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칼럼> 방법이 중요하다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다. 언젠가 오랜만에 만난 선배에게 젊어진 것 같단 인사를 했더니, 그분이 기분 나쁜 표정을 보여 당황한 적이 있다. 나는 젊어 보인다며 기분 좋게 해주려 했는데, 그 선배는 ‘내가 그만큼 늙었다는 말이냐’ 하는 식으로 받아들여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말 한 마디로 낭패를 보았다.


‘예뻐졌네’하는 말도 듣기 따라서는 ‘예전엔 예쁘지 않았다’라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말을 잘 가려서 해야 될 듯싶다. 말을 건넨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말의 뜻을 오해할 일은 생기지 않을 테지만, 우린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마음만큼이나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어느 날, 우리 집 우편함에 어떤 봉지가 들어 있어서 꺼내 보았다. 거기엔 글씨가 씌어 있었는데, 아파트 주변에 쥐들이 많으니 이 쥐약을 곳곳에 뿌려 놓아 쥐들을 잡자는 내용이었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 동네를 위한 일이므로 그대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이웃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봉지를 들고 그 약을 어디에 뿌리는 것이냐고 묻기 위해 경비원 아저씨를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경비원 아저씨가 내가 들고 있는 쥐약 봉지를 보더니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 쥐약을 함부로 뿌리는 사람 때문에 어제 개 한 마리가 죽었다면서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걸 보내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차 싶었다. 길에 쥐약을 뿌리는 게 그렇게 위험한 일이란 걸 난 왜 생각 못했는지 모르겠다. 좋은 이웃이 되려다가 나쁜 이웃이 될 뻔한 내 마음을 그 아저씨는 알 턱이 없을 게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도 ‘방법’이 중요하다.


“말(馬)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좋은 광주리로 말똥을 받고, 큰 대합 껍질로 말 오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말 등에 모기가 앉는 것을 보고 갑자기 말 등을 때렸습니다. 놀란 말이 재갈을 벗고 야단하는 바람에 ‘말 사랑하던 사람의’ 머리를 깨고 가슴을 받았습니다. 말을 사랑하는 뜻은 극진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이 잘못이었습니다.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 장자 저, <장자> 중에서.


어떤 어머니는 자식에게 지극한 사랑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아들을 또는 딸을 마마보이 또는 마마걸을 만들어 버려서 주위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호의에도 사랑에도 중요한 건 그것을 나타내는 좋은 ‘방법’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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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손가락은 장작을 지피는 일을 할 뿐, 불이 전해지면 그 불은 꺼짐을 모릅니다. - <장자> 163쪽, 현암사.


당신은 호랑이 키우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아시지요? 호랑이에게 먹이를 산 채로 주지 않습니다. 먹이를 죽일 때 생기는 사나운 노기를 염려해서입니다. 또 먹이를 통째로도 주지 않습니다. 먹이를 찢을 때 생기는 사나운 노기를 염려해서입니다. 호랑이가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를 잘 알아서 그 사나운 노기를 잘 구슬리는 것입니다. 호랑이가 사람과 다르지만 저를 기르는 사람에게 고분고분한 것은 기르는 사람이 호랑이의 성질을 잘 맞추기 때문입니다. 호랑이가 살기를 드러내는 것은 그 성질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 <장자> 202쪽, 현암사.



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수의 다리 위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장자가 말했습니다. “피라미가 나와서 한가롭게 놀고 있으니 이것이 물고기들의 즐거움이겠지.” 혜자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나?” 장자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 <장자> 368쪽, 현암사.


저에게 누군가가 좋은 책을 열 권만 뽑으라면 서슴지 않고 그 중 한 권으로 장자가 쓴 <장자>를 뽑겠습니다.


