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

수상자

국적

문학 분야

1901

쉴리 프뤼돔

프랑스

시인

1902

테오도어 몸젠

독일

역사가

1903

B. 비외른손

노르웨이

소설가, 시인, 극작가

1904

프레데리크 미스트랄
J. 에체가라이 이 에이자기레

프랑스
스페인

시인
극작가

1905

H. 솅키에비치

폴란드

소설가

1906

조수에 카르두치

이탈리아

시인

1907

러디어드 키플링

영국

시인, 소설가

1908

루돌프 오이켄

독일

철학자

1909

셀마 라게를뢰프

스웨덴

소설가

1910

파울 폰 하이제

독일

시인, 소설가, 극작가

1911

모리스 메테를링크

벨기에

극작가

1912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독일

극작가

1913

R. 타고르

인도

시인

1914

수상자 없음

 

 

1915

로맹 롤랑

프랑스

소설가

1916

V. 폰 헤이덴스탐

스웨덴

시인

1917

카를 겔레루프
H. 폰토피단

덴마크
덴마크

소설가
소설가

1918

수상자 없음

 

 

1919

카를 슈피텔러

스위스

시인, 소설가

1920

크누트 함순

노르웨이

소설가

1921

아나톨 프랑스

프랑스

소설가

1922

J. 베나벤테 이 마르티네스

스페인

극작가

1923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아일랜드

시인

1924

부아디수아프 레이몬트

폴란드

소설가

1925

조지 버나드 쇼

아일랜드

극작가

1926

그라치아 델레다

이탈리아

소설가

1927

앙리 베르그송

프랑스

철학자

1928

시그리 운세트

노르웨이

소설가

1929

토마스 만

독일

소설가

1930

싱클레어 루이스

미국

소설가

1931

에리크 악셀 카를펠트

스웨덴

시인

1932

존 골즈워디

영국

소설가

1933

이반 부닌

소련

소설가

1934

루이지 피란델로

이탈리아

극작가

1935

수상자 없음

 

 

1936

유진 오닐

미국

극작가

1937

로제 마르탱 뒤 가르

프랑스

소설가

1938

펄 벅

미국

소설가

1939

프란스 에밀 실란페

핀란드

소설가

1943

수상자 없음

 

 

1944

J. V. 옌센

덴마크

소설가

1945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칠레

시인

1946

헤르만 헤세

스위스

소설가

1947

앙드레 지드

프랑스

소설가, 수필가

1948

T. S. 엘리엇

영국

시인, 비평가

1949

윌리엄 포크너

미국

소설가

1950

버트런드 러셀

영국

철학자

1951

페르 라게르크비스트

스웨덴

소설가

1952

프랑수아 모리아크

프랑스

시인, 소설가, 극작가

1953

윈스턴 처칠

영국

역사가,웅변가

1954

어니스트 헤밍웨이

미국

소설가

1955

할도르 락스네스

아이슬란드

소설가

1956

후안 라몬 히메네스

스페인

시인

1957

알베르 카뮈

프랑스

소설가, 극작가

1958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수상거부)

소련

소설가, 시인

1959

살바토레 콰시모도

이탈리아

시인

1960

생 종 페르스

프랑스

시인

1961

이보 안드리치

구 유고슬라비아

소설가

1962

존 스타인벡

미국

소설가

1963

게오르기오스 세페리아데스

그리스

시인

1964

장 폴 사르트르 (수상 거부)

