 조건을 수락한 다음, 다음 날 다시 오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아이에테스의 왕국을 나왔다.

이날 밤 콜키스의 왕궁에는 잠들지 못하는 여인이 몇 있었다. 아이에테스의 맏딸이자 프릭소스의 부인이었던 칼리오페가 그 하나요, 이아손에게 마음을 빼앗긴 둘째 딸 메데이아가 그 둘이었다. 메데이아의 가슴에는 에로스의 화살이 박혀도 너무 깊이 박힌 탓에, 이아손이 돌아간 이후에도 그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애를 태웠다.

그녀가 아는 한 자신이 이 청년을 위해 손을 쓰지 않으면 이아손은 죽은 목숨이나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자신의 마음을 뒤흔든 이 청년이 자기 앞에서 죽어가게 할 수 없었다.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도와주려면 아버지를 배신해야 할 터라 이아손을 향하는 자신의 마음과 싸웠다. 그러나 메데이아의 이성은 뜨거운 사랑의 불길 앞에서 너무나도 미약했다. 미노스 왕에 반했던 스킬라처럼, 테세우스 왕자에게 눈멀었던 아리아드네처럼, 적장 암피트리온에게 넘어간 코마이토처럼.

날이 밝기 전 메데이아와 이아손은 신들의 도움으로 아무도 모르게 따로 만났다. 헤카테 여신이 가르침을 받아 마술과 요술을 터득하여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약, 산 사람을 죽이는 약도 능히 만들어 낼 수 있는 메데이아의 손에는 마법의 약병과 과거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가 가지고 다녔다던 돌 하나가 들려 있었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의 피를 조금 뽑고, 그 피에다 가져온 고약을 으깨어 발라준 뒤, 아버지 아이에테스 왕의 시험에 나설 방도를 일러 주었다.

이 고약을 몸에 바르셨으니, 오늘 하루 용광로에 들어간다 해도 화상을 입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돌은 불화의 돌이니 이 돌을 던지면 아레스 땅에서 나온 인간들끼리 싸우게 될터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이어서, 메데이아는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게 되면 지체 말고 파시스강 상류로 가라고 일러 주었다. 군사들을 대동하지 말고 혼자 가야 한다고 알렸다. 강 상류의 성스러운 숲속에 있는 용을 만나거든 그곳이 황금 모피가 있는 곳임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또 황금 모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혼자서 용을 굴복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에게 자기의 모든 과업이 성공하면 아르고선을 타고 함께 이올코스로 가기로 약속했고, 메데이아도 이 약속을 굳게 믿었다. 그리고 드디어 새벽닭이 울고 날이 밝았다.

이아손은 원정대원의 반은 아르고선에 남겨두고 나머지 원정대원과 함께, 메데이아가 준 불화의 돌을 가슴에 품은 채 아이에테스를 찾아갔다. 아이에테스는 이미 아레스의 땅이라고 불리는 궁전 앞 공터에 무장한 군사들을 대동하고 나와 아이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국왕은 왕좌에 앉았고 신민들은 산허리를 메우고 앉거니 서거니 했다. 왕좌 앞에는 커다란 쇠우리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두 마리의 아레스의 황소, 그 앞에는 큼직한 쟁기가 한 틀 놓여 있었다.

이아손이 아이에테스 왕 반대편에 무장한 원정대원을 도열시키자 콜키스의 왕은 전에 보지 못했던 병력을 보고 많이 놀랐다. 그것도 하나같이 범 같은 용사들이 아닌가. 그러나 왕은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자 시작해 보아라.”

이윽고 놋쇠 발 황소가 콧구멍으로 불길을 뿜으며 걸어 나오자 길가의 풀이 타들어 갔다. 황소 두 마리가 다가옴에 따라 용광로 안에서 쇳물이 끓는 소리가 났고, 생석회에 물을 뿌린 것처럼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이아손은 담대하게 두 마리 황소 앞으로 나아갔다. 이아손은 황소가 내뿜는 불길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황소의 노기를 가라앉히고는 두려움 없이 벌겋게 달아오른 목을 어루만졌다. 이어서 이아손이 솜씨 있게 황소의 등에 멍에를 채우고는 자신은 쟁기를 잡았다. 그런데도 이아손의 몸은 타지 않았고 머리카락도 그을리지 않았다. 콜키스 사람들은 아연실색했고 그리스인들은 함성을 질렀다.

이아손은 아레스의 황소로 밭을 갈아 고랑과 이랑을 만든 후 아이에테스 왕 앞으로 가서 용의 이빨을 내어주기를 청했다. 아이에테스 왕은 이아손을 가까이 오게 하기가 두려웠던지 양가죽 주머니를 하나 이아손에게 던졌다. 이아손은 자루를 받아 갈아엎은 땅에 고루 뿌리고는 발로 흙을 덮어 용의 이빨을 모두 묻었다.

그러자 곧 땅이 꿈틀거리더니 무장한 병사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뿌린 씨앗의 수대로 병장기를 든 병사들이 쑥쑥 나왔다. 대열을 갖춘 병사들이 창을 이아손을 향하여 겨누고 달려들려고 하자, 이아손은 품 안에 있는 불화의 돌멩이를 그들 사이로 던졌다. 메데이아가 주었던 그 돌이었다. 그러자 병사들은 서로 누가 돌을 던진 것이냐고 따지면서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찌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치명상을 입은 병사들이 픽픽 나가떨어지자, 영문도 모르고 지켜보던 원정대만 좋은 구경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최후의 병사 하나만 남게 되자 이아손은 옆에 있던 원정대원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꺼내어 단칼에 목을 베어 버렸다. 이 마지막 무사가 쓰러짐과 동시에 먼저 쓰러진 모든 병사의 시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0

아레스의 땅에서 승리한 이아손은 원정대원들과 함께 아르고선으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것은 황금 모피를 지키고 있는 용을 잠재우는 일뿐이었다. 그것도 간단했다. 메데이아가 미리 준비해 준 약을 몇 방울 용의 주위에 뿌리면 될 일이었다.