제가 그동안 글을 쓰면서 <장자>의 글을 많이 인용하기도 하였는데, 앞으로도 인용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장자>에는 깊은 의미를 가진, 생각할 거리의 글들이 많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글도 많기에 마음이 더 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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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저, <장자>를 소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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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좋은 글이군요. 꼭 장자라는 책을 사볼래요.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페크pek0501 2010-05-20 18:49   좋아요 0 | URL
댓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지리진 2010-08-1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허억.. 선생님~ 장자였어요?? 전 왜 노자를 샀을까요?? ㅠ.ㅠ
선생님께서 가장 권해주고 싶다던 철학서... ㅠㅠㅠ 초간 노자 양방웅 도서출판 예경 구입해버렸어요~ 헐. 그리고!! 남교수님 책 샀답니다~ 항상 끼고 다니면서 읽을 거에요!! 추천해주신 책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벼락같이 드는 생각이 있었어요!!
제가 그동안 바보같이 답답할만큼 꽉 막혔었다는 생각이요!ㅜ 편협하고 생각이 좁았단 사실을요..ㅜㅜ 하아..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지난 주에 선생님께서 하신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과 이해에 대한 말씀들... 그 땐 무슨 도덕관과 상식 따위를 생각하면서 "이해 절대 불가"란 신념을 꼿꼿이 세웠는데... 이 세상에서 무수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 나나 내 친구들에게 어쩌면 사고처럼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폭을 가져야 겠어! 란 생각이 불현듯 든 거에요!! 그런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생각과 관심 어쩌면 제가 좁쌀만큼이나마 가질 수 있는 이해와 공감 등이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고, 문화 경제 정치에 대한 이해의 장을 넓힐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페크pek0501 2010-08-12 12:45   좋아요 0 | URL
ㅋ 전 장자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 다음으로 노자입니다. 두 권 다 좋아요.
공자나 맹자에 비해 좋던데,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진님의 댓글에 답글을 쓰다가 글이 길어져서 아예 페이퍼에 글을 올렸어요.
단상(9)<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글입니다. 보시길...

진지리진 2010-08-1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그동안 드러나는 뭔가에 대해 다소 가식적일 정도로 그럴 듯해 보이거나 괜찮아 보이면 되겠지했는데, 그보다는 인간 그 자체(자연스러움과 본성 등등)에 대한 이해...도 아니겠죠~ 제 수준에선, 뭐랄까~ 그 자체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적이고 안목적 매커니즘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남교수님 칼럼에서처럼... 어쩌면 신문 기사나 방송 뉴스에서조차 권선징악 사필귀정 류의 도덕적 국수 자락을 뽑아 지성을 배불리거나, 내 상식에선이란 서두로 운운하는 제 뇌의 오만한 식성과 착각어린 상상적 비만에 대해 재고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봐야 겠어요!!
요즘...무더위에 태풍까지... 이사 준비로 바쁘실텐데~ 더구나 손가락 마비 마법에 걸리는 논문 쓰는 와중에도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정말 고맙고 감사해요~ 쌤께!!^^

페크pek0501 2010-08-12 12:46   좋아요 0 | URL
진님처럼 젊은 사람과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저로서도 즐거운 일입니다. ㅋ

진주 2012-10-3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슬플까요..

페크pek0501 2012-11-01 21: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왜 슬프실까요?
드릴 말씀이 없네요...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주 2012-11-16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ㅎㅎ 죄송해요 그때의 마음만 담아두고 갔네요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의 부분을 읽고
저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과 저를 모르면서 막말하는 인간들이 생각이 났어요.
저는 그들을 존중해줬지만 돌아오는건 상처뿐이더군요.. 물론 이야기를 해주어도 못알아듣는 인간들 때문에 속상했어요. 제 후배들과 옆사람들도 같은 피해를 보더라고요. 친해지고 싶어도 그렇게 사람을 대하니 참 그들이 이젠 짜증나고 싫어요

페크pek0501 2012-11-16 20:30   좋아요 0 | URL
의사소통, 이것 참 어렵지요.
죄송할 것까진 없습니다. 오히려 댓글을 남겨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했던 걸요.
오래전에 쓴 글인데, 저도 님 덕분에 다시 읽어 봤답니다.
날짜를 보니까 2년도 더 된 글이네요.
오래전의 글도 읽어 주시는 분이 계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싱거운 후기> ‘직업과 사랑의 공통점’을 쓰고 나서



나폴레옹은 청년 시절에 괴테 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소설을 대단히 애독하여 전쟁터에까지 가지고 다녔다고 하며, 이 소설을 무려 일곱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이것을 어느 책에서 읽고 이 소설을 다시 펼쳐보게 된 게 내 나이 삼십대 중반일 때였다. 이미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에 시시하게 읽은 것이라서 다시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나폴레옹이 일곱 번이나 읽었다는 그 사실이 나로 하여금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두 번째로 읽었을 때 이 작품이 명작인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다시 읽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다.