프랑스

철학자, 극작가

1965

미하일 숄로호프

소련

소설가

1966

슈무엘 요세프 아그논
넬리 작스

이스라엘
스웨덴

소설가
시인

1967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과테말라

소설가

1968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일본

소설가

1969

새뮤얼 베케트

아일랜드

소설가, 극작가

1970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소련

소설가

1971

파블로 네루다

칠레

시인

1972

하인리히 뵐

독일

소설가

1973

패트릭 화이트

오스트레일리아

소설가

1974

에이빈 욘손
하리 마르틴손

스웨덴
스웨덴

소설가
소설가, 시인

1975

에우제니오 몬탈레

이탈리아

시인

1976

솔 벨로

미국

소설가

1977

빈센테 알레익산드레

스페인

소설가

1978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미국

소설가

1979

오디세우스 엘리티스

그리스

시인

1980

체슬라프 미우오슈

미국

시인

1981

엘리아스 카네티

불가리아

소설가, 수필가

198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롬비아

소설가, 언론인, 사회비평가

1983

윌리엄 골딩

영국

소설가

1984

야로슬라프 세이페르트

구 체코슬로바키아

시인

1985

클로드 시몽

프랑스

소설가

1986

올레 소잉카

나이지리아

각색가, 시인

1987

조지프 브로드스키

미국

시인, 수필가

1988

나기브 마푸즈

이집트

소설가

1989

카밀로 호세 셀라

스페인

소설가

1990

옥타비오 파스

멕시코

시인, 수필가

1991

나딘 고디머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설가

1992

데렉 월컷

세인트루시아

시인

1993

토니 모리슨

미국

소설가

1994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일본

소설가

1995

시머스 히니

아일랜드

시인

1996

비수아바 심보르스카

폴란드

시인

1997

다리오 포

이탈리아

극작가

1998

주제 사라마구

포르투갈

소설가

1999

귄터 그라스

독일

시인,소설가

2000

가오싱젠[高行健]

프랑스*

소설가·극작가

2001

V.S. 나이폴

영국

소설가

2002

임레 케르테스

헝가리

소설가

2003

존 맥스웰 쿳시

남아프리카 공화국

소설가, 비평가, 번역가

2004

엘프리데 옐리네크

오스트리아

시인, 소설가

2005

해럴드 핀터

영국

극작가

2006

오르한 파묵

터키

소설가

2007

도리스 레싱

영국

소설가

2008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프랑스

소설가

2009

헤르타 뮐러

독일

 

2010

마리오 바가스 르로사

 

 

2011

토마스 트랜스트뢰머

 

 

2012

모 얀

 

 

2013

앨리스 문로

 

 

2014

패트릭 모리아노

 

 

2015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경찰박물관이 2005년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에서 경찰박물관에서는 '경찰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 관람수기 공모전'을 연다고 한다.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에 위치한 경찰박물관은 10년 동안 경찰 가족은 물론 어린이를 비롯한 많은 시민들에게 경찰을 올바로 소개하고 친근한 경찰상을 구현하는데 많은 역할을 해왔다. 초기 건립 멤버로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매우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공모접수 : 9.30.~10.20. 24:00까지 온라인 접수>

 

처음에 '경찰박물관'을 만들어보겠다고 모인 TF팀 대부분은 실상 이쪽 방면으로는 문외한들이었다.(문화제학과를 전공한 사람도 1명 있긴 있었다) 정말 '無에서 有를 창조한다'는 심정으로 꽉 찬 1년 동안 동분서주 바쁘게 돌아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관심 속에 2005년 10월 14일 경찰 창설 60주년을 기념하여 드디어 오픈했을 때는 감격스럽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몇년을 더 경찰박물관에서 보냈다. 오픈은 했는데 아직 미흡한게 있었던 것이다. 훈령을 만들고, 학예사를 채용하고, 도슨트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등 박물관 운영 전반에 걸쳐 기반을 다지는데 또 한 1년 걸린 것 같다. 그리고 개관 1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추억의 경찰 영화제'의 기억도 생생하다. 그런데 벌써 10년 이라니...

 

당시 영화제를 마치고 썼던 후기를 줄여서 게재한다.

 

 

1. 들어가며

'경찰영화 발굴...', 이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3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때는 영화제라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경찰이 나오는 영화를 골라 영상관에서 정기적으로 상영하자는 다소 소박한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청장님의 아이디어추억의 경찰영화 페스티발로 구체화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긴 기왕에 할 거면 한번 제대로 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했다.

관장님 이하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본격적으로 영화제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 5월 중순, D-day712일로 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배우 등 영화인 섭외는 정 경사, 영화제 관련 포스터·배너 등의 제작은 학예사, 초청장 제작 등 대내외 홍보는 배 경사, 오찬 및 다과회 준비는 이 실무관, 영화 선정 및 영상편집은 나, 그리고 총괄 지휘는 관장님이 하는 것으로 임무도 정해졌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멋지게 행사를 치르는 일이 당면과제가 된 것이다.

200668. 몇 번의 산고 끝에 기본 계획서의 청장님 결재가 떨어졌다. 기간은 712일부터 714일까지 3일간으로 하고 첫날에 개막식을 하는 것으로 큰 틀을 정했다. 초점은 개막식에 맞추어 졌는데 당일 행사는 식전 다과회로 시작해서 신규자문위원 위촉, 청장님 인사말, 내빈축사, 영화인 대표인사, 영상물 상영 순으로 구성했다. 기간 중 상영될 영화의 선정은 5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구분하여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를 하루에 두 편씩 상영하기로 했다. 가자! 경찰박물관!

