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에 산지 2년째. 대부도에 다녀올때마다 '동춘서커스' 천막을 지나치면서 어린 시절 구경했던 서커스 생각이 얼핏 얼핏 떠올랐다. 그것은 아주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진하고 화려하게 분장한 곡예사들, 천막안의 흙바닥과 왁자지껄한 구경꾼들, 익살스러운 사회자...

 

지난 달 마지막 수요일에 할아버지 기일에 형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동춘서커스' 이야기가 튀어 나왔다. 조카들과 함께 구경하고 왔는데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공연이었다면서, 안산에 살면서 아직 못봤다니 더 추워지기 전에 꼭 다녀오라고 한다. 사실 몇달 전인가 집사람도 우리 애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던 차였으므로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후 4시 30분 공연을 보기로 했다.

 

공연보러 가는 길, 설레는 마음은 다섯 살 꼬마보다 그 아빠가 더 했던 듯 싶다. 공연장은 생각보다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로얄 좌석에 자리를 잡은 후 공연 시작을 알리는 활기찬 멘트와 함께 암전, 그리고 스모그..., 드디어 첫 공연이 시작되었다. 10여명 남짓의 청소년들이 떼로 나와 모자묘기를 선보인다. 경쾌한 모자 저글링이 끝나자 이번에는 여성들로만 구성된 그룹이 의자 쌓기 묘기를 보여준다. 이어서 '비천'이란 이름의 플라잉 쇼, 두개의 거대한 링이 달린, 마치 풍차를 닮은 구조물에서 펼치는 아슬아슬한 회전 묘기, 균형잡기, 링 통과하기, 묘기 발레, 봉 묘기, 가면 바꾸기 등등 '우와~'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아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신 "저 형들 사람 맞아?"하고 놀란다. 또 "왜 동물들은 안나와?"하고 묻는다. 아이가 보는 동화책에서는 코끼리며, 곰, 물개, 원숭이 따위의 동물들이 서커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니 당연한 의문이었으리라. 그러고 보니 서커스의 감초라 할 수 있는 삐에로도 없었다.

 

90년 전통이라는 '동춘서커스', 팜플렛을 보니 첫머리에 '태양의 서커스'에 도전한다고 당찬 포부를 밝히고 있다. 몇 해전, TV에서 본 그 세계적 서커스 수준의 아트서커스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당장은 어려운 목표인지는 몰라도 반드시 허황된 목표라고는 생각되지는 않는다. 공연자들이 모두 젊고(10살이 갓 넘은 것 같은 아이도 있었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공연의 수준도 기대 이상이었다. 또한 미소가 떠나지 않던 그 표정들이, 때로는 너털 웃음이 이 친구들 '즐기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오니, 비록 약간의 실수도 있었지만 기분 좋다.

 

표받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 친구들 다 우리나라 아이들인가요?" 아저씨 왈, 80%는 중국 국적이란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조금은 아쉬움. 중국 동포로나마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여전히 아쉽다. 꿈을 이루기를 바란다. 다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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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하고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한 적이 있다. 마음도 울적하던 차에 과 선배와 합이 맞아 즉흥적으로 결정한 출가였다. 90학번이었던 선배는 당시 내게는 다소 생소한 '재즈' 마니아였는데 음주가무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유머도 풍부해서 재미있는 기억이 많다. 문제는 그의 생활습관. 낮과 밤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했고 강의실이나 도서관보다는 '재즈빠'에서 그를 찾는 것이 빨랐을 정도로 괴짜였다.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휴대폰도 나오기 전인 때였다. 당시 모토롤라 제품의 '삐삐'를 가지고 있었는데 자정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메세지가 떴다. 대게는 무슨 무슨 빠의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는데 걸어보면 선배가 술에 취한 듯 음악에 취한 듯 헷갈리는 말투로 응답한다. '00빠야, 형 심심하다.', '여기 바텐더 죽여준다. 로데오 거리 00빠로 와라', 'DJ랑 2:2 미팅 하기로 했다. 빨리와' 등등. 가보면 선배는 벌겋게 달아오른 낯빛으로 미모의 바텐더와 수다를 떠는데 주로 '재즈'음악에 대한 토론 내지 잡담이다.