서간체 소설 형식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 작품을 쓴 괴테 자신이 젊었을 때 실제로 체험한 절망적인 사랑의 경험과, 그리고 불행한 연애 때문에 자살한 친구의 파멸을 소재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작품인 것이다.


베르테르가 우연히 만난 로테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죽음에 이르는 마음의 병까지 앓게 되었다는 점을 눈여겨볼 때 ‘우연’은 우리의 삶을 크게 좌우한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자살하는 인생’이 아닌, 많이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이 ‘우연’이란 존재를 두려워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연’이 베르테르에게서 보듯이 불행한 길로 우리를 인도할지도 모르니까.


‘우연’은 누구에겐 행운을 주고 누구에겐 불운을 준다. 나는 불운을 주는 ‘우연’이란 놈이 내 삶에 끼어들까 봐, 그래서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이 아닌, 엉뚱한 불행한 길로 나를 데려다 놓을까 봐,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소설이 당시 사회에 끼친 영향은 대단해서 베르테르와 로테의 로맨스는 부채나 도자기의 도안의 소재가 되기도 했으며, 베르테르가 입었던 푸른 저고리와 노란 조끼와 바지가 유행하기도 했단다. 또 베르테르를 예찬한 나머지 이혼이 증가하고 자살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이런 시대의 분위기의 영향으로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 역시 ‘우연’의 희생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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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칠근 2010-05-0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으로 치닫네요.
늘 건필, 건강하세요

페크pek0501 2010-05-04 15:29   좋아요 0 | URL
박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책 속을 산책하다가 좋은 글을 줍다> 직업과 사랑의 공통점



책을 읽다보면 좋을 글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글을 읽을 때면 다른 글로 넘어가기 전에 그 글을 여러 번 읽게 되는데, 괴테 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연애소설이 내겐 그러하였다.


이것을 처음 읽었을 때는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이었는데, 그땐 이 작품이 명작인 이유를 몰랐다. 시시했기 때문이다. 그저 한 여자를 짝사랑하는 한 남자의 불행한 사랑이야기일 뿐, 그 어떤 감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삼십대 중반에 다시 읽게 되었는데, 그땐 예전에 읽었던 느낌과 아주 다른, 새로운 명작을 읽는 듯했다. 이렇듯 읽는 시기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다른 이유는 아마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의 정신도 변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과 함께 나의 정신도 성숙해진 까닭이겠다.


이번에 어떤 글을 쓰기 위해 세 번째로 이 소설을 다시 펼쳐보게 되었는데,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어 이 글을 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를 통해서 직업과 사랑의 공통점을 발견한 것이다.





직업과 사랑의 공통점 세 가지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직업의 선택이다. 그런데 그것을 좌우하는 것은 우연이다.(파스칼)”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선택이다. 그런데 그것을 좌우하는 것은 우연이다.(pek0501)”


직업은 그 사람의 성품을 채색한다.(S. 존슨)”

사랑은 그 사람의 성품을 채색한다.(pek0501)”


“이 세상에 비천한 직업이란 없다. 다만 비천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링컨)”

“이 세상에 비천한 사랑이란 없다. 다만 비천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pek0501)”





왜 하필 다른 사람이 아닌 그가(또는 그녀가) 나타나서 나로 하여금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걸까, 여긴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운명적인 것이었을까, 하고 누구나 한번쯤 생각에 잠겨 봤을 것이다.


베르테르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내가 마차에서 내리자 한 하녀가 문 앞으로 나와서 로테 아가씨가 곧 나오실 테니 잠깐 기다려 달라는 전갈을 하였소. 나는 앞뜰을 지나 훌륭한 저택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소. 집 앞 층계를 올라가서 현관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여태까지 보지 못한 매혹적인 정경을 목격하였소. 즉 그 현관 홀로 위로는 열한 살에서부터 아래로는 두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들 여러 명이 한 처녀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오. 팔과 가슴에 연분홍색 리본이 달린 말쑥한 흰 옷을 걸치고 있는 그 처녀는, 얼굴이 아름답고 키도 알맞은 편이었소.” - 32~33쪽, 혜원출판사. 