 

2. 상영 영화의 선정 및 편집

도대체 경찰영화제를 한다는데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이것이 이번 영화제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보고 영화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나도 영화를 꽤 본다고 본 편인데 아무리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도 경찰이 나오는 영화라면 기껏해야 93년 작 투캅스가 생각날 뿐이라 답답하던 차에 정 경사가 어디서 수소문했는지 '청춘극장'이라는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는 한국영화 마니아를 통해 경찰소재 영화 33편을 입수했다. 55년 작 피아골부터 시작해 생소한 6, 70년대 영화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자 그런데 이걸 언제 다 본담? 일단 빨리 시작해야 어떤 영화를 상영할지, 또 어떤 부분을 편집해 개막식에 소개할 지가 결정될 터였다.

 

(1) 눈알이 빠질 정도로 봤다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영화들은 대부분 오래된 VHSDVD로 옮겨 놓은 것이라서 그 화질이나 음질이 썩 좋지 않았다. 첫 작품인 피아골은 그래도 처음 시작하는 각오로 인내를 가지고 볼 수 있었지만 나머지 영화들은 어떤 것은 혹독한 고문과도 같았다. 피아골6.25 직후 지리산에 남은 빨치산들의 이념대립과 사랑을 다룬 영화다. 50년대 흑백영화치곤 영화가 나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60년대 작품인 장군의 수염지금은 죽을 때가 아니다처녀뱃사공부터 70년대의 무수한 경찰활극영화들을 보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눈은 빠질 지경이었고 머릿속과 귓전에는 텔레비전의 잡음 소리가 맴돌았다(이러다가 미치는 게 아닐까?). 최근영화 강력 3까지 총 33편의 영화에 러닝타임만 약 3,300분에 달했다.

 

(2) 영상편집

이제 이 영화들을 엑기스만 뽑아 15분 이내로 단축해야 한다.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주요장면을 뽑아 정리하면서 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있는 배우들의 얼굴이 부각되도록 편집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산 프로덕션'과 함께 일하게 되었지만 예산이 부족한 관계로 PD를 쓸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직접 편집할 부분을 선정하여 업체에 통보하면 프로덕션에서는 연결만 해 주는 방식을 택했다. 1, 2, 3, 4차 편집을 거치면서 타이틀, 음악, 자막 등이 업그레이드되고 어느 정도 틀이 잡혔을 땐 꽤 그럴싸했지만 그 과정에서 담당기사와는 참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하지만 어쩌랴. 일을 할 땐 때로는 전투적일 필요도 있는 것을...

 

(3) 상영영화의 선정

팀원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 3일간 상영할 영화는 피아골('55)홍콩에서 온 마담장('69)경찰관('78)성야('88)인정사정 볼 것 없다('99)와일드카드('03)로 정해졌다.

선정기준은 각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봉사이미지, 활약상 등 경찰을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상영용이므로 화질 및 음질이 양호한 것으로 골랐다. 이로써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6편의 영화가 결정되었다.

 

3. 영화제의 연기

직원들도 각자 맡은 임무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상물 편집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고, 신규자문위원으로 영화배우 안성기 씨를 위촉하기로 잠정결정을 내리고 섭외까지 완료되었다. 초청장, 포스터 등도 시안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인쇄에 들어가기 위한 최종 결정만 남겨둔 상태였다. 초청대상자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고, 박물관 내부를 무엇으로 꾸미고, 오찬은 어떤 메뉴로 어디서 할 것인지 등 한참 정신없을 때 들려온 소리는 말 그대로 맥 빠지는 것이었다. 한미 FTA협상 때문에 영화제가 연기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상황은 계속해서 좋지 않은 쪽으로 흘렀다. 안성기 씨는 스크린 쿼터 사수를 위해 FTA반대 집회에 참가하면서 종로경찰서에 입건되기까지 했다. 허탈했다. 영화제는 기약 없이 뒤로 연기되었다. 진행되던 모든 일은 일단 올스톱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고민은 다시 영화제 개최시기를 정하는 문제로 돌아와 있었다.

원점이었다.

