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을 읽었다. 맘에 든다.
어떤 일에 얽매어 있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술주정뱅이나 죽어가는 자의 귀에다 대고 속삭일 수 있는 말을 해야 할 뿐이다.(11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술주정뱅이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내일이 되어 술이 깨고 나면 오늘 들었던 어떤 말도 다 잊고 말 술주정뱅이인데 말이다. 그러니 술주정뱅이에게 하는 말이란 별 뜻 없는, 진지하지 않은, 농담 같은, 가벼운 말이겠지.
만약 누군가가 나에 대해 험담을 했다는 것을 제삼자로부터 전해 들었다면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1) 상처 받고 속상해 한다.
2) 분노를 느끼며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3) 가려운 걸 보니 귀지를 파야 할 때가 왔구나 하면서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며, 험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정답은 3)번.
자신에 대해 험담을 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경우에, 술주정뱅이에게서 들은 말 정도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겠다. 이게 불가능할까? 모든 사람이 자신을 좋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A 님 : 페크 님,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글쎄, B 님이 페크 님에 대해 험담을 하더라고요.
페크 : 그래요? (가려운 걸 보니 귀지를 파야 할 때가 왔구나 하면서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며, 험담을 전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듣는다.)
그런데 과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모르겠다. 분노를 느끼며 복수할 계획을 세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마 복수 계획만 세울 뿐 복수를 실천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분노할 때에 받는 스트레스보다 복수하고 난 뒤에 받는 스트레스가 더 클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를 싫어하는 누군가 때문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이 글을 왜 쓰느냐 하면 앞으로 나를 싫어하는 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도, 귓구멍을 후비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걸 기억해 두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에밀 시오랑의 말처럼 '어떤 일에 얽매어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도 기억해 두기 위해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