이아손은 메데이아가 시킨 대로 살며시 대원들에게 벗어나 홀로 파시스강을 따라 올라갔다. 이 강 상류에는 콜키스 사람들이 신성한 숲이라고 부르는 아레스의 숲이 있었다. 이아손이 들어가기까지, 아이에테스 왕을 제외하고는 이 숲으로 들어간 사람이 아무도 없다던 숲이었다.

과연 메데이아의 말대로 숲을 지키는 한 마리 용이 입을 벌리고 앞을 가로막는데 그 입이 어찌나 큰지 사람 한 명 정도는 통째로 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아손이 재빨리 약병을 열어 용의 주위에 뿌리자, 용은 그 냄새를 맡고는 노기를 가라앉힌 뒤, 잠시 꼼짝 않고 서 있다가 한 번도 감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그 크고 둥근 눈을 감고 모로 누워 잠들고 말았다.

이아손은 재빨리 잠든 용의 뒤로 돌아가 아름드리나무에 걸려 있는 황금 양털을 내린 뒤, 서둘러 배로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급히 친구들과 함께 아르고선에 올랐다. 물론 메데이아도 함께였다.

아이에테스 왕에게 출항을 저지할 여유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였지만, 그 과정에서 뒤쫓아온 콜키스 군대와 아르고선을 목전에 두고 전투가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아이에테스 왕이 전사하고 말았다. 이로써 이방인의 손에 죽임을 당하리라는 신탁은 실현된 셈이었다.

메데이아가 없었더라면 이아손의 아르고 원정은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아손과 원정대원들은 아름답고 신비한 여인, 메데이아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메데이아는 아름다운 만큼이나 잔인했다.

콜키스를 떠날 당시 아르고선에는 메데이아의 어린 동생, ‘압시르토스(Apsyrtos)’가 같이 타고 있었다. 혹 있을지도 모르는 아버지 군대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메데이아가 붙잡아 온 인질이었다. 메데이아가 예측했던 대로 콜키스군은 군선이라는 군선은 다 동원하여 아르고선을 추격했다. 메데이아는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동생을 죽이고 그 시신을 아홉 조각으로 토막 내어 바다에 버렸다. 콜키스 함선이 승하한 왕의 막내아들 시신을 모아 장례를 치르는 동안 아르고 원정대는 무사히 북방의 콜키스 해안을 빠져나와 테살리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무사히 귀환한 이아손은 지금껏 생사고락을 같이 한 원정대원들과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황금 모피를 펠리아스 왕에게 건네주었는데 그 황금 모피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황금 모피가 소중한 물건이라고는 하나 이아손이 원정대와 함께 그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해 수고한 노력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으리라. 이아손이 진정으로 찾아온 것은 아마 자기 자신이 아니었겠는가.

 

11

황금 모피 이야기는 끝났지만, 이아손에게는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숙부로부터 빼앗긴 왕좌를 찾아오는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펠리아스 왕이 황금 모피를 손에 넣고도 이아손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려달라는 왕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펠리아스 왕은 이아손이 황금 모피를 되찾아 온 것을 축하하는 큰 잔치를 열었다. 이아손은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아버지 아이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아손이 콜키스에 다녀오는 사이 그 자리에 올 수 없을 만큼 아버지 아이손이 너무 늙어버린 것이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에게 염치없는 부탁을 한다.

아내여, 내 그대의 마법으로 오늘 이런 영광을 누리고 있으나, 아직도 마음이 허전하오. 나를 위해 그 마법을 한 번 더 써줄 수 없겠소? 남은 내 수명을 빼내 아버지 수명에다 붙여 주었으면 하오.”

이아손은 이 말을 하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러자 메데이아가 대답했다.

제 마법이 제대로 들어준다면, 그대의 수명에서 빼지 않고도 아버지 수명을 늘릴 수 있을 거예요.”

메데이아는 보름달이 밝은 밤, 산 것은 모두 잠들어 있는 틈을 타서 홀로 일어났다. 고요한 밤, 메데이아는 먼저 별에게 기원하고, 달에게도 기원했다. 그리고 지옥의 여신 헤카테와 대지의 여신 텔로스에게 기원했다. 이러한 여신들이 마법에 쓰이는 식물을 키우기 때문이었다. 메데이아는 숲이나 동굴, 산과 골짜기, 호수와 강, 바람과 공기의 신들에게도 힘을 빌려줄 것을 기원했다.

메데이아가 이렇게 빌자 별들이 한층 더 빛나면서, 날개 달린 용이 끄는 이륜차 한 대가 나타났다. 메데이아는 이 이륜차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세상을 다니며 그 땅에서 나는 갖가지 약초 중에서 필요한 것만을 모았다. 아흐레 밤낮을 약초 찾는데 보내다가, 어느 정도 모으게 되자 두 개의 제단을 만들었다. 하나는 헤카테의 제단이었고 또 하나는 청춘의 여신 헤베(Hebe)’를 위한 것이었다.

메데이아는 이 제단에다 흑양 한 마리를 산 제물로 바치고 우유와 포도주를 제주로 헌작했다. 이어서 메데이아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에게 노인의 생명을 너무 빨리 앗아가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다.