그녀(로테)는 손에 검은 빵을 들고 자기를 빙 둘러싼 아이들에게 각각 나이에 따라 빵을 조금씩 잘라서 정답게 나누어 주었는데, 그러면 아이들은 저마다 천진스럽게 고맙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로테)의 모습에 베르테르는 반해 버린다.


“나는 겉으로는 (로테와) 덤덤히 몇 마디의 인사치레를 했지만, 속으로는 어느덧 그녀의 몸매와 음성과 거동에 완전히 매혹되어 버렸소. 그리하여 그녀가 장갑과 부채를 가지러 방으로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겨우 정신을 차릴 여유를 갖게 되었소.” - 33쪽.


이렇게 베르테르는 로테의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하지만 로테에겐 이미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었다. 이 이뤄지지 않는 사랑은 마침내 베르테르가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눔으로써 삶을 마감하게 한다. 그는 죽기 전에 로테에게 편지를 썼다.


“아아, 나는 얼마나 당신과 굳게 결합되어 있었던가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는 당신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리본도 함께 묻어 주십시오. 내 생일날 당신이 선물로 준 것입니다. 그런 물건들을 나는 얼마나 탐냈는지 모릅니다. 아아, 그 길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올 줄은 몰랐습니다. 진정해 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탄환은 재어 놓았습니다. 시계가 12시를 치고 있습니다. 그럼, 로테여, 안녕!” - 231쪽.


사람이 죽음을 선택할 땐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베르테르의 경우에 그의 성격이나 사고방식에 자살의 원인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고, 그 당시의 신분차별의 귀족사회에 대한 그의 불만이 자살의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로테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없었을 것이라고 볼 때 그의 죽음은 그 괴로운 사랑 때문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베르테르를 통해서 직업과 사랑의 세 공통점을 보다


로테가 동생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왜 하필 베르테르의 눈에 띄어 자살이라는 비극을 겪게 했을까. 베르테르가 로테가 있는 그 시골 마을에 가지만 않았어도 그는 그런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사랑은 우연의 산물이었다.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선택이다. 그런데 그것을 좌우하는 것은 우연이다.(pek0501)”


베르테르는 로테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 빠져서 자살을 선택할 만큼 극단적이고 격정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사랑은 그 사람의 성품을 채색한다.(pek0501)”


로테에게 이미 약혼자가 있었다고 해서 베르테르의 사랑을 비천하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랑이든 그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이 세상에 비천한 사랑이란 없다. 다만 비천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pek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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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할 책>


괴테 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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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거운 후기> 행복에 대한 글을 쓰면서 스쳤던 생각들


‘행복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란 글을 썼다. 그동안 살면서 내가 이해한 행복론인 셈이다.


그 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내가 쓴 것은 고작 한 줄기의 글이었다. 말하자면 내가 가꾼 생각의 꽃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껴진 하나의 꽃만 선택해서 보여 준 것이 그 글이었다. 이때 아름답다고 한 것은 물론 나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것일 뿐, 객관성은 없다.


여기 페이퍼에선 그 글에 쓰지 못한, 그 글을 쓰면서 스쳤던 생각들을 열거하고자 한다.


1.

행복은 ‘느끼는 자의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리 타인들의 눈에 행복하게 보이더라도 그 자신이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랴.


그런데 행복이란 것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즉 행복해야겠다, 라고 마음먹은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행복을 자기 자신 밖에서 발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잘못된 사람이다.”(소크라테스)

“행복은 어떤 일정한 것 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고스란히 나 자신 속에 머물고 있었다.”(J. J. 루소)

“행복과 불행은 모두 마음에 달려 있다.”(데모크리토스)


내용이 형식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좌우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억지로라도 소리 내어 웃으면 몸 안에서 기분을 좋게 하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실제로 우울한 기분이 사라진다고 한다. 다행히도 우리 몸은 가짜 웃음을 판독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므로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웃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 단, 이것이 초기의 우울증엔 효과가 있지만 우울증 중증엔 효과가 없다는 것.


형식이 내용을 바꿔 주는 또 한 가지 예로, 밝은 옷을 입으면 기분이 산뜻해지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행복하기 위한 노력은 꼭 필요할 듯하다.


2.