 

처음 몇 주 동안은 호기심반 재미반으로 부르는 족족, 선배와 '빠'의 영업이 끝날때까지 낯선 밤의 문화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밤에 눈떠있는 것이 익숙치 않았던 나에게는 그런 생활이 오래 갈 수 없었다. 제대하고 부족한 학점도 채워야 했던 나로서는 선배처럼 자체 휴강도 언감생심이었던 것이다. 결국 선배의 부름에 거역하기 시작했고 자취 생활도 4개월로 마감하게 되었으며 '재즈'의 추억은 '발담금질' 정도로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지난 9월 19일 가족과 함께 대부도 유리섬미술관에서 열린 재즈보컬리스트 [윤희정과 함께하는 글래스 &재즈‘Glass &Jazz) 음악회]를 다녀 왔다안산시와 유리섬미술관이 민·관 합동으로 개최하는 음악회였는데 대부도를 국내외 재즈 음악 애호가와 관광객들에게 관광코스로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고 한다.

 

 

 

처음엔 '윤희정'이 누군가 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까 이 가수 인지도가 대단하다. 아내도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므로 대부도 칼국수도 먹을겸 이 낯선 '재즈'의 세계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가는 도중 재즈에 미쳐 있던 대학시절 00선배가 계속해서 불쑥불쑥 등장하는 것을 느꼈다. '그 양반, 지금 뭐하고 있을까?'

 

차려진 야외무대는 소박했지만 공연은 화려하고 묵직했다. 유리조형 작가들의 유리공예 시연으로 시작한 공연은 자연스럽게 재즈 무대와 어우러졌다. CEOJ 밴드의 오프닝 연주가 흐르는 사이 육중한 체격의 윤희정씨가 무대에 등장하자 하늘엔 어둠이 내리고 조명기구가 밤하늘을 수놓았다. 박수가 있었고 첫곡 'It don't mean a thing'의 반주와 함께 윤희정씨의 거칠면서도 매력적인 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다섯살 아들놈은 적응하기 힘든가 보다. 하긴 머릿속에 '터닝 메카드'만 있는 아이에게 강요하기에는 '재즈'가 그리 쉬움 음악은 아니니까. 이어서 흐르는 'Over the rainbow', '세노야', 'It's only papermoon'을 비롯한 여러 곡들은 아들과의 작은 전투로 인해 집중하기 어려웠다. 결국 백기를 든 건 나였다. 공연장에서 잠시 벗어나 아들 요구대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아들의 체력을 방전시킨 다음 다시 좌석에 앉았을 때는 특별손님 개그우먼 김미화씨의 무대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재치있는 입담과 함께 두 곡이나 직접 부르기도 했다. 윤희정씨로부터 사사받은 노래 솜씨는 관객들의 호응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은 것 같았다.)

 

'I'm a fool to want you', 'Tennessee Walts', 'I live the lord'까지.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무대는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밤하늘을 혼자 지키고 있던 초승달이 더욱 밝고 선명한 자태를 뽐낼 쯤 마지막 앵콜곡으로 공연은 끝났다. 마지막 곡의 제목은 모르겠다. 들썩거렸던 객석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만큼 나지막하면서도 슬픈 느낌의 곡, 긴 여운을 주는 곡이었다. 

 

여전히 난 '재즈'를 잘 모른다. 즐겨 듣지도 않을 뿐더러 공연장에 와보는 것도 내생애에 처음이었다. 대학 때 잠시 맛본거 이외에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우상,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재즈 선율이 가끔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던 기억이 전부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윤희정과 친구들'의 공연은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 되었다. 이번 경험은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 분명하다. 좋은 음악, 무엇보다도 가족과 함께 만든 시간이어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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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8일에 있었던 '통해야 콘서트'를 가족과 함께 보고 왔다. 기독교 방송에서 매년 개최하는 콘서트라는데 이번 콘서트는 '안전한 나라, 행복한 사회'라는 주제로 소방관, 경찰관, 보건의료 종사원 등을 초청해서 진행되었다.

 

바쁜 일상 속에 1년에 한번 갈까말까하는 콘서트, 아내가 더 좋아한다. 아내는 특히 유리상자의 광팬(?)인데 이번 공연에 출연한다니까 얼굴빛부터 환해졌다. 정동하, 마마무, 여자친구 등 가창력 있는 가수부터 아이돌까지 다양한 가수들의 라이브 무대를 즐겼다.