 

4. 다시 뛰다

과연 어느 시기에 영화제를 개최할 것인가는 한동안 최고의 고민거리였다. 몇 번에 갈등 끝에 개관 1주년과 병행하여 개최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으나 구체적인 날을 받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개관일이 1014일이므로 개관일이 포함된 10월 둘째 주나 셋째 주가 명분에 부합되지만 국정감사, 부산국제영화제, 경찰의 날 등 내외부적으로 장애물이 포진하고 있어 어려웠다. 결국 다소 늦추어진 감이 없지 않으나 112일부터 4일까지 영화제를 개최하기로 결정되었다.

한 번의 연기로 시간의 여유가 생기자 영화제는 참신한 아이디어의 추가로 더욱 내실 있게 변화되어 가고 있었다. 보다 재미있게 보다 화려하게 보다 충실하게 옷을 갈아입었던 것이다. 호루라기 연극단의 마술과 경찰악대장의 색소폰 연주 등 축하공연, 조각품의 전시, 영화제에 참석할 수 없는 영화인이나 유명인의 영상메시지를 담아 개막식에 소개하는 것, 영화인들에 대한 감사패 증정, 영화인들의 캐리커처 사인회, 경찰복제 퍼레이드 등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새로 추가된 것 중에 내게 부여된 임무는 호루라기 연극단의 마술공연 및 영상메시지 제작이었다. 경찰영화제호가 다시 닻을 올린 것이다. 그래, 다시 뛰는 거다.

 

5. 영상메시지 제작

 

(1) 대상자의 선정

영상메시지 아이디어는 사실 관장님의 아이디어였다. 추석연휴기간 동안 OCN을 보시다가 생각해내셨다니 쉴 때도 편히 쉴 수 없는 책임자의 고통이란... 어찌되었건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건 내일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5명에서 8명 정도 참석할 수 없는 유명인사 중에서 30초 정도 인터뷰를 따서 편집하면 그도 하나의 작품이 되리라.

그즈음 애초 자문위원으로 위촉예정이었던 안성기 씨로부터 부산국제영화제 및 영화 화려한 휴가촬영으로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다는 통보가 왔고 문화관광부 장관도 일정 때문에 참석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문화관광부 장관과 안성기 씨는 영상메시지 공략 대상 1순위가 되었다. 관장님께서는 자꾸 요즘 한창 잘 나가는 봉준호 감독도 접촉해 보라고 말씀하신다. 이명세 감독, 영화배우 송강호와 정진영도 후보에 올랐다. 이렇게 일단 대략의 대상자가 정해졌고 여기에 여배우 한두명을 더하면 좋은 그림이 될 것이었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 촬영을 할 것이냐와 당사자들의 승낙을 어떻게 얻고 약속을 잡느냐 하는 것이다.

 

(2) 섭외

후보자들과 촬영 약속은 말 그대로 각개격파였다. 먼저 안성기 씨와 약속을 위해 매니저와 통화를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으로의 역할과 영화 화려한 휴가의 촬영일정 때문에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뿐이었다. 매니저와의 수차례의 통화 끝에 조르고 졸라 드디어 1015일 일요일 부산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을 때는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날짜는 정했으되 시간을 정할 수 없다는 매니저의 말은 불평할 수도 없었다. 당일 오전이나 되어야 시간을 정할 수 있다니 산 넘어 산이었다.(열차표를 예매해야 하는데... ㅜㅜ)

안성기 씨와의 약속이 정해진 1010일 경 늦은 밤. 나는 영화 괴물의 해외 홍보차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봉준호 감독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있었다. 살인의 추억이라는 걸출한 경찰소재 영화를 만들었고 현재 가장 잘 나가는(?) 봉준호 감독을 섭외해서 촬영에 성공한다면 한결 경찰영화제의 격이 높아질 것은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영화광으로서 괴물의 성공에 대하여 기쁘다는 말과 함께 경찰영화제의 취지를 설명 드리고 간곡하게 인터뷰에 응해 주실 것을 부탁하는 글을 쓰면서도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워낙에 바쁜 사람이 아니던가?

