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구절>


우리가 아는 것은 일부일 뿐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어 왕>은 리어 왕이 세 명의 딸들 중에서 효심 있는 셋째 딸의 진심을 모르고 감언이설을 늘어놓은 첫째 딸과 둘째 딸의 거짓말을 진심인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큰 불행을 겪는 비극을 보여 준다. 역시 그의 작품 <오셀로>는 오셀로의 아내 데스데모나가 다른 남자와 밀통하고 있다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오셀로가 의처증과 질투심에 사로잡혀 아내를 목 눌러 죽이고, 나중에 자신이 오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슬픔과 회한으로 자살하는 비극을 보여 준다. 이 모두 진실을 몰랐던 대가였다.


리어 왕도 오셀로도 진실을 몰랐던 것은 그 대상의 일부만 알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대상의 전체 중 어느 일부만 알았던 것이며 그 나머지는 몰랐던 것. 리어 왕은 세 딸에 대해서, 또 오셀로는 아내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역시 무엇을 안다고 할 때 그저 그것의 일부만 알 뿐이며 그 나머지는 모르는 것이다. 그 무엇도 전체를 알기 어렵다. 그러므로 무엇을 안다고 해도 제대로 아는 게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다음은 브레히트의 시이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 혼자서?

시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대동하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 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 당하자 울었다.

그 외에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말고도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브레히트,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중에서





이처럼 언어가 어떤 대상의 본질을 알게 하는 데에 한계가 있듯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 또한 그것을 아는 데에 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소설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을 바비큐 꼬치에 비유할 수 있다고 했다. 모든 연인들은 상대방의 어떤 요소들을 꼬치에 꿰고 나머지는 무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여자는 자기의 연인 남자에 대해, 미남 - 큰 키 - 팝송을 좋아함 - 폐소공포증 - 솔직함 - 게으름 - 산책을 싫어함 - 검정색을 좋아함 등을 꼬치에 꿰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에 대해 보고 느낀 것 중에서 그의 특징들만 골라내어 꼬치에 꿰어 그 상대를 이해하고 파악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대상의 일부만 알고 그 나머지는 모르면서도 마치 전체를 알고 있는 듯 착각하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오류를 범한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총체적으로 알기보다 부분적으로만 잘 알고 있어서 실수를 할 때가 있었다. 나 자신의 의외의 면에 대해 깜짝 놀라며 ‘내게 이런 면이 있었나’,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하고 의아해 하곤 하였다.  

  

그러므로 누군가에 대해 안다고 말할 때 ‘나는 그에 대해 잘 안다’라는 말은 ‘나는 그의 어떤 면을 잘 안다’로 고쳐 말해야 할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은데 누구를 제대로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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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오늘날 우리가 컴퓨터와 친숙해져서 인터넷 악성 댓글에 대한 피해가 생기고 그것이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된 바 있다. 최근엔 모 방송인의 싱글맘 생활에 대한 비난의 댓글이 쏟아지기도 하였다.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얻은 것에 대한 비난으로, 아버지가 없는 아이의 장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쓴 글이었다. 이것을 보며 자신에 대해서도 총체적 파악이 어렵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타인의 사생활에 대해 입을 떼는 것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싱글맘 중에는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삶을 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또는 자식을 갖는 일이 얼마나 절실한 문제였는지, 우린 알지 못한다. 그저 싱글맘이 되었다는 사실, 그것만 알 뿐이다.


누구든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선 무엇에 대해서든 함부로 비난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직접 경험하기 전엔 그 무엇의 일부만 아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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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들>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 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오셀로>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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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09-08-1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서^^ 글 잘 읽고 갑니다.자주 제가 쓴 것처럼 공감이 되거든요.

페크(pek0501) 2009-08-20 09: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글을 완성하고 나면 고쳐야 할 결함이 눈에 띄어 완벽한 글을 쓰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란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도 글을 쓰는 건 제 마음 설레게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 글의 결함이 생각나 수정하러 들어왔어요. 싱글맘 댓글 얘기는 이 글에서 사족인 듯하여 <후기>라는 글로 빼냈습니다.

옹달샘 2009-08-28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되는 글입니다. 나 자신도 나를 모를 때가 있는데 남을 완전히 안다는 건 불가능하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상대에 대해 모든 걸 안다면 시시할 것 같은 생각도 드네요. 연애하는 사이라면 서로를 알아가는 재미가 상대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페크(pek0501) 2009-08-29 00:16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글쟁이 친구! 상대에 대해 백 퍼센트를 알아버리면 사랑하기 힘들걸요. 인간의 검은 마음, 응큼함, 속물근성까지 다 알고나면 사랑의 감정이 생길까요. 아주 순수하고 고귀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면 몰라두요. 아마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될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타인의 일부만 아는 것은 참 다행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랑에도 빠질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