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탄생 (양장) - 젊음의 업그레이드를 약속하는 창조지성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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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젊음의 탄생’을 읽고 - 오리로도 보이고 토끼로도 보이는 건 생각의 힘


이 책은 77세의 저자가 ‘젊은이들에게 주는 메시지’로 읽혀지는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은 <젊음의 탄생>이지만 이것을 <생각의 탄생>으로 읽어도 무방하리라. ‘중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우리는 흑백논리와 OX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라는 본문의 글들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젊은이들에게 생각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기존의 생각을 바꿀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은 어찌 젊은이들에게만 중요하랴. 오늘을 사는 현대인 모두에게 중요하리라.


누군가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제일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가 갖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외모나 직업, 학력도 그 사람을 파악하는 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생각’은 그 사람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생각이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생각은 행동의 씨앗이므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하는 문제도 따지고 보면 어떤 생각으로 살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생각에 따라서 아주 다른 인생을 살게 되기에.


저자가 독자들에게 힘주어 말하고자 하는 것 중,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열정을 가져라 - “꿈을 향해 목숨을 건 그런 바보들이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열정에 몸을 불사르는 그런 미치광이들이 사회를 바꾸어갑니다.”


둘째, 다양성을 중요시해라. - “하늘처럼 열린 공간에서는 모두가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날 수 있습니다. 360명이 360도의 다른 방향으로 달리면 360명 모두가 일등이 될 수 있지요.”


셋째, 질문을 해라. -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많이 타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질문하는 버릇을 어린아이 때부터 길러 준 가정교육 때문이라고 합니다.”


넷째, 창조성을 가져라. - “여름밤 아버지는 덥다고 창문을 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들어와서는 모기 들어온다고 창문을 닫으라고 합니다.(중략) (어떻게 할까요.) 망으로 된 창을 만들어 다는 것이지요. 바람은 들어오고 모기는 막아주는 이 방충망을 창조하는 것. 그것만이 분쟁 없는 공존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 책에는 색다른 구성이 눈에 띄는데, 그것은 ‘매직카드’라는 것을 만들어 나눈 점이다. 카니자 삼각형, 개미의 동선, 매시 업, 지의 피라미드 등 아홉 개 제목의 매직카드는 각각 내용을 구분짓는 장(章)의 역할을 한다.


그 중에서 내 마음을 가장 끄는 것은 ‘개미의 동선’이란 매직카드에서 우리의 삶이 ‘우유성으로 가득 찬 숲’과 같다고 말한 부분이다. 여기서 우유성이란, ‘반은 규칙적이고 반은 우연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현상’을 일컫는다. 예상할 수 있는 것과 예상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살아가는 게 우리들의 삶이요, 그 현장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날쌘 사슴을 쫓아 경주를 하는 사냥꾼의 새벽 숲이야 말로 가장 우유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또 축구가 사람들을 매혹하고 열광케 하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삶 그 자체처럼 우유성에 가득 차 있는 경기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것과 연결시킬 수 있는 게 ‘빈칸 메우기’라는 매직카드에서 인생을 ‘빈칸 메우기의 퍼즐’이라고 말한 부분이다. 삶의 반은 운명처럼 주어진 문자가 있고 그 옆에는 마음대로 자신이 써넣을 수 있는 자유로운 공백이 있다는 것.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운명처럼 정해진 부모와 관계를 맺는다. 또 성장하는 동안의 가정환경도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다. 하지만 공부를 잘 하기 위해 노력한다든지 어떤 재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따라 삶의 좌표는 바뀌게 된다. 이것이 바로 ‘빈칸 메우기’이다. 빈칸 메우기는 삶을 변화시킨다. 축구경기처럼 결과를 알 수 없는 게 인생이기에 인간은 의욕적으로 살 수 있다. 만약 우리가 평생 정해져 있는 어떤 운명에 따라 살아간다면, 즉 빈칸 없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맥 빠지는 일인가.