이윽고 메데이아는 시아버지 아이손을 모셔 들이게 하고 주문을 외어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하고는 신선을 모시듯이 약초를 깐 침상에 눕혔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은 물론 잡인을 모두 그곳에서 내보냈다. 부정한 눈이 비법을 보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준비를 마친 메데이아는 머리를 풀고, 불을 붙인 나뭇가지로 산 제물의 피를 휘저으면서 제단을 세 바퀴 돌고, 그 나뭇가지를 제단에다 쌓아놓고 불을 지폈다. 그동안 솥에 넣을 약제가 준비되었다. 메데이아는 가지가지 모은 모든 약제를 솥에 넣고 마른 올리브 나뭇가지로 저으면서 끓였다. 이곳에 들어간 약제로 거북 껍질, 수사슴의 간장, 인간의 아홉 세대를 넘게 산 까마귀 머리 따위도 포함되어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약제를 저었던 올리브 나뭇가지에서 잎이 돋고 올리브 열매가 맺는 기적이 일어났다. 모든 준비를 마친 메데이아는 아이손의 목 부위를 찢어 온몸의 피를 모두 쏟아내고는 입과 상처 구멍을 통에 솥에서 끓인 즙을 부어 넣었다. 그 즙이 모두 몸속으로 들어가자 노인의 흰 머리와 수염은 그 흰 색깔을 버리고 검어지기 시작했다. 창백한 얼굴, 초췌한 기색도 사라졌다. 혈관은 따뜻한 피가 흘렀고, 수족은 활기와 기운으로 넘쳐났다.

무려 40년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아이손은 이름처럼 아이가 되었으니 세상이 뒤집힐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12

그런데 펠리아스의 딸들이 다시 젊어진 숙부 아이손을 보았다. 펠리아스의 딸들은 교활한 아비와 달리 효심이 지극했다. 딸들은 메데이아를 찾아가 자신들의 아버지도 숙부 아이손처럼 젊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메데이아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하면서 전처럼 솥을 걸었다. 그리고 온갖 약초를 넣고 끓인 다음 딸들이 보는 앞에서 늙은 백양 한 마리를 솥에 집어넣은 후 뚜껑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그러자 새끼 양 한 마리가 뛰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기적을 직접 본 펠리아스의 딸들은 아버지를 위해서 길일을 잡아달라고 메데이아에게 간청했다.

메데이아는 약속한 날에 다시 솥을 걸고 불을 피웠지만, 솥에는 흔하디흔한 평범한 물과 소들에게 먹이는 여물이 전부였다. 이윽고 밤이 되자 메데이아는 딸들과 함께 펠리아스 왕의 침실로 들어갔다. 부정 탄다며 호위병을 모두 물린 메데이아의 주문으로 왕은 쿨쿨 잠이 들었다.

딸들은 단검을 빼 들고 침대 모서리에 시립하고 있었다. 딸들은 메데이아가 아버지를 찌르라고 해도 차마 찌를 수가 없었던지 자꾸 머뭇거렸다. 메데이아가 딸들의 우유부단함을 꾸짖자 딸들은 고개를 돌리고 아버지를 마구 찔러댔다.

애들아, 이게 무슨 짓이냐? 아비를 죽이려느냐?”

펠리아스의 말에는 힘도 용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펠리아스가 말을 이으려 하는 순간, 이번에는 메데이아가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도려버렸다. 메데이아는 그러고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지 고깃덩어리가 된 펠리아스의 몸을 가마솥의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어 버렸다.

이렇게 이아손의 숙부를 향한 복수의 과정에도 아내 메데이아의 활약이 있었다. 이아손은 이로써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

 

13

그런데 이올코스의 왕으로 부족했던 이아손은 메데이아와 함께 이웃 나라 코린토스로 옮겨가 살았다. 이아손은 코린토스에 있는 포세이돈 신전에 자신의 젊은 날을 상징하는 아르고선을 바쳤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위해 왕자 둘을 낳고 근 10년 동안은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아들 없이 늙고 병든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이 이아손에게 딸 글라우케를 주겠다고 말하자, 왕의 자리가 욕심난 이아손은 그 나라 공주 글라우케에게 청혼하는 일이 벌어졌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의 배은망덕한 처사에 분개하여 자신의 복수심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하기로 했다. 그 무렵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가 델파이 신전을 찾았다가 돌아오는 길에 코린토스에 잠깐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 메데이아는 아이게우스 왕을 찾아가 약속을 하나 받아냈다. 자신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면 그에게 원하는 아들을 낳아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때까지 아들이 없었던 아이게우스는 이에 응했다.

이렇게 피난처까지 미리 마련한 메데이아는 신들에게 복수를 맹세하고, 신부에게는 선물로 독약을 칠한 웨딩드레스를 보냈다. 보기엔 너무 아름다운 결혼 의상이었으나 글라우케는 옷을 걸치자마자 무서운 불길에 휩싸여 목숨을 잃었다. 그런 다음 메데이아는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낳은 제 자식을 모두 죽이고 궁전에 불을 지를 뒤 용이 끄는 이륜차를 타고 아테네로 도망쳤다. 그렇지 않았다면 메데이아는 이아손 왕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터였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의 이 끔찍한 복수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얼마 후 그는 아르고선이 있는 포세이돈 신전으로 찾아가 아르고선의 갑판 위에서 화려했던 젊은 날을 쓰라린 심정으로 되새기고 있었다. 그런데 낡고 빛바랜 아르고선의 돛대가 우지직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이아손은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돛대를 보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아테네로 도망간 독녀 메데이아는 아테네에서 아직 아들 테세우스를 만나기 전의 아이게우스 왕과 결혼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는 법, 메데이아를 품은 아테네는 평온을 누릴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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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문명을 일으킨 미노스

스킬라, 다이달로스, 이카로스, 테세우스, 아리아드네, 탈로스, 황소 숭배...

 

1

크레타(Creta)는 그리스 남쪽 에메랄드 빛 푸른 바다, 동부 지중해에 둘러싸여 있는 섬이다. 얼핏 날아가는 새 모양처럼 길고 폭이 좁게 생겼다. 이 섬의 원주민은 미노아 인(Minoans)’이라고 불리었다. 미노아 사람들은 황소를 신성한 동물로 숭배하였다. 고고학자들이 오랜 노력 끝에 발굴한 크레타 유적 곳곳에 그 흔적이 여럿 남아 있는데, 그중에는 미노아 인들이 황소 뛰어넘기같은 일종의 운동경기를 했던 자취도 많이 있다.