역사학자 윌 듀란트는 그의 연구생활과 학식에서 행복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지식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여행을 해 보았으나 권태만을 느꼈다. 재산을 모아 보았으나 근심과 불화만 발견하였다. 저술에 몰두하여 보았으나 피곤하기만 했다. 어느 날, 그는 뜻밖에 참으로 아름다운 한 장면을 목격하였다. 한 여인이 작은 차 안에서, 잠자고 있는 아기를 팔에 안고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니 한 남자가 기차에서 내려 그 여인에게 다가가더니 아기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여인과 아기에게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잠시 후 그들이 승용차를 몰고 가는 것을 지켜보던 듀란트는 깨달은 것이 있었다. “아, 행복이란 저런 것이로구나.” - <세계예화집>에서.


3.

전쟁이 난다면, 그래서 컴퓨터가 작동되지 않고 텔레비전도 시청할 수 없으며 음악도 들을 수 없다면, 우리는 깨달을 것이다. ‘아, 평범한 일상 생활 속에 행복이 있었구나’라고.


큰 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그때도 깨달을 것이다. ‘아, 건강하던 모습으로 돌아가 일상 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그렇다면 미리 깨달아서 행복해 하면 안 될까, 다음과 같이.



하루를 열어 주는 새 아침이 날마다 있음에 행복하리라. 창문을 열면 기분 좋게 들어오는 신선한 새벽공기에 행복하리라. 책장을 넘기며 마시는 한 잔의 커피에 행복하리라. 가족이 정겹게 둘러앉는 저녁식탁에 행복하리라. 피곤한 몸 누이며 포근한 밤잠을 청하는 시간에도 행복하리라.



4.

삶의 본질을 압축하면 희극과 비극이다. 이것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인생은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이다.”(H. S. 월폴)


누구나 왜 내게는 큰 행운이 오지 않느냐고 불평을 하고, 소망이 이뤄지지 않느냐고 한 숨을 쉬며 사는 동안, 인생을 조금씩 알게 된다. 그리하여 삶이란, 희망을 갖고 살다가 그것에 속으며 늙어 가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환자는 건강을, 실직자는 안정된 직업인을 꿈꾸지만 실현되지 않는 꿈으로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희망이 있는 삶과 희망이 없는 삶의 차이는 엄청나서 삶의 모습을 정반대로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희망이 있는 삶에 희극이 있다면, 희망이 없는 삶엔 비극이 있다.


노신은 ‘희망’에 대해 다음의 글을 썼다.


나는 생각한다. 희망이라는 것은 원래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없거니와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실상 땅 위에 본래부터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노신 저, <고향>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속을 수 있는 희망’조차 품을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반대로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그 자체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5.

사랑을 제대로 하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행복도 제대로 느끼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 유홍준 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에서.


삶을 사랑하면(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면) 행복을 알게 되고, 행복을 알면 느끼나니 그때에 느끼는 행복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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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노신 저, <고향>  

 

 
 

         

 

  

 

 


 

 

 

 

 

 

   

  

  

 

 

 

 

 

 

 

 

 

 

         

        

 

 

 

유홍준 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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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6.25전쟁으로 빼앗긴 들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듯이, 비명횡사한 사람들이 있는 슬픈 세상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습니다.


천안함 침몰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비탄에 잠겨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거나 아들을 잃거나 남편을 잃은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이렇게 태평하게 사는 우리들과, 이렇게 태평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됩니다.


지금 그들에겐 무엇보다도 사고의 확실한 원인 규명과 국가적 차원의 배려와 국민들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것입니다.


가족을 또는 동료를 잃은 큰 슬픔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그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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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4-09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루쉰의 저 말을 참 좋아합니다. 희망이란 것이 원래 있던 것도 아니고, 없던 것도 아니란 희미한 말을요... 책이 한 권 분실돼서 좀 아쉽지만, 제가 시간 되면 다시 좋은 책 보내드릴게요. ^^

페크pek0501 2010-04-10 12:33   좋아요 0 | URL
^^^한 권을 받으나 두 권을 받으나 그 고마운 마음은 똑 같 아 요.
젓가락 두 짝의 모양이 똑같듯이 말이에요.ㅋ
그러니 또 보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 감사하게 받았답니다.