문화관광부 장관님과 영화배우 정진영 씨와의 촬영약속도 확정되진 않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안성기 씨와의 약속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3) 카메라를 들고

촬영은 김00, 00 실무관과 동행하기로 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장비과에서 빌려온 방송용 카메라, 가정용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를 준비하고 각자 하나씩 맡기로 했다. 더 좋은 녹음을 위해 무선 마이크까지 빌려놓은 상태로 준비완료, 일단 159시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시간약속은 잡히지 않은 상태였고, 전날 친구 아들 돌잔치에서 마신 술이 덜 깬 상태였다. 역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부산에 있는 동기 조 주임에게 길 안내를 맡길 요량으로 연락을 취해 1230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데 10시 경 안성기 씨 매니저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후 240분에 부산국제영화제 본부에서 보자는 것이었다.(다행이다. 연락이 오지 않을 까봐 걱정 많이 했는데...)

부산의 날씨는 서울보다 훨씬 따뜻했다. 해운대에 도착하니 영화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것이 이것저것 카메라에 담고 싶은 걸 참느라고 혼났다. PIFF 본부 건물에서 카메라 세팅을 마치고 안성기 씨를 기다리며 영화제 풍경을 관망하면서 생각했다.

 

보름 후에 있을 우리 경찰영화제도 이렇게 화려하고 풍성하게 열려야 할텐데...’

 

안성기 씨가 도착했을 때는 다시 카메라를 점검하고 각자의 임무를 확인한 후였다. 대배우를 카메라 앞으로 안내한 다음 경찰박물관과 경찰영화제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고 미리 준비해간 인터뷰 자료를 같이 확인한 후 촬영이 끝날 때까지 6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그토록 자연스럽고 성실하게 NG한번 없이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니 과연 국민배우라는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기념사진 한 장 찍을 겨를도 없이 바로 옆 회의장으로 이동하는 안성기 씨의 모습은 어릴 때 우상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도 사인 한 장 받지 못한 것은 아직도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첫 번째 촬영인 만큼 긴장도 많이 했지만 아마추어가 찍은 것치곤 잘된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이제 서울로 돌아갈 것이 아득했다. 저녁 7KTX를 타면 밤 11시가 넘어서야 서울에 도착할 것이었다.

 

(4) 긴급 상황 발생과 계속되는 촬영

다음 날, 휴관일 이었지만 국감대비 차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 언제나처럼 제일 먼저 이메일을 확인해본 순간 말 그대로 긴급 상황이 발생해 있었다. 기대하지 않고 있던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6일만에 답장이 와 있었던 것이다. 15일 밤 11시가 지나서야 수신된 걸로 되어 있었다. 서둘러 내용을 확인해 보니 오늘 1615시에 부산에서 시간을 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에 어제 귀국한 모양이었다.

이를 어쩐담? 일단 내가 갈 수는 없고... 어렵게 승낙을 받았는데, 필요 없다고 할 수도 없고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다. 믿을 수 있는 것 조주임 뿐이었다. 어제 안성기씨 촬영 때 같이 갔었던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부랴부랴 전화를 하니까 조주임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겨우겨우 통화가 되었는데 야간근무 후 잠을 자고 있었단다. 후다닥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자 착하디착한 조주임이 만자 제쳐두고 도와주겠다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부산지방청 과학수사계, 홍보계 등을 수배해서 급히 무비카메라 등 장비를 확보하고, 인터뷰에 필요한 자료를 이메일로 보낸 다음 다시 한 번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었다. 그래서 모든 준비가 완료된 것이 오후 1시 무렵, 9시부터 정말 숨 가쁘게 돌아갔다. 이제 조주임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후 330분 임무완수를 알리는 조주임의 목소리가 마치 천사의 목소리 같았다.

이어서 102014시에 충무로에서 영화배우 정진영 씨, 15시 정부종합청사에서 이용섭 행정자치부 장관님, 102514시 강남 영화촬영장에서 송강호 씨, 17시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님, 1026일 드라마 황진이양수리 촬영장에서의 하지원 씨 인터뷰까지 바쁘게 돌아다닌 것 같다. 촬영이 거듭될수록 여유가 생기고 노하우가 늘어갔다. 이때부터 영화배우들과의 기념촬영과 사인은 덤이었다.