상상해 보자. 긴장한 빛이 역력한 한 소년이 맨손으로 경기장 안에 있고, 건너편에는 성난 황소 한 마리가 앞발로 거칠게 땅을 긁어대고 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구경꾼들의 함성으로 분위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황소는 당장이라도 튕기듯 돌진해 올 것만 같다. 곧 거친 쇳소리와 함께 황소 앞을 가로막았던 청동 울타리가 올려지면, 소년은 맹렬하게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황소를 뛰어넘어야 한다. 성공하면 우레와 같은 큰 갈채를 받겠지만, 만약 실패라도 한다면 소년은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다. , 어떤가? 독자라면 자신 있겠는가?

황소 뛰어넘기는 신을 경배하는 축제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다. 미노아 인들은 올림포스의 절대자들이 그 경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경기가 끝나면 황소를 제물 삼아 신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은 제사를 올렸다.

한편으로 황소 뛰어넘기 경기는, 소년에서 전사가 되었음을 인증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이면서, 재능이 뛰어난 소년을 전문적인 선수로 발탁하기 위한 오디션 역할을 한 것으로도 보인다. 발탁된 소년은 마치 지금의 프로스포츠 선수처럼 육성되어 민중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누렸을 것이다.

크레타는 비록 농업국이었지만 미노아 사람들은 배를 만드는 기술로도 유명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크레타 해상에는 흉포한 해적들의 출몰이 잦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바다를 지배하는 특출난 민족이 없었기 때문에 해상은 해적들의 앞마당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미노아 왕은, 지중해를 확보해야 다른 나라와 교역할 수 있었으므로 어떻게든 해적을 소탕해야만 했다. 미노아 인들에겐 튼튼한 전함을 만들 능력이 있었고, 왕은 의지가 있었으니 꾸물거릴 필요가 없었다. ‘미노스(Minos)’ 왕은 크고 작은 다양한 종류의 전선을 축조하고, 동시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막강한 해군을 길러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지중해 일대를 지배한 최초의 해양 왕이 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바다에서의 패권은 육지에까지 미쳐 크레타는 당시 가장 강력한 국가로서 주변국을 호령하기에 이르렀다.

미노아라는 명칭도 바로 이 미노스 왕의 이름을 딴 것이다. 자 그럼, ‘크레타(미노아) 문명의 시작을 연 미노스 왕을 쫓아 신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2

수소의 몸을 한 제우스(Zeus)’와 눈망울이 큰 소녀 에우로페(Europe)’가 크레타에 발을 디디자, 어두웠던 섬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타고 온 수소가 여느 황소가 아님을 알았다. 그런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수소는 건장한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그 둘은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 이러한 사랑의 결실로, 당대를 넘어 후대까지 많은 그리스인으로부터 숭배를 받은 미노스 왕과, 공정하고 정직했던 라다만티스, 그리고 막내 사르페돈이 태어났다. 제우스는 에우로페와의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때 자신이 변신했었던 아름다운 수소를 밤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황소자리이다.

그렇다, 크레타 문명의 아버지 미노스는 위대한 신 제우스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이 가족관계를 대외적으로 유지하기가 곤란했는지 어머니 에우로페는 당시 크레타의 지도자 아스테리오스(Asterios)’와 정식으로 결혼하였고, 마침 아스테리오스 왕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므로 삼 형제 중 장남인 미노스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 과정이 뭐 그렇게 썩 질서 있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에우로페의 두 아들 미노스와 라다만티스 형제는 어릴 때부터 티격태격 다툼이 잦았다. 막내 사르페돈은 두 형제와 나이 차이도 제법 있었거니와 유약하여 이 다툼에 끼어들지 않았다. 미노스와 라다만티스는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사안까지 거의 의견이 일치한 적이 없었고, 사사건건 서로 반목하고 헐뜯었다.

그러던 중 둘이 아주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던 그들이 동시에 한 소년에게 마음을 두게 된 것이다. 때는 왕위계승권을 둘러싸고 크레타 왕국이 형과 동생, 두 진영으로 나누어져 한창 물밑 암투가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처음에 아스테리오스 왕은 형제 중 가장 정직했던 라다만티스를 후계자로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엔 형을 지지하는 세력이 판세를 뒤집었고, 미노스는 연적이자 정적인 동생 라다만티스를 크레타에서 추방하였다. 그 후 동생은 다시는 크레타섬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그리스 보이오티아 땅으로 피신했다가 그 삶을 다하자, 지하 세계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을 심판하는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미노스는 의붓아버지 아스테리오스 왕을 계승하여 크레타 왕국을 통치했다. 그러나 미노스 왕의 진짜 정적은 다름 아닌 어머니 에우로페였다. 에우로페는 그 옛날 수소의 등에 업혀 크레타섬으로 넘어올 때의 그 순진한 처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지혜롭고 자존심이 강했으며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스스로 극복하는 것에 낯설지 않은 강인한 여성이었다.

에우로페는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면서, 나랏일에 자주 간섭하여 감 놓아라, 배 놓아라참견을 일삼았다. 일종의 강력한 정치적 견제세력으로 그 역할에 충실했던 것인데, 그럼에도 미노스 왕은 어머니와의 정면충돌은 가능하면 피하려고 노력했다. 충돌은 고사하고 더 나아가 미노스 왕은 억지로라도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 에우로페에게는 아버지 제우스가 사랑의 선물로 주었던 세 가지 무시무시한 선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 가지 선물 중, 첫 번째는 절대 목표를 빗나가는 일이 없는 창이었다. 두 번째는 아주 빠르고 날쌔면서도 성질이 사납고 고약한 사냥개였다. 그리고 마지막 선물이 아주 유용하면서도 신기한 것이었는데, 거대한 청동 인간 탈로스(Talos)’가 바로 세 번째 선물이었다. 청동 인간이라니? 그렇다면 최초의 만들어진 인간’, 최초의 안드로이드인 셈이다.

