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4일
1.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땅이 젖어 있었다. 밤에 비가 왔구나. 비가 왔다면 미세먼지가 없다는 말인가 싶어 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네이버 양이 오늘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보통 수준이라고 한다. 보통 수준이라면 오늘은 ‘공기 좋음’이렷다. 아, 행복해!
행복하다.
일주일가량이나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도 못 열고 찜찜하게 지냈는데,
일주일가량이나 미세먼지 때문에 청소도 못하고 찜찜하게 지냈는데,
일주일가량이나 미세먼지 때문에 이불도 못 털고 찜찜하게 지냈는데,
일주일가량이나 미세먼지 때문에 욕실 환풍기도 못 켜고 부엌 환풍기도 못 켰는데,
일주일가량이나 미세먼지 때문에 외출하는 게 찜찜했는데.
오늘은 얼마나 행복한가.
일주일가량이나 창문을 열지 못해 독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실내를 환기하기 위해 창문마다 활짝 열었다. 미세먼지로 뿌옇던 가을 하늘이 오늘은 깨끗하다니 이 가을을, 이 공기를 만끽해야겠다.
날씨 하나가 주는 행복이 이렇게 소중하다니.
날씨 하나가 나를 그렇게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니.
겨우 날씨 하나가 나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니.
미세먼지가 없어져서 내 기분이 무지 좋다. 마치 어떤 이벤트에서 당첨되어 공짜로 책 열 권을 받은 기분일세.
며칠에 한 번 일기를 쓰는 나로선 일기를 생략하는 날이 많다. 오늘도 할 일이 많아서 생략할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날씨가 주는 행복이 일기를 쓰게 만들었다. 비록 시시한 일기지만 날씨로 인해 느꼈던 것을 기록하여 남기고 싶었다.
2.
이 글을 쓰고 보니 이런 글이 생각난다.
자신이 건강하고 자유롭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그 두 가지 축복을 누리는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행동이다. 우리의 행운을 외칠 줄 모르는 무능이야말로 우리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138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우리는 우리가 건강하고 (노예가 아니어서) 자유로운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감사할 줄 모른다. 병에 걸려 봐야지만 건강했던 시간들에 감사할 줄 알게 되고, 노예가 되어 봐야지만 자유로웠던 시간들에 감사할 줄 알게 되리라.
이렇게 한 번씩 미세먼지가 심해서 불편한 시간들을 겪고 나서야 ‘공기 좋음’의 소중함을, 그 고마움을 깨닫게 되는 나.
행운을 외칠 줄 모르는 인간의 어리석음, 인간의 한계를 생각해 본다.
이런 글도 생각나네.
인간에게는 고통과 병이 필요하다. 고통과 실패가 없다면 기쁨, 행복, 성공을 무엇과 비교하겠는가”라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삶을 더 진지하게 바라보고 가치 있게 사는 도구로 상처를 이용하라.(149쪽)
- 배르벨 바르데츠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서.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이 불행이 있어야 행복이 있다는 말이렷다. 그렇다면 불행은 행복의 필요 조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