 

'친구야 너는 아니', '멀어진다', '거위의 꿈'을 부른 정동하의 무대가 좋았다. 다섯살배기 아들도 제일 좋았단다. 부활의 보컬에서 이제 솔로로 활동하는 그의 노래를 듣기는 처음이었다. [불후의 명곡]에서는 남의 노래만 불러서 이렇게 좋은 본인 노래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해인 수녀의 시에 곡을 붙혔다는 '친구야 너는 아니', 이 노래 듣기 좋다.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은 아니지만 음악이라는게 정말 신기하기는 하다. 고목같은 감성에도 물기를 주니 기회생길때마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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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은근이 내리던 지난 7월 24일 안산 M락페스티발 현장인 안산시 대부도 바다의 향기 테마파크에 다녀왔다.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과 같은 국내 유명 밴드 뿐만 아니라 '노엘 겔러거와 하이 플라잉 버즈' 같은 세계적인 뮤지션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하루종일 내린 비로 행사장은 진창이 되고 옷과 신발을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수만의 청춘들이 발산하는 열기는 날씨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culture shock!'

 

그날의 메인 공연은 전날까지는 듣도 보도 못한 '노엘 겔러거와 하이 플라잉 버즈'였다. 처음 듣는 그들의 노래가 낯설지 않을 정도로 듣기에 편했다. 전체적으로 비교적 잔잔한 선율에 노랫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노엘 겔러거의 건조한 음색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공연 막바지에 접어 들자 도심 한 가운데 홀로 방치된 비문명인처럼 엄청난 '문화충격'을 받았다. 그날 마지막 곡은 'Don't look back in anger'. 반주가 시작되자 2만여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면서 흥을 타더니 가수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른바 '떼창'이었다. 나와 나랑 직업도 갖고 나이도 엇비슷한 채00만 장승처럼 나무토막처럼 눈만 휘둥그래 뜬 채 어색하게 서 있었다. 어느 공연장에나 볼 수 있듯이 앞에 있는 열성팬들 일부만의 모습이겠지 생각하며 뒤를 돌아봤다. 앞에서서 뒤통수만 보여주던 관객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2차 충격을 받은 것은 그때였다. 내 바로 뒤의 사람부터 공간의 맨 끝에 있는 사람들 까지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각양각색의 입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따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을 보니 도대체 이 밴드가 어떤 밴드인지 궁금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만큼이나 대중문화와 멀어져 있으며 특히, 젊음의 문화와 동떨어져 있는지 느낄수 있었다. 의식 한켠에는 이 정도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잘생기고 예쁜 아이돌 그룹이나 적어도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국내외 유명 밴드여야 한다는 근거 없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이다. '윤도현 밴드'나 '스콜피온스'처럼. 그런데 이 얼마나 대책도 답도 없는 생각인가. 이미 노엘 겔러거는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절대적 추앙을 받고 있는 아티스트 였던 것이다. 다른 세상에서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갖고 살던 나같은 '이방인'에게나 생소할 뿐이다. 어쨌거나 그날 이후 난 노엘 겔러거와 하이 플라잉 버즈의 팬이 됐다.

 

인터넷에는 이미 그날 그들의 공연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관객들의 '떼창' 역시 생생하게 들린다. 무대의 화려함도 그대로다. 그 날 느꼈던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린다. 살아 있다. 가끔 일상의 일탈은 새로운 활력이 됨을 다시 한 번 절감했던 좋은 날이었다.

 

 

 

 

 * 올해로 6회째를 맞은 밸리록페스티벌. 총 80여 팀의 국내외 아티스트 참여

 

노엘 토머스 데이비드 갤러거(Noel Thomas David Gallagher, 1967년 5월 29일 ~)는 영국 록 밴드 오아시스의 전 주요 작곡가이자 리드 기타리스트이며 때때로 보컬리스트로도 잘 알려진 영국의 뮤지션이다. 맨체스터 버니지에서 그의 남동생인 리암 갤러거와 자라며, 노엘은 13살에 수습 기간동안 다일 로버트슨으로부터 기타 레슨을 받았다. 노엘은 건축 회사에서의 일련의 어중간한 일들을 하다가 1988년 맨체스터 출신의 밴드인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로디이자 기타 테크니션으로 합류한다.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투어 동안 그는 남동생인 리암이 (오아시스라는 이름을 갖기 전의 이름인) The Rain이라는 자기만의 밴드를 만든 것을 알게 된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 노엘은 그의 동생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아 훗날 그들의 창조적인 방향으로 가득차게 되는 곡들을 쓰며 빠르게 지배하였다.