“빈칸은 결핍이다. 그러나 결핍은 필요를 낳고 필요는 목표를 낳고 목표는 노력을 낳고 노력은 창조를 낳고, 창조는 당신의 젊음을 더욱 새롭고 찬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177쪽>


“가르칠 것이 있다는 것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이고, 부족함이 있다는 것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183쪽>


“산업사회의 열등생(우리나라)이 정보사회의 우등생이 된 것은, 양이 없고 땅이 없고 전력이 없고 부존자원이 없었던 빈칸이 만들어 낸 창조력 덕분입니다.”<187쪽>


저자는 자원의 ‘결핍’이 낳은 ‘발전’의 예로 우리나라를 들었는데, 이런 예를 개인의 삶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남보다 부족한 면이 있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경우는 실제로 아주 많다. 어떤 게임에서든 이긴 사람보단 진 사람이 그 다음의 게임에서 이기고 싶은 열망이 더 강한 법이다. 패배감을 맛본 자는 갈망으로 인해 더 많이 노력함으로써 전화위복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열등감이 오히려 성공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열등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열등감의 또 하나의 좋은 점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만에 빠지지 않게 만드는 점이다. 자신도 약점이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약점이 있는 타인에 대해 무시하기보다 포용하는 아량을 베풀 수 있다.



이 책 속에 ‘오리토끼 그림’이 나오는데, 이것은 ‘오리’로도 볼 수 있고 ‘토끼’로도 볼 수 있는 그림이다. 오리로 보일 때엔 토끼 모습이 사라지고 토끼로 보일 때엔 오리가 지워지는 것이다. 이와 연관해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부자와 빈자 중 누가 더 행복할까. 만약 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부자가 찬이 많은 식탁에도 흥미가 없고, 빈자는 찬이 없는 밥상에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누가 더 행복할까. 언제나 할 수 있는 쇼핑에 권태를 느끼는 부자와 월급날에만 즐겁게 쇼핑할 수 있는 빈자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어느 쪽이 더 행복할 거라고 확신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오리토끼 그림’처럼 생각의 각도에 따라서 사물은 얼마든지 다르게 보이는데….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희극의 무대에서 살 수도 있고 비극의 무대에서 살 수도 있는 게 인생인 것 같다. 비극적인 일로 느껴지는 것도 생각의 각도를 바꾸어 다시 바라보면 희극적인 일로 생각되는 경우가 우리 삶에 많으니까. 이렇게 비극도 희극으로 변화시키는 건 발상의 전환, 곧 생각의 힘이다. 그래서 ‘생각’에 대한 글이 많은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를 처음 만난 것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 서장에 씌어진 ‘풍경 뒤에 있는 것’이란 글을 아직도 수작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국인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확하게 표현한 저자의 글들에 감탄하곤 했는데, 그때의 글들에 대한 기억으로 <젊음의 탄생>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마음이 젊어지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연령에 상관없이, 보다 높은 곳을 향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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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남는 글


- (그 그림은) 오리로 보일 때에는 토끼 모습이 사라지고 토끼로 보일 때에는 오리가 지워집니다. 언제나 둘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요. 관점이라는 것은 내 마음 안에 품고 있는 자유이면서도 때로는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편으로 쏠리는 편향성을 갖게 됩니다. 쏠린다는 것은 선택한다는 것이고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한쪽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98쪽>


- 우리가 익혀야 할 진정한 지식과 진리는 오리-토끼 그림처럼 항상 양면성을 띠고 있는 모호한 도형 같은 것이기 때문에 고정 시점처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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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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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 사람은 타인의 도움으로 사는 것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동화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작품이다. 혼자가 아닌,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인생의 의미를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은 천사가 인간으로 변신되어 가난한 구두장이 집에서 8년째 머물면서 겪는 이야기다.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은 천사는 하나님이 말한 세 가지 문제의 답을 알게 되는 날에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세 가지 문제란, 인간 안에 무엇이 있는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이다.


