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만에 알라딘에 로그인을 했다. 컴퓨터에 시간을 빼앗기는 게 싫어서 컴퓨터 사용을 자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바빠서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아니다. 바쁘다는 건 핑계.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리 되었다.
2.
요즘 발견한 사실 하나. 책을 가장 재밌게 읽게 되는 시간이 있다는 것. 출근하기 전, 시간이 좀 남아서 30분가량 책을 볼 때가 있는데 그 시간이 가장 재밌다는 것. 여기서 재밌다는 뜻은 그 시간이 좋았다는 뜻이다. 그저께 아침엔 눈이 일찍 떠져서 아예 일어나 버렸다. 책을 읽다가 출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은 때보다 시간이 적게 한정되어 있을 때에 읽는 책이 더 재밌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곧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책을 더 읽고 싶어도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그 상황이 짜릿함을 선사하는 것이겠지. 연인으로 말하면 휴일에 만나 둘이 하루 종일 함께 있는 날보다 직장에서 퇴근한 뒤에 만나 둘이 두 시간만 함께 있는 날이 더 짜릿하겠지. 이런 점에서 책은 연인을 닮았네. 나와 책의 관계는 연인 관계인 듯.
3.
내 친구 A는 나보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도 나보다 똑똑하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상의할 일이 생기면 그에게 말하는데 언제나 내게 만족스런 답을 준다. 지혜롭기까지 하다. 독서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똑똑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독서를 많이 했는데도 왜 그 친구보다 똑똑하지 않는 걸까? 생각하다가 책과 똑똑함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내가 책을 읽어서 똑똑한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덜 똑똑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건 추측할 수 있겠다. 그나마 책을 읽어서 요 정도의 사람은 되었을 것이다. 그 친구는? 그 친구가 책을 많이 읽는다면 더 똑똑한 사람이 되겠지.’
4.
“너를 칭찬하고 따르는 친구는 멀리하고, 너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친구를 가까이하라.”라는 탈무드의 명언을 읽었다. 이 말은 ‘너에게 아부나 하는 친구를 멀리하고 솔직하게 말해 주는 유익한 친구를 가까이하라.’의 뜻 같다. 그런데 이것이 한 가지를 간과한 명언이 아닐까 싶다. 친구의 칭찬은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해 주고 싶은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고, 친구의 비난은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해 주고 싶은 악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음을 간과했다는 것.
5.
오늘도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라 내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갈 날이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은 날씨 따위로 인해 기분이 좌우되지 않는 사람이다. 날씨 하나로 불쾌감을 갖지 않을 사람이다. ‘미세먼지가 많든 적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랴. 나는 그런 작은 것에 정신을 쏟지 않는다.’ 하는 사람이 나는 부럽다. 무엇에든 예민해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다. 딱 하나 있긴 하다. 직업적인 일을 처리하는 능력에선 예민함이 좋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예민한 사람은 꼼꼼한 성격일 테니까. 그래도 난 선택하라면 예민한 쪽보단 예민하지 않은 쪽을 선택하겠다. 좀 둔해지고 싶은 것이다. (나의 특징 : 예민하지 않아도 될 일엔 예민하고 예민해야 할 일엔 둔하다.)
6.
사람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 생각하길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책과 친한 사람과 친하지 않은 사람. 낭만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세상일에 관심 있는 사람과 관심 없는 사람 등등. 이번에 한 가지를 추가했다. 아무래도 좋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는 게 뭐라고>를 읽고서였다.
“좀 더 노란빛이 돌아야 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사코 씨는 치자를 꺼내서 찧고 으깨어 즙을 짜내고 있었다.
내버려뒀더니, 사사코 씨는 치자즙을 고구마에 넣어 섞었다.
내버려뒀더니, 긴톤은 노랗다기보다 갈색으로 변했다.
내버려뒀더니, 혼자서 “음 이제 됐어” 하며 만족스러워했다.
나는 “으음” 하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좀 과하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사사코 씨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아닌 듯해서 나는 요리에서 손을 뗐다. 내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지나치게 많지만 사사코 씨에게는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일이 지나치게 많다. 사람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44~45쪽)
-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에서.
‘아무래도 좋을 사람’이라는 점에서 저자가 좋아진다. 나도 까다로운 사람보단 ‘아무래도 좋을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래도 좋을 사람’이 되려면 글도 ‘아무래도 좋을 글’을 쓰고도 개의치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시시해도 좋을 잡담’으로 정했다. 맘에 든다.
‘시시해도 좋을 잡담’은 여기서 끝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