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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정의 -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
마사 누스바움 지음, 박용준 옮김 / 궁리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때가 있다. 여기서 문제란 직접 경험하기 전엔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말한다. 서로 똑같은 처지가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상대의 마음 상태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건 인간관계에서 큰 장애 요인이다. 이 장애 요인으로 인해 상대를 오해하기도 하고 상대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 대부분은 ‘인간’에 대해 무지하다. 단지 자신의 무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인간이 어리석다는 것은 알지만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르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우리 모두 자신만은 올바르게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사별한 사람의 심경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난 8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로부터 며칠 뒤에 어머니의 심경을 전해 들은 게 있다. 남편이 죽었다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자신이 죄를 지은 것도 같아서 밖으로 돌아다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과일을 사러 슈퍼마켓에 가는 것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고 한다. ‘남편은 죽었는데 자신은 과일을 먹고 싶어 사러 왔다.’고 사람들이 자신을 흉볼 것 같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자신에게 말을 붙이며 위로해 주는 사람보다 못 본 척해 주는 사람이 더 고맙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 남편과 사별한 경험이 없으면 이런 마음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갖춰야 할 덕목 중의 하나가 상대를 배려하는 것인데, 이것은 상대의 마음을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면, 과부가 아닌 사람은 과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배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상대와 똑같은 처지에 있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우리가 상대의 마음을 공유하며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공부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2.
내가 이십 대 초반에 있었던 일이다. 한 친구가 자신의 부모에 대한 얘기를 들려 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비밀스러운 얘기를 하듯 머뭇거리다가 입을 떼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해서 따로 살고 있으며 자기는 어머니와 살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늘 슬픔을 품고 산다고 한다.
나는 이 얘기를 듣고 놀랐지만 위로를 해 주고 싶어서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이혼이 별것 아닌 일이라는 듯이 말했다. 이혼한 부모를 둔 게 그에게 큰 약점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였다. 상처를 받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런데 나중에 그가 얘기해 줘서 알았는데 이런 나의 말이 그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그는 내게 그런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고 한다. 그가 바랐던 건 내가 자신의 심경과 똑같이 느껴 주는 것, 그것이었다. 즉 내가 ‘공감’하길 바랐던 것. 만약 내가 그의 슬픔에 공감해 주었다면 그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런 그의 마음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3.
내가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을 대할 땐 본인이 그 일에 대해 말하기 전엔 알은 척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본인이 슬픈 일을 말할 땐 그의 마음에 공감해 주는 게 좋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내가 어머니와 친구로부터 듣지 않았다면 내가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소설 읽기’가 답이 되지 않을까 한다. 만약 내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을 읽었다면 그의 마음을 잘 알았을 것이다. 꼭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을 읽지 않더라도, 평소에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보다 평소에 소설을 읽는 사람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더 발달하리라고 확신한다.
만약 소설을 주의 깊게 읽었다면, 우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다. 이는 가난한 자들을 마치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는 듯 대하고, 극히 평범하고 비루한 환경을 공상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거주하는 장소인 듯 바라보는 태도와 같다. - 88쪽.
(소설은) 우리 스스로를 친구로서의 공감과 감정을 이입하는 동일시를 통해 등장인물들과 관계 맺음으로써 그들의 운명을 나의 운명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 88쪽.
문학 작품은 일반적으로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의 입장에 서게 하고, 또 그들의 경험과 마주하게 한다. - 33쪽.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예술 등 모든 영역에서 ‘생활의 지혜’라는 건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바탕 없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어떤 영역에서든 인간의 활동이 없는 영역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인간학’이라고 말하는 소설을 읽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리라.
4.
우리는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상상력이 과학이나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은 그것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소설에서도 필수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세계이고, 소설을 읽는 독자 또한 상상력으로 그 내용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독자는 소설을 보면서 상상력의 힘을 빌려 등장인물들의 느낌과 생각을 공유한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상상력을 강조했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식은 제한적이지만 상상력은 계속해서 발달을 자극하고 진보를 낳으면서 온 세계를 포용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가치가 있다면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도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특히 상상력을 발전시키고 싶은 청소년들에겐 소설을 읽는 게 더욱 필요하리라.