첫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추운 겨울날, 가난뱅이 구두장이가 벌거벗은 젊은이(천사)를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고 집에 데려온다. 그의 아내는 낯선 거지(천사)와 함께 귀가한 남편이 못마땅하여 화를 내다가 어느 새 이 남자(천사)가 가엾게 느껴져 계속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것을 알게 된 천사는 인간 안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세 가지 물음 중 첫 번째 답을 구한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구두장이 가게의 직공으로 일하게 된 천사가 한 신사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가게를 방문한 신사는, ‘1년을 신어도 찢어지지 않고 모양이 변하지 않는 구두’를 주문한다. 천사는 그가 그날 해가 지기 전에 죽는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 이때 두 번째의 답을 구하게 된다. 즉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자기 육체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것’이었다. 그 신사에게 필요한 것은 구두가 아니라 죽은 사람이 신을 슬리퍼였는데, 그 신사는 자신이 잠시 후에 죽으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한 여인이 쌍둥이 아이들의 구두를 맞추러 가게에 왔을 때 이어진다. 천사는 그 애들이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두 아이의 생모가 아니었다. 생모는 6년 전 쌍둥이 딸을 낳은 후 죽었다. 그때 천사는 아이들의 아버지도 죽고 없는데 홀어머니마저 죽었으므로 고아가 된 두 쌍둥이가 살아가지 못할 거라고 추측했었는데, 6년 뒤에, 한 여인이 두 아이를 맡아 정성을 다해 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여인은 이웃집 사람이었는데 생모가 죽자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키우며 살았던 것. 천사는 이때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우친다. 이것이 세 번째 물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이다.


6년 전,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벌을 받아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이었는데, 바로 쌍둥이 아이들을 낳은 여인(생모)의 영혼을 데려오라는 게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즉 생모를 죽게 하는 게 천사의 임무였다. 그 명령에 따르기 위해 그 여인에게 가 보니, 방금 쌍둥이 아이들을 낳았던 것이다. 그 여인은 천사가 자신의 영혼을 데리러 온 죽음의 천사인 줄 짐작하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 천사님! 제 남편은 숲 속에서 혼자 일하다가 나무에 깔려 죽어 며칠 전에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나는 형제도 없고 큰어머니도 또 할머니도 없기 때문에 갓난아기를 돌볼 사람조차 없습니다. 제발 내 영혼을 불러 가지 마시고 이 아이들을 제 힘으로 키우게 해주세요. 부모 없는 아이들은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천사는 차마 그 가엾은 여인의 영혼을 빼앗아 가지 못했으나, 하나님이 다시 분부하여 할 수 없이 여인의 영혼을 빼앗아 갔던 것이다. 결국 여인을 죽게 하긴 했지만 하나님의 처음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천사는 벌을 받아 인간 세상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천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나는 깨달았다. 모든 사람 각자가 자신의 일을 걱정하고 애씀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실은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람은 사랑(타자의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임을 우리에게 강조한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인간은 타인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나는 특히, 하나님이 말한 문제 중 두 번째 문제인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자기 육체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것’이라는 점에 생각이 길게 머문다.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어 그날의 죽음을 앞두고도 1년간 신을 구두를 주문한 신사의 모습은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미래를 보는 눈이 없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혼자의 힘으로 살 수 없다. 죽고 난 뒤 장례식조차 타인의 손을 빌려야 한다. 이것은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단 하루라도 혼자의 힘으로 사는 게 가능한 일이던가. 누군가가 땀 흘려 일해 지은 집에서 살고, 누군가의 노고로 수확한 쌀로 밥을 먹고, 누군가의 수고로 만든 옷을 입고 사는 나.


내 주위를 둘러보니 텔레비전, 컴퓨터, 휴대전화 등, 빈손으로 태어나 가진 게 아주 많다. 모두 그것들을 만든 타인의 덕분이다.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 그런 것들을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그로 인해 누군가가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그것으로 사회에 공헌한 것이 되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은, 그런데 나는 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그저 내 인생을 위해 살고 내 가족을 챙기는 일에만 급급해 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만약 끝까지 그렇게 산다면 결국 개인이기주의와 가족이기주의로 생을 마감하는 게 아닐까, 세상에 태어나 타인의 도움으로 이 만큼 누리며 살고 있는 나도 뭔가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데에 기여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 같은데….


사회 공헌이라는 것을 그리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내가 한 작은 일로 누군가가 도움을 받았다면 그것도 역시 사회에 기여한 것이 될 터. 자원봉사를 하거나, 불우이웃돕기의 성금을 내거나,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면 모두 좋은 세상 만들기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한 것이리라.