 

(5) 영상메시지 편집

영화배우 남상미 씨까지 총 8명의 영상메시지 촬영을 마치고 최종편집을 위해 1028일 스튜디오를 찾았다. 총 촬영분량이 약 20분가량 되었는데 영상메시지에 할애된 시간은 2분에 불과했으므로 이것을 자연스럽게 편집하는 것이 마지막 관건이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FC엔터테인먼트 백실장과 촬영해오는 것을 적절하게 편집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만족할 때까지 테이프를 수십 번 돌려보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았지만 2분에 맞추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3분까지 시간을 확보하고 다시 반복해서 보는데 안성기, 정진영, 봉준호 감독 촬영 분은 잡음이 심해 애를 먹었다. 하는 수 없이 잡음이 너무 심한 정진영 씨 촬영 분은 빼기로 결정했는데 마치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이 들었다.

이틀 후 편집을 마친 영상메시지 DVD가 도착했다. 관장님도 만족하시고 무엇보다도 과장님께서 화끈하게 OK 사인을 주셨을 때는 보람을 느꼈다.

 

7. D-1

이제 행사는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호루라기 연극단의 마술공연 팀이 영상관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기마경찰대는 도열 위치를 확인하고 돌아갔고, 색소폰을 연주하기로 한 경찰악대 유경사도 영화 엑소더스의 삽입곡 ‘This Land is Mine’을 멋지게 연주하고 있다.

오후 3시경에는 행사안내를 맡기 위해 동원된 10명의 동료들 교양이 있었고 이어서 총무계 동원 팀들을 위한 구체적인 임무부여가 있었으며 개막식 리허설을 통해 손발을 맞추었다. 전시장 곳곳에서 영화제를 알리는 포스터와 경찰영화의 배너, 현수막 따위 등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고, 경찰박물관 개관 1주년과 경찰영화제를 위한 이기현 작가의 조각품들도 그 위용을 뽐내며 전시되어 있었다. 오찬장 테이블 자리배치까지 새벽 2시 직원들의 체력은 이미 고갈된 상태로 오로지 정신력 하나로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8. D-데이 : 날이 밝았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그러나 아직 깜깜했다). 3시간 덩도 눈을 부치고 박물관에 도착한 것이 새벽 6, 부랴부랴 샤워를 한 후 행사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서 오늘 챙겨야 할 것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사회자 최병서 씨가 사용할 시나리오, 동원자 배치표, 오찬장 배치표, 주요 내빈들의 차량번호 및 연락처, 그리고 오늘 상영할 영화의 리플릿과 갑자기 맡게 된 대언론 준비자료 등등. 그러는 사이 관장님이 도착하시고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친 후 최종 리허설이 있었고, 속속 동원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하더니 그때부터는 상황이 정신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 경사는 레드카펫을 깔기에 분주했고, 배 경사는 영화인들 캐리커처 전시에 여념이 없었다. 다른 직원들도 각자 자기 영역에서 한판 푸닥거리를 하고 있었으리라. 그러는 동안 과장님이 도착하시어 미비점을 지적하며 동분서주하시는데 엄하기가 호랑이와 같았다. 경찰기마대가 도착하고 이어서 복제퍼레이드가 배치되는 중에 경찰악대가 1층에 자리 잡았다. 이곳저곳을 빠짐없이 참견하고 다니다가 여기서 권주임! 저기서 권주임! 부르는데 어찌하랴, 몸이 하나인 것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한 두명씩 초청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하고 1층에서 김실무관이 코르사주와 명찰을 달아드리는 동안 일일이 참석자를 확인하느라 정신없는데 기자들은 기자들대로 난리다. 11시가 다 되어서 영화배우 박중훈 씨를 행사장으로 안내하고 나서야 가쁜 숨을 몰아쉴 수 있었는데 그것도 잠시, 기념품을 챙기기 위해 또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러는 중에도 행사장은 잘 진행되고 있는지 조바심이 나서 혼났다. 중간 중간에 행사장 소식이 들리는데 영상에서 빵구가 났다는 등 뒤숭숭한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1부가 끝날 시간이 15분이나 지났는데도 오찬장으로 올라가지 않아 뭐가 문제가 있긴 있구나하고 생각했지만 이어서 들리는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한숨을 돌리게 했다. 그리고 그 후의 진행사항은 더 이상 더하지 않아도 웬만하면 짐작하리라. 그날 하루를 기술하기에는 기억만으로도 숨이 가쁘다.