5.
혹시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저는 소설 나부랭이나 읽는 사람들과는 달라요.”라고 말하는 사람.
“제가 소설을 읽고 있다고 하면 왠지 창피해져요.”라고 말하는 사람.
이렇게 소설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유익한 독서가 되리라. 이 책은 우리가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므로. 우리에게 문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문학의 가치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므로.
6.
이 책은 문학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찰스 디킨즈의 『어려운 시절』, 리처드 라이트의 『미국의 아들』, E. M. 포스터의 『모리스』 등의 소설을 등장시켜 설명한다.
이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다음의 글들을 뽑았다.
1) 우리는 단순화된 모델이 주로 쉽게 장악하고, 이것이 현실의 전체인 양 보게 만드는 편리함을 늘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경향에 맞서야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더욱더 소설 읽기를 강조해야 한다. 소설 읽기는 인간적 가치에 대한 감각을 생생하게 일깨워주며, 우리를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가치 판단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 110쪽~111쪽.
2) 『어려운 시절』과 같은 소설을 해석의 이론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문학이론가로서가 아니라 감동하고 기뻐하는 인간 존재로서 읽을 때, 우리는 개인적 편견과 선호로부터 자유로운 분별 있는 관찰자가 된다. - 180쪽.
3) 사실상 우리는 소설에 의해 특정 형태의 재판관이 되는 것이다. 재판관으로서 우리는 무엇이 옳고 적합한지에 대해 서로 논쟁을 하게 될 것이다. - 181쪽.
4)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그리고 다른 많은 형태의 유해한 편견은 흔히 집단 전체에 부정적인 특징을 귀속시키는 것에서 비롯한다. (…) 문학적 이해란 사회 평등으로 이끄는 마음의 습관을 고취시켜 집단 증오를 지탱하던 고정관념을 해체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 196쪽~197쪽.
5) 라이트의 소설은 내가 언급한 두 가지 방식 모두에서 “형평을 맞춘다”. 즉, 절망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개별자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 비거의 자아 개념과 감정적 삶을 지배하는 힘은 인종적 불평등과 증오다. 그는 백인 사회가 그에게 가한 명예 훼손으로부터 도출된 이미지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 즉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정의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를 그러한 식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무력함과 수치로부터 벗어나고자 폭력을 사용하며 생쥐와 같이 사납게 달려들 가능성이 다분한 존재다. - 198쪽~199쪽.
6) 소설은 처한 환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본래 같은 형제들이라고 말하는 손쉬운 공감을 불러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백인 독자들은 비거와의 동일시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의 외부적 환경뿐 아니라, 그의 감정과 욕망은 사회적 ‧ 역사적 요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 199쪽.
7) 하지만 손쉬운 종류의 공감 이면에는 깊은 공감의 가능성이 놓여 있다. 즉,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 존재다. 생산적인 삶을 이끌 기본적인 장비를 가진 존재. 행위의 외부적 환경뿐 아니라 분노, 공포 그리고 욕망이 인종적 증오와 그것의 제도적 발현으로 인해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보라.” 동일시를 거부하게 만드는 이질감이 이제 우리의 주요 관심 대상이 된 것이다. - 199쪽~200쪽.
8) 소설은 모리스의 번영하는 삶과 클라이브의 위축된 삶의 묘사 속에서 자유의 깊은 가치를 보여줌으로써 성적 평등과 자유의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소설은 우리 자신 혹은 친구나 연인 중 누군가도 모리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간파할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그러한 평등의 지지자로서 독자의 참여를 요청하는 것이다. -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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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리뷰를 쓴 사람이 없어서 내가 첫 리뷰 등록자가 되었다.
그래서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