사실 청동 인간은 제우스가 절름발이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Hephaistos)’에게 명하여 세상에 나오게 된 성물이었다. 이 청동 로봇의 몸속에는 목부터 발목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관이 있었는데, 이것이 사람의 혈관 노릇을 했다. 이 혈관을 통하여 신의 피 이코르가 흐르는데, 탈로스의 발뒤꿈치에 박힌 못을 뽑아내면 그 구멍으로 이코르가 흘러나와 작동을 멈추게 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못을 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곳에 접근하는 것이 사실상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탈로스는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크레타의 도시 외곽과 해변을 순찰하면서 해안에 정박하려는 침략자들의 배를 물리치곤 했다. 크레타 왕국의 입장에서는 이만한 수호신도 없었다. 한번은 사르데냐 사람들이 크레타섬에 침입하여 불을 지르며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 그때 청동 인간 탈로스가 불 속으로 뛰어들어 제 몸을 벌겋게 달군 뒤, 적들을 하나씩 끌어안아 모두 태워 죽였는데, 미노스는 이때의 광경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청동 로봇이 어머니 에우로페의 소유였으니 미노스로서는 어찌 어머니에게 대놓고 거역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어차피 어머니 소유의 모든 것이 크레타의 자산이므로 결국은 자기 것이 될 텐데 무리수를 둘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두 모자간의 긴장 관계가 유지되는 중에도 크레타 왕국은 나날이 번성하고 있었다. 제우스는 미노스에게 나라를 잘 통치할 수 있도록 공정한 법률을 내려주었다. 크레타 시민들도 자신들의 왕이 제우스 아들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몹시 자랑스러워했으므로 미노스가 제시한 법률도 아주 공정한 것으로 생각하여 믿고 따랐다.

태양신 헬리오스(Helios)’는 크레타섬에 따스한 햇볕을 내려 열매와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거기에 더해 헬리오스는 자기의 딸이 미노스의 아내가 되는 것까지 흔쾌히 허락하였다. 당시 태양 숭배라는 것이 지중해 주변국에서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미노스가 태양신에게 해마다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리고, 푸짐하게 제삿밥을 올린 것을 어여삐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미노스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딸 파시파에(Pasiphae)’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 글라우코스안드로게오스’, 아리아드네(Ariadne)’파이드라(Phaedra)’를 낳았다. 올림포스의 최고 존엄인 제우스와 태양신 헬리오스의 축복까지 받았으니 미노스 왕과 그 자손들은 과연 평탄한 꽃길만 걸었을까?

 

3

신화는 그렇게 밋밋하지 않다. 그리스 신화에서 그 존재가 미약하여 자주 거론되지 않는 두 아들 이야기부터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미노스와 파시파에의 첫째 아들 글라우코스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어느 평범한 날 오후 어린 왕자는,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궁전 한 모퉁이에 있는 꿀단지를 발견했다. 본능에 따라 손을 담가 꿀맛을 본 어린아이는 그 달짝지근함에 반해 꿀단지 더 깊은 곳으로 손을 내밀다가 그만 단지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세 살 남짓한 아이가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기가 어려울 만큼 단지가 컸던 것일까, 아니면 그 달콤한 유혹을 적정선에서 뿌리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을까, 어린 왕자는 그 달콤함 속에서 죽고 말았다.

미노스 왕은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이 오랫동안 보이지 않자 왕자를 찾기 위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지만,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결국, 미노스 왕은 델포이 신탁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미노스 왕은 신탁이 일러준 대로 점술에 능한 아르고스의 예언자 폴리에이도스(Polyeidos)’에게 사라진 왕자를 찾아줄 것을 의뢰했다. 아니, 명령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엉겁결에 왕가에 고용된 사설탐정이 된 폴리에이도스는 홀로 조용한 창고에 들어가 추리를 시작했다. 해결하지 못하면 뜻하지 않게 황천길에 들어설 수도 있는 문제여서 골똘히 집중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고,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도 유분수지,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현장에 답이 있는 법, 생각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었다. 폴리에이도스는 왕자의 요람이 있는 침실부터 뛰놀던 궁전 안팎 여기저기를 다니며 작은 실마리를 찾으려고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올빼미 한 마리가 궁중으로 날아드는 것을 보았다. 이상한 생각이 든 그는 올빼미가 내려앉은 곳을 향해 잰걸음으로 달려갔다. 과연 그곳에 꿀단지가 있었고, 폴리에이도스는 그 안에서 이미 심장이 멈춘 왕자를 발견하였다. 왕자가 사라진 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꿀 덕분이었는지 시신은 거의 부패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폴리에이도스는 왕자를 찾아내는 것까지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나, 이미 숨을 거둔 왕자의 생명을 되살릴 수는 없음을 미노스 왕 앞에 고백했다. 그러나 잡을 지푸라기가 없었던 미노스 왕은 막무가내였다.

아니다. 그대가 왕자를 찾았으니 아이의 생명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반드시 왕자를 살려내 짐을 기쁘게 하라.”

