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옮긴 글 두 개
치숙은 비가 오는 것도 잊고 글을 쓰느라 바빴다. 나는 슬그머니 다가가선 골방 앉은뱅이책상이 아니라 이곳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물었다.
“오만해지지 않으려고 그런다.”
“오만해지다뇨?”
“자, 봐라. 저 산과 나무와 풀들! 참으로 아름답지 않니? 골방에서 벽만 보고 글을 쓰면 내 문장이 최고란 착각이 들어. 하지만 여기 이렇게 앉으면 주위를 돌아보기만 해도 내 글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지. 너도 골방 구석에 처박혀 글 쓸 생각 말고, 조물주의 솜씨가 훤하게 보이는 밖으로 나와.”(김탁환, ‘앵두의 시간’에서)
<천국의 문> - 2016년 제40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163쪽.
나의 코멘트 :
그런 거였구나. 나도 글을 쓰는 장소를 바꿔 볼까? 내가 아는 바로는 자기 글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사람일수록 발전이 없을 가능성이 있다. 책을 통해서 위대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에 대한 불만족을 토로하는 글을 흔히 볼 수 있다.
누군가를 안다는 건 그 사람의 외로움을 안다는 것이야. 그리고 그 외로움을 어디로 옮겼는지 안다는 것이고.(김탁환, ‘앵두의 시간’에서)
<천국의 문> - 2016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175쪽.
나의 코멘트 :
내가 아는 바로는 누군가를 안다는 건 그 사람의 이면을 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이면’이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그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잘 관찰해야만 알 수 있는 어떤 것. 말하자면 그 사람의 알맹이에 속하는 어떤 것이다. ‘그 사람의 비밀’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그 사람의 비밀에 대해서 모른다면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고 본다.
이 책을 186페이지까지 읽었다. 내가 산 책이 아니라 남편이 사서 먼저 읽고 내게 준 책이다.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읽고 있다.(다 읽고 나서 혹시 내가 이 책의 리뷰를 쓰게 되면 위의 글을 넣어 써야겠다.)
2. 단상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보다 관대해지는 줄 알았다. 내가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관대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속이 좁아진다는 것을. 내 또래의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도 알게 되고 나 자신을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친구 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전엔 내가 상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게 아닐까 걱정될 때, 모든 인간관계엔 노력이라는 게 필요하다고 여기고 노력하곤 했는데 이젠 그렇게 하지 않는다. 노력이 필요한 관계라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노력 없이도 잘 유지되는 관계의 수가 아홉인데 굳이 하나가 노력 없이는 좋은 관계가 되지 않는다면 끊어내고 싶은 것이다. ‘내가 맘에 안 들면 나를 자르시오. 그 정도의 일로 삐져서 연락을 끊겠다면 나를 자르시오. 그래도 내겐 좋은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아홉이나 된단 말이오. 당신 하나 빼도 내 삶에 불편함이 전혀 없소.’ 이렇게 생각하고 어떠한 노력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버티게 된다. 그러다가 막상 저편에서 아무렇지 않게 먼저 연락을 해 오면 그렇게 고맙고 반가울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내가 연락을 자주 하게 된다.
상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게 아닐까 걱정되면서도 나는 왜 노력을 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이 나왔다. 나이가 들면 기운이 없어진다. 기운이 펄펄 나던 젊은 때와 다르다. 그런데 ‘노력’이란 것엔 기운을 써야 한다. 그러니까 불편한 인간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하기 싫다는 것은 그럴 기운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이 갱년기에 안 그래도 기운 없어 죽겠는데 그 따위 노력으로 몸 축나기 싫어.’ 이런 고요한 외침이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을 타고 늙을수록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 그러니 노력이 하기 싫더라도 훗날을 위해 노력을 하는 쪽을 선택하는 게 지혜라는 사실. 이런 생각으로 삶의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봤다.
연둣빛이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