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거운 후기> 행복에 대한 글을 쓰면서 스쳤던 생각들
‘행복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란 글을 썼다. 그동안 살면서 내가 이해한 행복론인 셈이다.
그 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내가 쓴 것은 고작 한 줄기의 글이었다. 말하자면 내가 가꾼 생각의 꽃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껴진 하나의 꽃만 선택해서 보여 준 것이 그 글이었다. 이때 아름답다고 한 것은 물론 나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것일 뿐, 객관성은 없다.
여기 페이퍼에선 그 글에 쓰지 못한, 그 글을 쓰면서 스쳤던 생각들을 열거하고자 한다.
1.
행복은 ‘느끼는 자의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리 타인들의 눈에 행복하게 보이더라도 그 자신이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랴.
그런데 행복이란 것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즉 행복해야겠다, 라고 마음먹은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행복을 자기 자신 밖에서 발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잘못된 사람이다.”(소크라테스)
“행복은 어떤 일정한 것 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고스란히 나 자신 속에 머물고 있었다.”(J. J. 루소)
“행복과 불행은 모두 마음에 달려 있다.”(데모크리토스)
내용이 형식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좌우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억지로라도 소리 내어 웃으면 몸 안에서 기분을 좋게 하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실제로 우울한 기분이 사라진다고 한다. 다행히도 우리 몸은 가짜 웃음을 판독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므로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웃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 단, 이것이 초기의 우울증엔 효과가 있지만 우울증 중증엔 효과가 없다는 것.
형식이 내용을 바꿔 주는 또 한 가지 예로, 밝은 옷을 입으면 기분이 산뜻해지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행복하기 위한 노력은 꼭 필요할 듯하다.
2.
역사학자 윌 듀란트는 그의 연구생활과 학식에서 행복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지식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여행을 해 보았으나 권태만을 느꼈다. 재산을 모아 보았으나 근심과 불화만 발견하였다. 저술에 몰두하여 보았으나 피곤하기만 했다. 어느 날, 그는 뜻밖에 참으로 아름다운 한 장면을 목격하였다. 한 여인이 작은 차 안에서, 잠자고 있는 아기를 팔에 안고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니 한 남자가 기차에서 내려 그 여인에게 다가가더니 아기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여인과 아기에게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잠시 후 그들이 승용차를 몰고 가는 것을 지켜보던 듀란트는 깨달은 것이 있었다. “아, 행복이란 저런 것이로구나.” - <세계예화집>에서.
3.
전쟁이 난다면, 그래서 컴퓨터가 작동되지 않고 텔레비전도 시청할 수 없으며 음악도 들을 수 없다면, 우리는 깨달을 것이다. ‘아, 평범한 일상 생활 속에 행복이 있었구나’라고.
큰 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그때도 깨달을 것이다. ‘아, 건강하던 모습으로 돌아가 일상 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그렇다면 미리 깨달아서 행복해 하면 안 될까, 다음과 같이.
하루를 열어 주는 새 아침이 날마다 있음에 행복하리라. 창문을 열면 기분 좋게 들어오는 신선한 새벽공기에 행복하리라. 책장을 넘기며 마시는 한 잔의 커피에 행복하리라. 가족이 정겹게 둘러앉는 저녁식탁에 행복하리라. 피곤한 몸 누이며 포근한 밤잠을 청하는 시간에도 행복하리라.
4.
삶의 본질을 압축하면 희극과 비극이다. 이것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인생은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이다.”(H. S. 월폴)
누구나 왜 내게는 큰 행운이 오지 않느냐고 불평을 하고, 소망이 이뤄지지 않느냐고 한 숨을 쉬며 사는 동안, 인생을 조금씩 알게 된다. 그리하여 삶이란, 희망을 갖고 살다가 그것에 속으며 늙어 가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환자는 건강을, 실직자는 안정된 직업인을 꿈꾸지만 실현되지 않는 꿈으로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희망이 있는 삶과 희망이 없는 삶의 차이는 엄청나서 삶의 모습을 정반대로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희망이 있는 삶에 희극이 있다면, 희망이 없는 삶엔 비극이 있다.
노신은 ‘희망’에 대해 다음의 글을 썼다.
나는 생각한다. 희망이라는 것은 원래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없거니와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실상 땅 위에 본래부터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노신 저, <고향>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속을 수 있는 희망’조차 품을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반대로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그 자체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5.
사랑을 제대로 하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행복도 제대로 느끼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 유홍준 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에서.
삶을 사랑하면(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면) 행복을 알게 되고, 행복을 알면 느끼나니 그때에 느끼는 행복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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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노신 저, <고향>
유홍준 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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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6.25전쟁으로 빼앗긴 들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듯이, 비명횡사한 사람들이 있는 슬픈 세상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습니다.
천안함 침몰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비탄에 잠겨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거나 아들을 잃거나 남편을 잃은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이렇게 태평하게 사는 우리들과, 이렇게 태평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됩니다.
지금 그들에겐 무엇보다도 사고의 확실한 원인 규명과 국가적 차원의 배려와 국민들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것입니다.
가족을 또는 동료를 잃은 큰 슬픔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그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