이렇게 해서 폴리에이도스는 싸늘하게 식은 왕자의 주검과 함께 정식 장례 전 시신을 보관하는 장소에 감금되었다. 그런데 감금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뱀 한 마리가 -소리를 내며 기어 나와 죽은 왕자의 몸으로 다가갔다. 폴리에이도스는 그 뱀을 가차 없이 밟아 죽였다. 왕자의 시신까지 훼손된다면 자신은 정말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디서 왔는지 다른 뱀이 죽은 뱀 위에 어떤 잎 넓은 풀을 가져다 놓자 그 뱀이 다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폴리에이도스는 죽은 글라우코스를 똑같은 풀로 회생시켰다. 하지만 그 후로 이 왕자가 어떻게 됐다는 것인지, 더 있을 법도 한데 글라우코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신화에서 좀 더 비중 있는 역할을 한 것은 다른 아들 안드로게오스였다. 안드로게오스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미노스 왕은 세상을 경험하게 하고자 아들에게 정성스럽게 작성한 추천장을 들려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Aegeus)’에게 보냈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크레타의 궁전에 전해졌다. 아테네에 잘 있어야 할 아들 안드로게오스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아이게우스 왕이 사냥을 하러 나갈 때 안드로게오스를 데려갔는데 그 사냥에서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는 말도 들리고, 아테네에서 열린 운동경기 대회에서 안드로게오스가 아테네 사람을 제치고 우승하자, 이걸 시기하여 아테네 왕이 아들을 죽여버렸다는 소문도 들렸다. 마라톤 평원에서 미쳐 날뛰던 황소를 잡으러 나갔다가 미친 황소의 뿔에 치여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연유가 무엇인지 간에 죽은 것만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아들의 죽음에 몸에 있는 모든 털이 곤두설 정도로 격분한 미노스 왕은 크레타섬에 있는 병력을 모두 끌어모아 아테네를 향해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몸소 최정예 함대를 이끌고 아테네 땅으로 가서 아직 약소국이었던 아테네를 인정사정없이 마구 짓밟았다.

당시 아테네는 설상가상으로 역병까지 돌아 많은 시민이 죽거나 기력을 잃어 제대로 된 응전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아테네 왕은 델포이 신탁의 뜻대로 미노스 왕이 요구하는 모든 요구를 조건 없이 수락한다는 아주 굴욕적인 협정을 맺고 항복했다. 변명의 여지 없는 완벽한 패배였다.

이어지는 미노스 왕과 아테네 이야기는 자세히 후술하기로 하고, 크레타로 돌아오는 귀향길에 있었던 또 다른 싸움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으니 살펴보자.

 

4

아테네 땅에 한껏 분풀이하고 돌아오는 길에, 미노스 왕에게는 꼭 손을 봐야 할 나라가 또 있었다. 다른 주변국과 달리 사사건건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며 조공 바치는 것도 거부하고 있던, 알카토오스라는 나라였다. 더군다나 그 나라 왕 니소스(Nisos)’는 자기의 아들을 죽게 한 아테네 아이게우스 왕의 동생이었으니 그 나라를 혼내줄 명분은 충분했다.

그런데 이 니소스 왕의 정수리 백발 한가운데에는, 신의 은총인지 저주인지 모를, 보라색 머리카락이 한 줌 있었다. 그의 머리에 이 머리카락이 남아 있는 한, 어떤 정복자도 그 왕국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말하자면 니소스 왕에게 보라색 머리카락이란 마치 삼손(Samson)’의 긴 머리카락과도 같은 것이었다. ? 그런데 삼손의 그 머리칼, 결국에는 사랑하는 연인 데릴라의 손에 잘리지 않았던가?

싸움이 시작된 이래 여러 달이 지났으나 양국의 전세는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채 지루한 소강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쪽은 성을 포위한 채 어떻게 해서든 무너뜨리려 하고, 다른 한쪽은 성에 의지한 채 끈덕지게 버티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이렇게 장기전이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 니케(Nike)’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양쪽 진영의 하늘을 번갈아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알카토오스 왕국 성벽에는 제법 높은 탑이 하나 있었고, 니소스 왕에게는 딸 스킬라가 있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음악의 신 아폴론(Apollo)’이 황금으로 만든 수금을 내건 이후로, 그 벽돌 하나하나에 아름다운 선율이 스며들어 있다는 성벽이었다. 스킬라에게는 이 성벽 위의 탑으로 올라가 이 성벽에다 돌멩이를 던지며 거기에서 나는 소리를 즐기는 취미가 있었다.

스킬라는 미노스 왕과 자기 아버지의 군대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동안에도 습관처럼 이곳으로 올라가 가까이서 벌어지는 전투 상황을 구경하고는 했다. 이러는 동안 스킬라는 적장 미노스 왕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와 장난꾸러기 신 에로스(Eros)’가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다녀간 것은 그때였다.

스킬라의 눈에 비친 미노스는 한마디로 완벽한 인간이었다. 그녀가 보기에, 미노스가 깃털 장식 투구를 쓰고 있으면 투구가 미노스에게 그렇게 잘 어울려 보일 수가 없었고, 미노스가 번쩍거리는 청동 방패를 들면 그 방패가 미노스에게 그렇게 딱 어울려 보일 수가 없었다. 그때 스킬라의 눈에는 미노스 왕이 누더기를 걸치고 깡통을 들고 있어도 좋아 보였을 것이고, 스킬라의 귀나 코에는 왕의 방귀마저 그 소리는 아름다운 선율이요, 그 냄새는 향긋한 꽃내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왕의 모든 것이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미노스가 민얼굴을 드러내고, 흰 거품을 뿜는 말의 고삐를 잡아채는 것을 보면 스킬라는 그만 현기증으로 쓰러질 지경이었으니 말을 더해 무엇하랴. 이 모두가 미노스 왕을 향한 불타는 듯한 사랑 때문이었다. 타오르는 갈증 때문이었다.

스킬라는 나이 어린 공주에 지나지 않았으나 할 수만 있다면 용감하게 적진을 뚫고 들어가 미노스 왕을 만나고 싶었다. 급기야 그녀는 크레타 진영의 야영 막사를 바라다보고 이렇게 중얼거리기에 이르렀다.

미노스 왕은 아들의 죽음을 복수하려고 이 전쟁을 일으켰다지. 그에게는 명분도 있고, 막강한 군대도 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질 게 분명해. 우리 운명이 그렇다면 사랑을 위하여 내가 성문을 열어주는 것이 낫지 않은가. 더 이상의 살육을 막고, 저분이 피를 흘리는 일이 없게 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이렇게만 하면.”