앞으로의 삶의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독자에게 유익한 시간을 주리라 믿는다. 영국 속담이 떠오른다. ‘한 사람이 못을 박으면 다른 사람은 그 못에 모자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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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2009-10-26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데 그걸 잊고 이기적으로 살 때가 너무 많아요.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어요.

페크pek0501 2009-10-26 12:33   좋아요 0 | URL
옹달샘님은 착하셔서 아름다운 작품 쓰실 수 있을 거예요. 큰 성과 있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1. <잘난 척 글>-당선 공지 2009


제 블로그에 있는 글 중에서 평가 받은 글이 있어 알립니다.

바쁘신 분들은 다음의 글 중에서 뽑아 보시기 바랍니다.


1.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의 책 리뷰가 다음 사이트에서 블로거 리뷰 중 추천베스트 1위로 선정 - 3월 31일

2. <광고 속의 성차별>의 책 리뷰가 다음 사이트에서 우수 리뷰로 선정 - 3월 29일

3.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의 책 리뷰가 이주의 다음블로거뉴스특종10으로 선정 - 3월 5주

4. <결과는 알 수 없다>의 생활칼럼이 이주의 다음블로거뉴스특종10으로 선정 - 4월 1주

5. <역지사지(1) - 부제 : 받는 것도 호의>의 생활칼럼이 이주의 다음블로거뉴스특종10으로 선정 - 4월 3주 

5월 4일에 추가로 알립니다

6.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책 리뷰가 다음 사이트에서 우수 리뷰로 선정 - 4월 27일 

7. <젊음의 탄생>의 책 리뷰가 다음 사이트에서 블로거 리뷰 중 추천베스트 1위로 선정 -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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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좋은 칼럼이란?>



=어떤 게 좋은 칼럼입니까.


프리드먼=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반응 중의 하나를 받는 칼럼입니다.


첫째, 독자가 ‘그건 몰랐네’라고 느끼도록 지식을 주는 칼럼.


둘째, ‘그렇게는 생각 못했네’라고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주는 칼럼.


셋째, ‘내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생각을 당신이 제대로 썼네’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칼럼.


넷째, ‘당신과 가족을 모두 죽여버리겠어’라고 할 정도로 논란이 되는 칼럼.


다섯째, 독자를 울리고 웃기는 칼럼입니다.


=그렇게 현장을 많이 다니면 책은 언제 읽나요.


프리드먼=항상 읽죠. 나는 퓰리처상 심사위원이어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영웅이나 롤 모델이 있습니까.


프리드먼=뉴욕 타임스 기자로 베트남전쟁 취재로 이름을 날리고 『베스트 앤드 브라이티스트』를 비롯해 좋은 책을 많이 쓴 데이비드 헬버스탬 같은 기자가 되겠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어요.


토머스 프리드먼 (56)

뉴욕 타임스의 인기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저술가. 국제 문제 전문가로 국제 질서와 외교관계, 세계화와 통상 문제에 관해 쓴 칼럼들은 깊이와 대중성을 겸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태어나 브랜다이스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서 중동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UPI 통신 베이루트 특파원을 거쳐 뉴욕 타임스 베이루트 지국장과 예루살렘 지국장을 지냈고, 백악관 출입기자를 역임했다. 세계화에 대한 선구적 해석을 보여준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1999년)와 『세계는 평평하다』(2005년)는 경제경영 분야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세 차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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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나마나한 글을 쓰게 될까봐, 그것을 경계하며 글을 씁니다. 프리드먼이 좋은 글의 정답을 알려 준 것만 같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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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칼럼>


역지사지(2) - 부제 : 자기 중심적 사고


우리는 ‘자연보호’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인간에 의해 자연이 훼손되는 일이 많아 생겨난 말이다. 자연의 소중함에 대해선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 해도 자연을 보호하자는 말은 잘못된 말인 것 같다. 자칫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있는 듯한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다. 말은 생각의 그림인 것이니까.