 

9. 나가면서

행사는 끝났다. 일단 개막식은 끝났다는 말이다. 그 날은 맥이 풀릴 겨를도 없이 각 언론사의 취재전화가 끝까지 괴롭혔지만 큰 산은 넘었다. 지금 생각하면 경찰박물관 직원들 모두 대단한 일을 했다. 청장님의 말씀대로 에서 를 창조했다. 그건 어느 특출난 한사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경찰박물관의 팀워크의 결정체였다. (경찰조직 내에서는) 아무도 도전하지 못했던 일들을 우리는 이루었다. 그 여파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언론보도를 접하고 전화를 하는 지인들, 주간지의 인터뷰 요청과 각 일선 경찰서의 문의 전화, 그리고 경찰영화제를 주제로 한 청장님의 격려 편지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이번 영화제의 성과에 대해 칭찬을 해주신다.

2006년이 우리 9명의 박물관 팀에게는 전설로 남을 것이다. 언제 어느 자리에 있던 창경 이래 최초로 영화제를 성황리에 개최했다는 것은 자랑으로 남을 것이다. 그때 지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2006년 가을은 행복했다. 함께해서 더 행복했다고.

 

가끔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고 옛 전우들과 연락을 하면서 보다 세련되게 변모한 경찰박물관을 만난다. 곧 경찰박물관을 이전할 계획이라는 말도 들린다. 아무쪼록 한 때 열정을 쏟았었던 경찰박물관이 계속 국민의 사랑을 받기를 바라면서 올해 10주년 행사도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기원한다. 

 

 

p.s. 추억의 경찰영화제 당시 각종 배너들을 소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신을 볼 줄아는 사람

 

우리는 남의 단점을 찾으려는 교정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남의 단점을 찾으려는 사람은 누구를 대하든 나쁘게만 보려 합니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나쁜 면을 갖게 됩니다.


 

남의 나쁜 면만 말하는 사람은 언젠가 자신도 그 말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남의 좋은 면, 아름다운 면을 보려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진가를 찾으려 애써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보면 감동하며 눈물을 흘리고 싶을 만큼의

맑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남의 좋은 점만 찾다 보면 자신도 언젠가 그 사람을 닮아 갑니다.

남의 좋은 점을 말하면 언젠가 자신도 좋은 말을 듣게 됩니다.


참 맑고 좋은 생각을 가지고 나머지 날들을 수놓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코끝이 찡해지는 감격을 가질 수 있는

티 없이 맑은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그의 장점을 보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많이 칭찬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말을 할 때마다 좋은 말을 하고, 그 말에 진실만 담는

예쁜 마음의 그릇이 내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최복현의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친구라는 소중한 선물


인생이라는 먼 길을 여행할 때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사귀게 된다.

내 곁에 계속 남는 친구도 있고 떠나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친구들이 내 곁을 떠날지라도

우리의 우정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친구는 나에게 신선한 출발을 제공해 주었다.

친구는 빛을 보여주고 희망을 주었다.

감동을 주었고 내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친구는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주었고

내가 할수 있다는 것을 믿어주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들로 나를 깨닫게 해주었다.


내가 친구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친구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친구가 내게 준 우정을 지키는 것이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


오늘도 나는 우리의 우정이 지속되고

더 아름답게 자라나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커넬 배들라니-

 

 

 

내 친구들...  언제쩍 사진인지도 가물가물하다. 행색들로 봐서는 다들 장가가기 전이니 꽤 오래된 추억이다. 멋진 넘들. 이번 추석 전날, 오랜만에 다 모이기로 약속했다. 흰머리도 생기고 배도 불룩 나왔겠지만 만나면 그때 처럼 왁자지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웃을테지... 보고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8월 13일 '포스터 이야기'를 처음으로 포스팅 하기 시작한 이후 오늘 벌써 스무 번째가 되었습니다. 이번 회가 '시즌 1' 마지막회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보내 주신 많은 분들의 관심에 대해서 감사말씀 드립니다. 조금 쉬었다가 더 재밌는 '포스터 이야기' 시즌 2로 찾아 뵙겠습니다.

 

마지막회는 명절도 가깝고 해서 모두들 편안하게 감상하실 수 있는 애니메이션 포스터만 모아 봤습니다. 주로 '월트 디즈니'사의 만화영화입니다. 저와 비슷한 연배거나 형님, 삼촌뻘 되는 분들은 과거 텔레비젼에서, 극장에서 많이 접했던 영화들일 겁니다. 요즘처럼 세련된 3-D 애니메이션은 아니었지만 우리들의 동심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영화들로 기억됩니다.

 

아무쪼록 고향 다녀오시는 길 편안하시고 풍성한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꾸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