스킬라의 마음은 이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스킬라는 아버지의 왕국을 미노스에게 바치고 전쟁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생각하면 쉽게 행동에 옮길 수 없었다. 마음이 하루 밤낮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이쪽저쪽을 오고 가다가 마침내 사랑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성문을 열어야 하나? 적진에 편지를 묶은 화살을 날려야 하나? ! 아버지의 보라색 머리카락!

스킬라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속절없이 운명의 밤이 찾아 왔다. 스킬라는 이 평화로운 시간을 틈타 살며시 아버지의 침실로 숨어 들어가 기어코 하지 말아야 할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딸이 아버지의 머리로부터, 아버지의 목숨과 운명이 걸린 머리카락을 훔친 것이다. 데릴라가 천하장사 삼손의 머리카락을 잘랐던 것처럼, ‘코마이토암피트리온(Amphitryon)’을 위해 아버지의 황금빛 머리카락을 잘라냈던 것처럼.

보라색 머리카락을 손에 넣은 스킬라는, 곧바로 적진을 뚫고 들어가 미노스 왕 앞으로 갔다. 왕은 적국의 공주 스킬라가 이 야밤에 자신을 찾아온 것을 보고는 짐짓 놀랐다. 스킬라는 망설임 없이 아버지 니소스 왕의 보랏빛 머리카락을 두 손 모아 바치며 미노스 왕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이 저에게 죄를 짓게 했습니다. 제가 드리는 사랑의 맹세와 이 보랏빛 머리카락을 받으시고, 이 머리카락이 단순한 한 줌의 머리카락이 아니고 제가 바치는 제 아버지의 머리인 줄 알아주소서.”

그런데 스킬라의 말을 듣고 있던 미노스 왕의 얼굴은 서서히 일그러지고 있었다. 미노스 왕은 매우 공정한 사람이어서 공정왕이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사람이다. 얼마나 공정했냐 하면, 죽어서도 하데스(Hades)’의 나라에서 재판관 노릇을 할 정도로 공정했다. 공정한 미노스는 공정하지 못한 스킬라가 저지른, 천륜을 저버린 전대미문의 죄악에 기겁하고는 스킬라를 크게 꾸짖었다.

이 시대에 너같이 더러운 것이 있었구나. 신들이시여, 대지는 저것을 내치시고, 어떤 땅 어떤 바다도 저것 에게는 허락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스킬라 너 잘 들어라, 내 아버지 제우스 신의 요람이었던 크레타섬에 너같이 더러운 것이 들어오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미노스 왕은 그렇게 고국과 아비를 배신한 스킬라를 내치고, 운명이 정해준 그대로 니소스 왕의 궁전으로 들어가 니소스 왕을 굴복시켰다. 니소스 왕의 정수리에 있던 문제의 그 머리카락은 당연히 보이지 않았다.

공정한 정복자 미노스 왕은, 정복당한 적들에게 갖가지 합당한 조치를 한 연후에, 자신이 거느린 함대에 돛을 올릴 것을 명령했다. 출항 명령을 받은 함대는 아쉬울 것 하나 없이 차갑고 싸늘한 뒷모습만 남기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미노스 왕은 자기가 크게 꾸짖은 스킬라의 행동을 자신의 사랑하는 딸, 아리아드네가 적국의 왕자 테세우스(Theseus)’에게 똑같이 저지를 줄을 이때만 해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 스킬라는 먼 바다로 나가는 군함을 반은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스킬라는 군함들이 파도를 타는 것을 본 다음에야, 자신의 철없는 행동이 가져온 수치스러운 결과를 뼛속 깊숙이 받아들였다. 죽은 아비를 살릴 수도 없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수 없는,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스킬라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폭발시켰다.

어디로 가느냐, 이놈아! 그대에게 승리를 안겨준 나를 두고, 무정한 이여! 내 조국은 이제 망하고 말았다. , 아버지 니소스 왕이시여, 저에게 벌을 내리소서!”

허공으로 흩어지는 자신의 외침을 혼자 감당하면서 스킬라는 바다에 풍덩뛰어들었다.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른 스킬라의 얼굴은 눈물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물기로 덮여 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멀어지는 함대 쪽을 향하여 헤엄쳐 가기 시작했다. 증오에 찬 열정의 힘이었던가, 단숨에 크레타의 함대까지 헤엄쳐 간 스킬라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미노스 왕이 타고 있는 우두머리 배의 뱃전에 착 달라붙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서 왔는지 물수리 한 마리가 가까운 하늘에서 이를 내려다보고는 미끄러지듯 내려와 그 뾰족한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뱃전에 매달린 공주의 손등을 찍었다. 물수리는 다름 아닌 보라색 머리카락이 잘려나간 후 미노스 왕에게 최후를 맞이하고 물수리로 몸이 뒤바뀐 스킬라의 아버지 니소스 왕이었다.

스킬라는 고통에 못 이겨 뱃전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러나 스킬라는 물 위로 떨어지지 않았다. 뱃전을 놓는 순간 부드러운 미풍이 스킬라를 하늘로 감아올린 것이다. 깃털처럼 하늘로 오른 스킬라는 그제야 제 몸에 하얀 깃털이 돋아난 것을 알았다. 그녀도 아버지처럼 새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물수리가 된 것이 아니라 그녀는 희디흰 백로가 되었다.

물수리는 오늘날에도 옛날에 품었던 앙심을 버리지 못했는지, 하늘 높이 날다가 백로를 발견하면, 부리와 발톱으로 백로를 사정없이 공격한다고 한다. 풀리지 않는 옛 시절의 한을 풀어보려는 몸부림처럼 말이다.

무사히 크레타로 돌아온 미노스 왕은 함대를 항구에 정박시키고, 떠날 때 했던 서약에 따라 백 마리의 소를 아버지 제우스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5

그런데 크레타 군이 아테네와 일전을 치르기 전, 미노스 왕가에 남부끄럽고 황당한 일이 있었다. 사실 미노스 왕이 약소국 아테네를 치게 된 명목상의 이유는 아들의 복수였으나, 겉으로 말하지 못할 다른 이유도 있었더랬다.