글샘 2010-04-10 16:24   좋아요 0 | URL
ㅎㅎ 똑 같 아 요... 리듬이 잘 느껴지네요. ^^

페크pek0501 2010-04-1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일만에 들어오네요. 주인은 없는데, 방문자 통계를 보니 방문자는 매일 백 명이 넘었군요. 새 글도 없는데 말이죠. 방문자 수가 만 명이 넘었다는 것을 오늘 알았어요.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글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 친정에 있어요. 친정부모님을 제가 돌봐드려야 할 사정이 있어서요. 전 형제가 오빠뿐인데, 부모님이 아무래도 며느리보단 딸을 편하게 생각하셔서 발이 묶여 있습니다.ㅋ

친정엔 컴퓨터가 없어서 산책하러 나왔다가 길가 PC방에 들렀어요.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로운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 페크.




순오기 2010-04-20 01:05   좋아요 0 | URL
아~ 친정에 와 계시군요.
음, 우리사회도 모계사회로 가는 조짐이 많이 보여요.
앞으론 부모를 모시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친정부모를 모시는 게 편하지요.

페크pek0501 2010-04-24 23:17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순오기님.
모계사회가 될 가능성이 많지요. 제 주위에도 결혼한 뒤 자매들끼리 모여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형제들간이나 남매간보다 자매간이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래서 전 언니나 동생이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어제 서울에서 돌아왔어요. ㅋ 일상을 떠나보면 알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순오기 2010-04-27 23:19   좋아요 0 | URL
댓글은 달리는데 새글은 안 올라오네요.^^

페크pek0501 2010-04-29 08:24   좋아요 0 | URL
관심 주셔서 고맙습니다. 새 글을 쓸 여유가 없네요. 오늘도 서울에 가서 3일간 있어야 한답니다. 당분간 그렇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단상(6) 행복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이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다. 하지만 어느 때이고 행복함을 자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현재의 행복은 감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현재가 시간이 지나서 과거가 되고 나면 행복한 시간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행복한 추억’이라는 이름이 생겨난다. 과거의 행복은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미래 또한 그렇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시간은 행복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하여 우리 대부분은 ‘행복했다(과거)’, ‘행복할 것이다(미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좀처럼 ‘행복하다(현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러한 예는 ‘여행’으로 들 수 있다. 예전에 가족과 또는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의 사진을 통해서 행복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과거의 시간은 행복하게 느껴진다. 미래 또한 그렇다. 며칠 뒤 여행을 간다고 하면 그 여행준비를 하는 며칠 동안 설레는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 해 보았을 것이다. 여행할 미래 또한 행복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나 미래의 여행은 행복한 그림으로 상상되곤 하는데, 현재의 여행은 어떠한가. 막상 여행을 가면 ‘집 떠나면 고생이야’라고 생각하거나 ‘뭐 이래, 여행이 시시하잖아’라는 생각이 들기 쉽다. 그래서 현재의 행복은 손에 쥐기가 어렵다.


왜 사람은 현재에 대해선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이것에 대한 답을 이렇게 찾는다. 행복은 사라진 뒤에야 그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라고. 사라져 봐야 그 소중함을 알아서다. 그것은 마치 젊은이들이 젊음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다가 나이가 들어서야 그 젊음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이렇게 행복에 대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 등의 시간적 거리로 나눠서 표현해 봤는데, 쇼펜하우어는 행복을 공간적 거리로 나눠 표현하였다.




인간의 행복은 아름다운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풍경과 같다. 이 풍경을 멀리서 보면 놀라울 만큼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가거나 그 안에 들어가면 조금 전 놀라운 아름다움은 어느덧 사라지고 도대체 아까의 그 아름다움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나무 사이에 멍청히 서 있게 된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의 명예나 재산이나 행복을 부러워하는 것도 그와 같다. - 쇼펜하우어 저, <사랑은 없다> p236.




아름답게 보이는 숲 속에 막상 들어가면 벌레들이 우글거리거나 쓰레기가 뒹굴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멀리서 보는 숲은 아름답다. 행복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나는, 행복은 사라진 뒤에야 그 빛을 발하는 것으로 표현하였고

쇼펜하우어는, 행복은 멀리서 보는 숲처럼 아름다운 것으로 표현하였는데,

그 뜻은 같다. 행복이란 손에 잡히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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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쇼펜하우어 저,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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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다른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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