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구절>


                        왜 안경 쓴 신부는 없을까



요즘 안경 쓴 여자가 예뻐 보인다는 김용건 씨


며칠 전, 한 일간지 사이트(chosun.com)에서 ‘안경 쓴 여자’에 대한 글을 보았다. 탤런트 김용건 씨가 쓴 글이었다. 그는 안경 쓴 남자는 멋있는데, 안경 쓴 여자는 별로더라, 하는 얘기를 사람들로부터 종종 들었다면서 자신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요즘은 안경 쓴 똑똑한 여자들이 예뻐 보인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듣는 앞에서 ‘똑똑한 여자는 싫다’라고 말하는 남자들이 답답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흔히 드라마 속에서 똑똑하고 못생긴 여자의 배역에 안경을 쓰게 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주인공이 미모의 여자임을 나타낼 땐 절대 안경을 씌우지 않는다. 이것은 은연중에 사회적으로 유능하고 똑똑한 여자는 얼굴이 못생겼음을 나타내고, 안경은 그런 전달을 위한 소품임을 보여 준다. 그러면서 안경이 주는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세뇌시킨다.


내가 안경에 대한 시각을 교정한 것은 순전히 딸 덕분이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게 되었는데, 난 그 일에 무척 속상해 했다. 그런데 만약 안경을 쓰게 된 게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가정해 보니 그건 속상할 것 같지 않았다. 여기서 난 충격을 받았다. 나 역시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남자는 안경을 써도 괜찮고 여자는 안경을 쓰면 약점이 된다는 사회통념에 물들어 있었던 셈이다. 남자는 외모보다 경제적 능력을, 여자는 능력보다는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인습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웨딩드레스 입고 안경 쓴 신부는 없다


안경은 학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는데, 우리 사회는 학자적인 남성을 선호하는 반면에 학자적인 이미지의, 안경 쓴 여성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결혼식장에서의 신랑과 신부의 모습은 이를 증명한다. 안경 쓴 신랑은 흔히 볼 수 있는데 안경 쓴 신부는 찾아보기 어렵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안경을 썼다면 아마 화젯거리가 될 게 분명하다. 딸아이의 안경 건으로 내가 속상했던 것도 ‘여자’가 안경을 써서 어떡하나 하는 것이었다. 먼훗날 결혼적령기의 딸이 안경으로 인해 약점이 있는 신붓감이 될까봐서 염려했던 것.


여자는 후천적으로 길들여진 여자로 존재


일찍이 보부아르는 <제2의 성>이란 저작에서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지는 것이다.”라고 설파하였다. 그녀는 남성이 씌운 ‘여자다움의 굴레’를 단호히 거부하며, ‘남녀 차이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사회적ㆍ문화적 영향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미국의 흑인문제가 따지고 보면 백인문제이듯이, 여성문제도 실상은 남성문제”라는 그녀의 주장을 ‘안경 문제’에 대입해 보면, 안경 쓴 여성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결국 남성의 잘못된 인식이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잘못된 인식에 의해 안경을 쓰는 여성이 안경 쓰지 않는 여성보다 좋지 못한 신붓감이라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또 후천적으로 만들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세상은 많이 변했다. 예전의 20대 여성들은 ‘시집만 잘 가면 된다’라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았지만 이젠 거기에다 ‘취업도 잘 해야 된다’라는 말이 추가된 지 오래다. 이젠 반반한 얼굴만이 여성의 경쟁력인 시대는 지났다. 남성들도 배우자감으로 여성을 볼 때 여성의 직업에도 큰 관심을 갖고 유능한 여성을 만나 맞벌이 부부로 살기를 희망하는 추세다. 여성에 대한 이상형이 바뀐 것이다. 그러니 여성을 보는 시각도 ‘똑똑한 여성이라 싫다’가 아니라 ‘똑똑한 여성이어서 좋다’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안경 쓴 여자에 대한 인식도 자연히 변해야 한다.



요즘 컴퓨터와 텔레비전으로 인해 시력이 나빠져 안경 쓴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그 중의 반은 여학생들이다. 이들이 미래에 안경으로 이해 어떤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건 불공평하고 불행한 일이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지금과 달랐으면 좋겠다. 안경 쓴 여자도 안경 쓴 남자처럼 학구적으로 보여 전혀 약점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그리하여 결혼식장에서 안경을 쓰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흔히 볼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한다. 내가 너무 큰 걸 바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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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2003년에 ‘안경 쓴 여자’라는 수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위의 글 중 일부가 그 수필의 글과 중복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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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들의 구절


<1> 프랑스의 페미니즘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지는 것이다.”

“남녀 차이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사회적ㆍ문화적 영향의 결과에 불과하다.”

“미국의 흑인문제가 따지고 보면 백인문제이듯이, 여성문제도 실상은 남성문제이다.” - 시몬 드 보부아르 저, <제2의 성> 중에서 - 

 


 

 

 

 

 

 

 

<2> 영국의 페미니즘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합니다.”

“왜 남자들은 포도주를 마시고 여자들은 물을 마시는가? 무슨 이유로 남성은 그렇게 부유하고 여성은 그다지도 가난한가?”

“여덟 명의 아이를 길러낸 유모는 만 파운드를 번 변호사보다 세상에서 더 가치 없는 인물일까요?” - 버지니아 울프 저, <자기만의 방> 중에서 -  




 

 

 

 

 

 

 

<3> 미국의 페미니즘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성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보다는 ‘왜 당신같이 좋은 여자가 결혼을 안했죠?’하고 묻는 데에 더 관심이 있다. 그래서 여성들은 신중한 태도로 살려고 하고 싶지 않게 되며, 또 그렇게 격려 받지도 못한다.”

“여자가 의식화되고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 남성에게는 불리한 것이 아니다. 서로 인간이 되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남편과 아이들과 가정에 대한 헌신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남성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쁜 원칙과 싸운다.” - 베티 프리단 저, <여성의 신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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