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람둥이 독서광 : 책을 좋아하는 당신은 어떤 면에서 바람둥이 남성과 같을 것이다. 한 여성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동시에 여러 여성들을 만나는 바람둥이처럼 당신은 한 권의 책에 만족하지 못하고 동시에 여러 책들을 만날 것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이 여성을 만나고 어떤 날은 저 여성을 만나는 바람둥이처럼, 당신은 어떤 날은 이 책을 만나고 어떤 날은 저 책을 만나는 병렬 독서법으로 책을 읽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4~5권의 책을 그런 방법으로 읽고 있다.

 

 

 

그렇게 4~5권의 책을 함께 읽는 이유는 이러하다. 한 가지의 책에만 빠져 있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인 다른 책의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어제 이 책을 읽었다면 오늘은 매혹적인 저 책이 유혹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유혹에 기꺼이 빠진다.

 

 

 

이번에 나를 유혹한 것은 프리드리히 니체 (지은이), 시라토리 하루히코 (엮은이), <초역 니체의 말 2>이란 책이다.

 

 

 

니체가 이미 썼다 : 니체의 글을 읽으며 감탄했다. 내가 이제껏 여러 책들에서 배웠던 많은 것들이 1844년생인 니체가 이미 그 옛날에 써 놓은 글이었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그저 옛것의 변주곡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니체가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니체를 우러러보게 되는 이유다.

 

 

 

니체의 힘 : 니체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많은 글감이 떠올랐다. 좋은 글은 독자로 하여금 글을 쓰고 싶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일까.

 

 

 

    

 

 

 

 

 

 

 

  

 

 

  

 

 

 

 

 

2.

이 책은 두 시간이면 족히 읽을 책이지만 스무 시간을 들여 글의 뜻을 헤아리며 찬찬히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좋은 글이 많이 있다. 특히 이런 글에 내 마음이 꽂혔다.

 

 

 

 

재밌다는 것은?

 

한 사람이 “이 일이 최고로 재미있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카약을 타고 급류를 즐기는 게 최고지.”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차(茶)의 깊은 맛을 보고 나면 누구든 헤어 나오지 못할걸.“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달리고 있으면 몸이 얼마나 좋아하는데.“라고 말한다. (…) 모두가, 자신이 하는 일이 재미있고 즐겁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일 자체가 흥미롭기보다는 그 일에 열중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기쁜 것이다. 

...........................................................................................................................<초역 니체의 말 2>, 107쪽.

 

 

 

 

책을 쓴다는 것은?

 

책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다. 독자보다 우위에 있음을 과시하기 위함도 아니다. 책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통해 자기를 극복했다는 일종의 증거다. 낡은 자기를 뛰어넘어 새로운 인간으로 탈피했다는 증거다. 나아가 같은 인간으로서 자기 극복을 이룬 본보기를 제시함으로써 누군가를 격려하고자 함이요, 겸허히 독자의 인생에 보탬이 되려는 봉사이기도 하다.

...........................................................................................................................<초역 니체의 말 2>, 116쪽.

 

 

 

 

학습의 효과는?

 

우리는 학습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 지식이란 것은 정작 사회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당연한 말이다. 고작 몇 년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이란 보잘 것 없기 때문이다. 실상 학습의 효과는 다른 데 있다. 바로 능력의 단련이다. 열심히 조사하는 힘, 추리 혹은 추론하는 힘, 지구력이나 인내력, 다면적으로 바라보는 힘, 가설을 세워보는 힘…… 학습을 통해 이 같은 다양한 능력을 갈고 닦을 수 있다. 이렇게 경험으로 체득한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귀중한 도움을 준다.

...........................................................................................................................<초역 니체의 말 2>, 152쪽.

 

 

 

 

슬픔을 잊게 하는 것은?

 

‘시간이 슬픔을 잊게 한다.’고들 흔히 말한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이 실제로 시간이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다. 그럼 무엇이 슬픔을 잊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생활 속에 녹아 있는 개개인의 작은 즐거움, 기쁨, 소소한 만족이다. 그것들이 켜켜이 쌓이면 슬픔과 고통은 어느새 옅어지고, 이윽고 멀리 자취를 감춘다. ...........................................................................................................................<초역 니체의 말 2>, 175쪽.

 

 

 

니체의 글을 보면 정리가 잘 된 집을 보는 것 같다. 그 집은 아름답다.

어떤 문장은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하다. 다음과 같이.

 

 

 

175쪽.

“그것들이 켜켜이 쌓이면”

“슬픔과 고통은 어느새 옅어지고,”

“이윽고 멀리 자취를 감춘다.”

 

 

 

외우고 싶을 정도로 참 좋구나.

 

 

 

 

 

 

3.

