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구절>로 쓴 칼럼


더 큰 불행은 얼마든지 있다





이보다 더한 불행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라. - <탈무드> 중에서.




1미터 길이의 직선에 손을 대지 않고 그 직선을 짧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의 답은, 그 직선보다 긴 직선을 위나 아래에 그어놓는 것이란다. 그렇게 하면 원래 있었던 직선이 짧은 직선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짧다’라는 개념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어떤 불행한 일을 겪을 때 더 큰 불행을 생각해 내면 그 불행한 일이 작은 불행이 된다는 뜻의 구절이 <탈무드>에 나온다. “이보다 더한 불행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라”라는 구절이다.


이것의 예를 이렇게 들 수 있겠다. 십만 원을 잃어버리면 이십만 원을 잃어버린 더 큰 불행을 생각해 내서 그것보다 다행스런 일이라고 여기고, 화재가 나서 집이 타버리면 인명피해가 있는 더 큰 불행을 생각해 내서 그것보다 다행스런 일이라고 여기며 위안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가정보다 차라리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남의 불행을 보고 위안을 받을 때가 더 많은 듯하다. 예를 들면 전셋집에서 사는 사람이 월세를 내며 사는 친구를 만나서 위안을 받고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는 경우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불행은 그리 대수로운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이야기로 권여선 작, <사랑을 믿다>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남자와 이별하고 실연의 고통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한 젊은 여성이 어머니 심부름으로 큰고모님 댁을 방문하게 되었다. 거기서 우연히 불행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그 여성의 큰고모님 댁을 철학관으로 잘못 알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누구는 친지의 희귀병 때문에, 누구는 유괴된 손자 때문에, 누구는 바람난 남편 때문에 절실한 마음으로 점을 보러 철학관을 찾아왔던 것.


그들의 기구한 사연을 듣게 된 그녀는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건만 그들의 딱한 사정에 마음이 강하게 끌리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 집의 계단을 내려오면서 타인을 위해 빌었다. “희귀병을 앓는 친지의 완쾌를, 유괴된 손자의 생사를, 바람난 남편의 귀가를, 자식을 앞세운 뒤 늙어가는 부부의 평안과 명랑을 빌었다. 그녀가 타인을 위해 뭔가를 이토록 절박하게 빌어본 적은 없었다.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그녀는 스스로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다는 것은 이제 남자와의 이별로 신음하던 그녀가 아님을 의미한다. 그 집을 방문하기 전과 방문한 후의 그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자신의 지독한 아픔도 싹 잊은 채 오직 남을 위해 마음속으로 절실히 빈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아픔 따위는 거의 치유되었다는 걸 뜻하리라. 그런 불운한 일들을 겪으며 사는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고통은 아주 작은 하찮은 것이라는 깨달음이 그녀를 변화시킨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이런 분석이 가능할 듯싶다. 첫째,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고, 세상 어딘가에는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 그러므로 자신의 불행에 대해 엄살떨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 나의 행복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남의 불행이 전제되어야만 한다는 것. 그러므로 사람은 타인의 불행을 보고 위안을 받는 잔인한 구석이 있다는 것. 셋째,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타인의 모습과의 비교가 필수라는 것.


타인과 늘 비교하는 인간의 심리로 인해,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지 않아도 외국여행을 다니거나 골프를 치러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고, 그리 뚱뚱하지 않아도 자신보다 더 날씬한 사람을 보면 자신은 살을 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위치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보다는 열위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행복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뜻으로 솔제니친*은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사람은 행복해지기로 결심하고 있는 한 행복하다. 아무것도 그를 막지 못한다.”


* 솔제니친 : 197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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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탈무드> :  

                     

“인생은 무엇이며, 또한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5000년의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유태인들의 온갖 지적 재산과 정신적 자양분이 모두 이 <탈무드>에 담겨져 있다.”



 

 

 

 

<사랑을 믿다> :  


권여선, ‘2008 이상문학상 작품집’. 권여선 외에 정영문, 하성란, 김종광, 윤성희, 천운영, 박형서, 박민규 등의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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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2010-01-19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자주 들어오는데 오늘도 새 글이 없군요. 바쁘신가봐요. ㅎ

페크(pek0501) 2010-01-22 12: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바쁘기도 합니다만 워낙 무능해서요 ㅋ. 블로거들 중엔 직장을 다니면서도 매주 신간을 읽고 리뷰를 올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유능한겁니다. 아무리 바빠도 바쁜 티를 내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다 해놓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이죠. 저는 요즘 그저 게으름의 자유와 느림의 미학을 즐기고 있는 중입니다.

헌책방IC 2010-02-0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댓글이 인상적입니다. 게으름의 자유와 느림의 미학. ㅋ 좋지요 ㅎㅎ

페크(pek0501) 2010-02-02 14:16   좋아요 0 | URL
속도주의에 빠져 바른 속도만 중요시하는 시대에 사는 게 부담스러운데, 그렇게 느림의 아름다움을 느끼자는 분위기도 있어 저 같은 사람에게 위안을 줍니다.

진지리진 2010-08-04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름다운 쌤♡
오늘 우리 만나기로 한 날인데^^
못 만났죠.. 덕분에 오늘은 감동을 주는 글..에 취해 갑니다~

페크(pek0501) 2010-08-0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 그리고 반가워. 그 벌칙으로, 만나면 내가 맛있는 팥빙수를 쏠게, 아니면 우리 물냉면을 먹을까 ㅋ
연구문제를 정하는 데도 힘들던데, 설문조사를 하는 건 더 힘들던데, 통계분석의 해석을
쓰고 있는 오늘은 더 힘드네. 논문쓰기가 산 넘어 산이라고 할 수 있네. 이제 좀 쉬려고 컴퓨터를 끄려다가 진의 댓글을 발견하고 반가워 로그인 했어.
이 무더운 여름날, 난 더운 줄도 모르겠어. 바다에 빠졌거든. 연애의 바다라고...ㅋ
휴우, 난 요즘 논문과 연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