몇 년 안에 오아시스는 그들의 데뷔 앨범인 《Definitely Maybe》(1994)로 이른 성공을 얻게 된다. 노엘은 오아시스가 계속하여 많은 평론들과 상업적인 성공을 즐기는 동안 브릿팝 운동의 중심을 떠맡았다. 그의 거리낌 없는 의사 표현은 그를 "원로 정치인"과 같은 평판을 갖게 해 주었고, 이에 NME는 그를 "록 음악계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이 때의 밴드 경력은 그들의 두 번째 앨범인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1995)와 브릿팝 밴드 동료인 블러와의 라이벌 관계로 요약할 수 있다. 브릿팝이 소멸하고 난 이래로 노엘은 오아시스의 정규 앨범 4개를 더 냈다. 2009년 8월 28일, 파리공연 직전 남동생 리암과의 말다툼 이후에 그는 밴드를 떠났다. 2009년 10월 23일, 노엘 갤러거는 그의 솔로 경력을 쌓을 의도를 확실시하였고, 이후 노엘 갤러거스 하이 플라잉 버즈(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를 결성하였다.

특히 브릿팝이 정점을 찍는 동안 오아시스 활동은 난기류로 얼룩져 있었다. 그는 리암과 몇 차례의 충돌이 있었고, 갤러거 형제의 싸움과 과격한 라이프스타일은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을 매번 장식했다. 그러나 그는 브릿팝의 선두주자로 흔하게 여겨졌다. 한 때 NME는 많은 브릿팝 밴드들(쿨라 셰이커, 오션 컬러 씬, 캐스트를 포함한)의 성공에 노엘의 영향이 있었다고 말하며, 그들을 "노엘락(Noelrock)"으로 칭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노엘의 작곡 능력을 높게 평가하며, 조지 마틴은 노엘을 '그의 세대에서 가장 훌륭한 작곡가'라고 표현하였다.

- 한국어 위키백과 -

 

 

 

Don't Look Back in Anger Oasis |

Slip inside the eye of your mind,
Don't you know you might find, a better place to play.
You said that you'd never been,
But all the things that you've seen, will slowly fade away.

So I'll start a revolution from my bed, 'cause you said the brains I had went to my head.
Step outside, summertime's in bloom.
Stand up beside the fireplace, take that look from off your face.
You ain't ever gonna burn my heart out.

And so, Sally can wait. She knows it's too late as we're walking on by.
Her soul slides away; but don't look back in anger, I heard you say.

Take me to the place where you go, where nobody knows, if it's night or day.
But please don't put your life in the hands, of a rock 'n' roll band, who'll throw it all away.

I'm gonna start a revolution from my bed, 'cause you said the brains I had went to my head.
Step outside 'cause summertime's in bloom.
Stand up beside the fireplace, take that look from off your face, 'cause you ain't ever gonna burn my heart out.

And so, Sally can wait. She knows it's too late as she's walking on by.
My soul slides away; but don't look back in anger, I heard you say.

So, Sally can wait. She knows it's too late as we're walking on by.
Her soul slides away; but don't look back in anger, I heard you say.

So, Sally can wait. She knows it's too late as she's walking on by.
My soul slides away; but don't look back in anger,
Don't look back in anger,
I heard you say.

At least not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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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안산 예술의 전당에서 아내와 함께 모처럼 연극 한편을 봤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한때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했던 고교 유도선수 경찬은 슬럼프가 찾아 온다. 이제 유도로 진학조차 어려워지자 운동에 회의를 느끼게 되고 일탈을 일삼는다. 후배들과 교장선생님의 개 '봉구'를 잡아먹는 일까지 벌어지고,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퇴학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던 중 전국대회에서 배드민턴 선수 화영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오래동안 그녀를 짝사랑하던 복싱유망주 민욱이 있었다. 미묘한 삼각관계 아래 서로의 꿈을 향해 전진한다는 내용.

 

젊은 배우들의 혼신의 연기와 귀에 익은 90년대 음악, 운동을

 

소재로 한만큼 역동적인 스토리 전개 등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귓전에 맴도는 대사, "내가 끝났다고 하기 전까지 끝난 게 아니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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