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끈 책 몇 권을 뽑아 봤다.
* 시오노 나나미, <생각의 궤적>
<생각의 궤적>을 구입한 이유는, 뛰어난 저술가는 에세이를 어떻게 쓰는지 궁금했기 때문. 다시 말하여 어떤 구성과 어떤 내용으로 쓰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 내용이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읽다가 ‘내가 기억하고 싶은 문구’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기대할 뿐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구이다.
분개와 분노는 원래 역량이 없는 자를 향하는 감정이 아니다. 힘은 있는데 그 활용법을 몰랐던 자에 대해서 터뜨리는 감정이다.(281쪽)
사심이 없다고 공언하는 이상주의자가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해를 끼쳤는지는 역사 속의 수많은 실례가 증언해 주고 있다. 나는 이런 위선자보다는 야심가 쪽이 훨씬 해가 적다고 생각한다. 아니,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면, 야망을 품는 쪽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217쪽)
나는 작가의 통찰을 엿볼 수 있는 문구를 발견하면 연필로 밑줄을 긋고 여러 번 읽는 습관이 있다.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크리슈나무르티, 교육을 말하다>
<크리슈나무르티, 교육을 말하다>를 구입한 이유는, 내가 평소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은 데다 크리슈나무르티가 관심 가는 인물이기 때문. 게다가 내가 이 책을 주저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 다음의 글을 읽었기 때문.
삶에 대한 총체적 이해 없이는 우리가 개인이나 집단으로서 안고 있는 문제들은 더 심각해지고 확대될 것입니다.(21쪽)
두려움은 우리 자신을 이해할 때 끝납니다.(21쪽)
‘삶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자신에 대한 이해’.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관심 갖고 집중해 온 주제이다.
나는 배우고 싶은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에게서 내가 배울 점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서. 나의 어떤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깰 수 있기를, 새로운 사고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 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열 개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는데 문체가 좋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재밌어서 술술 읽혀진다. 시간의 간격을 두고 나중에 한 번 더 읽고 싶은 소설집이다. 문장이 완만하게 흘러가다가 갑자기 쾅, 하고 때리는 듯한 문장이 나타나 독자로 하여금 잠시 독서를 중단하게 만드는 게 앤드루 포터의 강점인 듯. ‘구멍’이란 소설을 예로 들면 이러하다.
그 구멍은 탈 워커네 집 차고로 이어지는 진입로 끄트머리에 있었다.(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열 살인 탈은 그 구멍에 빠져 숨지고 만다. 자기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카일.
젊은 소방관들이 탈의 시신을 찾아내 들것에 옮길 즈음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다. (...) 이 광경을 지켜보던 카일 형은 집 반대편에 있는 작은 숲 지대로 몸을 피하고 만다. 그날 밤늦게 카일 형은 이글 호수 낚시 여행에서 막 돌아온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야 한다.(14~15쪽)
자기 부모에게 동생이 구멍에 빠져 죽었다는 사실을 말해야 하는 카일의 심경이 어떠할지, 그리고 낚시 여행에서 돌아와 열 살짜리 아들이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어야 하는 부모의 심경이 어떠할지 헤아리게 되자 책 읽기를 잠시 중단하게 되었다. 멍했다. 소설의 좋은 점은 바로 이런 것. 내가 각 인물들의 심경이 되어 보는 것. 그래서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낯선 곳에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되는 것.
**** 전중환, <본성이 답이다>
<본성이 답이다>의 강점은 서너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읽힌다는 점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주제에 대해 쓰다 보니 각각의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뭔가 더 있겠지 하고 읽다 보면 그 주제가 끝이 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차라리 주제의 개수를 반으로 줄여서 더 깊이 있게 다루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인간 심리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나는 이런 책을 선호한다. 심리학 관련 서적은 다 재밌다.