1) 곡식이 누렇게 익은 들판 위에 푸른 하늘이 있고 거기에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에서 어떤 이는 들판이 누렇게 익어 평화로워 보인다고 하고 어떤 이는 새 한 마리가 짝이 없어 고독해 보인다고 한다. 같은 그림에 대해서 ‘평화’를 보는 이가 있고 ‘고독’을 보는 이가 있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란 이미 그의 일부이다.

 

 

 

2)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인해 집을 팔고 작은 전셋집에서 살게 되고 게다가 남편은 중국에 가서 일하게 되어 부부가 따로 떨어져 살게 된 지인이 있다. 부부는 가난하지만 사이가 좋아서 아내는 남편을 그리워한다. 이 얘기를 듣고 어떤 이는 사이좋은 부부가 경제 사정으로 떨어져 살게 되었으니 불행한 부부라고 하고, 어떤 이는 그런 상황에서도 사이좋으니 행복한 부부라고 한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란 이미 그의 일부이다.

 

 

 

3)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본다. 당신 손에는 따뜻한 커피 한 잔 들려 있다. 당신은 커피 향이 나는 그것을 마시며 맛을 느낀다. 어떤 날은 달콤하고 어떤 날은 달콤하지 않다. 어떤 날은 한 잔을 더 마시고 싶고 어떤 날은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다. 당신이 느끼는 커피의 맛은 이미 당신의 일부이다.

 

 

 

4)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본다. 내 마음은 창밖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자연 그대로의 날씨가 만들어 내는 각각의 얼굴이 있다. 여러 얼굴을 갖고 있는 풍경을 감상하길 좋아한다. 눈 오는 날, 비 오는 날, 햇살 밝은 날, 바람 부는 날, 흐린 날 등의 풍경들. 하지만 내가 만들어 내는 모습의 풍경도 있다. 햇살 밝은 날, 어떤 때엔 즐거운 풍경을 보고 어떤 때엔 우울한 풍경을 본다. 비 오는 날, 어떤 때엔 즐거운 풍경을 보고 어떤 때엔 우울한 풍경을 본다. 같은 풍경이라도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은 내 마음 때문이리라. 내가 바라보는 세계란 이미 나의 일부이다.

 

 

 

같은 형식으로 1)에서 4)까지 네 문단의 글을 써 봤다. 내가 니체의 다음의 글을 네 가지로 설명해 본 것이다.

 

 

 

 

 

 

사람의 눈은 카메라의 렌즈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렌즈처럼 앵글에 비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투과시키지 않는다. 가령 석양에 물든 산자락을 넋을 잃고 바라볼 때도 자연의 풍광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는 마음을 비우고 본다 생각할지라도, 실상은 바라보는 대상 위에 영혼의 얇은 막을 무의식적으로 덮어씌운다. 그 얇은 막이란 어느 사이엔가 성격이 되어버린 습관적인 감각, 찰나의 기분, 다양한 기억의 편린들이다. 풍경 위에 이러한 막을 얹고, 막 너머를 희미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즉 인간이 바라보는 세계란 이미 그 사람의 일부이다.

 

 

- <초역 니체의 말 2>, 21쪽.

 

 

 

 

 

이 글을 기억해 두고 싶다. 그 이유는 어떤 일을 전해 들을 땐 누구의 말도 백 퍼센트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생각해 냈기 때문이다. 전해 주는 사람이 재해석하여 전해 줌으로써 사실이 왜곡될 수 있어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두 사람이 싸웠을 때 한 쪽의 말만 믿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경솔할 수 있다는 것. 제삼자의 말을 믿고 판단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무엇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므로.

 

 

 

 

 

 

 

 

 

 

 

 

 

 

<초역 니체의 말> <초역 니체의 말 2>

 

 

<초역 니체의 말>에는 어떤 글이 들어 있을지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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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4-01-25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의 말,은 못 읽어봤지만 니체의 글은 수사적이고 문장이 아름답다고 들었어요. 달도 아름답겠지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도 아름다우면 금상첨화겠죠. 작년에 철학강의 들으며 니체가 제일 매력적이었어요. 저도 바람둥이이에요 페크님~~ ㅎㅎ

페크pek0501 2014-01-25 15:32   좋아요 0 | URL
반가운 바람둥이 독서광 님...
니체가 매력적인 것 맞아요. 과거에 쇼펜하우어에, 임어당에 반해 저작을 탐독하고
제 페이퍼에 많이 인용해 넣었는데, 최근엔 서머싯 모옴에 반해 7편의 글을 올렸는데...이젠 니체예요. 저 바람둥이인 것 맞죠?
자주 어떤 신간이 나왔는지를 검색해 체크하는지라 요런 매력적인 책은 금방 눈에 띈답니다.

그런데 프레이야 님은 왜 글을 안 올리시죠?
글을 쓰고 모아 두고만 있는 건가요?
제 응원이 부족했나요?
저는 수필 같은 님의 글을 좋아하는 1인이어요.
역시 수필가는 다르네, 뭐 이러면서 님의 글을 읽었던 기억이...