여러분은 미노스 왕이 아우인 라다만티스와 크레타의 왕권을 두고 다툴 때를 기억할 것이다. 둘이 다투다가 형 미노스의 미움을 사 동생 라다만티스가 크레타에서 쫓겨나 보이오티아로 밀려나고, 결국 형 미노스가 선왕의 뒤를 이어 크레타의 왕의 자리에 올랐던 일 말이다.

사실, 이 과정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이 개입하여 미노스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미노스가 왕좌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기도에 응답하여 그에게 파도 거품으로 만든 크고 빛깔 고운 황소를 보내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미노스는 이 소가 탐이 났던지 약속대로 포세이돈 신에게 제물로 바치지 않고 왕궁에 딸린 화려한 외양간에 꼭꼭 숨겨두었다. 대신 들판에서 어슬렁거리던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소를 제물로 올려 바다의 신을 속이려 들었다.

마땅히 받아야 할 경배를 받지 못한 것에 화가 난 포세이돈은 이 일을 그대로 두고 볼 아량 있는 신이 아니었다. 가장 낯뜨거운 방법으로 미노스를 욕보이기로 작정한 것이다. 바다의 신은 크레타의 왕비 파시파에로 하여금 자신이 미노스에게 보내준 늠름한 황소에게 비정상적인 감정을 품게 함으로써 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왕비 파시파에는 궁전의 외양간에 있는 이 잘생긴 황소를 볼 때마다 품지 말았어야 할 상상을 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하다가 부질없음을 깨닫고 그만두었어야 했다. 파시파에도 그러려고 하긴 했다. 그만두어야지 수차례 허벅지를 꼬집으며 다짐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파시파에의 정욕은 그 무렵 크레타에 머물던 아테네 출신의 손재간 좋은 대장장이 다이달로스(Daidalos)’에 의해 실현되었다. 다이달로스가 누구던가? 독특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수많은 건축물을 만든 당대 최고의 재간둥이 아니던가? 쿠마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 시칠리아의 아라본 강 저수지, 셀리노스의 증기 목욕탕 등을 만든 장본인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가 일단 마음먹으면 만들지 못할 것이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양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는 파시파에의 얼굴을 보다못해, 다이달로스는 작정하고 파시파에가 듣기 좋은 말을 했다.

여왕이 저 황소에게 느끼는 감정을 저 황소도 똑같이 여왕에게 느끼도록 할 요량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비밀 작업장에 틀어박혀 며칠 밤낮으로 뚝딱거리더니 왕비 파시파에 앞으로 기품마저 느껴지는 암소를 한 마리 대령했다. 파시파에는 속으로 왜 갑자기 암소?’라고 생각하며 다이달로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살아 숨 쉬는 진짜 암소가 아니라 다이달로스에 의해 만들어진 이른바 기계 암소였다. 다이달로스가 말해 주지 않으면 그 사실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든 암소였다. 다이달로스가 실제와 똑같은 암소를 만들었다면 아마 누구라도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이달로스는 인공 암소의 속을 파내어 그 안에 파시파에가 들어갈 수 있게 하였다. 엉덩이 부분에는 적당한 크기의 구멍이 나 있었다. 파시파에의 두 팔은 암소의 앞발 자리에, 두 다리는 암소의 뒷발 자리에 꼭 맞게 들어갔다.

일러준 대로 바퀴 달린 암소 안으로 파시파에가 들어가자 다이달로스는 이 암소를 끌고서 포세이돈의 황소가 있는 외양간으로 갔다. 그러고는 살며시 암소만 소 우리에 밀어 넣고서는 자리를 피했다. 굳이 이후에 일어날 장면까지는 보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그것이 왕비에 대한 당연한 예의라고 여긴 것이다. 이윽고 황소는 이 암소를 진짜 암소인 줄 알고 외양간이나 저 들판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교접을 이루었다.

그리고 열 달이 지나 달이 찰 만큼 차자 파시파에는 왕실이 발칵 뒤집힐 정도로 흉측한 핏덩어리를 출산했다. 그것은 울음소리도 여느 사람의 아이와는 완전히 달랐다. 이때 태어난 것이 바로 머리는 황소 대가리이고 그 아래는 인간인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이다.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의 황소라는 뜻이다.

미노타우로스는 곧바로 미노스 왕과 크레타의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포악할 뿐만 아니라 꼭 먹어도 사람고기를 즐겨 먹었기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아내의 간통으로 태어난 그런 흉측한 괴물이 이 나라를 활보하게 놔둔다면 미노스 왕은 두고두고 세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미노스 왕은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절대, 도저히 저 괴물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결단코!

 

6

이야기의 흐름상 파시파에와 불미스러운 짓을 저지른 이 대담한 황소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앞서 말했듯이 미노스 왕에게 화가 많이 나 있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분이 덜 풀렸는지 이 소에게 한가지 임무를 더 주었다. 때는 고대 그리스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Herakles)’가 자신의 처자식을 죽인 죗값을 치르기 위해 저 유명한 열두 가지 과업을 한 창 치르고 있을 때였다.

포세이돈은 자신이 미노스에게 보낸 황소를 파시파에와 그렇고 그런 관계로 만들어 놓고 곧바로 이 황소를 미치게 만들어 궁전의 외양간을 뛰쳐나오게 하였다. 그리고는 미친 황소가 크레타섬의 논밭을 인정사정없이 짓밟게 하여 백성들의 모든 원망이, 모든 재앙의 원인인 미노스 왕으로 향하게 손을 썼다. 정작 미치고 팔딱 뛰고 싶은 것은 미노스 왕이었는데도 말이다.

미노스가 아르고스 왕에게, 성미 거친 짐승 잘 잡기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천하장사 헤라클레스의 파견을 요청한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