예를 들어 데일리와 윌슨은 캐나다의 10개 주와 미국의 50개 주를 대상으로 각 지역 내의 소득 불균형 정도와 살인 사건 발생률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경제적 불평등이 심한 주일수록 살인 사건이 더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나라의 살인율이 왜 이토록 차이가 나는지 조사한 다른 연구들도 국민 총생산이나 실업률, 근대화의 정도 등등의 다른 변수들보다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변수가 살인율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결론 내렸다. 요컨대, 나라가 얼마나 부유한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국민들 사이에 부가 얼마나 잘 분배되어 있는가가 그 나라의 범죄 발생률, 기대수명, 신체 및 정신 건강, 행복 등에 큰 영향을 끼친다.(97~98쪽)
*****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이번 주에 사려고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책이다. 알랭 드 보통의 저작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불안>, <우리는 사랑일까>,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등이다. 이 책들이 그랬듯이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란 책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예측한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나로선 이 신간을 놓칠 수 없다. 기대된다.
알랭 드 보통의 저작 중에서 내가 쓴 리뷰는 여기에...
http://blog.aladin.co.kr/717964183/2629136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같은 방식으로 쓴 소설인 것 같다. 에세이 같은 소설이라고 보면 될 듯.
그리고 싱거운 이야기 다섯
1.
부부 사이에서든 친구 사이에서든 인간은 완벽할 순 없으니 더러 잘못을 저지르며 살겠다. 중요한 건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이 아니라 사과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 반성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미안해 할 줄 아는 사람인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2.
헤르만 헤세의 <헤세의 문장론>에서 읽은 인상적인 구절. “작가란 직업은 조용히 눈을 뜨고 기다리면서 좋은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뜻한다.”라는 구절이다. 이 글은 작가뿐만이 아니라 어떤 직업에서든 성공을 하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할 것 같다. 최고가 되고 싶다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태도는 일등이 되려고 조급해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목표를 향해 노력하며 성실한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리라.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언제 삶을 마감하든 후회가 없도록 말이다. 성공은 자신의 목표에 도달할 미래의 삶에 있지 않고 노력하는 가운데 즐기는 현재의 삶에 있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3.
주름살이 생기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되던 시절, 피부에 탄력이 없는 걸 신경 쓰지 않아도 되던 시절, 이가 누렇게 변하는 걸 느낀 적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이삼십 대 젊은 시절이었다. 늙어서 노화를 느끼면서도 웃을 수 있는 자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은 나이 들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초라함이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늙으면 너그러워질 것 같지만 사실 속이 좁아지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한다.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잃게 되고 초라함을 느끼게 되면 서글픈 게 많아지고 섭섭한 게 많아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4.
만난 적은 없지만 ‘온라인 우정’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신 고마운 분들이 몇 분 있다. 몇 분뿐이겠는가. 내 서재에 댓글을 남기는 모두가 내겐 참 고마운 분들이다. 직접 만나 본 적이 없고 글로만 아는 분들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이 아는 듯한 착각이 든다. (댓글을 포함해서) 글이란 어떤 형식의 글을 쓰든 내밀한 자기 고백인 셈이니까.
5.
울음은 없고 웃음만 있고, 슬픈 일은 하나도 없고 기쁜 일만 있으며, 아무도 상처를 주지 않고 좋은 말만 하고, 아픈 사람이 없고 모두가 건강하고, 음식은 배부르게 실컷 먹을 수 있게 쌓여 있고, 가난한 사람도 한 명도 없이 모두가 부자이고, 누구나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고, 날씨조차 춥지도 덥지도 않고 살기에 딱 알맞은 온도가 유지되는 세상. 이런 곳에서 우리가 산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할까? 인생에는 나쁜 날도 필요한 게 아닐까? 나쁜 날이 없다면 좋은 날을 구분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생각으로 지난 7월과 8월의 더운 날들을 견뎠다.
또 하나, 더운 날들을 견디게 해 준 것이 있다. 책이었다. 책 덕분에 더위로 인한 지루함을 덜 수 있었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독서 취미가 삶을 구원해 줬다.(참고로,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는 의견에 나는 반대한다.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독서는 얼마든지 취미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늘 사고 싶은 책이 있고 늘 읽고 싶은 책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삶이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고 삶 속에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들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