기다리겠습니다. 빨리 글을 올려 주시와요... 절대 빈말 아님...^^
빈말 못함.

yamoo 2014-01-25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4-5권 같이 읽어요. 책은 계속 사게되고...읽는 속도는 현저히 느리고...그치만 전 요번달 20권쯤 읽어 헤치울 거 같습니다..ㅎㅎ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레오니트 안드레예프의 <가룟 유다>, 안셀 무스 <모놀로기온, 프로슬로기온>, 동서문화사판 베르그손 <창조적 진화>, <웃음> 등이에요.
몇 년 전에 알았지만, 저의 이런 독서패턴을 멀티독서라 그런다지요~ 책 좋아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멀티독서를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페크pek0501 2014-01-26 15:15   좋아요 0 | URL
멀티독서... 예, 여러 권을 함께 읽는 알라디너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한 달에 20권이라니요...? 큰 일 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예전에 한 달에 10권은 읽어 봤지만... 요즘은 두세 권입니다.
제겐 낯선 책들을 읽으시네요. 검색해 보겠습니다. 저자 이름도 제겐 어렵네요. ㅋ

노이에자이트 2014-01-2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범속한 대중의 시대를 비웃는 듯한 날카로운 냉소라고 할까요...그런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니체와 함께 쇼펜하우어나 오르테가 이 가세트를 함께 읽어보는 것은 어떨지요.

페크pek0501 2014-01-26 15:18   좋아요 0 | URL
쇼펜하우어는 이제 졸업하려고 해요. 그의 글을 페이퍼에 많이 인용했거든요.

오르테가 이 가세트라면, <사랑에 관한 연구>가 제일 관심이 가네요.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정독하며 반복해 읽었는데 저는 그렇게 쓰는 사람이 놀랍더라고요. 천재가 아닌가 생각했죠. ㅋ


다크아이즈 2014-01-26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나 쓰기가 재미보다는 습관성이 되어 버려서 이제 재밌어서 하는 일인지, 의무감으로 하는 일인지 헛갈려요. 솔직한 심정은 재밌어서 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습관 같은 것...
정말 제가 원하는 건 아무 생각없이 놀고, 먹고, 보고, 자는 것...
근데 그게 두려우니까 억지로 붙잡고 있는 그 무엇이 쓰고 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여전히 일상은 무료하고, 머릿속은 복잡한 일요일입니다.^^*

페크pek0501 2014-01-26 15:20   좋아요 0 | URL
그래서 위대한 것은 습관인 거죠. 습관성 맞아요.
하지만 처음 습관이 되기까지엔 좋아서 그렇게 된 것 아닐까요?
저는 요즘 그냥 머릿속에서 빙빙 도는 것들이 있으면 저절로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쓰지 않으면 계속 빙빙 돌고 있는 것을 못 참죠.
이걸, 머릿속에서 꺼내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로 표현한 글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아요.
저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놀고 먹으며 살면 살이 찔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질 못하면서 체중이 빠진 것을 근심하고 있으니...
그런데 팜 님이 일상이 무료할 틈이 어디 있습니까. 바쁘실 텐데요.
저는 무료, 하고는 관계없이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바빠 죽겠고 시간 없어 죽겠으니까요.
늘 시간에 쫓기며 사는 듯해요. ^^


노이에자이트 2014-01-26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세트 책 중에서 니체처럼 부르주아 사회에서의 대중의 범속함을 비판하는 책으로는 <대중의 반역>이 역시 최고지요.다소 보수적 귀족주의 냄새를 풍기는 게 흠이긴 합니다만...

페크pek0501 2014-01-27 13:56   좋아요 0 | URL
대중의 반역... 검색해 보겠습니다.
님은 모르시는 게 없는 것 같아요... ^^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4-01-27 0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멋진 글 덕분에 이 책이 보고 싶은데요~ ^^
오래전에, 그러니까 스무살 쯤에 5권짜리 니체전집 사서 이해도 못하면서 열심히 읽었던 기억만 납니다.

페크pek0501 2014-01-27 14:03   좋아요 0 | URL
반가운 순오기 님!
저도 삼십대 초반에 친정에 가서 니체 전집 중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이란 책을 세로 줄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명작이라더니 뭐가 이렇게 지루한가, 그랬어요.

그런데 이 책은 일본인이 엮은 책인데 니체의 책들을 주제 별로 엮어서 참 읽기 편하답니다. 물론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에서 발췌한 것도 있는데, 다시 읽으니 이렇게 좋은 문장이 있었나, 할 정도예요.
글이 길지 않아 두 시간 정도면 읽을 것이고 머리맡에 두고 반복해 읽어도 좋을 만큼 뜻 깊은 글이 많아요. 님께 추천합니다.
저는 <초역 니체의 말> 첫 번째의 책도 주문해 볼 예정입니다.
완전히 니체에게 반해 버렸어요. 우리 같이 반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