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칼럼> 선의의 거짓말



적적하실 부모님을 생각해서 거의 매일 친정에 들른다. 그러다가 내가 몸이 아파 가지 못하는 날이 생긴다. 최근 감기몸살을 앓을 때도 그랬다. 우리 집과 친정은 걸어서 십오 분쯤 걸리는 거리인데 아픈 몸으로 찬바람을 쐬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도 나를 보면 금세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눈치를 채시므로 친정에 가지 않는 게 나았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아시면 큰 걱정을 하셔서다. 이럴 때 내가 하는 거짓말은, 오늘은 할 일이 많아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엔, 감기가 들어서 오늘은 가지 못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는데, 그러면 친정어머니는 음식을 만들어 내게 갖다 주러 오신다. 그러고는 체중이 빠진 것 같다면서 마음의 그늘을 가지신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이젠 거짓말을 하는 요령이 생긴 것이다. 이럴 때 거짓말은 친정어머니와 나, 두 사람 다 편하게 만든다.


우리 대부분은 진실해야 옳은 것이라는 관념을 갖고 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진실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또 상대방을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대체로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말을 하는 게 낫다고 여겨질 때 거짓말을 할 것이다.

만약 늘 진실해야만 한다면 정신적으로 고단한 삶을 살게 될 듯싶다. 그래서 때로는 거짓말이 필요한 것 같다. 예를 들면 친구가 옷을 새로 사 입고 나와서 “이 옷 어떠니?”라고 묻는데, 느껴지는 대로 솔직하게 말한답시고 “별로 예쁘지 않은 것 같아.”라고 말해 준다면 그 친구의 기분은 어떨까. 둘의 관계는 좋은 친구관계가 유지될까.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우연히 어느 커피숍에서 친한 친구의 남편이 어떤 여자와 만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연인관계였다. 이 때 이 얘기를 그 친구에게 해 줘야 할까, 말까. 어떤 것이 그 친구를 위하는 일이 될까. 만약 그 얘기를 해 주지 않는다면 그 친구는 남편에게 속고 사는 바보가 되고 말 것이며 더 불행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남편이 비밀리에 연애를 하다가 언젠가는 연인관계를 정리할 것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굳이 진실을 말해서 그 친구를 불행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


또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만약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가 있는데, 동생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할까, 아니면 어머니가 충격과 고통에 빠지지 않도록 이 사실을 숨겨야 할까.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 이것은 마이클 샌델 저,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내가 어머니라고 가정하고 어떤 답을 원할 것인가를 상상해 보고 결정하는 방법이 있다. 어떤 사람은 심적으로 힘들더라도 진실을 알고 싶어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할 것이다. 그 선택에 따라 결정이 다를 것이다. 이럴 때 나라면 고통스런 진실보다 고통을 없애주는 거짓을 택할 것 같다. 사람이 진실해야 함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인간의 고통을 최소화하게 해 주는 경우라면 거짓이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진실이 꼭 필요한 경우는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본 경우가 아닐까. 가령 어느 축구 시합에서 누군가가 반칙을 했고 그 반칙을 공개하지 않으면 상대편 선수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그런 경우에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또 죽어가는 암 환자에게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해 의사나 가족이 말해 줘야 하는 이유는 그 진실이 환자에게 고통을 준다고 할지라도 진실을 말해 주지 않으면 삶을 정리할 시간을 주지 않은 것에 따른 불이익이 생기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19년의 세월을 보내다가 석방된 장 발장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은 미리엘 신부였다. 그에게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해 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신부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장 발장은 성당의 은그릇을 훔쳐서 도망쳐 버린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경관들에게 잡혀 성당으로 끌려온다. 그는 다시 도둑질을 한 죄인이 되고 만 것이다. 이때 장 발장에 대해 화를 낼 줄 알았던 미리엘 신부는 다음과 같은 뜻밖의 말을 한다.





“오, 수고들 많소. 그런데 장 발장이 아니시오? 당신을 다시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져가시라고 드린 물건 가운데 은그릇만 가져가셨기에 왜 은촛대는 안 가져가셨는지 궁금했습니다.” - 빅토르 위고 저, <레 미제라블> 중에서.



        

 

그러면서 신부는 벽난로 위에서 은촛대 두 개를 가지고 오더니 장 발장에게 내밀었다. 장 발장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얼떨결에 은촛대를 받았다. 이 일에 감동한 장 발장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다.


미리엘 신부가 거짓말을 했던 것은 장 발장의 잘못을 ‘용서’하는 마음이 그 가슴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거짓말은 장 발장으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아름답고 훌륭한 거짓말이 되었다. 내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길 때 미리엘 신부의 거짓말을 떠올린다.


‘거짓말도 잘만 하면 논 닷 마지기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는데, 거짓말도 잘하면 처세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겠다. 어느 누구에게든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해로운 진실보다 이로운 거짓말이 나으며, 악의의 진실보다 선의의 거짓말이 낫다는 생각이다.


그 누구든 미리엘 신부를 ‘진실성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거짓말을 해도 되는 조건은 그처럼 ‘진실성 없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 만큼의 거짓말인 경우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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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살다보면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인지 모를 때가 있다. 이 때 옳게 판단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올바른 판단력을 얻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고 독서가 필요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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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3-24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주째 감기를 앓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감기 조심하시길...

옹달샘 2011-05-15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남을 위한 거짓말보다는 나를 위한 거짓말을 더많이 하고 사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페크pek0501 2011-05-15 21:34   좋아요 0 | URL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고 사는 것,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어려울 거예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