이미 이어령 저, <젊음의 탄생>에서 저자는 ‘자연보호’라는 말은 잘못된 말임을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자연이 인간을 보호해 왔지 언제 인간이 자연을 보호해 왔느냐는 것이다. 자연보호란 말 속에 이미 자연을 파괴하는 원인인 인간의 오만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에 동의한다. 사실 자연보호란 말은 인간 중심주의에서 생긴 말이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며 궁극의 목적이라고 여기는 생각에서 인간을 주체로 보고 자연을 객체화시킨 결과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고에 익숙하다.


일례로 장애인에 대해 비정상인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정상인과 비정상인으로 나눈 것인데, 장애가 없는 사람을 중심으로 사고한 결과이다. 그러나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눌 수 있다. 또 백인 중심의 사고가 유색인종이란 말을 만들어 냈다. 이 역시 흑인 중심에서 보면 백인은 무색인종이 되는 것이다. 이런 말들에선 타인보다 나 자신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는 뜻을 은연중 나타내고 있는데, 여기서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드러난다. 즉 강자가 되는 쪽의 말이 널리 사용된다.


자연의 일부인 곤충을 보는 시각에서도 인간 중심적 사고가 작용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매미의 삶에 대한 시각이 그렇다. 매미는 보통 유충으로 6~7년 동안 땅속에서 지낸 뒤에 지상으로 올라와 성충이 되어 1~3주 만에 죽는다. 즉 유충으로 길게 살다가 성충이 되어서는 짧게 살다가 죽는 것이다. 이를 두고 지상에서의 짧은 생을 살기 위해 긴 시간을 지루하게 땅속에서 살았다는 것으로 해석해 놓은 여러 사람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매미의 중요한 삶을 땅 위의 삶으로 보는 인간 중심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은가. 매미에게 있어서 중요한 삶은 이미 땅속에서의 유충으로서의 삶이라고 말이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게 그들의 운명이듯이 매미는 땅속에서 사는 게 그들의 운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체 변이를 염두에 둔다면 매미가 지하에서 살기엔 성충으로보다는 유충으로 사는 게 환경에 적응하기 편리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매미가 지상의 짧은 삶을 위해 지하에서 긴 시간을 지루하게 보냈다는 것은 인간의 난센스. 매미의 삶의 전성기는 유충으로서의 삶일 수 있으니까. 어쩌면 우리 인간도 인생의 전성기는 장년기가 되기 전의 아동기와 청년기가 아닐는지.



중요한 것은 자연에 대한 이런 인간 중심적 사고가 인간관계에서 자기 중심적 사고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가족이든 친구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상대방의 자기 중심적 사고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은 남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남에게 준 혜택은 크게 생각하고 자신이 남으로부터 받은 혜택은 작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친구관계에 있는 갑이란 사람과 을이란 사람이 동업하여 회사를 차렸다. 그런데 서로 자신이 회사를 위해 한 일만 생각하고 상대방이 한 일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갑은 내 자본금이 을의 것보다 더 많이 들어간 회사이니 내 덕이 크다고 생각하고, 을은 이 회사를 차리자고 아이디어를 맨 처음 낸 것은 자신이라며 자기의 덕을 크게 생각한다. 갑은 자신이 먼저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니 자기가 을보다 더 많이 일한다고 생각하고, 을은 회사에 수익을 올릴 중요한 계약을 자신이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업을 하면 깨진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닐까.


이런 현상은 단순히 두 사람이 만나는 친구관계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자동차를 타고 식당에 가서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졌는데, 한 쪽에선 자신이 점심을 샀으니 다음에 만나면 상대방이 점심을 사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 쪽에선 점심값보다 자신의 자동차 기름값이 더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각자가 자신은 상대방에게 많이 베푼 것 같은데, 늘 돌아오는 것은 적게 여겨져서 손해를 본 느낌을 갖는다.


이 문제의 해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각자가, 친구가 있어 내가 즐거운 거라고 생각하고, 친구가 있어 내가 외롭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 이보다 더 큰 혜택이 어디 있으랴.


