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고위층의 비리가 드러나서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일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처음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다가 나중엔 혐의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사는 그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어쩌면 그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이 사회에서 힘이 있는 자들만이 저지를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처럼 힘없이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밟고 살기 어려운 땅의 이야기 같다.
명문 대학에 입학이 가능한 정원의 수처럼, 모든 좋은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 법이다. 결국 어떤 분야에서든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타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타인들에게 패배감을 안겨 준 것이다. 또 나중엔, 그런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열등감과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더 나은 생활을 하며 살 수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면에서든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은 미안함을 느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말이 가능할 듯싶다. ‘권력 있는 사람은 권력 없는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재산이 많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대신 우월감을 갖는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패배감을 안겨 준다.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런 슬픔을 안톤 슈낙은 이렇게 표현하였다.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안톤 슈낙 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
독일의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 시인은 죽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
고위층의 ‘비리 소식’이 끊이지 않는 세상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시인처럼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
이 글과 관련한 책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 <살아남은 자의 슬픔>
안톤 슈낙 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