자연보다 인간을 우위에 두고 ‘자연보호’를 외칠 게 아니라 자연의 혜택을 크게 생각해야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에 대해서도 받은 혜택을 크게 생각할 때 좋은 인간관계가 형성될 것 같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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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글을 쓸 적마다, ‘이거 맞나?’, ‘이렇게 단정적으로 써도 되나?’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또 쓴 글을 읽을 적마다 고칠 부분이 자꾸 눈에 띕니다. 완결된 한 편의 글을 쓰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위하며 글을 올립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약점은 있게 마련이라고, 다만 우리 인간은 ‘완성’을 향해 조금씩 나아갈 뿐이라고….

큰 깨달음을 주는 글을 쓰고 싶지만 그것은 저의 욕심일 뿐, 그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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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09-06-0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처음 이 블로그를 알게 되어서 4편의 글을 읽었는데, 모두 어찌나 공감이 가는지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네요~

페크pek0501 2009-06-05 14:25   좋아요 0 | URL
누구신지 모르지만 고맙습니다. 글 쓰는 일이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기가 어려운 작업인데,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분 좋네요. 종종 들러 주세요. 글이란 어차피 공개를 위해 쓰는 것, 공개엔 당연히 평가가 뒤따르겠지요. 가끔 그 평가가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신지님 덕분에 힘이 나는군요. 좋은 하루 되세요.
 


<생활칼럼>


역지사지(1) - 부제 : 받는 것도 호의


인간은 ‘편견의 노예’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 굳어지면 그것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그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 역으로 생각해 보는 발상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일이다. 이것은 모든 사물을 주관적으로 보게 되는 시각을 객관화시켜 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이해 받지 못할 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는 말을 한다. 자신을 어떤 처지에 놓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예로, 내가 연애하면 아름다운 로맨스지만 남이 연애하면 스캔들이 되는 것이다. 또 직장에서 내가 휴식을 취하면 재충전이지만 남이 휴식을 취하면 근무태만인 것이다. 이렇듯 자신에겐 긍정적 해석을, 타인에겐 부정적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다. 자기는 인복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여기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아무리 잘 해 줘도 상대방은 자신에게 잘 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밥을 사 줘도, 차에 태워 운전하여 집에까지 바래다줘도 상대방은 말로만 고맙다고 할 뿐, 그것에 대한 답례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섭섭한 마음이 생기더라는 거였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때는 그 대가를 바라지 않을 때가 많다. 그저 선의로써 좋아서 했을 뿐이다. 그런데 막상 그것에 대한 답례가 없으면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은연중 보상을 받고 싶기 때문이며, 그것이 없으면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바로 손익계산인 셈이다. 처음엔 좋아서 호의를 베풀었지만 그 결과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기주의가 도사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난 어떤 경험을 한 뒤엔 그것에 대한 생각이 백팔십도로 바뀌었다. 한 친구가 남편이 회사에서 승진했다며 점심으로 한턱을 내겠다고 나를 포함해서 친구 넷을 어느 고급 음식점으로 초대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날따라 비도 오고 내 몸도 고단해서 외출하기가 귀찮았다. 하지만 친구가 모처럼 하는 초대인지라 가지 않으려니 마음이 불편하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나오라는 시간에 맞춰 나갔다.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흔쾌히 그 경사스런 일에 축하를 해줬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생각한 것은, 축하를 해 주기 위해 이 귀찮은 외출을 실행한 나에 대해 그 친구가 고마워할까, 하는 것이었다. 즉 한턱을 낸 사람만 호의를 베푼 게 아니라 그것에 응해 준 나도 호의를 베풀었다고 여긴 것이다.


그 일 이후로 내가 과거에 베풀었다고 생각한 한턱의 호의가 그 상대방에겐 부담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내 호의를 받아 준 상대방도 어쩌면 선심을 쓴 것일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역발상을 하자 자연 그 보답을 바라지 않게 되었고 답례가 없어서 생겼던 섭섭한 마음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밥을 샀다면 그것을 맛있게 먹어 준 그에게 감사하고, 또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했다면 그것을 고맙게 받아 준 그에게 감사할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에 따라서는 괜스레 심통이 나서 상대방에게 만족감을 주기 싫은 마음에, 선의의 호의를 거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게 그런 베푸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해 준 모든 이에게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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